강원도로의 여행이 결정 된지는 이미 며칠 전이었다.
집을 고치는 중이라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슈렉은 혼자서는 가고싶지 않다며 계속 나를 졸랐다.
집 고치는 일은 핑계고 사실은 슈렉이 가입한 주말 전원주택 동호회의 off line 모임에 함께 가는 것이 부담스럽고,
남쪽 지방에 살면서 추운 곳에 가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작지만 숙박업을 하다보면 어디로 여행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을 고쳐먹고 함께 가기로 하였다.
드디어 금요일 아침이 밝았고 대충 하던 일을 정리하고 11시쯤 집을 나섰다.
덩키는 풀어주고 럭키는 집을 잘 지키라고 묶어두었지만 두 애들이 마음에 걸렸다.
광주에서 중부 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지루했다.
만약의 경우 폭설에 대비하여스노우 체인도 사고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북쪽으로 올라 갈수록 녹지 않은 눈이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였다.
남해안에는 눈이 내려도 쉽게 녹아버려서 볼수 없는 풍경들이 이제는 생소하기까지 하였다.
어둠이 짙어 질수록 산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을씨년스럽고 괴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우리의 목적지는 가도가도 보이지 않고 끝이 없었으며 길은 미끄러웠다.
한참을 칠흙같은 산속으로 들어 가더니 네비가 멈췄다.
차에서 내리니 얼어 붙을 것 같은 추위가 강원도에 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쨍하게 다가오는 알싸한 냉기는 온몸을 감아왔다.
불꺼진 팬션엔 숙박객도 없었고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숙박비까지 비싼 곳이라 우리는 인제군 상남면 소재지로 다시 나가야했다.
면소재지의 아주 작은 모텔을 정하고 맛 없는 닭갈비로 요기를 하였다.
모텔로 돌아와 따뜻한 물로 언 몸을 녹이고 하룻밤이 저물어 갔다.
땅끝에서 하늘동네까지 달려 온 여정은 9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다음 날 모임은 오후 12시 30분이었다.
한참 늦잠을 자고 나왔지만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 그리고 내가 머문 곳은 해가 가장 늦게 떠오르는 산골이다.
모텔을 나서서 산만 보이는 길을 지나고 지났지만 산만 보이는 곳이었다.
어쩌다 보이는 민가의 풍경은 마치 북유럽의 어느 마을에 와 있는 착각이 들었다.
내린천 상류를 끼고 드라이브를 하였다.
보이는 것은 온통 하얀 산과 문 닫힌 팬션들 뿐이었다.
커피 한 잔이 간절하여 찾아 보았지만 문을 연 곳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주말주택 동호회 워크샵을 한다고였다.
그들은 부지를 매입하고 토지공사에 들어가기전 지역에 맞는 집을 짓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나와 슈렉은 그곳에 초대를 받아 손님으로 간 것이다.
하얀마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팬션에서 주인 가족들과 금방 친구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올해부터는 무료숙박을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하였다.
물론 나도 그들이 남해안을 여행할때 모든 것을 무료제공 할 생각이다.
홍천군에 자리한 살룬 제로에너지 주택에 관한 설명회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제로에너지 주택을 건축한 이대철씨의 아들 이훈씨다.
설명회가 끝나고 우리 일행들은 살룬 제로에너지 주택을 방문하였다.
보기엔 평범하지만 아주 꼼꼼한 시스템으로 연료비와 전기료가 들지 않는 친 환경 주택이다.
물론 저런 집이 탄생하려면 초기비용은 무척 비싸다.
그러나 앞으로 고갈 될 화석 에너지를 대체한 주택으로는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주택은 이미 메스컴을 통해 많이 홍보가 된 것이라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이 집에서도 파수꾼 같이 잘생긴 견공을 친구로 삼아서 돌아 오는 순간까지 우정을 나누었다.
건축을 하다가 남는 목재로 이렇게 새집을 만들어 세워두니 멋진 데코레이션이 되었다.
겨울철 먹을 것 없는 새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고 거처할 곳을 마련해주고 새들은 노래 불러주는 상생의 장소다.
첩첩 산중에서 살면 꼭 필요한 시스템의 하우스를 남쪽지방에서도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다.
슈렉이 참석한 이유는 저 주택동호회원들의 집을 지어야하기 때문이었다.
공동체 마을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서 친구가 되고 같은 꿈을 꾸는 모습에 나도 묻어 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주인 이대철 선생님의 공구를 모아 두는 창고다.
연장이 공구상을 연상하게 해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저 건물로 들어서며 남자들이 말했다.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공간이라고 하지만 여자인 나도 꿈꾸는 공간이다.
모임이 있으면 당연히 사교의 공간도 있는 곳 그곳이 우리나라의 풍습이다.
여흥 많은 슈렉은 전형적인 캬바레 스타일 춤을 추며 즐거워하였다.
그곳에서 동갑내기 친구들을 몇 만들고 슈렉은 동갑내기 일년 후배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이 건축가로 선호하는 사람은 슈렉같이 솔직한 남자였다.
나는 그들과의 만남을 갖고 헤어지며 마음 속으로 기도를 하였다.
그들의 꿈과 희망에 데미지를 주지 않는 양심있는 건축을 해 줘야한다고,
물론 슈렉도 순한 양처럼 그러겠다고 큰 눈을 꿈뻑이며 약속하였다.
다음 날 아침 살둔 마을에 들려서 다시 안주인이 끓여주신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고 창고를 돌아보았다.
그집에서 본 개집이 참 특이하였다.
개집조차도 패시브하우스로 만들어 흥미로웠다.
나도 집에 돌아가면 슈렉에게 개집부터 멋지게 지어 달라고해야지.
그들이 공동구매한 주택부지로 가보았다.
산이 많은 동네라 산자락 아래 이십채의 마을을 만들 터를 마련해 두었다.
슈렉도 그곳에 한 필지를 구입하기로 하였다.
우리들의 섬머캠프로 사용하고 지인들에게도 빌려주기로하였다.
동호회 회원들의 주측을 이루는 회원들과 함께 그곳에서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내게 함께 살자고 제안하였지만 예스라고 말 할 수는 없었다.
난 이곳 장흥에서 할 일이 많고 무엇보다 이곳을 사랑하기때문이다.
눈의 나라에서 인증샷.
일정을 마치고 우리도 집으로 돌아와야했다.
집에 일은 잔뜩 밀려있지만 우리커플이 누구?
하이디와 슈렉은 방향을 동해안으로 잡았다.
7번 국도를 따라 우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강원도의 막국수를 먹고 동해안으로 계속 달렸다.
낯설은 풍경들이 눈에 들어 올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달리는 차안에서 찍다 보니 좋은 작품을 건지기는 힘들었다.
인제에서는 빙어 축제가 한창이었고 슈렉은 그곳을 슝하고 지나가 버렸다.
설산 여기저기 소나무 위에 만개한 눈곷이 낙화를 하는 풍경은 두 눈에 담아 두고달렸다.
가는 줄에 빽빽하게 매달려 입을 하늘로 벌린 황태덕장을 지나치고 돌지 않는 풍차도 보았다.
말로만 듣던 태백산맥을 통과할때는 오줌을 지렸다.
그냥 단순한 멋지다 아름다워라는 표현으로 말하기는 부끄러웠다.
내 몸 안에서 분출하는 뭔가가 뜨거운 단어로 나오질 않았다.
눈 덮힌 계곡을 지나며 신이 창조한 작품에 아후! 아후! 감탄사만 연발 하였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영덕으로 가서 온천을 찾아다녔다.
온천을 찾았지만 바다가 보이지 않아 차를 돌렸다.
해물짬뽕이라는 간판을 발견하고 들어간 중국집에서 슈렉은 얼큰한 짬뽕을 나는 짜장면을 먹었다.
어둠이 내리는 바다를 보며 식사를 하는 동안 어둠은 완전히 우리를 포위하였다.
주변의 모텔을 찾아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오랜만에 배스를 하였다.
마치 온천욕을 하는 것처럼.....
오지 말라고해도 아침은 온다.
간밤에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는데 아침엔 갈매기들의 합창에 잠이 깨었다.
창가에 서서 비내리는 바다를 내다보았다.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 가 생각나게 하는 뮤직비디오 같은 곳이다.
한 척의 어선이 포구를 출발하자 갈매기 떼도 따라 이동하였다.
멀리 방파제엔 빨간 등대가 손가락 만하게 보였고 파도는 등대에 닿기위해 안간힘을 쓰며 부딫혀갔다.
집으로 돌아 오는 도로는 사정이 좋지 않았다.
경주 가까운 곳 까지 가서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차의 방향을 트는 슈렉에게 조금은 서운했지만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은 즐거웠다.
휴계소가 보이면 차를 세우고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도넛과 커피도 사먹으면 슈렉은 과소비 한다고 잔소리.
"뭐 어때 회진 가면 이런 건 먹어 볼수도 없는데 과소비좀 할거야.히잉~ (코 맹맹이 소리)"
여행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새로 생긴 고속도로를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장흥 읍내로 들어왔다.
비는 더욱 거세어졌지만 차창문을 열었다.
아~ 장흥의 내음 탐진강의 내음이 코속으로 밀려왔다.
3박 4일의 여정을 마치고 대한민국을 한 바퀴 돌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왜 우리 장산마을에 들어서니 마을이 초라해 보이는 걸까?
장산은 마치 키 작은 사람들이 사는 소인국 같았다.
하긴 내가 소인인데 소인국에서 살아야지~
차가 집 마당으로 돌아오자 풀 죽어 지내던 우리 두 강쥐들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른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은 사람이었다.
친구를 만들고 자연을 보고 돌아오며 느낀 것은 자연과 사람은 하나다.
그 자연 속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관대함과 친화다.
그러므로 이번 여행은 나의 좋은 메모리로 저장되었다.
첫댓글 제로에너지주택 거 제가 넘 관심 많이가는 주택입니다.
우째 짖는 건지 잘 공부해 놓으시고 나중에 슈렉에게 우리집 지어달라
부탁하면 좋겠네요~! ㅎㅎㅎ 즐겁고 유익한 여행을 하셨네요~! ^ ^
저도 이번에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전에 그 분을 티비로 봤는데 이번에 뵙고 설명을 듣고나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슈렉을 맘에 들어하는 것 같았어요.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시더군요. ^^
아으...홍천. 지인 몇명이 그쪽에 별장으로, 혹은 본래의 주거지로 살고 계시는데
결국은 너무 추운 겨울 때문에 항복하던데 어떨지 싶네요.
그래도 간만에 추운 곳 여행은 잘 하신 것 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