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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삿 1:1-7
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찌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3.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나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4.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들의 손에 붙이신지라 그들이 베섹에서 일만명을 죽이고
5.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서 그와 싸워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죽이니
6.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으매
7. 아도니 베섹이 가로되 옛적에 칠십 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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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조상호목사
1981년도의 코카콜라의 자산은 4억 달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16년 만에 코카콜라의 자산이 무려 3500% 성장을 하여 150억 달러 정도로, 코카콜라의 주식 소유자들은 백만장자가 된 사람이 수 없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코카콜라 사는 GE(General Electric)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탁월한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코카콜라 사를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코카콜라의 폭발적인 성장 배경에는 로베르토 고이쥬에타(Roberto Goizueta)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981년에 코카콜라 사의 회장에 취임한 후, 암에 걸려 사망한 1997년 까지 16년 동안 코카콜라 사를 경영하였는데, 그에 대해서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그 사람만큼 아메리카 드림의 본 보기가 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그 자신이 믿었을 뿐 아니라, 그의 탁월한 리더쉽으로 인해 수천 명의 다른 이들이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는 자꾸 현실에 안주하려는 회사의 중역들에게 엄청난 목표 제시를 함으로써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코카콜라의 이미지 구축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는 항상 이렇게 외쳤습니다. “코카콜라의 경쟁상대는 다른 청량음료들이 아니라, 물이다. 물과 경쟁했을 때, 우리의 시장 점유율은 40%가 아니라 3%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 우린 한참 멀었다.” 그렇게 최고 경영자가 말하니 회사 중역들은 현실에 안주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전 세계에 퍼져있던 코카콜라는 더욱 공격적인 경영으로 ‘지구촌 시대 판매 전략’에 돌입했습니다. 그는 그의 경영 방침에 다음과 같은 모토를 내걸었습니다. “미국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코카콜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그 결과, 회사 전체 수입의 65%에 불과하던 해외 시장 수입이 1997년도에는 80%로 올라섰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새롭게 도전하는 것을 꺼립니다. 이미 익숙해진 것을 잘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또 다시 새롭게 도전하려면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희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익숙해지는 데까지 힘들고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주부를 대상으로 한 TV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사회자가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부들에게 다시 태어나도 현재의 남편과 살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대부분의 주부들이 다시 태어난다면 현재의 남편과 절대 함께 살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사회자가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이나 관람객 모두에게 “이 자리에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현재의 남편과 다시 살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할머니를 보면서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사회자는 진실한 사랑을 하며 사는 부부를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마이크를 대고 “할머니, 정말 다시 태어나도 현재의 남편과 살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럼 물론이지요. 우리 남편을 지금까지 길들이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무엇을 말하고 있는 이야기입니까? 지금의 남편이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남자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더욱 싫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변화되길 싫어합니다. 현재의 모습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겪어야 할 일이 너무 힘들고 귀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도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언제나 전진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코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옆으로 나왔습니까? 아니면 뒤로 쑥 들어갔습니까? 앞으로 튀어나왔습니다. 귀도 앞의 소리를 듣도록 앞을 향하여 열려져 있습니다. 말은 언제나 앞을 보고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눈은 머리 뒤통수에 달리지 아니하고 앞에 달려서 앞이나 위를 바라보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이 자리에 머뭇거리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 없습니까? 전진하지 못하고 과거로 돌아가는 사람이 없습니까? 혹시 우리 교회가 이 정도면 되었다고 하며 이 자리에 멈췄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없습니까?
지난 10년 동안 우리 교회는 힘차게 달려왔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이 자리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에벤에셀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도우셨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이 자리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가만히 서 있는 것은 후퇴입니다. 왜냐하면 세월은 흘러갑니다. 나이는 들어갑니다. 머리는 하얀색으로 변하고, 주름은 하나둘 늘어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제 자리에 서있는 것은 정체가 아니라, 후퇴임에 분명합니다. 우리는 10년 동안 달려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들에게 “새롭게 다시 시작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0주년 감사예배를 드리고 홈컴밍데이를 주님의 은혜 가운데 마친 우리 교회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여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1절 상반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는데, 여호수아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지도자입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2~300만이나 되는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건너고, 금성철벽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 원주민들을 공략하여 꿈에 그리던 가나안에 승리의 깃발을 꽂은 가나안 정복의 영웅입니다. 지도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죽은 것입니다.
믿었던 지도자가 사라진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도 산더미처럼 많은데, 그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 지도자가 죽은 것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는커녕, 오히려 가나안에 남아있는 잔존세력으로부터 반격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살다보면 이와 유사한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 개인이, 우리의 가정이, 우리 민족이 어디로 가야 할 지, 나아가야 할 방향 감각을 상실할 때가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환경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하나님의 뜻을 물으라
먼저 기도로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잘 아는 것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새벽기도회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제가 한국에서 평신도로서 롯데그룹 중앙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저는 아픔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그 아픔은 신입사원으로서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직장 상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저의 아픔은 다름 아닌 제가 개발한 것들이 제품화되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어 가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퇴근도 하지 않고 연구소에서 밤새도록 연구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었는데, 번번이 상사로부터 결재를 받지 못하여 심혈을 기울인 것이 수포로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제가 만든 것을 제품으로 허락받기 위해 결재 받으러 직장상사의 방에 들어가는 것이 정말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껌 연구실에 있는 박 모라는 입사 동료는 달랐습니다.
그 친구는 항상 결재판을 들고 콧노래 부르며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우수연구원상을, 그 친구는 종종 받곤 하였습니다. 비록 예수 믿는 저였지만, 그 친구를 보면서 얼마나 배가 아팠는지 모릅니다. 제가 어느 날 입사동기인 그에게 좌초지종을 이야기하며 저의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 친구가 저의 고민을 듣더니 자기가 결재를 잘 받는 비결을 알려주었습니다. 자기는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자기의 상사에게 항상, 그리고 충분히 먼저 물어 본다는 것입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롯데껌이 자기 같은 평연구원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기의 상관과 충분히 토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개발된 제품은 대부분 결재를 통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스터 조,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비결을 모르는군.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직장 상사에게 항상 물어보라고. 상사가 원하는 방향을 정확히 모르면 아예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아. 먼저 물어보고 일을 시작하라고...”
저는 17~8년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의 말이 기억납니다. 저는 그 때 그 친구의 말이 저의 인생에 있어서, 아니 저의 신앙생활과 사역에 있어서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후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그들은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먼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민족의 지도자인 여호수아 장군이 죽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들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남아있는 가나안 사람들과 싸워야 합니까? 말씀 해주십시오.”라고 그들은 기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에서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아십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매사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애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다시 묻자온대, 다윗이 가로되”(삼상 23장) 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다윗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먼저 묻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방향을 지시하시면 그 길을 달려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때때로 씻을 수 없는 실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호를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물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의 장벽이 여러분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믿었던 사람이 여러분들로부터 등을 돌렸습니까?
자녀들이 여러분들의 생각처럼 자라지 못하고 있습니까?
생각지 않게 물질의 문제가 생겼습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습니까?
지금이야말로 기도할 때인 줄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야말로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때인 줄로 믿습니다. 기도함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첫 번째 비결은 기도로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2) 믿음으로 나아가라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두 번째 비결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로 하여금 ‘앞장서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그 때 유다 지파는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 “하필이면 우리 지파입니까? 싫어요, 못해요”라고 하며 머뭇거렸습니까? 아닙니다. 4절 상반절을 보면 “유다가 올라가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올라갔다고 합니까? 유다 지파가 올라갔습니다. 유다 지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저는 이렇게 믿음으로 전진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부터 3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믿음은 뒤로 물러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지 않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인생,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곳 뉴질랜드나 호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럭비입니다. 저는 이 럭비 경기가 매우 성경적인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럭비에는 후퇴가 없습니다. 축구에는 작전상 후퇴가 있습니다. 볼을 가진 선수가 볼을 뒤로 돌리며 드리블 할 수 있지만, 럭비 경기에서는 볼을 가진 선수는 대부분 뒤로 가지 않습니다. 1미터라도 전진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합니다. 상대편에서 태클을 걸어도 죽자 살자 앞으로 전진 합니다. 여러 명이 에워싸고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저는 럭비 경기에 임하는 자세와 히브리서 10장의 정신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도전정신이 없습니다. 항상 입만 열면 “할 수 없어요, 못해요, 안돼요, 무서워요, 어려워요, 살 떨려요,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해요”라고 말하는데, 이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겉모습은 믿음이 연약한 것처럼 “좋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에 한 번 도전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이 진짜 믿음의 사람입니다.
저는 지난 금요일 새벽기도회에서 오세아니아 총회장이시자 시드니순복음교회 담임목사님이신 정바울목사님의 사모님이신 홍금란 전도사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아마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 목사님(정목사님)은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한번 믿음으로 결정하면 우직하리만큼 끝까지 나아갑니다.” 저는 이러한 믿음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우리 정목사님을 크게 쓰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다지파를 보십시오. 그들은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4절부터 6절까지를 보겠습니다.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들의 손에 붙이신지라. 그들이 베섹에서 일만 명을 죽이고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서 그와 싸워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죽이니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으매”
유다 지파가 올라가매 누가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들의 손에 붙였다고 합니까?
여호와께서 적들을 그들의 손에 붙여 주셨습니다. 유다 지파가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전진하는 사람,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이 맛볼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계산기 잘 두드리는 사람보다, 믿음으로 전진하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직하지만 멈추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경주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그 사람을 통해서 일하기를 원하시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다른 사람과 동역하라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세 번째 비결은 다른 사람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나의 제비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유다는 자기의 믿음만을 앞세우며 자충우돌 하지 않았습니다. 동역자를 구했습니다. 시므온 지파에게 ‘나와 함께 올라가자. 우리와 함께 올라가서 그들과 싸우자’라고 하며 동역자 되기를 간청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홀로’를 부르짖으며 솔로로 뛰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함께 모여 더불어 일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히브리서 10장 24절과 25절에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마지막 때에는 사단이 자꾸 모이지 못하게 하는데, 믿는 자들은 할 수만 있으면 모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여서 더불어 격려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세에 승리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운동선수 중에 미국인들로부터 가장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은 마이클 조던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프로 농구 선수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농구 황제’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프로 농구계에 뛰어난 선수들이 많습니다만, 마이클 조던처럼 ‘황제’라고 불리는 선수는 한 명도 없습니다. 그가 황제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기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농구 황제라고 부르는 그 이유는 훌륭한 리더쉽 때문입니다. 그는 처음 미 프로 농구에 입문했을 때, 혼자서 평균 3~40점, 많을 때는 5~60점을 종종 올리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자기가 높은 점수를 올리는 날, 자기 팀이 경기에 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점수를 20점대로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패스하는 것에 주력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경기에 이기게 되었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친구가 많기로 유명합니다. 많은 선수들이 그와 함께 농구 경기를 하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와 함께 경기를 하면 자신의 플레이가 훨씬 더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동료들에게 멋진 패스를 많이 합니다. 그는 동료들의 기량을 돋보이게 만드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농구 황제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약점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약점을 모르고 스스로 유능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없습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장점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약점에 있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아론과 동역할 수 있었고 여호수아와 훌과 같이 훌륭한 일꾼들과 동역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2~300만이나 되는 수많은 백성들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날에도 모세와 같이, 유다 지파와 같이 동역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을 찾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더불어 섬겨주는, 가슴이 넓은 사람을 오늘날에도 찾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4) 남겨놓은 일을 하라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네 번째 비결은 남겨 놓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말은 과거를 묻어버리고 완전히 과거와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를 정리하지 않고 결코 새로운 것을 도전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지도자인 여호수아 장군의 지휘아래 대부분의 가나안 땅을 정복했지만, 유대 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새 하나를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요새 이름은 ‘베섹’입니다. 베섹의 무사들은 매우 용맹스럽고 매우 잔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7절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도니 베섹이 가로되 옛적에 칠십 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여기 ‘아도니’라는 말은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도니 베섹’이란 ‘베섹의 왕’을 뜻합니다.
베섹의 왕은 70여명의 왕의 엄지 발가락을 찍어버리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의 밥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주워 먹도록 하는 등, 매우 잔인한 무사였고 대단한 용기와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지역들은 점령하면서도 이 베섹은 정복하지 않고 남겨 둔 것입니다. 베섹은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숙제였습니다. 남겨놓은, 아니 꼭 해야 할 과제요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섹을 점령하지 않고 놓아두고서는 가나안을 완전히 정복했다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동안 남겨두었던 그 숙제를 해결하기로 결심을 하고, 그곳을 공격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베섹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남겨 놓은 베섹이 무엇입니까?
풀어야 할 숙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먼저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늦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남겨 놓은 일들을 하십시오. 그 일이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물질의 채무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잘라버려야 할 악한 습관일 수도 있습니다. 잊어버려야 할 가슴 아픈 과거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아직까지 늦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남겨 놓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면 그것을 푸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숙제부터 하라. 숙제를 끝내고 놀아라!”
부모님들이 왜 이런 말을 합니까?
숙제를 끝내지 않고 놀 때에는 마음이 불편하지만, 숙제를 끝내고 나면 마음 편하게 놀 수 있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듣기를 싫어해도 자녀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꼭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다면 그것을 하시기 바랍니다. 남겨놓은 일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유머 한 가지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어느 노새 한 마리가 두개의 큰 건초 더미 사이에서 굶어죽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왜 노새가 양쪽에 먹을 수 있는 건초더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굶어 죽었을까요? 그 노새는 고민하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쪽 건초를 먹을까? 아니면 저쪽 풀을 먹을까? 고민하며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굶어죽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쯤 서 계십니까? 머뭇거리며 주저앉아 고민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앉아서 넋두리만 늘어놓으며 원망과 불평만 일삼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새롭게 다시 시작을 하라!”,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