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1990년 11월 1일에 입사했다.
'미션 컴퍼니'
이것 하나만 보고 지원했다.
그 당시 '장로님'이자 '권사님'이셨던 부모님도 크게 기뻐하셨다.
'Businery'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비지너리'는 '비즈니스' + '미셔너리'의 합성어였다.
사회생활의 출발선에서 '일'과 '미션'을 병행하면서 인생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높은 성장과 엄청난 부의 축적 보다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일생동안 작은 벽돌 하나라도 제대로 쌓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반듯한 철학과 올곧은 인생의 좌표가 큰 성공과 많은 물질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곳에서 '세상적인 기준'과는 조금 다른 컨셉으로 내 인생의 첫단추를 끼우고 싶었다.
'일'과 '소명'을 통해 세상을 배워가며 내 스스로를 진중하게 연단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 한 생각 뿐이었다.
한 날 한 시에 약 50여 명의 동기들을 만났다.
모두가 젊고 핸섬한 선남선녀들이었다.
패션, 유통, 레저를 메인으로 하다 보니 특히 여성들이 많았다.
하나 같이 당차고 실력이 출중했으며 믿음이 좋았다.
그리고 순수한 영혼들이었다.
지금까지 회사에 남아 있는 사람은 네 명 정도고 나머지는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가슴 아프게도 하늘나라에 먼저 간 동기도 벌써 두 명이나 된다.
사업과 이민 등으로 해외에서 정착한 사람들도 예닐곱 명 정도나 된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고자 다시 공부해 목사가 된 동기도 두 명이었다.
이제는 모두가 오말육초가 되었는데 어느새 초로라는 게 잘 믿겨지지 않는다.
자녀들의 혼사를 치른 사람도 있고,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동기들도 꽤 된다.
내일 정오에도 '여의도역' 부근에서 한 동기가 아들을 장가 보낸다.
바람처럼 세월이 갔고 아이들이 자라서 대부분 20대 말 30대 초가 되었다.
우리 나이엔 경조사가 참 많은 편이다.
내일도 따뜻한 축하와 격려를 위해 '여의도'에 갈 예정이다.
금년 가을 초입.
'스위스 그랜드 호텔' 레지던스에서 1박2일 간 동기들의 M.T가 있었다.
그때 한 여성 동기가 우리들 신입사원 때 모습이 담긴 사보, '아름다운 정상'을 들고 왔다.
"허걱. 이걸 여태까지 보관하고 있었다고?"
우리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30년 하고도 몇 년이 지난 세월인데 그 시절 '사보'를 지금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니 정말로 대단했다.
감동이 밀려왔다.
돌려 가면서 그때 그 시절의 동기들의 모습들과 각자의 소망을 다시 보았고 읽었다.
싱그럽고 풋풋했다.
나도 이 소중한 자료를 사진으로 담아 간직했다.
내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당시엔 우리도 한 달에 한 번씩 사내 잡지를 발간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그랬다.
'문체부'에서 선정하는 '사보대상'도 몇 번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도 활발하게 발행하는 데가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절감하는 인생 테마가 몇 개 있는데 그 중 사람에 대한 본질과 이해가 가장 크고 오래 간다.
사람은 논리로 설득할 수 없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교육훈련'에 예산을 쏟아부어도 그때 뿐이다.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사람들은, 특히 중년 이후엔 더 그렇지만, 대부분 '무드셀라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나이에 비례해 그 신드롬적 경향은 더욱 짙어지는 법이고.
나도 동의한다.
우리 동기들을 다시 본다.
내가 아무리 '무드셀라 증후군' 환자라 해도 우리 동기들이 참 멋지고 착한 사람들임을 다시 한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 서류전형과 두 번의 면접을 보면서 몇 주에 걸쳐 선발했는데 경쟁률이 무척 높았다.
실력 검증도 중요했지만 결정적인 당락의 열쇠는 뭐니뭐니 해도 '인성과 가치관'이었다.
'종교적인 신념' 뿐만 아니라 고객을 위한 '헌신'과 '로열티'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회사의 경영철학이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런 잣대로 선발된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지금도 여전히 투명하고 순수한 영혼들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과 신뢰가 오래 갈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고 나이도 들었지만 여전히 삶의 방식과 방향성이 비슷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만나기만 하면 날이 샐 때까지 대화가 잘 통한다.
'유유상종'이란 말은 그래서 참 명제다.
빼어난 능력은 없을지라도 각자의 길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동기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사랑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지금 열심히 도토리를 모으고 있는데 1년 3-4개월 후엔 '베트남'으로 해외 M.T를 떠나려 한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동기가 우리를 초대했다.
서로에게 훈훈한 정과 신뢰를 지속적으로 건네주는 우리이길 소망한다.
그런 관계를 꿈꾸며 그렇게 살고자 흔들림 없이 기도했다.
신입사원 때 백부장(반장)으로 뽑혀 적극적으로 임했는데 33년 이 흐른 지금까지도 회장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위로와 격려가 녹아 흐르는 따뜻한 동기회가 될 수 있도록 나부터 더 배려하며 헌신하고 싶다.
'세상사 일체유심조'다.
사랑한다.
동기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