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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과 인근에 거주하는 백성들
느 11:15-36
15 레위 사람 중에는 스마야이니 그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요 분니의 현손이며
16 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요사밧이니 그들은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고
17 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이니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또 여두둔의 증손 갈랄의 손자 삼무아의 아들 압다니
18 거룩한 성에 레위 사람은 모두 이백팔십사 명이었느니라
19 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이니 모두 백칠십이 명이며
20 그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기업에 살았고
21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니 시하와 기스바가 그들의 책임자가 되었느니라
22 노래하는 자들인 아삽 자손 중 미가의 현손 맛다냐의 증손 하사뱌의 손자 바니의 아들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렸으니
23 이는 왕의 명령대로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정해 주었기 때문이며
24 유다의 아들 세라의 자손 곧 므세사벨의 아들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
25 마을과 들로 말하면 유다 자손의 일부는 기럇 아르바와 그 주변 동네들과 디본과 그 주변 동네들과 여갑스엘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며
26 또 예수아와 몰라다와 벧벨렛과
27 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28 또 시글락과 므고나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29 또 에느림몬과 소라와 야르뭇에 거주하며
30 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마을들과 라기스와 그 들판과 아세가와 그 주변 동네들에 살았으니 그들은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31 또 베냐민 자손은 게바에서부터 믹마스와 아야와 벧엘과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32 아나돗과 놉과 아나냐와
33 하솔과 라마와 깃다임과
34 하딧과 스보임과 느발랏과
35 로드와 오노와 장인들의 골짜기에 거주하였으며
36 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의 일부는 베냐민과 합하였느니라
느 11:15-26 /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에 거주한 이는 스마야. 그의 조상은 아버지 핫숩에서 그 윗대로 아스리감과 하사뱌와 분니에 이르렀다. 16) 삽브대와 요사밧 이 두 사람은 레위 집안의 어른들로서, 성전 건물의 수리와 청소 등 성전의 바깥 일을 책임진 이들이었다. 17) 맛다냐. 그의 조상은 아버지 미가로부터 그 윗대로 삽디와 아삽에 이르렀다. 그는 찬양대의 지휘자로서, 기도를 드릴 때에는 감사 찬양을 선창하였다. 그를 돕는 박부갸는 맛다냐의 친척이며 대리인이었다. 압다. 그의 조상은 아버지 삼무아로부터 그 위로 갈랄과 여두둔에 이르렀다. 18)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주한 레위 사람은 모두 284명이었다. 19) 성전 문지기들 중에서는 악굽과 달몬과 그들의 친척들이며, 이들은 모두 172명으로 성전의 대문을 지키는 이들이었다. 20) 여기에 들지 않은 이스라엘 서민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유다 지방의 마을마다 흩어져 누구나 자기 땅을 지니고 살았다. 21) 성전 막일꾼들은 예루살렘의 오벨 언덕에 살았고, 시하와 기스바의 감독을 받으며 일을 하였다. 22) 웃시. 그는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레위 사람의 지배인이었고, 그의 조상은 아버지 바니로부터 그 위로 하사뱌와 맛다냐와 미가에 이르렀다. 웃시는 예배를 드릴 때에 음악과 노래의 책임자였던 아삽의 후손이었다. 23) 성가대원들은 매일 어명에 따라 봉직을 하였다. 24) 바사 왕궁에서 유다 나라의 대사처럼 일한 사람은 므세사벨의 아들 브다히야인데, 유다 지파 세라의 후손이었다. 25) [예루살렘 성밖의 거주지들] 유다 지파의 주민들이 거주한 유다 지방의 성읍들은 다음과 같았다. 기럇아바와 디본과 여갑스엘과 이 세 성읍에 딸린 마을과 농장들, 26) 그러고 예수아와 몰라다와 벧벨렛과 27) 하살 수알과 브엘세바와 이 성읍에 딸린 마을들과, 28) 시글락과, 므고나와 이 성읍에 딸린 마을들과, 29) 에느림몬과 소라와 야르뭇과, 30) 사노아와 아둘람과 이 두 성읍에 딸린 마을들과 라기스와 거기에 딸린 농경지와, 아세가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 이렇게 유다 지파의 주민들이 정착한 지역은 남쪽의 브엘세바에서 북쪽의 힌놈 골짜기에까지 이르렀다. 31) 베냐민 지파의 주민들이 거주한 지역은 다음과 같았다. 게바와 믹마스와 아야와 벧엘과 이 성읍에 딸린 마을들과, 32) 아나돗과 놉과 아나냐와, 33) 하솔과 라마와 깃다임과, 34) 하딧과 스보임과 느발랏과, 35) 로드와 오노와 대장장이와 세공업자들의 골짜기. 36) 유다 지파의 땅에 머물던 레위 사람들 중에서 일부는 베냐민 지파에게로 가서 정착하였다.
많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살며 성전을 지키려 했지만 느헤미야는 지도자인 제사장과 그들을 돕는 레위인, 성을 지키는 용사들 그리고 제비로 뽑은 사람들만 살게 하였습니다.
레위 사람 중에는(15-21) 삽브대와 요사밧은 하나님의 전 바깥일을 맡았다고 했습니다(16). 앞에서 언급한대로 예루살렘에 남게 된 자들은 제사장, 레위인, 성 문지기, 노래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에는 이들이 하는 여러 종류의 일과 이름이 나옵니다. 특히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는 찬양대 지휘자 혹은 선창자를 말합니다(17). 그리고 성 문지기들은 성전의 각 문들을 지키는 용사들입니다(19). 이 명단의 의미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형제로 모두 172명이며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토지에 살았다고 하였습니다(20).
노래하는 자들인 아삽 자손 중(22-24) 바니의 아들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레위사람들의 감독이 되었습니다(22). 이는 왕의 명령대로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정해 주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23). 즉 매일 할 일을 적은 직무표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직무표는 조직을 만든 사람이 만듭니다. 이는 그가 그 조직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직무표 대로 근무하면 성공적인 직원이 됩니다. 내 인생의 직무표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 직무표 대로 살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 하시리로다”(시 48:14)
유다 자손의 일부는(25-36) 그 주변 동네와 여갑스엘과 그 마을에 거주하였습니다. 특히 유다에 있던 레위사람의 일부는 베냐민과 함께 살았습니다(36). 북 이스라엘에 속했던 열 지파는 앗수르에게 멸망한 뒤 흩어지고 세속화 되었고(왕하 17:23)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 예루살렘에 남았습니다(대하 11:1-12). 따라서 느헤미야는 그들이 차지한 땅이 어디인가를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남아서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시작보다 끝을 귀하게 보신다고 하셨고(전 7:8) 예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끝까지 견디며 믿음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 28:20).
적용: 당신이 교회에서 맡은 직분이 무엇인가요? 그리고 일터에서 맡은 일은 무엇인가요? 본문의 교훈대로 그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 줄 알고, 충성을 다 하고 있나요?
다람쥐는 작고 힘이 약하지만 날쎄기 때문에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또한 기린은 느린 대신에 목이 길어 멀리서도 적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 있던지 어려움은 겪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주어진 환경을 기꺼이 순종하게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나를 선한 방법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는 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 설 교 >
호크마 주석(11:15-36)
=====11:15
여기서부터 18절까지에서는 레위 사람 중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던 세 가문에 대해소개한다.
스마야 - 레위의 막내 아들인 므라리의 후손이었다(창 46:11;대상 9:14).'하나님께서 들으셨다'의 뜻이다. 핫숩 - 3:11을 참조하라.
=====11:16
삽브대 - 에스라를 도와서 개혁 운동을 추진했던 '삽브대'와 동일인일 가능성이많다(8:7,8;스10:15). 그 이름의 의미는 '휴식을 주는' 이다.
요사밧 - 추측컨대 에스라를 도와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해준 '요사밧'과동일인인 뜻하다(8:7). 그 의미는 '여호와께서 판단하셨다'이다.
하나님의 전 바깥 일 - 이것은 레위 사람들의 전형적 직무인 성전 제사와 관계된일 이외의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1) 성전세및 십일조를 거두는 일(10:37-39), (2)백성을 다스리는 일(대상 26:29), (3) 성전의 유지 보수와 관계된 일(Rudolph) 등이포함된다.
=====11:17
본절에는 레위 사람의 또다른 가문이 언급되다. '아삽 자손'의 레위 사람으로 분류된 것은 다소 특이하다. 왜냐하면 본서와 에스라서의 다른 곳에서는 항상 성전 제사에 관여하는 레위인들을 '레위 사람'으로, 아삽의 자손들은 '노래하는 자들'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7:44;스 2:41). 그러나 '노래하는 자들', 즉 아삽 자손도 레위 지파에 속했다는 점에서, 이와같은 분류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맛다냐 -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귀환한 사람이다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의 선물'이다.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 - 여기의 '말씀'(* , 테힐라)은 당연히 '찬송' 혹은 '찬양'으로 번역되어야 한다(출 15:11;신 10:21;시 22:3). 한편, '인도하는'(* , 예호데)은 '인정하다' 혹은 '감사하다' 그리고 '찬송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야다'(* )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찬송하게 하다'의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본 문구는 '기도할때에 감사의 찬양을 부르게 하는 지도자'로 번역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맛다냐'라는 아삽 자손이 오늘날로 치면성가대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맡았음을 말해준다.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 찬양하는 일에 있어서 '박부갸'가 맛다냐에이어 두 번째의 지도자였다는 뜻이다. 한편, '박부갸'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던지는자'의 의미로 추정된다(J. M. Ward).
여두둔의 증손 - 이는 '여두둔의 자손' 으로 번역해야 한다(15절). '여두둔'은 다윗 왕때에 성막에서 찬양과 연주를 맡아하던 인물이다(대상 16:41,42;대하 35:15).
삼무아의 아들 압다 - '압다'의 의미는 '하나님의 종'이다.
=====11:18
거룩한성 - 1절 주석을 참조하라.
레위 사람의 도합이 이백 팔십 사 명 - 이 같은 레위 사람들의 숫자는 다른 지파에비하여 상대적으로 적다. 이처럼 레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적게 살았던 것은 그들의봉사 직무가 힘에 겨웠던 때문일 것이다.
=====11:19
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 - 이 '성문지기'는 문자적으로 다만 '문지기'일 뿐이다.한편,'악굽'과 '달몬' 모두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레위 사람들의 일파인 성전 문지기 가문들의 명단에서 발견된다(스 2:42). 따라서 여기의 '성 문지기'는 오히려 '성전 문지기' 혹은 그냥 '문지기'로 번역해야 한다.
그 형제 - 여기에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문지기 가문들의 대부분이 포함될 것이다(스 2:42).
=====11:20
본절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면서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사람들을 칭송하기 위한 느헤미야의 삽입 구절이다. 즉, 여기서 느헤미야는 많은 사람들이 일신의 평안을 위해 예루살렘을 마다하고 각 지방에 정착했었다는 사실을 기술함으로써, 본 전후 문맥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루살렘 거주자들의 헌신적 자세를 높이 사고 있는 것이다.
=====11:21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하니 - '느디님 사람'은 원래 이방 혈통의 소유자들이었나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온 후 개종하여 이스라엘 총회에 가입되었다(스 2:43). '오벨'은 성전이 세워져 있던 구릉 지대가 뻗쳐져 있는 예루살렘의 동남부였다(3:26).
시하와 기스바가 그 두목이 되었느니라 - 문자적으로는 '시하와 기스바가 느디님사람들의 위에 있었다' 이다 '시하'라는 이름은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느디님사람들의 가문명 중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기스바'라는 이름은 거기서 볼 수 없다.그런점에서 우리는 본절의 두 이름을 가문명으로 보다는 개인의 이름으로 봄이 더 타당할 것이다.
=====11:22,23
17절에서는 아삽 자손의 가문명만이 언급되었으나, 여기서는 그 가문의 우두머리가느헤미야 당시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했는지에 대해 진술한다.
웃시 - '힘센'의 의미이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 - 여기에는 느디님 사람들에 대한 감독권도포함되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Schultz).
하나님의 전(殿)일 - 문맥상 찬양을 인도하는 직무를 가리킨다.
왕의 명대로....양식을 정하여 주는 것 - 여기의 '왕'은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던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을 가리킨다. 이처럼 아닥사스다왕이 레위 사람에 대해서특별한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양식' 곧 '봉급'을 주게 했던 것은, 성전 제사가 원활히 드려져야만 왕 자신과 왕자들을 위한 기도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질 것으로 생각한 때문이다(스 6:10). 이러한 배려는 레위 사람들이 생계 문제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자신들에게 부여된 본연의 직무에 힘쓸 수 있게끔하는 데 큰 뒷받침이 되었을 것이다(10:39).
=====11:24
본절은 23절에서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의 레위 사람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질수 있게 되었던 중요한 원인을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그래서 본절은, 헌신적 자세로써 예루살렘에 정착했던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는 마당에 전혀 성격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것이다.
유다의 아들 세라 - 야곱의 아들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서 두 아들 곧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었다(창 38:11-30).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 - 문자적으로 '브다히야는 백성들의 모든 일과 관련해서 왕 곁에 있었다'이다. 따라서 '브다히야'는 마치 에스라가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서서 아닥사스다 왕에 대한 조언자의 역할을했던 것으로 보인다(Fensham). 그래서 NIV는 본 문구를 '브다히야는 백성들과 관계되는 모든 사건에 있어서의 중개자였다'(...was the king's agent in all affairsrelating to the people)라고 번역하였다. 이처럼 페르시아 황실에 '브다히야'와 같은대변인이 있었기 때문에,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의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었으며또한 레위 사람들에게 먹을 양식을 주라는 명령을 할 수 있었음이 분명하다.
=====11:25
본서의 저자는 예루살렘에 정착했던 여러 계층 사람들의 지도자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마치고, 여기서 부터는 당시 백성들이 어떤 곳에서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 언급하기시작한다.
향리와 들 - 엄밀히 말하여 '들이 딸린 향리'로 번역된다. 여기서 '향리'(* , 하체르)는 '울로 둘러싸인 구내'(區內)를 의미한다(Wigram). 그리고 '들'(* ,사데)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경작지를 뜻한다(창 2:5;24:63;수 8:24).
유다 자손 -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이들은 팔레스틴 땅의 남부 지역을 기업으로 할당받았었다. 그래서 30절까지 언급되는 이 유다 자손의 거주지도 모두 남부에 위치한 성읍들이다.
기럇 아바 - 히브리 원문대로 한다면 '기럇 아르바'로서 헤브론(수 14:15)과 동일한 지명이다. 이 성읍은 예루살렘 남방으로 30여Km 지점에 위치하였고 아브라함을 위시한 여러 족장들이 묻힌 유서깊은 곳이다. 그 촌(* , 베노테이하) - 중심되는 성읍의 주변에 위치한 독립 마을을 가리킨다(3:12).
디본 - 수 15:22의 '디모나'이다.
여갑스엘 - 수 15:21의 '갑스엘'이다.
그 동네(* , 하체레이하) - 본절 초두의 '향리'와 동일한 단어이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는 앞의 '촌'보다는 휠씬 작은'정착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Fensham).
=====11:26
예수아 - 수 15:26의 '세마'로 추정된다(Schultz).
몰라다 - 수 15:26에 언급되고 있는 유다의 남부 성읍이다.
벧벨렛 - 수 15:27을 참조하라.
=====11:27
하살수알과 브엘세바 - '브엘세바'는 유다의 최남단에 위치한 성읍이며 '하살수알'은 여호수아에서도 '브엘세바'와 함께 언급되는(수 15:28) 것으로 보아, '브엘세바'와인근한 성읍이었을 것이다(Rawlinson).
=====11:28
시글락 - 원래는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이었으나(수 19:1,5), 그들이 탈환치못함으로써 사울 시대까지 블레셋 족속의 차지가 돼었었다. 그러다가 사울을 피해 블레셋의 가드왕에게 망명을 했던 다윗이 그 왕으로부터 빌리면서 계속 이스라엘의 땅으로 남게 되었다(삼상 27:6). 그 위치는 헤브론 즉, 기럇 아바(25절)에서 남동쪽으로약 45Km 지점이다.
므고나 - 수 15:31의 '맛만나'와 동일한 듯하다(Schultz).
=====11:29
에느림몬 - '림몬의 샘'의 뜻이다. 바로 이 같은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성읍은수 15:32의 '아인'과 '림몬'을 합한 것인 듯하다(Rawlinson).
소라 - 원래 유다 지파에게 분배됐었으나 한 때는 단 지파가 거주했었다(수 19:40,41). 단 지파였던 삼손의 출생지도 이곳이다(삿 13:24,25).
야르뭇 - 가나안 족의 한 왕인 비람 왕의 성읍이었다(수 10:3). 여호수아는 바로이곳에서 전투를 벌여 비람 왕을 죽였다(수 10:3-27). '높은 곳'의 뜻이다.
=====11:30
사노아와 아둘람 - '사노아'는 수 15:34에서 언급된다. 한편, '아둘람'은 한 때자체내에 왕이 있을 정도로 큰 성읍이었다 (수 12:15). 그 후에 르호보암 왕은 이곳을요새화하여 유다 땅의 방비를 강화하기도 하였다(대하 11:5,7).
라기스 - 여호수아가 '야비아'라는 가나안 족속의 한 왕과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수 10:3,3`1,32). 그 '야비아'왕의 성읍이 바로 이 '가기스'였었다. 또한 이곳은 르호보암 왕에 의 하여 요새화됐던 곳이었던 관계로 후대의 앗수왕 산헤립은 자신의 전군사력을 동원하여 공격목표로 삼았었다(대하 32:9).
아세가 - 이곳도 르호보암 왕에 의해서 요새화된 적이 있었다(대하 11:9).
브엘세바에서부터 흰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 느헤미야 당시 유다 자손들이 거주했던 지역적 범위를 말해주는 문구이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역사상 그 영토의 최남단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었다(삼상 3:20). 그리고 '힌놈의 골짜기'는 일반적으로 와디 엘라바비로 간주되며, 예루살렘의 서쪽 성벽 밑을 남북으로 가로질러가다가 예루살렘 남동쪽의 기드론 시내 쪽으로 구부러져 만난다(2:13). 이 골짜기는베냐민 지파의 땅과 유다 지파의 땅을 나누는 경계로서 인식되었었다(수 15:8;18:16).바로 이 같은 경계에 따라 '힌놈의 골짜기' 북쪽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의성읍 으로 분류된 바 있다(수 18:28). 한편, '장막을 쳤으며'(* , 하나)는 군대가 상대편을 공격할 거점으로 삼기 위하여 어느 지역에 일시 머무는 것을 가리킬 때사용되는 군사적 용어이다(Williamson, 민 1:52;삼상 4:1;삼하 17:26;왕상 16:15). 그러나 포로 후기에 가서는 다만 일시 머무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의미가 변한듯하다(스 8:15). 그럴지라도 여기서 느헤미야가 바로 이 갈은 단어를 사용한 까닭은(1) 당시 시골에 정착한 사람들의 일부도 그 두목들처럼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야 했던상황을 암시하며(1절), (2)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주가 빈번했었음을 암시하기 위한(Myers) 것으로 보인다.
=====11:31
베냐민 자손 - 이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팔레스틴에 들어온 후에 유다 지파가 분배 받았던 기업의 바로 북부 지역을 그기업으로 받았다. 즉, 예루살렘 부터 그북쪽이 그들의 기업이었다(30절 주석 참조).
게바 - 예루살렘 북쪽 약 25.5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유다의 아사왕이 북국 이스라엘이 라마에 요새를 세우기 위해 가져다 놓은 재료를 빼앗아서 요새를 세운곳이기도 하였다(왕상 15:22). '반석'의 의미이다.
믹마스 - 게바 동북쪽 약 2.4km 지점이다. 사울의 군대와 불레셋 군대 간에 치열한접전이 벌어졌던 곳이다(삼상 13:2,5-16;14:1-18). '감추어진'의 뜻이다.
아야와 벧엘 - '아야'는 사 10:28,29의 언급을 통해 볼 때, 앞의 '믹마스'와 인근해 있었음이 분명하다. '벧엘'은 '믹마스' 서북쪽 약 6.7km 지점이며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다(창 28:10-19).
=====11:32
아나돗 - 게바와 예루살렘의 중간 지점에 위치했었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고향이기도하다(렘 1:1). '대답들'이란 뜻의 지명이다.
놉 - 예루살렘과 아나돗의 거의 중간 지점이며, 그곳에서 예루살렘이 보일 정도로예루살렘과 가까이 위치했었다(사 10:32). 실로가 블레셋군대의 공격으로 함락됨으로써, 이곳은 한때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었다(삼상 21:1). '열매'의 의미이다.
아나냐 - 어디에 위치했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본절에서 함께 언급되고 있는 성읍들과 인접해 있었을 것 으로 추측된다, '여호와께서 덮으셨다'의 의미이다.
=====11:33
하솔 - 그 위치는 잘 알려겨 있지 않다. '마을'의 의미이다.
라마 - 예루살렘 북쪽 약 9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사무엘의 고향으로서 그가 사사및 선지자로서 활동했던 곳이다(삼상 7:15,17). '높은 곳'의 의미이다.
깃다임 - 베냐민 지파의 브에롯 사람들이 도망하여 거주하기 시작한 곳이다(삼하4:3). 그 지명의 의미는 '이증 포도즙 틀'이다.
=====11:34
하딧 - 예루살렘 북서쪽 약 41km 지점에 위치해 있다(스 2:33). '날카로운'의 의미이다.
스보임 - 믹마스 동편의 저지대에 위치했었던 것 같다(Rawlinson, 삼상 13:18). '무늬있는 새들'의 뜻이다.
느발랏 - 어디에 위치했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어리석은'의 의미이다.
=====11:35
로드 - 예루살렘 북서쪽 약 45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하덧'으로부터는 남서서쪽로 6km 정도 떨어졌었다(스 2:33).
오노와 공장 골짜기 - 예루살렘 북서쪽 약 52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베냐민 지파의 땅 중 가장 외딴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은 느헤미야를 그곳으로 유인하여 거기서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었다(6:2). '강한'의 의미이다. 한편, '공장 골짜기'는 개역성경을 따를 경우 마치 '오노'와 별개의 지명인듯보인다. 그러나 히브리 원문에는 앞의 '오노'와 '공장 골짜기' 사이에 '그리고' 혹은'- 와'의 뜻을 갖는 접속사 '와우'(* )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오노'와 '공장 골짜기'는 동격(同格)인 셈이다(KJV, LB, RSV).
=====11:36
본절은 레위 사람들의 일부가 느헤미야 시대에 유다 땅에서 베냐민 땅으로 이주했었음을 말해준다. 레위 사람들의 이 같은 이주는 십일조의 원활한 수납(收納)을 위한것으로 짐작된다(Fensham, 10:39).
본서 후반부(8장-13장)에서 지금까지는 율법의 해석(8장)과 언약의 갱신(9, 10장)을 통해 영적으로 각성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기록하였다. 이에 연이어지는 대목은 언약의 말씀에 기초해 순종한 유다 민족의 신앙적 자세에 대하여 서술하는 장면이다(11-13장). 그 순종의 내용 가운데서 초두에 해당되는 본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재정착한 것을 언급하는 부분으로 느헤미야가 인구 재배치 사업을 펼친 것을 나타낸다. 즉, 본문은 예루살렘의 거민(居民)을 증원하기 위해 느헤미야가 전개한 사업을 성에 재정착한 사람들의 명단을 통해 밝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본문은 (1)느헤미야가 인구의 재배치를 위하여 사용한 방법을 묘사한 전반부(1, 2절), (2) 예루살렘 성안에 정착한 자들의 명단을 언급한 중반부(3-24절), 그리고 (3)성을 중심으로 그 밖의 지역의 이름을 서술한 후반부(25-36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본장의 구조를 통해 느헤미야는 당시 백성들의 인구 분포에 대한 간접적인 자료를 제공해 준다. 또한 느헤미야는 자신이 의도했던 문제가(7-10장) 어느 정도 성취되었음을 밝힘과 동시에 성벽의 방어 인원이 충족되었음을 드러내다.
그런데 본서 전.후반부의 건개 과정으로 볼 때 본장은 예루살렘으로의 인구 재배치의 필요성을 언급했던 7:4과 그 내용이 연결된다. 하지만 느헤미야가 인구 재배치의 필요성을 느꼈던 그 시점 직후에 여러 종교 행사가 거행되었기에(8-10장), 본장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인구 재배치 사업이 실행되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위른 여기서 인구 재배치 사업이 느헤미야의 의도와는 달리 지연되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느헤미야도 여러 종교 행사, 혹은 신앙 부흥 운동 뒤에 인구 재비치 사업을 시행하려는 의도를 가졌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예루살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인구를 이동시키는 일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그 같은 인구 재배치 사업은 자칫 백성들의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킬 만한 불씨를 안고 있었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인구 재배치에 앞서 먼저 신앙적 감화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야만 백성들이 인구 재배치 사업의 참뜻을 충분히 이해하여 느헤미야의 시책에 아무런 저항없이 적극적으로 따라줄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당시의 상황에서 인구 재배치 사업은 불가피하였다. 비록 성벽은 완성되었지만(7:1) 그 성벽으 수비할 사람이 없다면 우여 곡절(迂餘曲折) 끝에 완공한 그 성벽도 아무런 존재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시급히 다른 곳에 살고 있던 백성들의 일부를 예루살렘으로 이주시켜야만 했다. 사실 앞서 예루살렘에서 각종신앙 집회가 열리는 동안에는 비록 인구재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적으로부터의 공격이 있더라도 방어에는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신앙 집회의 종료와 함께 백성들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짐으로써 예루살렘은 다시 텅 빌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신속히 인구 재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방치될 경우, 대적자들의 공격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에 따라 예루살렘은 철저히 노략되고 심지어는 그렇게도 어렵사리 건축된 성전도 다시 훼파될 가능성이 켰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고 또한 그들의 신앙적 순수성, 그리고 통일성을 유지시켜야만 한다는 소명 의식을 소유했었다. 그래서 그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역들이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한다는 일념(一念)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그 과업을 온전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본장에 나타난 명단은 대상 9장에 언급된 명단과 구성과 매우 유사한 형식을 갖고 있다. 즉, 본장에 기술된 명단은 '유다 자손-베냐민 자손-제사장-레위 사람-성문지기-노래하는 자' 등의 순서로,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역대서에 묘사된 명단 또한 '유다-베냐민 자손-제사장-레위 사람- 문지기...-찬송하는 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상 9장의 명단이 바벧론의 포로에서 돌아와 그 기업에 거한 자들을 중심으로 기록된 반면(대상 9:2) 본장의 명단은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된 후 그 성안에 재정착한 사람들을 언급했다(1, 2절)는 점에서 두 명단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같은 내용의 본장을 통하여 (1)세상자서의 성도들의 삶은 교회 생활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권능을 받을 때 만족스럽게 영위될 수 있으며(행 1:8), (2)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돈이나 설비(設備)가 아닌, 사람 그 자체임(마 4:19-22)을 깨닫게 된다.
1. 인구 재배치를 위한 방법(11:1-2)
느헤미야가 어떻게 인구 재배치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말하는 본문은 본장의 서두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즉, 본문은 광대한 지역에 비해 거민이 적었던 예루살렘 성(7:4)의 방어를 위해 취한 느헤미야의 슬기로운 방법을 소개하는 장면이다. 즉, 본문은 (1) 일반 백성들을 제비뽑아 성안에 거주케 한 사실을 언급한 구절(1절)과, (2)당시 백성들의 반응을 묘사한 구절(2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로 보아 우리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도 방위로 인한 위험 부담을 우려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기피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한편 당시 느헤미야가 인구 재배치를 위하여 사용한 방법은 다름아닌 제비뽑기였다. 그러데 이 방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가적 차원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 주로 사용해 왔었다(수 15:1;삿 1:3;삼상 10:20, 21 ; 행 1:26).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인간이 제비를 뽑지만 그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반영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잠 16:33). 따라서 이 방식에 의하여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야 할 자로 뽑힌 자는 반드시 그 결과에 승복해야만 했다. 사실 자신들의 현정착지에서 삶의 뿌리른 내렸던 백성들은 예루발렘으로 삶의 터전을 옮김에 따라 새로이 직업을 바꾸어야만 했고, 당시 산발랏 일당의 공격 목표였던 예루살렘 방어의 짐을 져야만 하는 고통이 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쁜 마음으로 '제비'의 결과를 따라야 했던 것은 그 결과를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거기에 순종할 경우, 그들에게는 큰 축복이 임할 것이 틀립없었기 때문이다(신 4:40).
우리는 이 같은 본 단락을 통하여 (1) 성도들 중에는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부류와 그렇지 못한 부류가 있을 수 있으며(고후 9:5, 7), (2) 성도가 기쁨 가운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거기에 맞추어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는 것(롬 12:1) 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느헤미야 시대의 유대인들의 성읍
2. 자원 정착자들의 명단(11:3-24)
언약에 대해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언급한 대목(11-13장)에서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재정착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본문은 그 명단을 서술함으로 오직 결과만을 나타낸다. 즉, 본문은 이주 때에 발생했을 듯한 문제나 그에 따른 여러가지 사실을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오직 재정착한 사람들의 명단을 구분해서 기록함으로써 인구 재배치가 성공적으로 마쳐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암시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본문은 (1) 재청착민의 두목들의 명단을 기록한 전반부(3-9절)와, (2) 레위 자손들의 명단을 언급한 후반부(10-24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를 좀더 세분해서 살펴보면 전반부의 내용은 (가) 유다 자손의 명단(3-6절)과 (나) 베냐민 자손의 명단(7-9절)으로 구분되고, 후반부의 명단은 (가) 제사장으로서 재정착한 사람들의 명단(10-14절), (나)레위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맡았던 자들의 명단(15-18절), (다)성 문지기의 명단과 기타의 사람들을 언급한 명단(19-24절) 등으로 구분된다. 이와 같은 구성으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재정착한 사람들의 계보를 명확히 밝혀 그 조상과 연결시킬 뿐만 아니라(7:5-73) 그 숫자를 기록해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신앙적, 사회적으로 용기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는가를 드러낸다.
사실 이들은 황폐해진 예루살렘 성을 떠나서 각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향촌(鄕村)에 흩어졌다가 제비뽑기를 통해 다시 그들의 본성인 예루살렘에 거하게 된 자들이거나, 아니면 성안에 남아서 악전고투(惡戰苦鬪)하던 자들일 것이다. 그런데 본서 저자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두목을 먼저 서술하고 나서 레위 지파에 속한 자들의 명단과 그 수효를 기술한다. 이는 본서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구성 방식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즉, 느헤미야는 먼저 백성들의 두목을 기록함으로써 그들을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의 이름을 먼저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그 두목들의 족보를 상세히 기록해 그들의 조상이 누구였나를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본서 저자는 자신의 제사자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는 비단 본문뿐만 아니라 본서 여러 곳(3:28-29; 7:39-45; 8:7,9, 11 ; 10:2-39; 12:1-26, 44-47; 13:10- 4)에 나타나는 바, 이것은 느헤미야의 관심, 즉 그가 갖고 있었던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현실적, 가시적 회복 대한 관심과 함께 종교적, 제의적, 영적 회복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본문을 그 특성별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백성 대표자들의 명단(3-9절) : 이들은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으로 구분되는데 전자의 자손은 468명(6절)이었고, 후자의 자손은 928명(8절)이었다. 그런데 유다 자손은 베냐민 자손보다 휠씬 적었지만 그들은 유다의 후손 가운데 베레스의 자손으로서 모두 용사였기 때문에(6절) 예루살렘을 방어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제비뽑기를 통해 강건한 용사들이 선택된 것은 예루살렘 성의 방비를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다고 볼 수 있다.
(2) 제사장들의 명단(10-14절) : 이들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 바, (가) 스라야를 지도자로 한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 822명(10-12a절), (나) 아다야를 위시한 족장들 242명(12b절, 13절a절), (다) 아맛대를 중심으로 한 용맹스런 128명(13b절, 14절) 등이다. 이렇게 지도층의 인물들이 성안에 거주하도록 제비뽑힌 것은 정말 다행스런 결과였다. 왜냐하면 가난하고 무지한 자들만이 성안에 거주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매우 난처한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여기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관여를 발견할 수 있다.
(3)레위 사람들과 성 문직의 명단(15-18절) : 전자의 수효는 284명이었고(18절), 후자의 숫자는 172명(19절)이었다. 그런데 이같이 하나님의 전(殿)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기 위해, 또는 성문의 통제를 위해 레위인들이 제비를 통해 선택받았다는 것은 또 다른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이들의 역할이야말로 하나님의 제사를 위해, 그리고 성(城)의 안전과 백성들의 단일성, 종교성을 위해(13; 15-22) 꼭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 단락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성도들이 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자신들이 생각할 때는 극히 미미(微微)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하며(마 25:40), (2) 가시적(可視的)인 희생이 뒤따를 때 하나님의 상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마 10:32). 그리고 (3)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은 실천적인 행동을 통해서 표현된다(마 10:38)는 것을 깨닫게 된다.
3. 성밖 백성들이 살던 지역(11:25-36)
예루살렘에 재정착한 사람들의 명단을 언급하는 본장에서 지금까지는 수도 예루살렘 성 안에 정착한 사람들의 명단을 기술하였다(3-24절). 이에 이어지는 본문은 당시 예루살렘 성밖에 거주하던 자들의 명단을 서술한 것으로 본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목이다. 즉 본문은 이스라엘의 수도에 거주하던 자들을 제외한 당시 귀환민들의 주요 삶의 터전의 일부를 기록한 장면이다. 이러한 본문은 (1) 예루살렘 밖의 유다 자손들이 살던 곳을 언급한 전반부(25-30절)와 (2) 성밖의 베냐민 자손들이 거하던 장소를 기록한 후반부(31-36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 느헤미야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드이 살았던 지명에 대해 자세히 언급할 뿐만 아니라 귀환 후 백성들이 지역의 분포에 관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이와 더불어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이 지역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슬픈 당시의 사정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본 단락에서 느헤미야가 성읍의 명칭을 나열한 더 깊은 영적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본문에 나열된 성읍의 이름이 주로 여호수아 15장에서 사용한 고대의 것들이라는 점이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즉, 성밖의 유다 자손들이 거주하던 곳은 대체로 예루살렘에서 약 30km 정도 떨어진 남방 고지(高地)인 기럇 아바를 중심으로 한 헤브론 지역의 남방과 산간 지대, 예루살렘 서북방 산간과 서방 해안 평야 지역이었고, 성밖의 베냐민 자손들은 예루살렘 북방과 서북방 산간 지역, 즉 본래 베냐민 사람들이 분배받았던 곳(수 18:11-28)에 거주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지역들은 이스라엘의 크로 작은 역상 있었던 곳이며, 유다 민족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유서 깊은 장소이다(창 13:8; 35;27; 민 13:21,22: 수 10:1-37; 20;5-7; 21:10-13; 왕상 13;1-10; 왕하 23:4, 15-20 등).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아니라 느헤미야가 가나안 땅의 완전한 회복을 염원하고 있었다는 증거로 생각할 수 있다. 이 같은 단언은 여기의 성읍중 일부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분적으로 점령했던 곳이라는 사실(Fensham)로써 입증된다<1-2절 주제 강해 참조>. 어쨌든 느헤미야는 여호수아 시대의 고대 지명을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제2의 가나안 정복 곧 이스라엘의 완전한 주권 회복을 소망했던 것이다. 물론 그가 원했던 것은 세속적 왕국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른 다윗 왕국의 영화가 재현되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은 만왕의 왕, 앞으로 구원자로 오실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자신이 받은 계시의 빛 범위 안에서 앞으로 메시야의 세상 통치가 있을 것을 전망하였다. 물론 그의 종말론은 오늘날의 완성된 계시의 빛에 비추어 본다면 결코 온전하였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세상 끝날에 있을 메시아의 통치를 소망할 만한 믿음을 가졌었다. 바로 이러한 믿음에 근거하여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가졌으며, 그 마음 때문에 그는 성벽 재건의 위대한 과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본 단락을 통하여 (1) 내세에 대한 분명한 소망의 유무(有無)는 성도가 소유한 신앙의 온전성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며(히 11:8-10), (2) 내세에 대한 분명한 소망의 소유자만이 현세의 삶에도 충실할 수 있음(빌 4:5)을 깨닫게 된다.
가장 좋은 이름
느 11:15-36 / 조약돌 묵상 조약돌 묵상
느헤미야 11장
오늘 본문은 주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의 명단을 열거하는 내용입니다. 레위인은 284명이었고, 문지기들은 172명이었습니다. 또한 나머지 유대 사람들 즉, 유다와 베냐민 자손들이 거주하는 지역들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유다 자손의 일부는 남쪽 브엘세바에서 북쪽으로 힌놈의 골짜기까지 이르는 지역에 거주했으며, 베냐민 자손은 게바를 비롯한 주변 지역에 거주했습니다.
노래하는 자들의 조상인 아삽과 여두둔은 다윗 시대에 성전의 성가대를 책임 맡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에스라에서는 단지 ‘노래하는 자’들로 나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레위 사람들의 또 다른 가문으로 언급됩니다. 본문이 보다 더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래하는 자들은 모두 레위 지파에 속해 있었던 가문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다’는 말은 ‘감사의 찬양을 부르게 하는 지도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감사하는 말씀’은 원문대로 하면 ‘찬송하다’의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말은 '맛다냐'라는 사람이 오늘날 성가대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들이라고 했습니다. 악굽'과 '달몬'은 모두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레위 사람들의 일파인 성전 문지기 가문들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한 레위 자손들로, 왕의 문 동쪽 진영과 성전의 문들과 모든 방과 곳간들을 경비하는 자들로, 아침저녁으로 문을 여닫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느디님 사람’들은 본래 이방인들이었나 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온 후 개종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거주하는 '오벨'은 예루살렘 성의 동남쪽 언덕에 있었습니다.
▶ 가나안 정복 후 레위인들은 제단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는 일들을 주관했던 아론의 자손들,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 그리고 성소에서 각종 봉사 하는 일들을 맡았던 레위인들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아론 자손들은 레위인들이었고, 대제사장은 제사장 중에서 선출 되었으므로 당연히 레위인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모두 레위지파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아론과 사독의 제사장들은 혈통으로 이어져 갔고 레위인들은 단순히 제사장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였고, 성전의 문을 열고 닫으며 문을 지키는 일, 제사에 쓰이는 각종 도구나 떡을 만드는 일 등에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는 레위 사람들의 일도 그렇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전 바깥일을 맡았다고 했습니다. 즉, 성전 제사와 관계된 일 이외의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성전세 및 십일조를 거두는 일, 성전의 유지 보수와 관계된 일 등입니다. 다음은, 성문지기입니다. 아침에 예루살렘 성문을 열고 오후에 닫는 일로, 성전의 문도 담당했지만 성읍의 문도 그들이 관리했습니다. 그나마 포로 시대 이후 찬양하는 일을 다시 했습니다. 물론 초막절을 지킬 때에 잠시나마 백성들에게 율법의 해설자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마는, 그들은 제사장에 비하여 빛도 나지 않고 이름도 낼 수 없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묵묵히 그들의 임무를 충실히 담당해 나갔습니다.
성경에는 대체로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명한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무명의 사람들입니다. 유명한 사람들은 확연히 구별됩니다. 성공한 사람 아니면 실패한 사람으로 그들은 선하든지, 악하든지, 아니면 훌륭하든지, 형편없었든지 둘 중에 하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윗과 사울, 가인과 아벨, 에스더와 하만, 베드로와 가룟유다 등입니다. 이에 비하여 성경에 무명의 인물들은 거의가 다 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하나님의 도구로써 훌륭하게 쓰임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이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비하게도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에 적재적소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경에 적지 않게 나옵니다. 그들의 명칭은 대개 ‘한 사람’ ‘어떤 한 자’ ‘하나님의 사람’ 등으로 불려집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사람은 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군과의 전쟁이 있을 때 나타난 한 선지자입니다. 적군의 연합군은 왕 33명이 뭉친 대군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바람에 흔들리는 등불과 같았습니다. 그 때 한 선지자가 나타나 이스라엘 왕을 독려했습니다. 자세한 작전지시로 말미암아 적국의 왕들은 겨우 말을 타고 목숨만 건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무명의 선지자를 통하여 일하신 결과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부장입니다. 그는 지금도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우리 예수님이 믿음을 극찬한 사람입니다. 모두다 무명이었지만, 성경의 아름다운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유명하든지 무명하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 목전에서 사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한 무명의 믿음의 사람들은 그 삶이 가치가 없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말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오르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가난하여도 천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잊으면 왕좌에 앉아 있어도 지옥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름에 상관없이 하나님께 인정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 그것이 가장 좋은 이름입니다.
성전 중심으로 살면 약속의 땅을 누립니다
느 11:15-36 / 생명의 삶
거룩한 성에 산 레위인은 284명, 성 문지기는 172명입니다. 유다 자손은 남쪽 지역에, 베냐민 자손은 북쪽 지역에 살았습니다.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했고,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하는 레위인의 감독으로 성전 일을 맡고,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 일을 다스렸습니다.
1. 예루살렘에 거주한 레위인들 (15~24절)
예배를 더욱 잘 섬기기 위해 거주지를 고려할 필요도 있습니다. 성소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은 대부분 예루살렘 도성에 거주했습니다. 레위인들 가운데 성전 바깥일을 맡은 자들은 백성에게서 성전세를 거두거나 성전을 보수하거나 백성을 가르쳤고, 성전 안 사역을 맡은 자들은 대제사장을 수종하거나 기도할 때 감사의 말씀을 인도하거나 성 문지기로 섬겼습니다. 성전 막일꾼이었던 느디님 사람들, 노래하는 자들, 바사 왕과 유대인 간의 중재자 등도 모두 예루살렘에 거주하며 자기 책임을 다했습니다. 공동체가 최고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맡은 이들의 헌신과 섬김이 필수입니다. 직분을 맡은 성도는 성전을 가까이하며 교회와 예배에 필요한 것을 늘 살펴야 합니다.
*묵상 질문 / 레위인들은 왜 예루살렘에 거주했나요?
* 적용 질문 / 내게 주신 은사는 무엇인가요? 은사에 맞게 교회 혹은 세상에서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요?
2. 주변 동네에 거주하는 백성 (25~36절)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예루살렘 성에 거주한 사람들을 제외한 유다 자손의 일부는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남쪽 지역에 장막을 치고 거주했고, 베냐민 자손은 북쪽 지역 성읍에 거주했습니다. 레위인들은 유다 땅에서 베냐민 땅으로 이주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백성은 이방인들이 주로 살고 있는 지역까지 흩어졌습니다. 포로지에서 귀환한 백성은 약속의 땅 전 지역에 자유롭게 흩어져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해방시켜 주셨기에 거주지의 자유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본토로 귀환시키겠다고 하신 약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영적 자유뿐 아니라 육적 자유를 누리며, 눌린 것에서부터 해방되어 살기 원하십니다.
* 묵상 질문 / 귀환한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은 어디에 거주했나요?
* 적용 질문 / 예수님을 통해 누리게 된 자유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지금 제가 서 있는 이곳이 하나님이 명하신 자리임을 믿습니다.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직분을 소홀히 여기지 않으며, 제게 주신 사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