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초궁장(楚宮粧)을 아시나요?
황주(황해도 황주군) 기생인 초궁장(楚宮粧)은
정종이 상왕으로 있을 때 정종을 궁에서 모시던 기생이었는데
세자이던 양녕대군(讓寧大君 1394~1462)이 상왕의 기생인 줄 모르고
1415년에 초궁장과 사통하여 말썽을 일으켰던 여자이다.
양녕대군이 폐세자(1418년 5월)가 되는데 원인이 되었다.
1436년 12월에 중앙직인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였다.
1438년 6월에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崔海山)은 강계절제사(江界節制使)로 발령받았다.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서 강계로 향하던 중에
평양에서 평양부의 기생 초궁장(楚宮粧)을 보는 순간 반했다.
최해산(崔海山)이 마음대로 평양부의 기생 초궁장(楚宮粧)을
강계로 데리고 가서 돌려보내지 않았다.
평양부에서 사람을 보내어 돌려보낼 것을 독촉하니,
또 돌려보내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인(使人)을 결박하고
형장을 때렸으므로,
관찰사가 추국(推鞫)하니 그래도 뉘우치고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며,
망녕되게 그전 전례를 이끌어다 분한 것을 이기지 못하면서 말했다.
“강계부의 묵은 쌀과 쓴 장[苦醬]에 하루도 지나기 어려우니
죄과(罪過)를 조정에서 듣고 교대되기를 날마다 바라오.”
최해산(崔海山)은 고의로 죄책을 범하여
위험한 것을 피하려고 대신의 봉직할 뜻이 없어서
법에 의하여 벌 받기를 자청했다.
차라리 제주 안무사로 나가 있을 때가 그립고
북방 국경의 매섭고 추운날씨가 싫었다.
1439년 1월, 세종이 고신[告身 : 직첩(職牒)]을 빼앗아 들이고,
여연(閭延 : 자강도 중강군 부근)으로 귀양 보내게 했다.
22세의 세자나 58세 최무선이나 여자를 밝혀 그 직에서
파면되는 것을 보면,
남자란 나이와 직책에 상관없이
색에 본능적 관심을 갖는가 보다.
이번 보권 선거도 그렇다.
공직에 있는 늙은이가 이성을 밝히다가
그 직에서 쫓겨난 사건 때문에 국민을 피곤하게 한다.
이성을 향한 구애활동은 여‧야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울은 61세인 여자 후보와 60세인 암자 후보가 다투고,
부산은 59세인 남자와 61세인 남자 후보가 다툰다.
이 중에 누가 당선되더라도 달라지거나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다 안다.
보통 사람들은 남보다 조금 지위가 높아지고
나이 또한 60이 넘으면 봉사를 통한 명예를 버리고
자신의 향략에 눈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