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은 멀리서 달려온 여행객처럼 <영암 왕인문화축제장, 왕인박사유적지 일원>
중국 선종사(禪宗史)의 걸출한 인물이었던 마조도일(馬祖道一)선사가 출가 후 고향을 방문했다고 한다. 고향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고 있는데 그의 이웃집에 살았던 한 노파가 다가와서는 “나는 대단한 양반이 온 줄 알았는데 청소부 마씨(馬氏)의 아들이 왔구먼” 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마조선사의 속성이 마(馬)씨였는데 노파는 용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마조선사는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지었다고 한다.
<권하노니, 그대의 고향엘 가지마소. 고향에선 누구도 성자일 수 없나니. 개울가의 옛 할머니 아직도 옛 이름을 부르누나.>
큰 인물이 될수록 고향을 찾지 말라는 말이 있다. 시쳇말로 체면이 구겨지지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해인사의 성철 스님도 평생 떠나온 고향을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고 전한다. 부모님이 별세하였을 때도 출상에 참여하지 않고 시자(侍者·모시고 있는 제자)를 대신 보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동네 점쟁이 영한 줄 모른다.”는 말과 같이 집안 속내를 뻔히 알고 있는 내 이웃이나 내 지역사람에게서는 신비함은 물론 소중함을 모른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풍경도 마찬가지다. 사실 늘 새로운 곳을 검색하여 낯선 풍경을 찾아 여행을 떠나면서도 같은 곳 같은 장소에 두 번 가는 일은 드물었다. 간혹 왕복 500km이상을 달려가서 보면 우리 동네 뒷동산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할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러는 내게 전국의 관광지를 잘 알고 있는 남편은 “볼거리라면 우리 영암만큼 훌륭한 곳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내 고장의 관광지 내 동네의 볼거리에는 귓등으로도 새겨듣지 않고 기름을 태우며 멀리 멀리 달려 다니는 것이다. 새로운 길을 걷다보면 그 길 모퉁이에 어떤 또 다른 길이 어떻게 놓여 있는지가 궁굼하여 설렘과 기대를 안고 여행의 맛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꽃 시절이라 전국 순위에서도 밀리지 않을 벚꽃이 내 집 앞 가득 피어 전국에서 관광객이 모여드는 왕인문화축제가 4월 4일 개막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전통축제나 유명축제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중 왕인문화축제는 1992년 군서청년회가 주관하여 벚꽃축제로 시작하였으나 1997년에 영암군 향토축제추진위원회에서 주최하여 왕인문화축제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특히 왕인문화축제는 벚꽃축제라는 명칭으로 시작되었던 만큼 매년 봄에 열리는 축제로 군서면을 중심으로 백리 길 벚꽃이 볼만하다. 여기에 일본 아스카 문화의 기반이 된 왕인박사의 업적을 기리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축제가 되었으니 왕인의 도전정신과 비전을 계승하고 현재적 감각으로 풀어낸 축제인 것이다. 하지만 지역축제임에도 불구하고 축제 속에 젖어 즐겨본 적은 없다. 우선 집에서 현관만 나서면 뻔히 아는 길목에 박실박실 지천으로 피어 있으니 마치 내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보석 같아서 내가 그 속으로 일부러 들어 가보려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꽃 속에 사람들은 유난히 시끄럽다. 꽃 보다 자신이 꽃인 냥 둥둥 떠다니는 듯한 풍경이 어수선하여 꽃이 피면 오히려 집안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고 차라리 꽃과 사람이 드문 낯선 곳을 찾아 혼자서 조용히 트레킹을 즐기곤 하였다. 오늘은 축제 기간을 피해서 잠깐 산책이나 다녀오던 축제장을 사람이 아직 모여 들지 않은 이른 시간을 택하여 둘러보기로 한다.
오랜만에 들어 선 왕인박사유적지는 시설이나 풍경까지도 많이 변해있다. 왕인박사의 업적을 기억하기 위한 전시실이 있는 “영월관”을 지나 들어서니 “구림 명인촌” 이라는 체험공간이 아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아마도 영암 지역 내 다양한 공방들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체험부스를 운영하고 있는 모양이다. 반대편에는 “빈티지그라운드”라는 꽤 감성적인 목제 체험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고 다소 예술 작품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풍경이다. 한·중·일 천명의 사람들이 한 글자씩 써서 완성한 ‘천인천자문’ 또한 늘 보면서도 무심히 지나쳤건만 축제장 분위기에서 둘러보니 특별하다. 자세히 보면 글씨체도 다 다른 것이 왕인박사의 학문과 문화 교류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라 아이들과 함께 그냥저냥 꽃구경의 나드리보다는 깊은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관리사무실이 있는 위쪽까지 올랐다가 산책로로 조성된 길을 따라 한 바퀴를 돌아 나온다. 향토음식관에는 많은 단체에서 나와 일찍부터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한편 향토음식관 바로 옆으로는 전 청와대 요리사인 천상현 님께서 고향인 영암으로 귀향하여 오픈한 “천상”이라는 중화요리집이 있다. 처음에 소식을 접했을 때 우리 지역 문화관광에 큰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에 참으로 기쁘고 감사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살아온 지역민의 환영하는 마음으로 “천상의 귀거래사”라는 작품을 선물하고 그 후 다시 한 번 들러 볼 기회가 없다가 문득 “천상”의 마당 한 바퀴 휘 둘러 나왔다. 지난해 야시장이 차지했던 축제장 입구에는 주차장과 함께 방문객 대상으로 휴식존이 넓게 조성되어 있었다. 왕인문화축제의 방문객 모두를 위한 공간인 듯한데 누구나 음식이나 음료를 주문하여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휴식존을 휘 돌아 나왔다. 한편 한 쪽으로는 친환경 축제를 표방한 행사답게 영암의 도시브랜드와 슬로건이 새겨진 다회용기가 사용되어지고 있음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따라잡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오랜만에 내 지역 축제장에 관객 없는 무대를 둘러보면서 타 지역과의 비교는 물론 우수축제로서의 모범이 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뿌듯한 아침 산책을 마무리한다. 그렇다. 내 지역도 아주 가끔씩은 멀리서 달려온 여행객처럼 세심하게 둘러보고 사람이거나 풍경이거나 늘 새롭게 그리고 소중하게 흔들어보아야 할 일이다.
|
첫댓글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