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거지악(七去之惡)쟁론기(爭論記)
칠거지악이란 이조시대의 남정네들이 부인을 속박하기 위하여 정한 내부 계율로 이를 어겼을 때는 내 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 *음탕한 것 *질투하는 것 *괴질이 있는 것 *수다스러워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 *도벽이 있는 것이 그것인데 이조의 양반들은 이렇게 틀을 짜서 부인들을 옭아매 놓고 저들은 첩실 두고 그도 모자라 장죽물고 두루마기 자락 휘날리며 기생집에 들어 앉아 한량노릇으로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시대가 단순하였던 만큼 사회와 가문을 다스리는 계율 또한 이렇게 간단하였다. 고조선 시대에는 팔조금법(八條禁法) 하나로 나라를 다스렸고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윤리도덕을 세우는 데는 삼강오륜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산업화에 따라 먹고사는 방법이 다양해 졌다.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면서 민족 또한 순수혈통을 잃고 다 민족 화 되어가고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와 경제활동 또한 일반화 되어 비실비실하는 남편 뺌 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여권이 신장되고 보니 그동안 말도 되지 않는 칠거지악으로 가만히 앉아서 당하여온 세월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이제는 자칫 남자들이 오히려 쫓겨나는 세상 아닌가? 그러려면 여자들도 남편을 쫒아 낼 명분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의 분풀이 반격으로 남편칠거지악 아라는 것을 정하여 남성의 전횡을 제압하려 들었다.
*장인 장모에게 불효하는 것 *남편의 성 장애로 자식이 생기지 않는 것 *아내의 채팅을 방해 하는 것 *바람피우는 아내를 질투하는 것 *정력의 감퇴로 아내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것 *처가집 식구들을 흉보는 것 *아내의 딴 주머니를 넘보거나 훔치는 것 등이 남편칠거지악이다. 이러한 일이 있을 때는 사정없이 남편의 재산을 빼앗고 내 쫒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들도 가만히 앉아서 당할 위인들은 아니었다,. 아내들이 더 기고만장해 지기 전에 적절한 방어가 있어야겠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남편들이 다시 여자의 신칠거지악이라는 것을 정하여 내 놓았다.
*바람피우는 것 *직업이 없거나 돈을 못 버는 것 *외모와 몸매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 *자녀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 *재테크를 못 하는 것 *여우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것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 이렇게 맞서고 있으니 남 여 간의 칠거지악에 대한 쟁론과 공방은 언제 까지 이어질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중에 이번에 법원이 “시댁 제사를 소홀히 한 며느리는 이혼사유가 된다” 는 새로운 판결을 내 놓아 여성의 신 칠거지악에 하나를 더 보태어 팔거지악을 만들어 놓았다.
송사의 내용은 종손인 정 모 씨에게 시집 온 부인 윤 모 씨가 일년에 10여 차례가 넘는 시댁의 제사를 소홀히 하다 가정불화로 이어져 마침내 이혼소송으로 번졌는데 법원은 남편인 원고의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여성의 신 칠거지악이 지나치게 현대판이다 싶었는데 이렇게 구 조항이 하나 더 첨가되니 모양새가 크게 나아진 것 같다.
추석명절을 지낸지가 며칠 되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이번 추석에도 형제간, 또는 고부간, 동서 간에 조상의 봉제사를 두고 논란이 더러 있었을 것이다.
옛날 우리조상들은 굶어도 젯밥 지을 곡식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조상의 봉제사를 집안 대소사의 으뜸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명절 제사를 집에서 정중히 모시는 것이 아니라 싸가지고 가서 휴양지의 콘도에서 모시거나 제수 음식을 전문 업체로부터 배달 받아 제를 지낸다고 한다. 뿐만이 아니다. 여러 조상님들을 한 분 한분 돌아가신 날짜에 제사를 모시려면 일년에 십여 차례를 모셔야 하니 날 잡아서 한꺼번에 모시는 집안도 있는 모양이다. 이런 일에 이견이 있으면 불화가 생기고 급기야는 소송으로 이어져 가정의 파탄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요즘에 와서는 여간 눈치 빠르고 발 빠른 조상이 아니고서는 제사 얻어 드시기도 어렵게 되었다. 자손들이 언제 어디서 제사를 감행할지 종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현실사회에서 조상의 봉제사라는 것이 불합리 하고 비생산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제사라는 빌미를 통하여 형제자매가 한 자리에 모이고 집안 대소가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혈족의 의미를 새김으로써 서로 화합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는 그런 자리로 만들어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제사든 시제든 이렇게 이벤트성 행사로 생각하면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제 음력10월은 선영을 찾아 조상님께 시향(時享)을 모시는 철이다.
봄, 여름 정성껏 농사지은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제물을 장만하여 그동안 조상님의 음덕으로 무탈하게 살아온데 대한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어린시절 이맘때는 산자락 여기저기 조상님의 유택이 있는 곳마다 하얗게 차려입은 자손들이 시제를 모시는 풍경이 참으로 정겨웠다. 하교 길에 책가방을 맨 채로 그곳으로 달려가서 인절미 한 개와 비릿한 생선 한 토막을 얻어먹던 추억도 가마득히 새롭다.
방법이야 다르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조상을 추모하는 의식이 치러지지 않는 민족은 없다.
조상 모시기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곧 자신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다. 봉제사 소홀에 대한 판결을 계기로 시향 철을 맞아 뿌리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자. (10/2자. 거제 중앙신문 칼럼/글:옥형길/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수필가협회. 산림문학회. 송파문학회 회원/거경문학회 회장/의령옥씨 재경종회장/주식회사 3S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