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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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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수필. 고전 스크랩 나는 행복한 사람 / 이시은
풀꽃 추천 0 조회 47 09.09.21 10:40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자전적 초상>

 

나는 행복한 사람

                                                                          이시은

 

 

 목련이 눈이 시리도록 고운 꽃등을 켜고 다가오는 봄이면, 그 우아하고 지순한 모습에 나는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곤 한다. 이렇게 시작되는 봄부터 색색의 꽃들이 피어나고, 연녹색 잎새들이 녹음 짙푸른 여름을 지나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가을을 수놓고, 하이얀 눈꽃이 창가를 찾을 때 까지 창을 내다보는 즐거움을 안고 산다.

내가 창밖을 바라다보길 좋아하는 것은 아무래도 태어나 유년의 세월을 보낸 친정집에서 보내던 시절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친정집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뒤 산은 제법 높은 편이다.

 

 마을 이름을 갓골과 관동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입으로 부르는 이름은 갓골이라 불려지고, 주소지를 적는 명칭에는 관동이라 적는 것이 뒷산이 마치 갓이나 관을 쓴 모양 같은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관의 모양으로 말한다면 이마 부분이 우리집의 위치라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인지 친정집은 마을과 연결되어 아랫집들이 함께하는데도 집터가 산의 골이 흘러내리는 끝부분으로 아랫집들 보다 높다. 집에서 바라보면 산자락만 바라다 보이는 산사 같은 느낌이 드는 경관이다.

 

 안채에서 바라다 보이는 산자락에는 왕솔나무들로 덮혀 있고, 신자락 앞 부분에는 참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어, 사철 계절의 변화를 뚜렷이 알려 주었다.

 

 어린 내 눈에는 아침마다 소나무 숲을 통해 안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줄기빛은 신비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줄기빛을 실눈 뜨고 바라보면 오색으로 빛나는 햇살은 가슴속에 꿈을 품게 했으며, 산자락에 투영되는 달빛이 자아내는 음영의 그림자는 수많은 생각에 젖어들게 했다. 작은 방에 누워 있으면 사운대는 시늘대가 창호지 문에 살아있는 수묵화를 그리며 끝없는 이야기를 해 왔고, 늦가을 국화꽃은 대와 더불어 창호지문의 문살과 함께 사군자의 묵화로 아름다움을 자아내곤 했다.

 

 그 시절 나는 가족들의 부족함 없는 사랑을 받으며, 집 주변 풍경들이 내게 주는 아름다움에 조금씩 사색의 문으로 들어섰으며, 지금 내가 시인이 될 수 있는 감성을 키웠던 것 같다.

 

 산촌에서 자라던 나는 초등학교 시절 아동잡지를 통해 서울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곁눈질 할 수 있었으며, 삼촌들의 대학 앨범 속에서 짧은 머리의 임영신 박사의 모습도 알 수 있었다. 여러 책자들을 통해 신여성들의 활약상을 알 수 있었으며, 임영신. 김활란. 박순천. 모윤숙선생 등 신여성들의 자서전과 글을 읽고 그분들의 생활상과 모습들을 두루 알게 되었다.

 

 참으로 야무지고 가당찮은 꿈을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 안고 살았다. 언젠가는 그런 여성이 되어 한 발 앞서가며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내 주장과 꿈을 펼치며 글을 쓰겠다고 생각 했으니, 평범하기 그지없이 살아가는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음이 나오는 일이다. 어린 마음에서부터 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남 몰래 키워 오던 꿈이었기에, 국세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들여다 놓은 나에게는 적잖은 갈등을 겪게 하던 부분이기도 했다.

 

 빛바랜 앨범 속에 이영도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여고시절 문학 강좌를 마치고 문화원 계단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소녀시절 시집을 품에 품고 하늘 같이 바라다보던 분의 모습이었다. 그 외에도 백일장 심사장에 자리한 내노라 하는 문인들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다 볼 때마다, 문인이 되는 일은 내게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되어 그저 부러운 대상으로만 존재 할 뿐이었다.

 

 첫 시집 원고를 마무리 해 두고 삼년이 지나도록 시집을 발간하지 못하고 서랍 속에 묵혀 둔 것도 내가 어줍잖은 시로 선배 문인들을 욕되게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내가 등단을 하여 시집을 내고부터 시인이라고 부르는 호칭에, 내가 과연 그 호칭을 들을 만 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오랫동안 부끄러운 마음이 들곤 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도서실에서 책을 읽는 것을 무척 즐거워했다. 나이팅게일, 아라비안나이트, 파랑새의 꿈...... 수많은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내렸다. 때 묻지 않은 동심으로 “파랑새의 꿈”을 여러 차례 읽을 때 마다 눈시울 적시며 읽던 생각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애당초 가당치 않은 꿈을 꾸어서 일까! 내 꿈은 재경부국가공무원으로 근무 하면서 부터 내게서 서서히 멀어져 감을 느꼈고, 끝내 꿈을 접고 결혼을 했다. 그러나 다 접고 버리고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앞만 바라보고 살던 어느 날, 뭔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가슴앓이를 하던 나는, 두툼한 대학노트 몇 권을 손에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날 밤 나는 노트 첫 장에 “죽을 때 까지 글을 쓰겠다”고 적었다. 어쩌면 잃어버린 꿈에 대한 미련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어려운 글쓰기를 죽을 때 까지 하겠다는 야무진 각오를 적은 것이 놀랍기도 했다. 그 후 홀로 시 쓰기를 시작했고 여직 홀로 독학으로 시 쓰기를 하고 있다.

 

 겁 없이 ‘죽을 때까지 글쓰기를 하겠다’고 적은 이후 여직 한 번도 마음이 변한 적이 없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대열에서 맨 꽁지에 자리해도 좋다. 내게 주어진 역량만큼 쓰고 싶다. 잘 쓰는 시인이고 싶지만 그것 또한 내 욕심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노력하며 쓰겠다는 생각을 한다. 네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수필집을 발간 할 때마다 출판 홍수에 일역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의 자취라고 생각하고 세상을 향해 내밀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행복하다. 난해하지 않고 서정이 짙은 글을 쓰고자 한다. 문학적 평가를 받기 이전에 독자들의 가슴에 가 안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쓰는 한 줄의 시가, 내가 쓰는 한 줄의 수필이 독자들의 영혼을 달래고 다독이는 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열 몇 살 시절에, 내가 외롭고 힘들 때 내 자신 스스로 홀로 견디며 심취 할 수 있는 나만의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 했었다. 비록 이루지 못한 꿈들이 있긴 하였으나, 그 꿈 중에 글 쓰는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며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위를 해 본다. 오늘 내가 고집스럽게 시를 쓰지만, 과연 먼 훗날 한 줄의 시라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시가 있을까. 단 한 편의 시가 사람들의 가슴에 자리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시를 쓸 것이다. 산고의 아픔이 따르더라도 외롭고 힘겨울 때 가슴을 담아 시를 쓰는 나는 행복하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 외롭고 힘들 때 문학을 향한 마음이 더욱 견고해지고, 내가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시와 더불어 살 수 있기를 염원하며 살아간다.

 

2009. 3. 14

 

<문예운동 신작소시집 특집에 실은 자전적 초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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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9.21 22:10

    첫댓글 진정 행복한 사람이시네요...잘 계시죠?

  • 작성자 09.09.23 22:04

    작은 것에도 행복해지려고 노력합니다. 아불님 가을이네요. 편안하시고 행복하십시요.

  • 작성자 09.09.23 22:08

    칠득이님도 안녕하시지요. 아름다운 가을 함께하시고 건강하십시요.

  • 09.09.22 21:04

    "작은 방에 누워 있으면 사운대는 시늘대가 창호지 문에 살아있는 수묵화를 그리며 끝없는 이야기를 해왔고..." 죽을 때까지 글 쓰셔야죠. 오랜만이네요. 늘 건필하시길...

  • 작성자 09.09.23 22:06

    오랫만입니다. 그렇게 겁없이 덤벼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09.09.24 07:04

    너무 좋으신 자전입니다...죽을 따 까지 무엇인가를 각오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행동하고 계심이 너무 좋습니다...시와 더불어 강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작성자 09.09.24 21:21

    죽을 때 까지 한가지를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시와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하며 또한 보람으로 생각하며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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