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길 1코스 #1
발길 머무는 곳에서 만난 옛 나루터, 여주 여강길 1코스
여강길 1코스(여주역-도리마을) 18.5km
코스:여주역>여주종합터미널>영월루>강변유원지>금은모래강변공원>강천보>부라우나루터>우만리 나루루터>흔암리선사주거지>아홉사리과거길>도리마을
여강이라, 부여를 지나가는 금강이 백마강이라 부르듯. 여주에서는 한강을 ‘여강’ 이라 부른다. 한강은 서쪽으로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여강길 1코스 구간은 특이하게도 여주의 남북을 관통한다.
여강은 삼국시대 이래 내륙의 교통로이자 여주 땅을 풍요롭게 하는 젖줄이었다. 경치 또한 탁월해 이규모, 이색 정도전, 권근, 서거정도 여강에서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수많은 나루터를 스쳐가며 강변 객주와 세곡선을 상상하며 걸으면 딱 좋다. 나루터 배에 올라 장을 보고 소와 땔감을 실어 날랐다는 데 지금은 고목만이 화려했던 추억을 곱씹고 서 있을 뿐이다.
여강길 1코스의 시작은 여주역. 수도권 전철이 여주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판교역에서 여주까지 48분 걸린다. 차가 막히는 주말에 이용하면 좋겠다. 그러나 배차 간격이 기니 시간표를 꼭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역에 내리면 여주시관광안내센터가 나온다. 여강길 스탬프북과 안내지도를 챙기고 여강길 어플을 다운받으면 끝.
시내길에 들어선다. 이정표가 잘 세워져 있고 애매한 곳은 리본이 펄럭여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시내 한복한 세종대왕상을 보니 비로소 여주에 온 것이 실감 난다.
영월루와 여주근린공원
여강길 1코스를 가늠하고 싶다면 꼭대기에 위치한 영월루에 오르라. 여강의 가장 좋은 위치에 천년고찰 신륵사가 보석처럼 박혀 있음을 알게 된다. 영월루. 이름 그대로 달맞이 누각. 며칠 전 슈퍼문이 뜨는 날 이곳에 선 사람은 로또를 맞았을 것이다. 옛 이름은 기좌제일루. 즉 경기도 왼쪽의 최고 누각. 너른 강에 황포돛배가 지나가면 그 이름이 과언이 아님을 알게 된다.
2기 모두 보물인 창리삼층석탑과 하리삼층석탑이 우직하게 서 있다. 모두 옮겨 놓은 것. 그런데 뜬금없이 강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보인다. 남한강의 역사와 운치를 산산이 부서지게 만든 흉물 같다.
아래에는 그리스 참전비가 서 있다. 원래 영동고속도로변에 있었는데 휴게소 확장으로 주변이 복잡해지자 이곳으로 이전했다. 탑도 누각도 참전비도 다 옮겨온 것 들. 이곳을 고향으로 삼은 모양이다.
고대 신전을 닮은 기념비가 서 있으며 당시 전사한 그리스군 19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리스군은 5000여 명이 참전했으며 194명의 전사자와 6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을 정도로 한국을 위해 열심히 싸웠다. 연합군 중 다섯 번째로 많은 부대를 파병한 나라다.
여강길 1코스 #2
여강을 품에 안으며, 강변길과 강변유원지
영월루 뒤쪽으로 강변길을 걷는다. 강 건너에는 한때 등대 역할을 했던 신륵사 탑이 하늘 향해 서 있다. 가장 신륵사를 멋지게 볼 수 있는 포인트는 바로 강 건너다. 선밸리호텔은 남한강을 보며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6개월 전쯤인가 이곳에서 강의를 했는데 창밖으로 펼쳐진 강변 풍경 때문에 강의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절경.
강변유원지는 너른 캠핑장. 시설까지 좋아서 주말에는 인산인해. 여강길을 걷는 이는 이곳을 거점 삼아 길을 나서면 딱 좋겠다. 절경과 시설이 좋아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라는 말이 나올 듯. 사이트당 1만 5천원이니 거저다.
여주폰박물관도 있다. 초창기 전화부터 최첨단 스마트폰으로 통신 역사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예전 홍콩영화에 등장했던 벽돌전화기도 반갑고 대학교 때 공중전화기에 줄을 서게 만든 삐삐도 추억을 자극하게 해준다. 바로 옆은 여강길 사무국. 1층은 여행자 쉼터다.
금은모래 강변공원
발걸음을 재촉해야 하는데 바로 옆 금은모래 강변공원이 다시 내 발목을 잡는다. 경기도 최대 생태공원으로 조경이 최고다. 꽃들은 또 얼마나 풍성한지. 특히 아이누리 놀이터는 숲속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체험공간이 가득하다. 평상과 정자도 있으니 발품 팔기 좋다. 야외에는 조각작품을 볼 수 있는 갤러리가 이어진다. 벤치에 앉아 강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 좋겠다.
강천보
4대 강 16개 보 중에 남한강에는 이포보, 여주보, 강천보. 3개의 보가 있다. 한때 4대강 홍보할 때는 관광객으로 인산인해 그러나 지금은 언제 그런 적이 있냐는 듯 을씨년스럽다. 엄청난 예산과 생태보전의 논란이 되는 보를 왜 만들었는지 아직도 의문. 물이란 것은 순리대로 흐르도록 해야 하는데 콘크리트가 덮혀지고 인공건물이 들어서면서 몸살을 앓게 되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한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 자연은 생명이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최고의 정책
강천보 위는 황포 돛대를 형상화한 구조물이 보인다. 잔디밭에 ‘HAN GANG’ 글씨 조형물이 서 있다. 한강이 노벨상을 수상 때문에 이런 걸 보기만 해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 옆에 한강문화관은 백로를 형상화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에 오르면 남한강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카페도 있으니 커피 향에 취했다 가도 좋겠다.
여강길 1코스 #3
부라우 나루터
다시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대형 화단과 인공시설은 사라지고 이제부터는 옛길. 여름엔 잡초가 무성했을 텐데 여강길을 사랑하는 이들이 잡초를 베고 리본을 달아 길을 잃어 해매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단현마을을 지나면 연수원 옆 좁은 길. 여기서 잠시 헷갈렸다. 억겁의 세월 물살이 만들어낸 지형을 오르락내리락. 강변엔 바위가 유독 많은데 널찍한 바위가 있는 곳에 나루터가 형성되어 있다. 그 색이 붉은색, 붉은 바위에서 붉바위로 다시 부라우라는 지명을 얻었다. 이 일대 주민들이 여주장을 이용하는 곳이다. 1972년 큰 홍수 때 나룻배 전복사고로 나루터가 폐쇄되었다고 한다. 특히 여흥 민씨 일가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민참판댁 99칸 고택이 있었다는데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근처에 명성황후 생가가 가까이 있다.
우만이 나루터
강변의 바위와 더불어 여강길에서 눈에 띄는 것이 느티나무다. 흥망성세를 겪어서인지 가지는 굽었고 생채기인 옹이가 세월의 아픔을 간직한 채 서 있다. 그중 최고는 우만이 나루터의 400년 된 느티나무다.
나무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조선시대 물산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상상하면 딱 좋을 포인트다.
옛 여강에는 총 18개의 나루터가 있었다고 한다. 우만이 나루터는 강천면 적금리·굴암리·가야리 주민들이 여주장에 오가거나 우만동·멱곡동 주민들이 강천면으로 땔나무를 하러 갈 때 주로 이용하였고, 배에 소를 태워 건네는 경우도 흔했다고 한다. 그 장면은 마을 벽화를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나루터 바로 옆에 영동고속도로 남한강교가 지나간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통로가 이젠 영동 고속도로에 바통을 넘겨줬다. 예나 지금이나 여주 땅은 분주하기는 마찬가지.
흔암리 선사유적지
강은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여주 이천의 쌀과 고구마가 맛난 이유이기도 하다. 땅을 일구고 산 청동기 시대에도 마찬가지. 이곳에서 쌀, 보리, 수수, 조 등 곡물이 발견된 것이다. 그러니까 청동기시대 한강유역에 쌀이 재배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유적. 청동기 시대 14기 집터가 확인되었는데 일부 복원해 놓았다.
도리마을
흔암리 선사유적지에서 도리마을까지는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 1코스 중에서 가장 힘든 구역. 일명 아홉사리 과거길. 돈 많은 유생이야 편안히 돛배를 타겠지만 배삯이 없는 가난한 유생은 산길을 거닐었을 거다.
아홉사리 고개를 넘다 넘어지면 아홉 번을 굴러야만 살아서 넘을 수 있을 정도로 험한 길. 그래서인지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나그네의 목을 축여주는 주막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 굽이치는 산길을 넘으면 드디어 여강길 1코스 종점인 도리마을. 바로 앞 도리섬을 보는 재미도 솔솔. 늘향골은 구절초가 많이 펴 마을의 상징.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한 길. 여강길 1코스
강을 통해 물의 소중함을 배우고 그 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다.
첫댓글 대중교통으로 가보고 싶네요
물가 주 자 붙은 지역 경치 좋죠---경주, 나주 여주 등
신의주?
전철타고 가보고 싶으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