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너무 조신하게 지내시는 것 같아, 아주 예전에 끄적인 글 한 편 올립니다. 그냥 보고들 웃으세요>
E의 이집트 거지여행 무사귀국을 축하해주기 위해, M은 E와 그녀의 언니S와 함께 찻집에 모였다. 입담 좋은 그녀들의 대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삶의 진실에 따귀 맞어야했던 아픈 이야기들로 진지해졌다. 그러나 예의 코메디는 잊지 않은 채.
S: 내가 요즘 집으로 배달되는 L기업의 사보를 보는데, 가끔 인생 역전에 성공한 여인네들 보면 속이 뒤집혀. 모모 이사 사모로 소개되는 그녀들은 꽤나 풍요롭게 살아가는, 다시 말해 결혼을 통해 신분 보장을 이룬 듯 보이거든. 내 자리를 빼앗아가버렸단 말야. 질투를 하는 것은 아니야. 내가 방심하고 있었다는거지. 내가 들고 다니는 검정 비닐 봉투는 고급 가죽 가방이고, 남이 들고 다니는 가죽 가방은 검정 비닐 취급하는 사람이 바로 나란 말야. 그런데, 예전의 나답지 않게 요즈음은 속이 뒤집히는거야.
M: 언니는 좋겠다. 난 자신감 없는 것이 내 발목을 잡았는데. 근데, 언니한테 부족한 것이, 아니 우리 모두에게 부족한 것이 뭔지 알아? '타협!' 대체로 이 나이되도록 늙은 노처녀로 늙어가는 것들치고, 세상과 '타협'할 줄 아는 사람 없어. 결혼한 여자들이 우리보다 확실히 잘하는 것은 뭔가 남의 부족한 점은 덮어버릴 줄 알고, 자신이 바라는 가치를 쫓아 계산을 말끔히 끝내고 '타협'해 버린거쟎아.
E: 맞아. 내가 이번에 이집트 15일 동안 여행하면서 우리 배낭족 중에 나 포함해서 노처녀가 모두 4명있었는데, 하나같이 이상한 고집들이 있더라구. 다 싸이코지. 하긴 나도 그렇겠지만.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발작한 후에는 언제그랬냐는듯 자신들도 망각하고 다시 나이스 해지는거야. 늙어 힘도없고 기억도 노쇄해진거겠지. 근데, 다행으로 본질은 착하지. 하긴 노처녀들이 대체로 본질이 착하니, 악착같이 사유 재산을 모으지 않는거아냐.
M: 하긴 싱글치고 현실에 버둥거리지 않는 사람있을까? 품위는 고상한 위장이고, 덩그러니 혼자 있게될 시간에는 영수증 옆에 두고 계산기 두드리지만 이내 짜증이 나고, 그러다보면 오늘은 누가 놀아주려나 생각하게 되는게 소위 화려한 싱글들의 더러운 현실이지.
S: 맞아, 난 싱글들 중에서 멋지게 자기 관리 잘하는 여자들이 헬스 다니는 줄 알았거든, 나도 현상 유지라도 하려고 작년에 헬스를 몇달 다녔지. 근데, 다들 헬스 끝나기 무섭게 샤워하고 맥주 집에 가는거야. 가서 지칠 때까지 수다떨고 그리고 잠자러 집에가고. 다 알고보니 외로와서 헬스장 나오는거더라구.
E: 근데 넌 연애사업 이야기 안한다? 결혼할거니?
M : 응, 그냥 하려고해. 타협이란 것을 나도 해보려고.
E: 너가 최초로 남자에 대해 쿨하게 말한다. 근데 정말 하려는거야?
S: 아무래도 이 친구가 독거노인공포증에 걸렸나보다.
M: 글쎄. 어쩌면. 이젠 나도 혼자 늙어가는 쓸쓸한 노인이 되고싶지 않네. 백수(100壽) 공포증이야. 독거노인으로 늙는 것보다는 그로테스크한 결혼 생활이 낫지 않을까?
E: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그런데 네 지적허영을 만족시켜줄까?
S:(모르는 척) 얘가 지적인 사람 좋아해?
E: 얘 지적이고 섬세한 사람한테만 느낄걸. 이번에 아주 쿨하게 나와서 난 좀 의심스럽네
S: 전투력을 상실했나보지. 일에 인생 승부를 걸었다가 졌다고 판단한 후, 전의를 상실한 상태아닐까? 맞지?
M: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나야 지금이라도 물론 혼자서 홍콩이나 싱가폴로 일 얻어 나가면되지. 하지만, 지금껏 그렇게 용감하지 않았는데, 그런 거대한 도전을 갑작스레 할 사람은 아니쟎아. 내가 좀 적극성이나 도전성이 떨어지지. 업계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아쉽기도 하고. 내가 전전 직장에서 처음부터 나를 경계하던 여자한테 쐐기를 박고 온 것도 있거든. 내 말에 대한 책임도 져야지
E: 뭐라 그랬기에? 그 여자도 노처녀야?
M: 마져. 대학 선배이고, 통역대학원 나온, 나보다 13살인가 많아. 내가 정치적 희생양이고 투박하게 말하면 밥그릇 싸움하는 투견들이 으르렁거리는데 낑기게 된 가여운 한마리의 흰 쥐 정도였겠지. 그 회사가 이 분야에는 정상이쟎아. 그 회사 나오면 다운그레이드하는거야. 그 여자를 제거하고 싶어하는 남자 이사와 늙은 마녀, 결혼 안하고 늙은 여자들 마녀취급하쟎아, 가 내가 입사한지 일주일도 안되서, 다이어리 던지며 싸우더라. 내게 해외거래처 연락처 넘기라는 이사 말에 그 여자가 한다는 소리가, "그럼 나보고 나가달란 말인가요?" 그러면서 바로 내 앞에서 으르렁거리던데.... 그런다고 나로서는 어렵게 성취한 기회를 포기할 수도 없고, 그 때부터 내 외줄타기가 시작된거야. 재미있는게 워낙 정치적 인간들이기 때문에, 아니 그 밥그릇 아니면, 깡통차고 나가야되는 사람들이라 자기들끼리 가끔 휴전도 하고, 제휴도 하고, 어떨때는 오히려 그 둘이 이 흰쥐를 갖고 놀기도 하고.... 하여간
S: 마져. 나도 현대에 10년있어서 안다. 대기업출신들 그런 사기업 분위기에 적응 못하지. 근데 그 회사는 50년 역사면서도 그러냐? 근데 나오긴 잘 한 것 같아.
M: 아, 내가 두사람한테 직장 나올 때 했던 말 하졀?했지. 그게 뭐였냐하면.... 그 여자가 내 동기 편집장을 불손죄로 강제로 몰아냈거든. 동기가 일방적으로 당한거구. 그 늙은 마녀는 뭐 여러가지 꼬투리를 만들어내어 능력있는 될 성 싶은 후배들의 싹부터 잘라버리려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야. 사표 수리된 날 업무 시간 종료 5분 전에 그 여자자리로 찾아갔지. 그 여자 앞에 불손죄로 추방당할 처지인 동기도 있었거든. 위로도 할겸, 그 사악한 인격을 모독도 할겸.
E: (눈을 크게 뜨고 사뭇 진지하게) 뭐랬는데?
M: 저 퇴사하려구요. 그러니까 들어 알고 있다고 말하대... 마치 고맙다는 듯 부드러운 말투였어. 내가 거기에 대고 더없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해줬지...근데 드릴 말씀이 하나 있는데요. 내가 그 자리에 가는 꼴을 보지 않은 직원들이 뭔일인가 싶어서 아예 의자를 내가 있던 방향으로 틀어놓고 보고 있더라고... 내가 그 중 한 직원과 눈이 마주쳤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씨익하고 웃기까지 했지.... 그리고 내 단어 하나하나에 권위와 위협을 실기 위해서 또박또박 천천이 말했지. "인생 공부 제대로 했습니다." 그녀 표정을 보니까,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무척 긴장하는 눈치더라구. 내가 말을 이었지. "인생 똑바로 사시죠. 당신이 어떻게 되나 끝까지 지켜볼거니까. 제가 당신보다는 더 오래살겠죠. "
E: 후후,,, 잘 했다. 시원하네
M : 근데 내 친구왈 아직 내 눈에 독기가 안 가셨대. 그 말은 안했어야 하는거니?
S: 아니 잘 한거네. 하여간.... 난 말야, 내 사업의 적이 국제어머니연합회 성북지부 엄마들이야. 내가 우아한 싱글인 걸 안 이후로는질투의 시선, 게다가 낭설들까지...하여간 국제어머니연합회의 테러를 받았다니까. 그래서 내가 사업을 접기까지 했쟎아.
M: 하하하,,, 근데 내가 결혼하려고 하는 것도 바로 그래서야. 우리나라에서 성공하려면 표준규격대로 해야되거든. 그게 바로 결혼이고 바로 내 '포비아'이자 '컴플렉스'지.
S: 결혼안하고도 성공할 수 있는 여자는 공무원밖에 없지. 성공이 아니라, 철밥통을 찰 수 있는.
E: 응, 나처럼 사무관하면 되지. 근데 철밭통도 불안해.
S: 나이들면서 느껴지는 것이 인생의 수준을 지키는 것에는 엄청난 노력이 들더라는거야. 젊을 때는 그 자체가 커다란 어드벤티지이라 게을러도 되고 다소 오만해도 드러나지 않지만, 나이 들면 몸도 몸이지만 걸맞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에 몇 배의 노력이 들어요.
E: 인생이 나이들수록 멋있는거라 누가 그래? 나이들면 결국 노쇄되는거구, 우아하게 늙으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자기 희생, 자제가 필요한데.... 그리고 아무리 젊어 보인다 해도, 어차피 민증 까기쟎아. 나이 그거 결국 숫자 맞아. S: (화제 바꾸는데 선수) 근데 느끼지 못하는데도 결혼하려고?
E: 글쎄. 님프가 견딜까? 지적 컴플렉스 극복하지 못하면....
M: 근데, 넌 Libido가 있는거야?(E와 E의 언니 S는 약간의 남성비하와 남성혐오증 환자) 있으면 어디로 전이된건데? 구라 이바구하는데 다 써버린거 아냐?
E: 야, 사람들 다 쳐다본다. 내겐 여우와 신포도다. 그래 딱 그거야.
이렇게 세 여인네의 대화는 전입가경! 가벼운 말장난 속의 메타포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만 맥을 놓치게 된다. 고도의 집중력과 순발력이 제대로 갖춰져야 서브-토스-스파이크를 성공시킬 수 있으니까. 대단한 입다마들이다. 자랑스럽다. 술 한방울 없이 6시간을 버티는 저 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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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근에 눈에 띄는 책이 한 권 있는데, 깡통 찬 거지신세가 되서 사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책은 사서 보자' 로 일관했는데, 이제 '서서 보자' 주의로 전향해야 할 듯 싶네요. 아 서글픈 자본의 추락이여. 참, 그런데 그 책 제목이 '킹콩 걸' 이랍니다. 부제가 못난 여자들을 위한 페미니즘이랍디다. 꼭 저 위에 세 사람을 위해 필요한 책 같더군요. 마찬가지로 제게는 필독서지요. 양서일지 읽고 난 뒤 말씀 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