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절대적인 불평등의 사회였다. 로마 시민들이 모두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예와 자유시민, 외국인과 로마인, 남자와 여자들 사이에는 넘을수 없는 차별의 벽이 있었다. 로마인들은 폭넓은 가족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명예와 안정을 추구했는데, 이런 독특한 사회제도를 ‘클리엔텔라’ 관계라고 부른다.

로마의 하층민들은 로마 예술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간혹 전형적인 실내의 모습을 그린 장면에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카르타고의 율리우스의 모자이크에는 여주인에게 보석을 바치는 하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대 로마인들은 노예와 자유시민이라는 매우 판이한 두 부류로 나누어져 있었다. 자유시민은 소수의 로마인과 다수의 외국인(다른 도시나 로마제국의 다른 지역 출신인 이들을 페레그린이라 불렀다.)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또한 로마 시민들 중에서도 일반 대중과 귀족은 엄격하게 계층이 구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사회 계층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그 수적인 크기에 반비례하고 있다. 다수를 차지한 노예와 일반 시민 계층에 대해서는 현재 전해지는 자료가 거의 없고, 남아있는 것은 엘리트 계층에 대한 자료가 대부분이다.

대지주의 무덤에서는 흔히 육체노동자나 농부들, 혹은 위와 같은 오스티아의 목수들을 묘사한 그림이 발견된다. 이는 무덤 주인이 재산을 어떻게 모았는지를 밝히기 위한 의도거나 신화의 장면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이다. (그리스의 건축가 다이달로스와 그의 건축물들, 불카누스와 그의 대장간 등). 간혹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진 장인들은(이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인이고, 간혹 갈리아인도 있었다)묘비 위에 그들의 생전의 활동을 기록해두었다. 그러나 특히 공화정기에는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혹은 정치적이지 않은 활동은 대중적으로나 공식적으로 별 인기를 얻지 못했다.

시칠리아의 피아자 아르메리나 저택에 있는 모자이크는 사냥을 묘사한 4세기경의 작품으로 투기장에서 쓸 동물을 아프리카에서 잡아 운반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동물을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노예를 때리는 장면도 있는데, 이는 매우 보기 드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시대의 기록을 보아도 노예의 체벌은 규칙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자료출처: 충북대학교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