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이 뭔지도 모르고, 남북간의 대립도, 괴뢰군(양측이 다 서로를 이렇게 부르죠)도, 전쟁도 모르는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동막골은 피난민이 지나가는 다리를 폭격하고,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에서 천국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상을 사이에 두고 국군과 인민군이 서로 총을 겨누어도 한가롭게 밭일 이야기를 하는 마을 사람들은 순수함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결국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죽이니 살리니 욕을 해대고 고함을 쳐댔던 국군과 인민군들은 이곳 천국에서 순화되고, 서로 친구가 되고 형 아우하고 부르는 사이가 되죠. 이곳 동막골은 이렇게 천국같고, 밝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지만 시대는 1950년. 아마 한민족에게 있어 경술년 이후 가장 어두웠을 해인 1950년은 이런 동막골이라는 천국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축제 도중에 내려온 공수부대의 행패는 동막골의 평화에 엄청난 위협을 가져오지요.
국군과 인민군, 처음에는 서로 수류탄 까고 총부리를 맞댄 이들은 힘을 모읍니다. 빨갱이나 미제의 압잡이로써가 아닌, '그냥 내려오는게' 아닌, 그들이 애착을 가지고 사랑했던 것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고, 결국에는 그것을 위해 모두 희생하지요. 연합군의 폭격이 그들 위에 떨어짐에도 그들이 웃을수 있었던 것은 그런 까닭이 아니었을까요.
어찌보면 현실도피적이기도 해요. 동막골이라는 정말 판타지스러운 장소에서 일어나는 판타지같은 일들, 그곳의 판타지같은 인물들. 한국전쟁이라는 끔찍한 일을 잊어버리고 외면할수 있는곳.
하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은, 특히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던 두 장교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판타지같은 장소야말로 가장 훌륭한 병원이었으며, 상부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 약자들을 죽이는 사람이 아닌 한 인간으로 살아갈수 있는 곳이었죠. 그러기에 그들이 동막골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수 있었던거고요. 그리고 아직도 한국전의 피해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한국인들에게도 피난처이자 안식처가 될수 있었던 곳이고요. 그래서 이 영화가 이런 흥행돌풍을 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강하게 감동을 주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고요히 감동을 깔아 깊고 깊은 여운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글을 쓰면서 깊게 곱씹어볼수록 눈물이 나려 하네요.
ps :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정말 대단하다니까요.
ps 2 : 개인적으로는 영화 초반부, 문상사가 마을 사람에게 전쟁을 설명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과 설명하기 난감해하는 문상사. 떼놈도 왜놈도 아닌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 서로 편을 갈라 전쟁을 한다는것은, 그렇게 순수한 사람들에게 있어 정말 이상한 일이었을테니까요. 그만큼 한국전이란것이 비극이었다는 뜻이고.
첫댓글 OST 정말 좋았습니다. CD 구하려는 중.....
그렇습니까? 예고편 봤을때 동해물과... 정도 수준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평가들이 좋군요. 봐야 하나...
전 개인적으로 오류선생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한국화하여 영화화해부렸다는 느낌이.. -_-a ..
근데.. 정말 그런 곳과 비슷한 곳이 있었다는 걸 들었습니다. 한국전쟁당시 어떤 분이 강원도의 어느 한 골짜기에 사셨는데. 그때 전쟁이 터진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눈 녹여서 물먹고 그랬다고 하네요... 마을 단위는 아니었지만 그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좋은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한번쯤은 꼭 보고 싶은 영화로군요.
전 이거보고 눈물참느라 죽을뻔했는데 ..;;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