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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대 생활백과사전 <임원경제지> 그림 1 김홍도의 <논갈이> ⓒ 위키피디아
공기를 제외하고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물질 중 으뜸은 음식(食, 식)과 옷(衣, 의)과 집(住, 주)이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없다면 과연 오늘날 누리는 풍요를 진정으로 누릴 수 있을까. 인류가 지금까지 이어온 것은 바로 이 식·의·주 세 요소를 끊임없이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물질을 평생 한 번도 생산하지 않고 잘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이 요소만 생산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면서도 못 사는 사람이 있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는 사대부(양반)가 시골, 즉 임원(林園)에서 살아가는 데(經濟) 필요한 지식과 정보의 기록물(志)이다. 총 113권 54책에 글자수 250여 만 자라는 방대한 분량의 저술이다. 총 852종의 참고서적을 참조하면서 중국과 조선, 일본, 심지어는 서양의 지식까지 흡수해 풍요로운 삶을 일궈낼 지식들을 모았다. 식·의·주를 창조해내기 위한 실용 지식을 토대로 휴식을 위한 게임과 생산물의 유통까지 고려한 생활 경제 서적인 것이다. 이렇게 일상의 지식을 체계적으로 모두 모은 서적은 동아시아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임원경제지>는 조선 최대 생활백과사전이었다.
조선의 농촌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모은 백과사전
그림 2 임원경제지 ⓒ 한국학중앙연구원
<임원경제지> 저자는 경화거족(京華巨族) 출신의 풍석(楓石) 서유구(徐有?, 1764-1845)다. 경화거족이란 조선 후기에 국가의 주요직을 대대로 차지한 일종의 최상위 귀족으로, 서울과 그 주변에 살던 가문을 일컫는다. 서유구의 집안은 선조 임금 시기 이후로 판서(지금의 장관급) 이상의 고급 벼슬에까지 대대로 올라간 명문가였다.
서유구는 어려서 할아버지 서명응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그는 중국의 문명을 배우자고 주장한 북학파(北學派)의 시조다. 따라서 서유구가 서명응의 영향을 받은 박지원, 박제가와 같은 북학파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또한 그는 과거에 급제한 뒤로 국가의 서적 편찬사업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책을 수집하고 만들고 보관하는 일에 전문적인 지식을 쌓았다. 이런 다양한 경험은 <임원경제지> 저작에 탄탄한 토대가 됐다.
서유구는 고위 관료로 고속 승진을 하던 도중 순조 임금 초기(1806)에 발생한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고향인 장단(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으로 내쫓겼다. 그곳에서 18년 간 가난하고 힘든 귀농 생활을 하던 시기에 그의 생각과 학문적 실천 방향은 극적인 전환을 이뤘다. 선비라면 마땅히 배우고 연구해야 할 유교 경전 연구(철학)나 국가 운영학(정치학)을 포기하고, 농촌에서 즉각 실천할 수 있는 ‘이용후생학’, 즉 ‘실용학’ 연구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임원경제지>는 이 과정에서 기획됐다.
<임원경제지>는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라고도 한다. 총 16개 분야로 내용을 분류해 서술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들어있는 내용은 각종 농사를 비롯해 기상천문, 고기잡이, 사냥, 가축 기르기, 요리, 건축, 건강법, 질병치료, 마을의 예절, 교양공부, 문화생활, 집터잡기, 경제생활 등이다(표 참조). 그야말로 농촌 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라면 모두 모아 놓았다.
표 1 <임원경제지>의 내용 및 권수
<임원경제지>는 삶에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농사짓기를 예로 들면, 밭갈이를 어떻게 해야 수확을 가장 많이 낼 수 있는지, 재배를 어떻게 해야 자연재해를 극복할 수 있는지, 농기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등을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농사의 전 과정을 단계적으로 나눠 상세하게 다룬 것이다. 따라서 농사에 관한 당시의 정보 대부분이 이 책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모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모으는 과정에서 저자의 원칙이 반영됐다. 원칙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사대부의 농촌 생활에 실제로 도움 되는 지식을 모으는 것. 따라서 사대부들이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유교 경전 연구나 국가 운영학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둘째, 조선의 풍토에 적용 가능한 지식만 싣는 것. 따라서 아무리 고급 정보라 해도 조선에 유용하지 않은 정보는 선택하지 않았다.
이런 방법으로 이 책을 구성하는16개의 분야는 모두 조선에서 나온 책 중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그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이 때문에 ‘조선의 <브리태니커>’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같은 시대에 서유럽에서도 <브리태니커>나 <백과전서> 같은 거질(巨帙)의 백과사전이 편찬됐다. 특히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주도해 만든 <백과전서>는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는 지적인 기반이 됐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반면 <임원경제지>는 그와 같은 급진적 혁명이 아니라 각 가정에서 ‘생활의 개혁’을 유도했을 뿐이었다. 이를 통해 조선왕조를 무너뜨리기보다 안정적으로 왕조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
유식자(遊食者)여, 일을 하라 서유구는 왜 이런 책을 썼을까? 서유구가 살던 시대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사대부, 즉 양반이었으며 이들을 유식자(遊食者)라고 한다. 유식자가 증가한 이유는 농사를 천시하는 사회적인 풍토 때문이었다. 이 지배층의 인구는 조선 후기에 매우 증가한 반면, 생산과 유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에 비례해 줄어들었다. 게다가 관리들의 부패가 심해지면서 농민에게 부과하는 세금과 각종 명목상의 수탈은 갈수록 커져갔다. 그 결과 가정경제는 물론 국가경제도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그림 3 임원경제지에 실린 다양한 분야들 ⓒ 한국과학창의재단 / 작가 김화연
<임원경제지>는 유식자들이 귀농해 농업, 공업, 상업에 종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반으로서 벼슬하지 않는 이들은 공부를 하되, 가족의 생계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농사 지으면서, 물고기 잡으면서, 공장(工匠) 일도 알아 가면서, 가족의 병은 가정에서 치료하면서, 돈을 벌고 관리하는 일에도 신경 쓰면서 공부하자는 운동이었다. 그러다 보면 가정의 살림살이는 조금씩 나아지고 더불어 나라의 경제도 여유로워질 것이라는 큰 희망을 품었다.
<임원경제지>는 너무나 흔해 빠져 평범해 보이는 지식들을 지나치지 않았다. 가치 없어 보이는 일상의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학문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서유구는 사소한 지식과 정보를 귀하게 대접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임원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해냈다.
<임원경제지>가 완성된 뒤 지식인들은 앞다퉈 이 대작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금이 부족해 인쇄되지 못했다. 때문에 붓으로 일일이 베낀 필사본만이 전해지는데, 분량이 워낙 많아 전체 필사본을 만드는 일조차 어려웠다. 따라서 특정 분야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일부를 필사하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이렇듯 <임원경제지>는 인쇄가 되지 않으면서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널리 유포되지는 못하고 말았다.
다양한 학문이 융합된 실용 지식의 진수 <임원경제지>는 단순히 기존 지식을 모아 정리한 책이 아니다. 실생활에 활용될 것을 목적으로 지식을 정리해 집필된 것이다. 때문에 지금의 학문 분과로는 다 포섭할 수 없는 다양한 영역이 한데 종합돼 있다. <임원경제지>의 내용을 지금의 학문 분과로 나눠 보자면 농학, 원예학, 임학, 직물학, 의류학, 농업기상학, 축산학, 수산학, 사냥술, 요리학, 건축학, 공예학, 공학, 예방 의학, 치료 의학, 예학(禮學), 수학, 음악학, 궁술(弓術), 독서법, 회화학, 서지학, 레저, 관광, 풍수지리학, 경제학, 생활경제학 등 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과 공학이 하나로 연결된 학문 체계인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학문이 시골 사대부의 생활 지식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 모였다.
이렇듯 <임원경제지>에는 오랜 시간 동안 동아시아에 축적된 생활 지식이 한데 집결됐다. 그만큼 동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를 담고 있어 조선 후기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재구성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다. 따라서 이제까지 다소 빈약했던 조선의 물질 문명에 관한 연구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미래의 삶의 양식을 모색하는 데에 중요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지난 20세기에 ‘근대화’라는 명목 아래 불어 닥친 서양화 바람으로 조선 고유의 전통은 거의 사라졌다. 남아있는 전통조차도 거의 사멸할 지경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석탄·석유와 같은 화석 에너지 고갈 시대를 우려하며 전통적 삶의 지혜가 각광을 받고 있다. ‘임원경제학’에는 도시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내용이 많아 실용 분야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임원경제지>는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실용 지식의 진수라 할 수 있다.
자료: Science All |
첫댓글 인간의 기본적인 삶
그래서 제일 중요합니다.
"‘임원경제학’에는 도시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내용이 많아 실용 분야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임원경제지>는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실용 지식의 진수라 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