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도미에 Honore Daumier (1810-1879)】
"위대한 미술가이며, 최고의 시민이었던 도미에"
Honore Daumier
바야흐로 프랑스 혁명의 시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이며 판화가. 19세기 프랑스 정치와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서민의 고단한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당대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4,000여점에 이르는 석판화를 비롯한 방대한 작품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생생한 증언이다.
민중의 시기 사실주의 그 이상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의 작품 세계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이며 판화가. 19세기 프랑스 정치와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서민의 고단한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당대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서민들을 가난의 상징이나 민중의 대표자로 나타내지 않고 많은 풍속화가와 더불어 자연스러운 풍경의 일부로 표현함으로써 그 속에서 연민과 고달픔을 느끼게 하는 민중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도미에는 1808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가난한 유리직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유리직공인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이주하였다. 어려서부터 법률사무소 사원과 서점의 점원으로 돈벌이에 나서야 했던 그는 그만큼 일찍 현실의 냉혹함과 맞닥뜨려야 했다. 도미에는 알렉상드르 르누아르의 작업실에서 미술 공부를 했으며, 아카데미 쉬스에서 인체 데생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회화를 거의 독학으로 익혔다. 그러면서 친구로부터 석판화 기법을 익혔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당시는 정치 비판이 비등한 시대여서, 잡지 《카리카튀르》에 초빙되어 정치적 풍자화를 그렸다. 이때 그는 엄청난 세금 인상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국왕 루이 필리프 1세의 모습을 가난한 백성들이 바친 금화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살찐 대식가로 묘사했다. 또한 정치인들은 국왕이 배설한 쓰레기를 놓고 서로 싸우고 있는 인물로 그렸다. 도미에의 이 같은 정치적 캐리커처들은 곧바로 루이 필리프 1세를 분개하게 만들었고, 그는 1832년 체포되어 벌금을 물고 6개월간 수감되었다. 도미에는 1835년 검열법 때문에 정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는 대신 파리 사람들의 생활상과 풍속을 그리는 것에 전념했다. 그러나 1848년 정치적 주제에 또다시 탐닉했고, 삽화가로서의 활동에 비해 항상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했던 회화작업에 몰두했다.
도미에의 신랄한 풍자는 정치적인 압제에서부터 사회의 부정부패, 전쟁에 이르기까지, 인간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이야기를 펼쳐 나가 당대의 뜻있는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세탁부>, <삼등열차>, <도제공들의 세계>는 그가 즐겨 다루었던 소재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지친 일상을 거친 붓질로 대담하게 그려낸 도미에의 회화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진한 휴머니즘을 느끼게 해 준다. 그는 인간의 잔인성과 어리석음을 예리하게 지적한 비평가이자 위대한 화가였다. 그러나 말년에는 장님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이 쇠퇴하여 교외인 마르몽드아에서 살다가 생애를 마쳤다. 그는 권력 앞에 침묵의 시기, 권력의 폭정, 탄압, 부자유와 불공정 현상을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시대의 아픔을 기록하고 대변한 위대한 미술가요 위대한 시민이었다.
오노레 도미에는 1830년 7월 혁명 덕에 왕위에 올랐던 루이 필립과는 악연이 있었다. 그를 비난하는 만평을 게재한 혐의로 6개월간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미에와 뜻을 같이 했던지, 1848년 다시 한번 민중봉기가 일어나 루이 필립은 왕위에서 물러나야했고, 제2공화정이 들어서게 된다. 그때의 감동의 기억을 그린 것이 봉기라는 그림이다.
이 작품은 이후 도미에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이 모두 보인다. 그리고 이 그림을 설명하는 해설에는 이 그림이 얼마나 계산이 되어 그려졌는지 설명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모든 이목이 가운데 흰 셔츠를 입고 손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집중되도록 고안이 되었다고 한다. 그림의 왼쪽의 군중들은 어둡게 그려졌고, 오른쪽에는 높은 벽을 그려 시선을 차단했다. 앞에 보이는 군중들에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배경으로 밝은 벽을 그려넣어 군중들과 대비를 시켰고, 가운데 사람만 밝은 옷을 입혀 이목이 이 사람에게 집중되도록 했다. 거기에 그가 들고 있는 오른손은 거의 캔버스 끝까지 닿아서 역동성과 에너지를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 있는 군중들 역시 일부러 다양한 구성을 그려넣어 모든 계층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한 봉기임을 보여주는 영리함 또한 보이고 있다.
이 그림은 현재 미국 워싱턴의 필립스 컬렉션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이 미술관을 설립한 던컨 필립스라는 사람이 이 그림을 어렵게 구하고는 얼마나 감격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가르강 튀아(Gargantua) 판화, 1831
위 그림 속에는 흉측하게 생긴 거인이 앉아있다.
지금 그는 사람들이 바친 재물을 먹고 있는 중이다.
이미 많은 재물을 먹어 살이 부풀어 올랐는데도
거인은 만족하지 못한 표정이다.
그가 앉은 의자 밑으로는 서류더미와
분주한 모습의 사람들이 몰려있다.
과연 이 그림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신문 삽화가였던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가
국왕 루이 필리프 1세를 풍자한 그림으로,
세금 인상에 대한 반발심에 그린 작품이다.
그림에서 흉측하게 생긴 거인은 루이 필리프 1세를,
행색이 초라한 이들은 서민을 상징한다.
주목할 것은 의자 밑에서 무언가를 받기 위해 손을 뻗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부르주아 계층이다.
그리고 그들이 들고 있는 ‘종이’는
국왕의 자신을 지지해준 부르주아에게 하사한 훈장을 의미한다.
3등석 열차
가난한 서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삼등 열차속 사람 들은 한 가족 이지만
서로에게 관심가질 여유도 없을 만큼 지친 기색이다.
공화국 (1848), 캔버스에 유채, 73 x 60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풍선에 탄 나다르 나다르
바보왕 라블레
세탁부
왕의 캐리커쳐
진실한 사람들
봉기
언론의 자유 (1834), 석판화, 31.4 x 43.4 cm., 클리블랜드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