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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 ●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주후 1813-1873)
아프리카의 선교사하면
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 중에
리빙스톤 선교사하면 대부분이 알고있습니다.
리빙스톤 선교사는
1813년대에 태어나 12살 때 헌금이 없어
슬픔에 젖여 있을 때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자신의 몸을 헌금 궤에 넣어
하나님께 평생을 헌신한 사람입니다.
그 후 그는 중국선교사로 가려했으나
성령님께서 아프리카로 인도해 평생을 미개한
아프리카 백성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였는데
지금처럼 특별한 길이 없어 밀림을 헤치며
원주민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할 때 출발 전에
꼭 읽는 성경 말씀이 있었는데 바로 시편 121편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블랜타이어 출생.
가난하여 글래스고 인근의 방적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하면서 고학으로 글래스고대학에서
그리스어(語) ·신학 ·의학을 배웠으며
1840년 런던 전도협회의
의료선교사로서 남아프리카에 파견되어,
1841년부터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오지에까지 들어가
전도사업에 진력하였는데,
뒤에는 교역 루트 탐색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1852∼1856년에는 케이프타운을 출발하여
육로로 서안(西岸)의 루안다를 거쳐 대륙을 횡단하여
동안(東岸)의 켈리마네까지 이르러
아프리카 횡단여행의 성과를 거두었고
그때 빅토리아폭포와
잠베지강(江)을 발견하였습니다.
1856년 귀국하여
《남아프리카 전도여행기:
Missionary Travels and Researches in South Africa》
(2권, 1857)를 출간하고,
1858년 켈리마네 주재
영국 영사로 부임하여 니아사호(湖:말라위) 등을 탐험,
인근의 ‘노예사냥’ 실태를 폭로함으로써,
노예무역 금지에 이바지하였으며
1864년 다시 귀국하여
《잠베지강과 그 지류:Zambesi and its Tributaries》
(2권, 1865)를 발간하고,
1866년에 다시 아프리카로
건너가 나일강의 수원조사에 착수하였습니다.
1871년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콩고강 지류에 이르렀으나 열병에 걸려
사경에 빠졌는데, 탕가니카 호반의 우지지에서
H.스탠리의 수색탐험대를 만나 극적으로 구출되었으며
그 후 스탠리 일행과
함께 조사를 계속하다가,
1873년 방궤울루호 부근 마을에서 이질(痢疾)로 사망하였습니다.
이때의 탐험기록은
《중앙아프리카에서의 리빙스턴의 최후 일지:
The Last Journals of David Livingstone in Central Africa》
(2권, 1874)에 있습니다.
......
리빙스톤(Livingstone)은
산돌이신 주님을 뜻 하기도 합니다..
◆ 시 121 : 1 - 2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A song of ascents.
I lift up my eyes to the hills-
-where does my help come from?
My help comes from the LORD,
the Maker of heaven and earth.◆ 시 121 : 1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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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신의 몸을 헌금궤에 넣어 평생을 헌신한다는 믿음을 어찌 기뻐하지 않으시겠어요..."주님! 우리도 믿음있는자로 서서 주님의 기쁨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