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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찌아빠의 힘내라! 아저씨 맛집] 딱! 대폿집, 혜화동할머니집
[13개월 전...]
항상 배고프고 술고팠던 재수생 시절에 몇번 가봤지 싶은 허름한 대폿집 하나가 20년만에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건재함을 파찌아빠에게 알려왔다. ##일보에 실린 `[대폿집기행] ① 혜화동 할머니집`이라는 기사를 통해서 였다. 이 기사를 읽고 `혜화동 할머니집`을 한번은 찾아가 봐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12개월 전...]
작년(2003년) 이맘 때 쯤 이었을 것이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파찌아빠는 혼자 북한산을 찾았다. 지하철 6호선 독바위역에서 시작한 산행은 대남문과 칼바위능선을 지나 정릉매표소에서 끝났다. 하산후 시계를 보니 오후 2시였다. 평소보다 훨씬 짧았던 산행으로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엔 머슥한 시간이었다.
모처럼 정릉까지 온김에 친구 몇에게 전화를 했다. 그중 학교 후배이자, 같은 회사의 직계 부하직원인 고##군하고 연결이 되서 대학로에서 만나 간단하게 소주 한잔을 하고 2차로 찾아간 곳이 바로 `혜화동 할머니집`이었다. 고##훈군과 함께 대학로 길을 걸어가면서 파찌아빠는 이미 흥분하고 있었다. 20년만의 방문이라는 사실이 발걸음을 빠르게 만들었다.
‘혜화동 할머니집’ 문밖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 두쪽짜리 미닫이 유리문에는 빨간글씨로 `선술집`, `왕대포`라고 씌여져 있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테이블이 달랑 3개. 그나마 테이블도 보통 식당에서 쓰는 식탁의 절반크기도 안되는 작은 테이블이었다.
안쪽의 테이블에는 단골인듯한 남자 3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에는 멋장이 할아버지 두분이 자리를 잡고 계셨다. 한분은 70세이신데 소시적에 상당히 풍류를 즐기셨을것 같은 차림이셨다. 차림새를 잠깐 묘사하면 옅은색 등산모를 쓰시고 하얀 턱수염을 기르셨으며 형사 콤롬보가 즐겨입는 레인코트를 걸치시고 면바지에 아주 잘 어울리는 랜드로바를 신고 계셨다. 화가나 문인 또는 연극인등 문화계를 두루 섭렵하셨을 것 같은 분위기 였다. 입담도 뛰어나 같이 대화를 나누는 내내 즐거웠다. 같이 계신 또 한분은 71세로 1954년도에 국가대표 스피드스케이트 선수였다고 자신을 소개 하셨다. 두분은 봄부터 가을 까지 낚시와 등산을 즐기시고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겨울을 보내신다고 하셨다. 정말 대단한 어르신들이시다. 작년에는 두분이 함게 지리산 종주도 다녀오셨다고 하셨다.
잔이 비어있는 할아버지들께 막걸리 한잔씩을 권해드리니 답레로 아예 막걸리 한병을 시켜주셨다. 새로 손님들이 들어와서 자리가 모자르자 이 어르신들은 자리를 비켜 주시며 할머니집을 유쾌하게 만들어 놓곤 퇴장하셨다.
내가 할머니에게 막걸리 한잔을 따라 드리며 20년전에 몇번 왔었던 사람이라고 하자 할머니가 무척 반가워 하셨다. 할머니는 그간의 세상풍파를 헤치고 살아오신 이야기를 하고 또 하셨다. 우리 막걸리병에 술이 떨어지자 할머니는 막걸리 한병을 그냥 내주셨다.
우리가 장수막걸리 다섯병과 삶은돼지고기 한접시를 먹고 낸 돈은 겨우 10,000원뿐이었다. 물론 막걸리 다섯병중 두병은 멋장이 할아버지와 보령댁 할머니가 각각 한병씩 주신거라 계산에서 빠진거다. ‘혜화동 할머니집’은 이런 집이다.
[6개월 전...]
지난 5월16일(일요일) ‘혜화동 할머니집’에서 파찌아빠가 머문 시간은 정확히 2시간 23분이다. 그 사이에 할머니집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었을까? 정리해 보겠다.
1. ‘혜화동 할머니집’에 들어서니 파찌아빠가 개시 손님 이다. 할머니가 막걸리와 김치를 내왔다. 2.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 한분이 잠시 다리를 쉬러 오셨다가 무료해 하시는 할머니에게 막걸리 한잔 하시라며 2천원을 내놓고 가셨다. 2. 보령댁 할머니가 막걸리를 한통 더 가지고 오셔선 파찌아빠 앞에 앉으셨다. 3.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8개월 후면 제대할 막네손주 얘기부터 세상 살아가는 얘기까지... 4. 골수단골 할머니 한분이 만취한 체 오셔서 할머니에게 택시비 2천원만 꿔 달라고 통사정을 하셨다.(밖에서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5. 파찌아빠가 2천원을 대신 내드렸다.
6. 시간이 되자 슬슬 골수단골(대부분 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분위기는 노가다)들이 모여 들었다. 7. 여러 사람이 추임새를 넣자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셨다. 8. 파찌아빠도 한 곡 불렀다. 괜히 불렀다. 분위기 다운됐다. 9. 돌아가면서 노래를 한 곡씩 뽑았다.
10. 긴 말총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묶은 쉰쯤 돼 보이는 골수단골이 들어왔다. “술 마시러 왔으면 술값(2천원)은 가지고 다녀야지...염치 없게...또 얻어 먹을려고 그래...”공짜 술을 얻어 마시러 왔다고 할머니가 구박을 하자 주머니에 1,700원을 꺼내 놓았다. 11. 단골 한명이 호기를 부렸다. “할머니, 테이블마다 막걸리 한통씩 돌리세요...” 8천원이면 누구라도 호기를 부릴 수 있다. 12. 보령댁할머니가 안주거리를 하라며 마늘쫑볶음을 꺼내 놓으셨다. 13. 할머니집은 삶의 무게에 눌린 사람들의 쉼터이다.
14. 파찌아빠는 막걸리 4통과 계란말이 한접시를 먹었다.(막걸리와 게란말이는 각각 2천원이다.) 15. 할머니가 4천원만 내란다. 16. 파찌아빠의 계산으론 막걸리 4통+게란말이= 1만원인데... 17. 할머니의 계산은 이랬다. 16항의 1만원-(대신 내준 택시비 2천원+할머니가 가져다 놓은 막걸리 1통+테이블 마다 한통씩 돌린 막걸리 1통)=4천원이다. 18. 6천원을 드렸는지 1만원을 드렸는지 기억이 안 난다. 분명 4천원은 아니다.
여기까지가 6개월 전 ‘헤화동 할머니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헤화동 할머니집’은 천상 대폿집이었다.
========================== ! 잠깐정보 : 혜화동 할머니집 ========================== 1. 위치 : 혜화동 우체국 근처. 문에 `선술집`, `왕대포`라고 씌여 있슴.
2. 메뉴 : 삶은돼지고기, 계란말이, 오징어데침, 라면 등을 2천원~5천원에 먹을 수 있다. 안주를 따로 안시켜도 된다.장수막걸리 750ml 1병은 2,000원
3. 총평 : 그냥 이런 집도 있다는 것만 알았으면 좋겠다.괜히 가봐야 실망스럽기만 한다. 파찌아빠가 데리고 갔던 이들 대부분이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파찌아빠에겐 얹나 즐거운 대폿집이다.
4. 파찌아빠 따라하기 : ‘혜화동 할머니집’을 제대로 느껴 보겠다면 반드시 혼자 찾아가라. 그래야 겉돌지 않고 ‘할머니집’에 자연스레 섞일 수 있다. 괜히 여러명이 몰려 가 봐야 앉을 자리도 없다. 혼자라면 아무 자리라도 합석해서 앉으면 된다. 어차피 잠시 후면 그들과 어울리게 되 있다.
<파찌아빠>
& 덧 붙이는 말 : 꼭 혼자 찾아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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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yfriday.joins.com/taste/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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