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놀이공원에 가는 것은 후회하기 위해서랍니다.
다시는 가지 말자고 결심을 하기 위해서이지요.
전날 마신 소주 2병의 취기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나는 놀토를 맞이하여 우리 가족을 이끌고 에버랜드로
향했답니다.
큰 딸은 에버랜드를 어렸을 때 두 번이나 데려 갔는데 막내 딸은 한번도 데려 가지 않았는데 어찌 그럴
수 있냐는 것이 아내의 에버랜드행을 주장한 이유였습니다.
아침 식사도 딸들이 좋아하는 던킹 도너츠와 우유였습니다.
나는 컵라면을 먹고 싶었지만, 국물도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혈당량이 현저히 떨어진 터라 허기를 어쩌지 못하고 빡빡한 도너츠를 입가에 파우다를 묻혀 가며 비굴하
게 먹었지요.
세상을 편리하게 해석하는 습성 때문에 차가 하나도 막히지 않을 걸로 예상하고 아침 8시 남짓해서 나왔
는데, 먹이를 찾아가는 개미떼처럼 도로는 행복을 찾아가는 차량들로 가득했습니다.
도로의 지체와 정체는 기다림의 서곡이었습니다.
도로가 막히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네비게이션이 일러주는 경부 고
속도로 방향을 무시하고 중부 고속도를 거쳐 영동 고속도로를 타면 길이 막혀 고통스러워하는 차량들을
유쾌하게 바라보면서 길이 뻥 뚤린 반대 방향으로 신나게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하자
면 크게 돌아가는 디귿자 노선을 선택했습니다.
헐~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강릉방향 고속도로는 예상외로 죽죽 빠지고 있었고 나는 세상에 배신을 당
한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멀쩡한 길 나두고 막히는 길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운전 습관인 걸 아는 아내가 그 나마 커피 한잔을 타주
며 위로를 해주더군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눈빛과 함께 말입니다.
에버랜드 입구에서 주차장까지 가는데만 거의 1시간 쯤 걸린 것 같습니다.
다행히 주변의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삼원색의 멋진 풍광으로 펼쳐져 있어서 세미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우리들은 느긋하게 단풍을 감상하였습니다.
에버랜드는 가족의 단란함과 행복을 에버하게 보장해주는 랜드인 것처럼 각지에서 모여든 인파들로 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롤러 코스트와 바이킹을 타면서 내내 똥구멍은 쫄밋쫄밋, 발가락끝은 쭈빗쭈빗, 가슴은 미시미식, 머리통
은 아득 해지더니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내 모습은 후줄근하게 죽 늘어지고 말았습니다. 왁작 복작한 거
리를 걸으면서 울렁거림의 여운이 파도처럼 계속 밀려와 나의 발걸음은 허청거렸습니다.
1시간 하염없이 기다려 3분 짜릿함을 맛 본다는 것이 나로서는 도통 접수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어쩌겠습
니까...큰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수류탄을 끌어 안은 강재구 소령의 비장함으로 같이 동행해 주어야 했
지요.
그런데 ‘떠블 록 스핀’이라는 놀이기구 앞에서는 다리가 죽 풀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을 통닭구이처럼 공중에 매 달아 놓은 채 두 세바퀴를 앞으로 돌렸다 뒤로 돌렸다 하는 것이 아니겠
습니까... 고문처럼 보이는 저게 어떻게 기쁨일 수 있을까 나는 의아했는데 딸 아이는 설레는 눈빛으로 바
라보더군요.
70분을 기다려 우리 차레가 되었지만 나는 그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어제 마신 술과 좀 전에 탄 롤러 코스트와 바이킹으로 인하여 나의 내장은 아직도 반란을 일으키고 있고
세반고리관과 시상하부는 교란상태에 빠져 있는데 도저히 공중에 매달려 더블 록 스핀을 할 수는 없었답
니다.
비겁하게 나는 큰 딸 해랑이를 배반하며 한 마디 했지요. “혼자 타라!”
더블 록 스핀을 타고 내려 온 해랑이의 열린 동공을 확인하고는 좀 전의 나의 선택이 얼마나 슬기로웠는
지 나는 전율했습니다.
점심 때 국물 있는 음식을 먹으며 해장을 하고 싶었는데 음식점 마다 웬 줄이 왜 그리 긴지 결국 우리 가
족 햄버거와 콜라로 점심을 해결했지요.
황태국이 미치도록 먹고 싶었지만 1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버랜드에 줄을 서기 위해 온 것처럼 어딜 가든지 줄의 연속이었습니다.
쥬랜드에 가서도 줄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야수성을 거세당한 호랑이가 좁은 울타리에서 똑 같은 워킹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웬지 슬펐습니다.
생태적 관점에서 동물원은 교육의 장이 아니라 반교육의 장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막내 딸 예랑이는 지금은 신기한 듯이 보고 있지만 언젠가 세월이 흘러 철이 들면 동물에게 감정이입을
할 날도 오겠지요....서투르게 구호 한 번 외칩니다.
“동물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그나마 가족 전체가 같이 배를 타고 급류를 타고 내려가는 무슨 어드벤쳐인가 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었
습니다. 벽에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회전도 하고 물살도 튀어 오르며 하는 것이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처럼 연출되더군요...
에버랜드를 나와 주차장까지 가는 셔틀 버스를 타는데에 30분은 기다렸고 주차장을 나와 영동고속도
로에 진입하는 데에도 또 30분은 걸린 듯 합니다.
그래두 아이들은 행복하게 곤히 잠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아빠들의 아이들 행복 프로젝트는 그렇게 혼곤하게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첫댓글 정말 너무 멋지고 자상한 아빠다. 와 너의 부성의 끝은 어디냐? 늘 반성하고 살게 만드는 구나. 그런데 운전 그건 아닌거 알쥐? 항상 막히는 길을 택하는 너의 선택에 위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