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에 왔다. 77번 국도를 타고... 고향이 창원 (진해, 마산) 고성 통영 사천(삼천포) 남해인 친구들은 77번 국도를 알 수도 있겠다.
얼마 전 삼천포 시내 운전 중 77번 국도 표지판을 발견했다. 오래 전부터 있었겠지만 그날 처음 내 눈에 들어온 거다. 삼천포에 77번 국도? 3번 국도가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77번? 참 낯선 숫자였다.
검색해보니 지정된 지가 그리 오래된 도로는 아니다. 부산에서 남해안 서해안 인천 서울 파주 문산까지 연결하는 우리나라 최장의 국도라 한다. 동해안에 7번 국도가 있다면 서남해안에는 77번 국도가 있는 거다.
부산 삼천포 간 해안도로를 수백번 다녔는데 77번이 왜 보이지 않았을까? 2번 14번 33번 국도나 1010 1016 지방도 표지까지도 눈에 들어왔는데 말이다.
아는 것 낯익은 것은 잘 보이지만 모르는 것 낯선 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2001년에 지정되었으니 내 기억에는 77번 국도가 당연 없는 거다.
어릴 때의 기억만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온 것이 어디 77번 국도 하나뿐일까? 생각해 보니 세상 바뀐 줄 모르고 내 생각이나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으로 잘난 체 하고 또 고집 피운 것이 하나둘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국도라지만 넓은 길은 아니다. 정부에서 선만 그어놓고는 점차 보완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국도와 함께 쓰는(공유, 중첩) 도로는 4차선으로 되어 있는 구간도 있지만 대부분 2차선이고 군데군데 선형 개선 작업도 하고 있다. 계획만 되어있고 실제 도로(다리)가 없는 곳도 있다.
부산 삼천포 간을 오갈 때 고속도로가 아닌 고성 하이면 삼산면 동해면 쪽으로 많이 다녔다.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가다 어느 구비를 돌면 바다가 활짝 펼쳐지는 곳이 많다. 주차하고 준비해간 김밥 한 줄 컵라면 보온병에 담긴 커피 한 잔은 그곳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이고 길이 주는 덤이다.
그냥 지방도인줄 알았는데 77번 국도라니... 이 길 참 아름다운 길이다. 과도한 선형 작업이나 확포장으로 옛 멋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 부산서 지리산 갈 경우 남해고속도로를 피해 의령 대의 생비량 단성 쪽으로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 길 참 좋았는데 확장되고 곧은 길이 되니 시간이 절약되고 안전한 점이 좋았지만 그 전에 보던 풍치가 사라져 아쉬워 했던 적이 있었다.
왜 남해고속도로를 피해 다녔냐고? 그 당시 편도 1차선 고속도로로 툭하면 밀리기 일쑤였다. 수도권 국도보다 못한 도로를 고속도로라 했다. 통행료도 징수하고... 확장되었다지만 창원을 우회하는 곳은 지금도 수시로 밀린다.
77번 국도가 잘 정비되어 부산 사천(삼천포) 구간 천혜의 절경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놀러 왔으면 좋겠다. 나만 보고 즐기기엔 아까운 길이다. 3번국도와 공유하는 교량이지만 사천에서 남해로 넘어가는 창선삼천포대교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고 1위에 뽑힌 적도 있다.
며칠 후 부산 갈 때는 삼천포 용궁시장 활어회 한 접시에 초장과 고추냉이 상추 깻잎을 준비하고 떠날까?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길가 정자에 펼쳐놓고... 상상만 해도 즐겁다. 소주 한 잔이 아쉽기는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