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대바위 너머 동해에서 붉게 떠올라 서산으로 기우는 햇길을 따르기 위해 금요일 늦은 오후, 동해로 달렸다. 해가 떠서 지는 거리인지라 참 멀다. 저녁 늦게 도착해 ‘담다’라는 한정식 밥집에서 강원도 음식 맛을 입안에 가득 들였다. 2일간 머무를 호텔은 ‘동해현진관광호텔’로, 3성 호텔로 자랑할 만큼 불편함은 없었다. 객실에서 볼 수 있는 동해바다 뷰가 너무 좋았고, 다음 날 새벽 해돋이도 볼 수 있었다.
동해 여행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토요일 13시에 있는 은사님의 장녀 결혼식 참여였다. 선남선녀의 예식이었는데, 서산사람과 동해사람의 결혼, 흔치 않은 인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첫 여행지로 호텔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천곡황금박쥐동굴을 방문했다. 아파트 공사 도중 발견했다고 하는데, 도심 속에 이런 멋진 동굴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안전 헬멧을 쓰고, 20분 정도 동굴 안을 구경할 수 있었다. 종유석, 석순을 비롯해 수만 년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방문지는 묵호항 뒷 편 논골담길이다. 아들은 부산 흰여울마을과 비슷한 분위기라고 했지만, 나는 흰여울마을을 가본 적 없기에 통영의 동피랑 벽화 마을이 생각났다. 예전 포구와 작은 항구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언덕배기 삶의 터전이 너무 흡사했다. 논골담길도 여러 코스가 있었는데, 논골담 3길을 택했다. 가파른 언덕 골목을 따라 지금도 사람이 사는 집, 반쯤 무너져가는 집, 카페 골목, 자연풍에 매달린 생선과, 문득 마주치는 고양이들, 그리고 담장을 따라 그려진 여러 그림이 인상 깊었다. 꼭대기에 다다르니 묵호항 등대가 있었고, 등대 주변으로는 작은 관광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도째비골과 해랑전망대 등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마음이 펑 하고 열리는 아름다운 풍경이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세 번째 방문지는 묵호항에서 멀지 않은 곳의 망상해수욕장이다. 드넓은 모래밭과, 바다는 여름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볼 만한 곳이며, 해수욕장 이름이 너무 어울린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돌아오는 길에는 호텔 주변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중앙로라고 불리는 거리를 내려다 보았다. 사거리 한 모퉁이에 복권판매점이 있었는데,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자석처럼 꾸준히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 자기력이 너무 커서 나도 가서 끌려갔지만, 이번에도 “낙첨” 결과를 받았다.
마지막 날은 아침 일찍 호텔을 나와서 촛대바위에 갔다. 해가 뜨는 시간은 이미 지났지만, 마음속으로 저 높이 솟은 바위 위로 떠오르는 해를 그리며, 심장이 붉게 물들었다. 여행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더 있었는데, 요즘 기차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래서 일요일날 출발하는 동해산타열차를 타기로 했다. 경북 봉화의 분천산타마을을 가는 일정인데, 갈 때는 동대구행 무궁화호 일반 열차를 탔고, 돌아올 때는 동해산타열차를 예약할 수 있었다.오십천을 따라 태백산맥을 오르는 기차 창밖으로 친구의 고향인 도계가 있어 추억에 잠겼다. 도계 어느 예식장에서 난 친구 결혼식 사회를 본 적 있다. 도계에서 통리 방면으로 올라가는 철길은 예전에는 스위치백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루프형이어서 올라간다는 느낌도 없이 그저 어두운 긴 터널이다. 관광열차는 그냥 스위치백 방식으로 올라도 좋을 듯한데, 너무 편한 것만 찾다보니, 낭만과 추억도, 역사도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동백산역을 거쳐 승부역을 지나 분천역에 다다랐다. 1월 중순이 지났지만, 산타마을 느낌이 많이 남아있었다. 먼저 도착한 협곡 열차 관광객들로 작은 동네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전망대와 주변은 아직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미래의 산타 마을이 기대되었다. 돌아올 때는 기대를 엄청하고 동해산타열차를 탔는데, 동해산타열차라고 별 특이한 것은 없었다. 열차 4량 중, 내가 탄 1호차는 그냥 일반열차와 같았다. 가운데 2량의 구조가 좀 다르다는데, 가보질 못했다. 오히려, 분천역에 정차해있던 철암과 분천을 오가는 협곡 열차가 더 멋져 보여서 ‘다음에는 저걸 타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저녁 무렵 동해역에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아들이 먹고 싶어 했던 동해막국수집에서 저녁을 먹고, 해가 남긴 이동 경로를 따라 서산으로 돌아왔다. 서산의 바다와는 색다른 느낌이 있는 동해 바다가 너무 좋고, 둘러보고 싶은 곳도 많기에 동해라는 도시에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영동고속도로가 있어서 좋지만, 영월-삼척 고속도로가 빨리 개통되면 좀 더 자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랜만의 힐링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