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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고생이 삶의 원동력
방화동 맥가이버 진정군 (75)어르신 34~37P
거의 단독주택들이 많았던 시절, 동네 골목길에서 쉽게 만나던 전파사·철물점..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이제 그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물건이 귀하던 어린 시절 고장 나서 못 쓰게 된 물건들에게 된 물건들에게 똑딱 다시 생명력을 찾아주던 전파사 아저씨, 아저씨의 그 재주 많은 손이 너무도 신기하기만 했다. 방화2동에도 야문 손재주로 유명한 이름 하여 방화동 맥가이버, 올해 75세의 진정군 어르신이 그 주인공이다. 20년 전 강서구민이 된 어르신은 15년째 ‘그린전기’ (방화동)라는 전파사를 운영하고 있다. 예전의 전파상과는 달리 넓고 깨끗한 전파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곳곳에 걸린 표창과 감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초등 중퇴에서 대학원까지 도전하는 삶
일본에서 태어난 진 어르신은 해방이 되자 한국으로 건너왔다. 10살 어린 나이에 벌어진 6·25 전쟁은 어르신을 하루아침에 고아로 만들었고, 이때부터 어리신의 인생 역경이 시작되었다.
“초등 중퇴의 학력에 호적도 없으니 정말 힘들었지. 남들은 가기 싫다는 군대에 가려고 무진 애를 썼어. 군에 들어가니 얼마나 좋은지 먹을 걱정도 없고 호적도 생기고”
하지만 제대 날은 찾아왔고 다시 먹고 살기 위해 직장을 구하러 뛰어다녔다. 초등 중퇴의 학력으로는 갈 곳이 없던 어르신 궁리 끌에 ‘모범사원이 되겠습니다’라는 혈서를 제출하여 어렵게 입사한다. 사장님께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던 어르신은 버려지는 산업폐기물을 선별처리 하여 그 수입금으로 통근버스를 구입하는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27년간 최선을 다해 성실히 일했지만 높은 학력의 벽은 넘을 수 없었고, 퇴직 당시 어르신 직책은 대리였다.
못 배운 설음이 너무도 컸던 어르신은 아이들만큼은 잘 가르치겠다는 의지로 퇴직 후 무작정 서울로 이사를 한다. 강남 8학군으로,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시작하게 된다. 이어 중학교, 고등학교, 방송대학교를 졸업 대학원까지 진학한다.
56세에 방송대학에 진학한 어르신은 2000년 10년 만에 학사학위를 받아 졸업한다. 초등 중퇴의 실력으로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배움에 대한 어리신의 열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려운 이웃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어르신은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에 진학하게 된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은 어려운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사회복지사 자격까지 얻는 기쁨의 시간을 선물한다.
“면접 보던 교수님들이 ‘연세가 너무 높으셔서’를 반복하도라고. 그런데 면접을 안내하던 아기씨가 쫓아 나와 혹시 사회상장이나 감사장 등을 있으면 입학원서에 함께 다 첨부하라는 거야 그 아가씨대로 다 첨부했지” 어르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못 배운 아이들 을 위한 학교설립을 위해 16년간 모아놓았던 폐과수원이 정부의 산업과학단지에 수용으로 헐값으로 넘어가면서 학교설립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그때의 허망함 은 말로는 다할 수가 없었다. 그 포상금으로 마련한 것이 지금의 그린전기 건물. 강서구민 된 진 어르신은 새로운 삶의 터전인 그린전파사에서 어려운 사람들의 고장 난 물건들은 고쳐주고 마음도 고쳐주며 마음도 나누었다. 그렇게 방화동 주민으로 살다보니 동네사람들이 어르신을 ‘방화동 맥가이버’라 불렸다. 20년 방화동 주민으로 산 방화동 ‘맥가이버‘는 많은 일들을 이뤄냈다. 대학과 대학원 졸업 사회복지사 .그리고 세계기록 보유자 기네스북 등 각종 표창수상 등 인증경력...
10원 동전의 힘. 아이들 돕기 태극기도 만들어
티끌모아 태산 이루고,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통나무 없다. 옛말이 있듯이 어린 시절 가난의 고통을 잘 아는 어르신은 쓸모없게 여기는 10원은 10원을 모아 어려운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을 시작한다. 그 계기를 열어준 건 2002년 월드컵 한국 개최소식이었단다.
1995년 어느 날.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 소식이 계기가 되어 시작한 10원짜리 도언 모으기는 월드컵 개최 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2000여 일간 계속되었다 모아진 2천만 원은 어린이 재단에 기부하여 어려운 어린이들의 장학금으로 전달되었다.
그 후로도 계속 10원 동전을 모으던 어르신은 10원 동전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가로 6m-세로 4m의 대형 동전 태극기를 만든 어르신은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된다. 2008년 4월 16일 공항고등학교 체육관에 전시된 대형 동전 태극기는 만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0원짜리 동전 11만개 태극기 벽화 가로 6m 세로 4m 24㎡ 세계최대 기록 공식 획득한 동전벽화 2008.4.16.
“이 가게에서 태극기 만들기를 시작했는데 여러 번 실패도 하고 쉽지 않았어. 10원 동전을 하나하나 붙여서 만든 태극기를 본 사람들의 그 표정이 지금도 생생해”
처음에는 어르신의 10원 모으기에 부정적인 사람도 많았다. 하찮은 10원도 정성껏 모으면 의미 있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어르신의 뜻이 전해지자 격려의 글이 이어졌다. 가게에 진열된 어르신의 각종 상장과 감사패는 어르신의 선행으로 받은(대통령, 국무총리, 부총리, 한은총재, 행정자치장관, 서울시장, 충북도지사, 표창 인증 등)것 들이다. 이렇게 10원 모으기로 어르신의 기부는 6천 7백만 원에 이른다.
어떤 상황에도 꿈꾸고 도전하여 성취하는 진 어르신의 삶은 여러 가지 왕성한 활동에서 엿볼 수 있다. 서울시와 행정자치부 모니터로 활동하고 있는 어르신은 최우수 모니터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어르신이 모니터한 일 중에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어르신의 아이디어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 대형 마트 의 쇼핑백 대신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게 한 것 역시 어르신의 아이디어, 쉼 없는 어르신의 왕성한 활동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실버넷뉴스 시민사회부기자로도 활동하신다.
“이곳근처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살다보니 외국인 근로자들도 많이 살아. 우리가게에 들렸다가 자기나라 동전을 보고 반가워하더라고“
다른 전파사와 달리 어르신의 가게 한쪽에는 세계 각국의 동전이 전시되어 있다. 이 동전들은 어르신이 새로운 도전에 쓰기위해서 모아놓은 것으로. 반기문 UN사무총장 재임 기간 내에 세계 각국의 동전으로 UN기를 만들어 UN에 기증했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동전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아서 아쉽게도 꿈을 이루지 목할 것 같단다. 지금은 가게 한쪽에 꿈을 이루지 못한 세계 각국의 동전들이 가게를 찾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향수를 달해주고 있다. 하지만 언제가 세게 각국의 동전이 어리신이 UN기로 재탄생에 UN에 기증되는 날이 오리라 기대해 본다. 어르신이 이뤄냈던 많은 일들처럼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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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강서마을신문 이희경기자 (마을공동체 자치안전과 공동체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