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촌 류재호
선인들과 함께하는 금강산 기행
1. 금강산 여름, 2. 표훈사, 3. 겨울풍경.
금강산 동유기(東遊記) 를 6회에 걸쳐 연재 하겠습니다. < 이곡지음, 정우영 엮음>
이곡(李穀, 1298~1351)의 금강산 기행. <제 1편>
이곡은 약 6백50년전 금강산을 유람했다.
이곡(李穀)은 고려말의 학자로 호는 가정(稼亭)이며,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아버지다.
원나라 제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라 중국의 문사들과 교류한 뒤, 귀국하여 정당문학
(政堂文學)의 봉작(封爵)을 받았다.
문장에 능했으며, 가전체 작품 <죽부인전>이 <동문선 東文選>에 전하고 그의 문집인
(가정집,稼亭集) 제5권에 이 글이 실려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며, 백이정, 우탁, 정몽주와 함께 경학의 대가로 꼽힌다.
현전하는 금강산 기행문으로써 가장 오래된 이 글은 고려 1349년 (충정왕1년) 8월 14일부터
9월 21일까지 금강산을 중심으로 하는 관동지방의 명승지들을 유람하며 쓰여졌다.
8월 14일 송도를 출발했지만 실제 금강산 유람 기간은 8월 22일부터 9월 4일까지 13일 동안이다.
국도, 총석정의 사선봉, 삼일포의 사선정, 성류굴 묘사 부분은 아주 세세할 뿐만 아니라 그 절경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읽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경관에 절로 가슴이 뛴다.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어 1349년(至正 9년) 기축(己丑) 가을 14일에 송도를 출발했다.
21일 천마령을 넘어 산 아래 장양현(長陽縣)에서 잤는데, 산과의 거리가 삼십여 리이다.
이튼날 일찍 아침밥을 먹고 산에 오르려고 하는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사방이 어둡다.
'풍악(楓嶽)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구름과 안개 때문에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일이 빈번합니다.'
하고 고을 사람들이 일러주자, 동행들은 모두 걱정하는 빛을 감추지 못하고 마음 속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산을 오 리쯤 앞에 두었을 무렵, 어두운 구름이 차츰 엷어지고 햇빛이 조금씩 비치더니, 절재(拜岾)
에 오르니까 하늘이 개고 날씨가 맑아 산의 뚜렷함이 칼로 긁어낸 듯하였다.
마치 일만이천의 봉우리를 하나 하나 셀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산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재를
지나쳐야 하는데, 재를 오르려면 산이 보이고, 산을 보면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므로 이 재를
'절재' 라 부른다고 했다.
옛날에 여기는 집이 없었으므로, 돌을 쌓아 대(臺)를 만들어 쉴 곳을 마련했다.
1347년에 지금 자정원사(資正院使) 강금강(姜金剛)이 원나라 순제의 명을 받들어 큰 종을 만들고
종각을 지어 재 위에 달았다.
또 그 곁에다 중의 집을 지어 종 치는 일을 맡도록했다.
우뚝한 금벽의 빛이 설산을 비치니, 이것 역시 산어귀의 장관이다.
한낮이 못되어 표훈사에 이르러 잠깐 쉬었다. 한 동자승의 길 안내로 산을 오르는데, 그가 말했다.
"동쪽에는 보덕 관음굴이 있는데 사람들이 수희(隨喜)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곳으로 가는데 길이
깊고 험합니다. 그리고 서북쪽에 있는 정양암(正陽庵)은 태조가 창건한 절로 법기보살(法起普薩)
의 존상(尊像)을 모신 곳으로 높고 가파르긴 하지만 비교적 가까워 올라감직합니다.
또 이 암자에 오르면 풍악의 여러 봉우리들을 한눈에 다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관음보살이야 어느 곳엔들 안 계시랴만 내가 여기 온 것은 이 산의 빼어난 형상을 보고자 함인데,
어찌 그 암자에 먼저 가지 않겠는가." 그래서 붙들고 기어서 암자에 올라가니, 과연 그 말처럼 마음에
꼭 들었다. 보덕굴(普德窟)을 가려 했지만 날이 벌써 저물어가고, 산중에서 머물수 없을 것 같아 신림,
삼불 등 여러 암자를 지나 시내를 따라 내려왔다.
날이 저물어서야 장안사(長安寺)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 잤다.
이튼날에는 일찍 산을 나왔다. 철원에서 산까지가 삼백 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오백여 리이나 강이 계속
흐르고 고개가 첩첩 싸여 깊고 험절해서 이 산에 드나드는 것은 역시 버거운 일이었다.
일찍이 '이 산의 이름은 불경에 나타나 있고 천하에 널리 알려져, 멀리 떨어져 있는 건축(乾竺,인도) 사람도
때로 와서 구경하는 이가 있다.'고 했다. 우리 동녘 나라 사람 가운데 서촉(西蜀)의 아미산(峨眉山)과
남월(南越)의 보타산(補陀山)을 구경한 자들이 '들은 것만 못하더라' 라고 하곤 하는데, 내가 비록 아미산
과 보타산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 금강산은 정말 들은 것보다 훨씬 낫다.
화가의 재주나 시인의 기교로도 도저히 이를 비슷하게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2편 계속>
첫댓글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 금강산을 가게 될 날이 빨리 좀 왔으면 졸겠구먼유
2006년 금강산 다녀왔는데 비로봉 구룡폭포 등 설악산과 비슷한듯
더 기억에 남는건 황폐화된 북한의 실상에 애잔한 마음
우마가 다니고 신작로는 흙먼지 산천은 민둥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