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무렵에 뉴욕 타임스와 인도 과학자들은 1998년 5월 파키스탄이 여러 발의 핵폭탄 실험을 할 때 북한에서 만든 플루토늄 핵폭탄을 공동으로 실험했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월간조선 2004년 6월호는 이와 관련한 기사를 실었다(아래 全文). 월간조선 기자가 인터뷰한 정보 소식통은 이렇게 말했다.
―질문: 뉴욕 타임스는 「1998년 5월 파키스탄이 자신들의 우라늄 농축 核폭탄을 실험할 때 플루토늄 核폭탄도 실험한 게 확인됐다. 북한 플루토늄 폭탄을 파키스탄이 공동으로 실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파키스탄이 국가적 기밀을 이렇게 북한과 공유했겠나.
『파키스탄이 얼마나 가난한지는 가 봐야 안다. 「파키스탄은 돈을 주면 核탄두도 팔려고 들 것이다」라는 게 인도 核물리학자들의 얘기다. 칸 연구소가 위치한 도시는 「카후타」이다. 이곳에 많은 북한 과학자들이 거주했다. 파키스탄은 核 투발 수단인 미사일 개발을 전적으로 북한에 의존했다. 파키스탄이 1998년 4월 발사에 성공한 가우리 미사일은 북한의 노동 미사일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다. 파키스탄은 미사일 기술 이전의 代價로 核실험을 같이 했고, 核실험 데이터를 제공한 것이다』
필자가 최근 제3국에서 만난 고위 탈북자도 똑 같은 내용을 전해주었다. 북한이 플루토늄 폭탄을 파키스탄으로 갖고 나가서 실험했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은 북한으로부터 노동 미사일 개발기술을 배워서 핵탄두 탑재용 미사일을 만들 수 있었고, 그 代價로 북한에 우라늄 농축기술을 판매하는 한편 플루토늄彈 실험을 파키스탄 땅에서 해주었다는 것이다. 미국 CIA도 이런 사실을 확인했으나 인정도 공개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측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만든 핵폭탄은 터질지 안터질지 모르는 핵장치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인도, 미국, 북한측 정보가 우연하게 일치된 점은, 파키스탄과 북한 사이의 핵무기-미사일 개발 상호협조 구조의 심각성이다. 파키스탄은 1974년에 이미 핵실험을 했던 인도에 대항하여 핵폭탄을 만들고, 핵운반용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국력을 쏟았고, 북한은 미사일 기술은 파키스탄에 수출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비밀 핵실험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호 의존성에 의해서 북한이 파키스탄 땅에서 핵무기 실험을 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이스라엘도 南阿共과 공동으로 핵무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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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취재] 核 보유국 北韓(월간조선 2004년 6월호)
칸 박사의 새로운 증언 내용 입수
『核실험을 파키스탄에서 함께 했다』
『북한에서 지름 24인치의 노동 미사일용 核탄두를 보았다』
『북한에 우라늄 원심분리 장치인 P-1, P-2 완제품 10개씩과 설계도면을 제공했다』
『칸 박사가 북한에서 본 것은 의심의 여지 없는 핵무기다. 칸 박사의 증언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노동 미사일에 탑재할 정도로 소형화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추정된다』(美 정보 소식통)
[3각 반응]
딕 체니 :『북한의 核보유를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속도감 있게 核문제 해결을 추진하자』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 :『「뉴클리어 디바이스」가 어느 수준의 핵무기인지, 미사일에 탑재할 정도로 소형화됐는지 좀더 지켜보자』
金正日 :『해방군 사령관으로 서울에 가겠다』
金演光 月刊朝鮮 편집장 (yeonkwang@chosun.com)
『칸 박사가 본 것은 3개의 핵무기다』
북한 核탄두를 목격했던 파키스탄 核개발 지휘자 압둘 카디르 칸 박사.
核 보유국 북한이 현실로 다가왔다.
파키스탄 정부의 칸 박사 신문 조서 내용에 정통한 미국 정보 소식통은 최근 기자와의 접촉에서 『북한이 이미 다수의 核무기를 보유했고, 核탄두를 소형화해서 노동 미사일에 탑재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이 칸 박사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북한에서 본 3개의 「뉴클리어 디바이스」는 오해의 여지가 없는 핵무기』라며 『칸 박사는 파키스탄 당국의 조사과정에서 「북한에서 직경 24인치의 노동 미사일 탄두를 보았다」고 증언했다』고 전했다.
칸 박사는 또한 『우라늄 농축의 핵심 장비인 P-1, P-2를 각각 완제품으로 10개씩 북한에 공급했고, 설계도면을 제공했다』고 파키스탄 당국에 증언했다. 북한은 칸박사가 제공한 완제품과 설계도를 토대로, 독일 등 14개 국가에서 부품을 들여와 1000여 개의 우라늄 농축 장비를 완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칸 박사는 우라늄 농축의 노하우를 전달하기 위해 1997년 이후 13~15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核개발 과정에 정통한 미국 정보 소식통은 『칸 박사가 세 개의 북한 核무기를 본 것과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24인치 노동 미사일 탄두를 목격했다』며 『核 전문가들은 북한이 노동 미사일에 탑재시킬 만큼 핵무기를 소형화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측 정보소식통이 제공한 정보를 종합하면, 「북한이 핵무기 1~2개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다」, 「핵무기를 소형화하는 데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는 韓美 정보당국의 추측은 유효성을 상실했다.
파키스탄 「核개발의 아버지」 칸이 1999년 북한에서 보았다는 3개의 「뉴클리어 디바이스(nuclear Device)」는 무엇일까? 이 사실을 지난 4월13일자에 처음 보도한 뉴욕 타임스의 데이비드 생거 기자는 「칸 박사는 금속 전공이기 때문에 그가 실제 核폭탄과 모형 폭탄을 구분할 전문성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뉴클리어 디바이스가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뉴클리어 디바이스는 韓美 정보당국이 추정해 온 「조악한 형태의 핵폭탄」 혹은 폭발하더라도 완전 연소가 힘든 「더러운 폭탄」일까?
인도와 파키스탄의 核문제에 정통한 미국 측 정보 소식통은 『칸 박사가 본 3개의 뉴클리어 디바이스는 核폭탄』이라고 단언했다.
『核폭탄을 방 한복판에 갖다 놓으면 미국 과학자는 「뉴클리어 웨폰」이라고 말할 것이고, 파키스탄 과학자들은 「뉴클리어 디바이스」라고 부를 것이다. 파키스탄은 영국식 영어를 쓴다. 핵무기를 지칭할 때 「뉴클리어 디바이스」라는 표현을 쓴다. 파키스탄이 어떻게 核을 개발했는가를 밝힌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얻었는가(How we got it)」라는 책이 파키스탄에서 영어로 출간된 적이 있다. 책 뒤에 인덱스를 보면 「뉴클리어 디바이스」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온다. 칸 박사는 「북한은 3개의 核무기를 갖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북한-파키스탄 커넥션의 全貌
―「칸이 금속 전공이어서 核폭탄인지 식별할 능력이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파키스탄 「核개발의 아버지」라는 별명이 왜 붙었나. 인도 핵개발을 주도한 인도 IDSA(Institute for Defense Study and Analysis)의 소장 산타남 박사를 만났더니 칸 박사를 「국제 핵무기 제조회사의 CEO」라고 불렀다. 칸 박사가 1999년에 덜컥 한 번 북한을 방문한 게 아니다. 우리의 조사로는 칸 박사가 북한을 1997년 이후에만 13~15회 방문했다. 파키스탄은 북한의 미사일 기술을 들여와서 가우리 미사일로 개조하고, 북한에 우라늄 농축기술과 설계도를 전달했다. 칸은 그 과정에서 북한의 核시설을 돌아본 것이다』
―칸 박사는 왜 북한을 그렇게 자주 들락거렸나.
『칸 박사는 파키스탄 당국의 조사에서 「북한에 우라늄 농축장치인 P-1과 P-2 10개씩을 완제품으로 공급했고, 설계도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逆설계를 통해 우라늄 농축기 1000대 이상을 만들 었다. 칸 박사는 북한이 농축 우라늄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완전 제공했다. 그러나 농축기를 가동하는 노하우는 운용해 본 사람만이 전수할 수 있다. 원심분리기를 이용해서 99.9% 순도의 우라늄을 얻을 것이냐, 90.0% 순도의 우라늄을 얻을 것이냐에 따라 농축기를 직렬 또는 병렬로 조합해야 한다. 이게 아주 복잡한 작업이다. 그래서 직접 현장에 가서 기술지도를 하는 것이다』
―P-1과 P-2는 어떤 설비인가.
『원심분리 장치의 핵심 부품이다. P-1을 개량한 것이 P-2이다. 高강도 알미늄으로 만든 P-1은 길어서 생산성이 높다. 하지만 3년이 지나면 바꿔야 한다. 10만rpm으로 고속회전하기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한다. 머레이징 합금으로 만든 P-2는 길이가 짧아 수명이 2배 정도 길다』
―북한이 1000대 이상을 만들었다면, 재료와 부품을 어떻게 구입했나.
『14개국에서 사들였다. 미국 회사는 없고, 독일·스위스·일본·태국 등지의 기업들이 판매했다. 독일에서 高강도 알미늄 파이프를 사 가다가 독일 정부에 적발되기도 했다』
―북한이 칸 박사에게 보여 준 核탄두가 왜 하필 3개인가.
『미국이 사상 최초로 핵개발을 할 때 3개를 만들었다. 인도는 5개를 한꺼번에 만들었다. 북한은 이미 여러 개를 만들어 뒀고, 그중 세 개를 보여 준 것으로 추정한다』
―뉴욕 타임스는 「1998년 5월 파키스탄이 자신들의 우라늄 농축 核폭탄을 실험할 때 플루토늄 核폭탄도 실험한 게 확인됐다. 북한 플루토늄 폭탄을 파키스탄이 공동으로 실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파키스탄이 국가적 기밀을 이렇게 북한과 공유했겠나.
『파키스탄이 얼마나 가난한지는 가 봐야 안다. 「파키스탄은 돈을 주면 核탄두도 팔려고 들 것이다」라는 게 인도 核물리학자들의 얘기다. 칸 연구소가 위치한 도시는 「카후타」이다. 이곳에 많은 북한 과학자들이 거주했다. 파키스탄은 核 투발 수단인 미사일 개발을 전적으로 북한에 의존했다. 파키스탄이 1998년 4월 발사에 성공한 가우리 미사일은 북한의 노동 미사일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다. 파키스탄은 미사일 기술 이전의 代價로 核실험을 공유했고, 核실험 데이터를 제공한 것이다』
核실험 안 해도 90점짜리 核무기
―북한이 앞으로 核실험을 할 것으로 보나.
『북한은 파키스탄을 통해 자신들의 플루토늄 폭탄을 실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일단 파키스탄으로부터 플루토늄彈 核실험자료를 넘겨받았음은 분명하다. 원자폭탄은 1945년産 기술이다. 첫 폭탄이 만들어진 후 5년 만에 2000개의 설계가 나왔다. 인도 核개발 책임자 산타남 박사는 「북한이 실험을 하면 100점짜리 核이지만, 실험을 안 해도 90점짜리는 갖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제조한 핵무기를 미사일에 적재할 만큼 소형화하는 데 성공했는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칸 박사는 파키스탄 당국에 「북한에 갔을 때, 북한이 직경 24인치의 탄두를 보여줬다. 노동 미사일 탄두였다」고 증언했다. 노동 미사일 추진체의 직경이 50인치이니까, 24인치라면 노동 미사일의 탄두가 분명하다. 탄두에는 핵무기와 표적을 찾고 미사일의 방향을 잡아 주는 조정장치가 실린다』
―그게 핵탄두라는 말은 아니지 않나.
『북한이 가우리 미사일 제조기술을 제공했고, 미사일에 핵무기를 장착하는 기술까지 제공했을 것으로 본다. 여러 정황을 감안하면 북한은 노동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크기로 핵무기를 소형화한 데 성공한 것으로 核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 걸로 추정하나.
『다이너마이트 20kt 정도일 걸로 보인다. 이른바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히로시마급 핵폭탄이다』
―미국이 보유한 대륙 간 탄도탄의 위력과 비교하면 어떤가.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에는 200kt급 탄두 4개가 실린다. 거기에 모형 核탄두가 1개 실린다. 요격 가능성에 대비한 거다. 4개를 합치면 800kt이니까, 북한 핵폭탄의 40배 정도 위력이다. 수소탄은 대개 1기당 메가톤급 이상의 위력을 갖고 있다』
―북한 핵무기가 미국에 군사적 위협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아닌가.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테러집단에 파는 경우다. 그 다음이 核확산이다. 미얀마가 북한의 뒤를 이어 파키스탄에 접근한 흔적이 발견됐다. 북한이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사실이 확인된 이상, 미국의 발걸음은 빨라질 것이다』
―미국의 관측대로라면 북한은 이미 核보유국이 된 셈이다. 북한의 다음 수순은 무엇이 될 것으로 보나.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 核보유 선언을 했다. 북한은 아마 「우리는 다량의 핵폭탄을 가졌다. 미국의 동맹국을 공격하지 않겠다. 核보유를 인정해 달라」는 식으로 나올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이다. 미국은 한국이 北核 해결에 장애물이 된다면, 한국을 제쳐 두고 해결책을 찾아나설 것이다』
―미국의 對北 압박·제재 조치에 한국이 반대한다면.
『한국은 核을 가진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살아야 될 것이다』
북한의 金正日 정권은 클린턴 행정부가 1994년 10월 제네바 核합의를 통해 자신에게 덮어씌운 「核무기 개발 동결」이라는 올가미를 벗어 던지고, 다수의 핵무기와 핵무기 운반수단을 갖춘 核 보유국으로 등장했다.
체니-『북한 核보유 기정사실로 전제해야』
북한은 제네바 합의 이후 정확하게 10년 만에 플루토늄 추출을 통한 核개발 작업을 재개했고, 파키스탄의 지원을 통해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무기 제조기술까지 완비했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동북아시아의 군사 전략적 균형은 일거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북한 核문제 해결을 위한 6者회담, 對北억지를 위한 한국의 군사적 대응은 전혀 새로운 토대 위에서 시작해야만 할 상황이다.
최근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전제 위에서 북한 핵문제를 속도감 있게 풀어 가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지난 4월16일 訪韓한 딕 체니 美 부통령을 통해서였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딕 체니 부통령이 高建 대통령 권한대행을 만날 때 미국측 「정보」(CIA)가 따라와 북한 核개발에 대해 정보 브리핑을 했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다.
『미국 측의 정보 브리핑은 「칸 박사가 북한에서 세 개의 核기구(nuclear device)를 보았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미국은 파키스탄 당국으로부터 넘겨받은 정보를 우리와 즉각 공유한 것이다.
체니는 「북한이 核을 보유했다는 것을 전제로 대응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서둘러야 한다」고 얘기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북한을 느슨하게 놔 둬서 시간을 주면 核무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면서 6者회담에서 북한을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체니는 서두르는 분위기였다』
딕 체니 부통령과 高建 대통령 권한대행 사이에는 「뉴클리어 디바이스」가 무엇인지를 놓고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高대행은 「뉴클리어 디바이스가 과연 핵무기를 말하는지, 미사일에 탑재할 만한 수준인지 지켜보자」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딕 체니의 얘기를 들어 보면, 북한이 미국을 위협할 만한 핵무기를 갖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며 『대륙간 탄도탄에 탑재해서 6000km를 날아갈 정도는 안 된다는 게 미국 측의 평가였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의 北核 대응과 관련 『엄청난 예산을 이미 투하한 경수로 사업을 살려 제네바 합의의 核동결 상태로 돌아가고, 다음 단계로 핵무기를 처리하는 단계적 접근이 바람직하다』며 『북한이 핵무기를 1~2개 보유한 것과 7~8개 보유한 것에는 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이른바 北核-경협 병행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美, 「대만카드」로 중국 압박 시작
그러나 미국은 북한 核제거를 위해 「대만카드」로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딕 체니 부통령은 지난 4월14일 후진타오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를 만나 「미국 大選 전에 북한 核문제 해결에서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미국은 대만의 핵개발을 더 이상 저지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중국에 「대만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사실은 여러 통로에서 확인되고 있다.
제임스 릴리 前 주한 미국대사는 딕 체니가 전달한 부시 행정부의 메시지를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가 중국 주변에서 계속 核개발 계획을 저지했다. 대만의 核개발을 두 번 저지했고, 한국과 일본의 核개발을 막았다. 核확산을 이렇게 철저하게 통제했다. 지금은 중국이 그 빚을 갚아야 할 때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딕 체니 부통령의 요청에 따라, 金正日에게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불가역적인 核포기」를 요구했다.
金正日을 비롯한 북한 지도층의 움직임에 밝은 또 다른 미국 정보 소식통을 지난 4월 말 서울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4월19일에 있었던 후진타오-金正日 회담 결과를 이렇게 전했다.
『후진타오는 「북한이 核을 포기하면, 대대적인 경제지원과 함께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金正日은 중국의 최신식 전투기를 달라고 했다. 후진타오는 전투기 지원의 전제로 미국이 강조해 온 「先 핵포기」를 요구했다. 金正日은 核을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면서, 核 완전 포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단계별로 조치를 취할 때마다 보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중국 지도부는 상당히 기분이 나쁜 상태다』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은 5월10일자 기사에서 金正日이 『(韓·美·日이 촉구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의 核 폐기는 받아들일 수 없다』, 『북한은 핵개발 동결에 대한 보상을 협의하기 위해 6者회담에 참가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딕 체니가 「대만카드」로 중국을 압박한 것이 효과를 낸 것인가.
『물론이다. 체니는 중국에게 「대만을 가질 것이냐, 북한을 가질 것이냐」 양자택일하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했다』
―북한은 완벽한 核 보유국이 된 것인가.
『북한지도부는 「사담 후세인은 (대량 살상무기를) 안 가졌다는 데도 쳐 놓고, 우리는 가졌다고 하는 데도 안 믿는다」고 얘기한다』
金正日, 후진타오의 「先 핵포기」 요구 거부
―6者회담이나 「대만카드」를 통해 북한 핵무기를 제거할 수 있겠나.
『북한은 절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核비확산체제의 수호자인 미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군사적으로라도 저지하려고 나설 것이다. 盧武鉉 정부는 이 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金正日은 핵무기로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핵무기는 북한 체제 그 자체다. 「핵무기를 체제보장과 바꾸려 한다」는 분석은 설 자리가 없다.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이 「체제를 보장해 주겠다」고 미국이 약속한다고 개발한 핵무기를 포기하겠나. 金正日 정권은 남조선 해방에 대한 자신감에 차 있다. 金正日은 서울 답방을 권유하는 외부 인사들에게 「해방군 사령관으로 서울에 가겠다」고 말한 사실이 확인됐다』
―무너진 북한 경제, 남북한 간의 경제·군사력 격차를 감안하면 한마디로 과대망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나도 똑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와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그 사람들 얘기에 빠져들게 된다. 200만 명의 주민을 굶겨 죽여 가면서 핵무기를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金正日이 訪中 이후 개혁·개방 노선을 취할 것이다」, 「북한이 용천역 폭발 사고를 계기로 개방에 나설 것이다」는 희망섞인 관측들이 나오고 있지 않나.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아이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도 북한은 외부 의료인력의 현지 접근을 막았다. 외부 개방은 절대 할 수 없다』
북한은 절대 개방 못 한다
―지난해 북한의 「7·1 경제 조치」 이후 가격이 현실화되고, 배급제가 완전 폐지되고, 장마당이 활성화되는 등 많은 질적 변화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는데.
『군인, 보위부원, 중앙의 국가공무원 일부를 제외하고는 배급이 나오지 않는다. 지방은 배급이 없고, 시장을 양성화했다. 50년 만의 대변화임이 분명하다. 올해 봄 농사를 시작하면서 농민들에게 「협동농장의 땅을 가져가서 농사를 지으라」고 했다. 1970년대 말 중국의 농지제도 개혁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아무도 땅을 가져가지 않았다. 농기구와 소, 비료, 노동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 관리인들에게 「기업과 공장을 불하해 줄 테니 자신 있는 사람은 가져가라」고 했다. 電力과 기름이 없고, 원자재를 확보하지 못하는데 누가 불하를 받겠나.
북한은 인민을 먹여 살릴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해서 나름대로 개혁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나 對外 개방으로 외부 자본이 유입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중국은 1970년대 말 농지제도 개혁과 개방을 동시에 진행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그런데 金正日은 「개방하면 내가 죽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남북이 함께 진행 중인 개성공단 사업의 전망은.
『「북한에 값싸고 질좋은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假說(가설)은 틀렸다. 북한 나진에 고아원 건물을 지을 때 중국 노동자와 북한 노동자가 함께 일했다. 북한 노동자의 생산성이 중국 노동자의 절반이 안 됐다. 또 다른 함정은 이 사업이 「아태평화위원회」라는 임의단체를 상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2년간 임금을 57달러로 유지하기로 약속했지만, 이걸 누가 보장하나?
북측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노동자들을 1~2주씩 공장에 내보내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가? 북한 노동자들이 출근해서 「한 시간씩 金日成 주체사상 학습을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말릴 건가? 북한 核문제가 불거져 공단출입이 봉쇄되면 어떻게 할 건가? 개성공단에 가려는 기업은 한국의 限界기업들이다. 너무나 많은 함정이 깔려 있어, 피해자가 속출할 가능성이 크다』●
◈ 압둘 카디르 칸은 누구인가
核 확산의 主犯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68) 박사. 파키스탄에서는 「核무기 개발 아버지」, 「국민적 영웅」으로, 파키스탄 이외의 나라에서는 「核 확산의 主犯」으로 통한다.
1935년 인도 북부 보팔에서 태어난 칸은 1947년 파키스탄이 힌두교인 인도와 분리되자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아버지를 따라 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
칸은 1980년 카라치 대학 工大를 졸업하고 서독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났다. 야금학(금속공학)을 전공했던 그는 1967년 네덜란드 델프트 工大에서 석사학위를, 로이벤 가톨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물리동력학연구소(FDO)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당시 물리동력학연구소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核폭탄과 같은 수준의 농축 우라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칸 박사는 우라늄 원심분리기 제조 기술을 독일어에서 네덜란드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다. 그는 회사로부터 신임을 얻어 일급비밀 서류를 열람할 수 있었다.
1974년 5월, 인도가 核폭탄 실험에 성공하자 파키스탄의 줄피카르 알리 부토 당시 총리는 칸에게 『인도보다 더 강력한 核 프로그램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칸은 원심분리기의 설계도를 비롯해 核무기 제조에 필요한 기술을 모두 복사해서 본국으로 귀환했다.
그는 이슬라마바드 외곽 카후타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갖춘 공학연구실험실(ERL)을 세워 농축 우라늄 제조에 박차를 가했다.
칸 박사는 미국은 물론 유럽 각국에서 부품들을 몰래 들여왔다. 그의 비밀 거래 노하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1981년 지아 울 하크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은 공학연구실험실을 「칸 연구소」로 명명했다.
그 무렵 네덜란드 사법 당국은 칸 박사를 核기술 절도 혐의로 기소했고, 1983년 1월 암스테르담 법원은 그에 대한 궐석재판을 강행, 징역 4년을 선고했다.
1998년 5월, 칸은 核실험에 성공해 조국 파키스탄을 核 보유국으로 만들었다.
우라늄 농축 설비 세일즈 책자 發刊
그는 북한과 이란, 리비아에 核무기 부품을 전세기에 실어 밀수출했으며,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원심분리기의 설계를 밀거래했다. 우라늄 원심분리기 설비제조 관련 논문을 국제 학술지와 뉴욕 타임스 등에 발표하고 세일즈 안내 책자까지 발간했다.
칸 박사는 高농축 우라늄 核개발 프로그램과 관련, 1997년 이후에만 북한을 13차례나 방문한 것으로 밝혀졌다.
칸은 북한에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원심분리 기술을 이전해 주는 대신 自國의 미사일 射거리를 늘릴 수 있는 기술을 지원받았다. 파키스탄은 북한의 노동 미사일 기술을 수입해 1998년 4월 노동 미사일을 변형시킨 「가우리」의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파키스탄 정부가 국민적 영웅인 칸 박사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이었다. 「核유출」 혐의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작년 1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과 리비아에 대한 核사찰을 마친 직후이기도 하다.
지난 2월4일, 파키스탄 核개발의 영웅으로 불리는 칸 박사는 국영 TV에 출연해 核 기술을 북한과 리비아·이란에 유출한 자신의 행동을 국민에게 사과했다.
파키스탄 무샤라프 대통령은 『칸 박사의 사면과 함께 더 이상 추가 조사가 없을 것이다』고 발표, UN과 국제원자력기구의 개입 가능성을 차단했다. 『칸 박사의 기소 여부는 파키스탄 정부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칸 박사는 현재 사면을 받고 가택연금 상태에서 지내고 있다.
李恩英〈yon97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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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核 보유 시사 발언 日誌
2002년 10월4일 :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고농축 우라늄 추출 장치까지 보유하고 있다」, 「더 강력한 것도 가지고 있다」(평양에서 제임스 켈리 美 국무부 차관보에게)
2002년 11월17일 : 북한 평양방송 「미국은 국제적 합의와 협정들을 파기한 장본인이다. 우리는 자기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포함한 강력한 군사적 대응 수단을 가지게 됐다」
2002년 11월18일 : 북한 조선 중앙방송, 전날의 보도문을 재방송하면서 「강력한 군사적 수단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로 수정.
2002년 12월27일 : 북한 당국 「평북 영변에 상주하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파견 사찰관을 추방하고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방사화학실험실을 재가동하겠다」
2003년 1월10일 : 북한 당국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공식 발표.
2003년 2월14일 : 북한 외무성 리광혁 「전세계 모든 지역의 미국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자위권을 갖고 있다」(평양에서 AFP통신과 회견을 갖는 자리에서)
2003년 4월19일 : 북한 당국 「영변 핵시설의 사용 후 연료봉 8000개에 대한 재처리에 들어갔다」
2003년 4월23일 : 리근 외무성 미주 부국장 「우리는 핵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실험할지 수출할지 사용할지 여부 등은 미국 태도에 달려 있다.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자위적 차원에서 핵무기 실험을 할 수도 있다」(北·美·中 회담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자리에서)
2003년 6월3일 : 백남순 외무상과 김계관 부상 「8000여 개의 폐연료봉 재처리가 거의 완료됐을 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평양을 방문한 美 하원의원단에게).
2003년 6월9일 : 북한 조선중앙통신 「미국이 핵 위협을 계속한다면 우리로서도 강력한 핵 억제력을 갖추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2003년 7월8일 : 박길연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대사 「핵폭탄 6개 가량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추출을 완료했을 뿐 아니라 핵무기 제조가 시작되고 있다」(잭 프리처드 美 국무부 對北교섭특사 간 접촉에서)
2003년 7월14일 : 한성 외무성 부상 「우리는 핵 보유 선언을 준비하고 있고, 핵실험 실시도 고려하고 있다. 핵무기를 운반할 수단도 갖고 있다」(6者회담 전체회의에서)
2003년 10월2일 : 북한 당국 「평안북도 영변의 핵 시설에 보관 중인 폐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하고 여기서 나온 강력한 핵 물질인 플루토늄을 핵 억제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용도를 변경시켰다」
2004년 1월10일 : 북한 당국, 영변 핵시설을 참관한 미국 방문단에게 재처리한 플루토늄을 공개.
2004년 3월11일 : 최고인민회의 대표단 단장 최태복 「북한 핵무기는 오직 자위수단일 뿐이지만 핵문제를 놓고 미국 및 다른 국가들과 협상을 지속할 태세가 돼 있다」(체코 방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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