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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 (李白)의 시(詩) 몇 수(首)|
출처 漢詩 / 古典
◆ 金陵酒肆留別 [금릉주사유별] 이별의 잔을 나누며
風吹柳花滿店香 [풍취유화만점향] 버들 꽃 날리어 향기 주막 가득하고
吳姬壓酒喚客嘗 [오희압주환객상] 술 짜는 오의 미인 손 불러 맛보라네
金陵子弟來相送 [금릉자제내상송] 금릉의 젊은이들 나를 찾아 전송하니
欲行不行各盡觴 [욕행불행각진상] 가려 하나 못 가고 술잔만 비우네
請君試問東流水 [청군시문동유수] 그대 흐르는 물에게 물어보게나
別意與之誰長短 [별의여지수장단] 물과 석별의 정 누가 길고 짧은지
◆ 山中問答 [산중문답] 왜 산에 사느냐고 묻길레
問余何事栖碧山 [문여하사서벽산] 왜 산에 사느냐고 내게 묻기에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말없이 웃으니 마음 절로 한가로워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복숭아꽃 물에 떠서 아득히 가고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이곳은 별천지 인간세상 아니어라
◆ 送友人 [송우인] 친구를 보내며
靑山橫北郭 [청산횡북곽] 푸른 산은 성 북쪽에 비끼어 있고
白水遶東城 [백수요동성] 흰 물은 성 동쪽을 싸고 흐른다
此地一爲別 [차지일위별] 이 곳에서 한번 헤어지며는
孤蓬萬里征 [고봉만리정] 쑥대같이 만리를 날리어 가리
浮雲遊子意 [부운유자의] 뜬구름은 나그네의 마음인가
落日故人情 [낙일고인정] 석양에 내 가슴은 한이 맺힌다
揮手自玆去 [휘수자자거] 이제 손 흔들며 떠나려는가
蕭蕭班馬鳴 [소소반마명] 가는 말도 쓸쓸한지 소리쳐 운다
◆ 友人會宿 [우인회숙] 벗들과 모여서
滌蕩千古愁 [척탕천고수] 천고의 시름이 씻어지도록
留連百壺飮 [유연백호음] 한자리에 연거푸 술을 마시네
良宵宜且談 [양소의차담] 좋은 밤 얘기는 길어만 가고
皓月不能寢 [호월불능침] 달이 밝아 잠에 못 들게 하네
醉來臥空山 [취래와공산] 취하여 고요한 산에 누우니
天地卽衾枕 [천지즉금침] 천지가 곧 베게이고 이불어라
◆ 自 遣 [자 견] 홀로 가는 길
對酒不覺暝 [대주불각명] 술을 마시느라 저무는 줄 몰랐더니
落花盈我衣 [낙화영아의] 옷자락에 수북한 떨어진 꽃잎
醉起步溪月 [취기보계월] 취한 걸음 달빛 시내 따라 걸으니
鳥還人亦稀 [조환인역희] 새도 사람도 보이지 않네...
◆ 贈衛八處士 [증위팔처사] 다시 벗을 만나
人生不相見 [인생불상견] 살아가며 서로 만나지 못함이
動如參與商 [동여삼여상] 하늘 서로 반대편 삼별과 상별 같거니
今夕復何夕 [금석부하석] 오늘 저녁 이 얼마나 즐거운 저녁인가
共此燈燭光 [공차등촉광] 그대와 둘이 촛불을 밝히었네
少壯能幾時 [소장능기시] 인생에 젊은 날이 얼마나 되리
鬢髮各已蒼 [빈발각이창] 귀밑머리 둘이 다 하얗게 세었네
訪舊半爲鬼 [방구반위귀] 옛 친구들 찾아보니 반 넘어 죽은 사람
驚呼熱中腸 [경호열중장] 놀라 불러보니 창자만 뜨거워져
焉知二十載 [언지이십재] 어찌 알았으랴 헤어진지 이십년에
重上君子堂 [중상군자당] 다시 그대의 집에 오르게 될 줄을
昔別君未婚 [석별군미혼] 그대 헤어질 땐 미혼이더니
兒女忽成行 [아녀홀성행] 지금은 자녀가 많기도 하구나
怡然敬父執 [이연경부집] 기쁘게 아버지의 친구를 맞이하며
問我何方來 [문아하방래] 어디서 오셨는지 공손히 묻고
問答未及已 [문답미급이] 물음에 답이 채 끝나기 전에
兒女羅酒漿 [아녀나주장] 자녀들이 술과 음료 벌여 놓았네
夜雨剪春韮 [야우전춘구] 밤비 속에 봄 부추를 뜯어 무치고 *부추 구韮
新炊間黃粱 [신취간황량] 새로 지은 따슨 밥엔 기장을 섞었네
主稱會面難 [주칭회면난] 주인은 만나기 어려움을 말하고
一擧累十觴 [일고누십상] 연거푸 열 잔의 술을 권하는데
十觴亦不醉 [십상역불취] 열 잔을 다 마셔도 취하지 않으니
感子故意長 [감자고의장] 변함없는 오랜 정에 감동했기 때문이리
明日隔山岳 [명일격산악] 날 밝아 산악을 사이에 두고 헤어지면
世事兩茫茫 [세사양망망] 앞으로 세상 일이 또 어떻게 될는지
◆ 春日醉起言志 [춘일취기언지] 봄날 술에 깨어
處世若大夢 [처세약대몽] 산다는 건 커다란 꿈과 같거니
胡爲勞其生 [호위노기생] 어찌 아둥바둥 삶을 살으랴
所以終日醉 [소이종일취] 그런 이유로 종일 취하여
頹然臥前楹 [퇴연와전영] 되는대로 기둥아래 누워 있다가
覺來盻庭前 [각래혜정전] 홀연 깨어나 뜰 앞을 보니
一鳥花間鳴 [일조화간명] 꽃 사이 새 한 마리 울고 있어라
借門如何時 [차문여하시] 물어보자, 지금이 어느 때이냐
春風語流鶯 [춘풍어류앵] 봄바람에 흐르는 듯 꾀꼬리 소리
感之欲歎息 [감지욕탄식] 그에 느끼어 탄식을 하며
對酒還自傾 [대주환자경] 술을 마시려니 병이 비었구나
浩歌待明月 [호가대명월] 크게 노래하며 달을 기다리니
曲盡已忘情 [곡진이망정] 노래는 끝나고 정마저 잊었구나.
◆ 월하독작[月下獨酌] 달아래 홀로 (술을) 따르며
花間一壺酒 (화간일호주) 꽃사이에서 한병의 술을
獨酌無相親 (독작무상친) 짝 없이 홀로 술잔을 드네.
擧盃邀明月 (거배요명월) 잔 들어 달님을 맞으니
對影成三人 (대영성삼인) 그림자까지 합하여 셋이어라
月旣不解飮 (월기불해음) 달님은 본디 술을 못 하고
影徒隨我身 (영도수아신) 그림자는 그저 니 하는대로 할 뿐
暫伴月將影 (잠반월장영)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 하며
行樂須及春 (행락수급춘) 봄 밤을 맘껒 즐기네.
我歌月徘徊 (아가월배회) 내 노래에 달님은 서성거리고
我舞影凌亂 (아무영능란)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따라 추네
醒時同交歡 (성시동교환) 취하기전엔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醉後各分散 (취후각분산) 취한 후에는 제각기 흩어진다
永結無情遊 (영결무정유) 속세를 떠난 맑은 사귐 길이 맺고자
相期邈雲漢 (상기막운한)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날것을 기약하노라.
◇ 春日獨酌 (춘일독작) 어느 봄날, 홀로 술 마시며
東風扇淑氣(동풍선숙기) : 봄바람은 맑은 기운 부채질하고
水木榮春暉(수목영춘휘) : 물과 나무는 봄빛에 무성하구나
白日照綠草(백일조녹초) : 밝은 해는 푸른 풀을 비추고
落花散且飛(낙화산차비) : 떨어진 꽃은 흩어져 날리는구나
孤雲還空山(고운환공산) : 외로운 구름은 빈 산을 돌고
衆鳥各已歸(중조각이귀) : 뭇 새들은 모두가 둥지로 돌아갔다
彼物皆有托(피물개유탁) : 그들은 모두 저 갈 곳이 있는데
吾生獨無依(오생독무의) : 내 인생은 의지할 곳 하나 없구나
對此石上月(대차석상월) : 이 바위 위의 달을 바라보고
長醉歌芳菲(장취가방비) : 오래 취해 봄날 꽃다운 풀보며 노래하네
◇ 月下獨酌 ( 달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
1.
花間一壺酒(화간일호주) 꽃나무 사이에서 한 병의 술을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 홀로 따르네 아무도 없이.
擧杯邀明月(거배요명월) 잔 들고 밝은 달을 맞으니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 그림자와 나와 달이 셋이 되었네.
月旣不解飮(월기불해음) 달은 술 마실 줄을 모르고
影徒隨我身(영도수아신) 그림자는 나를 따르기만 하네.
暫伴月將影(잠반월장영)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 함께 있으니
行樂須及春(행락수금춘) 봄이 가기 전에 즐겨야 하지.
我歌月徘徊(아가월배회) 내가 노래하면 달은 거닐고
我舞影凌亂(아무영릉란)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따라 춤추네.
醒時同交歡(성시동교환) 함께 즐거이 술을 마시고
醉後各分散(취후각분산) 취하면 각자 헤어지는 거.
永結無情遊(영결무정유) 무정한 교유를 길이 맺었으니
相期邈雲漢(상기막운한) 다음엔 저 은하에서 우리 만나세.
2.
天若不愛酒(천약불애주) 하늘이 술을 사랑치 않았다면
酒星不在天(주성무주천) 주성이 하늘에 있지 않을 거고,
地若不愛酒(지약불애주) 땅이 술을 사랑치 않았다면
地應無酒泉(지응무주천) 땅에 주천이 없었을 거야.
天地旣愛酒(천지기이음) 하늘과 땅도 술을 사랑했으니
愛酒不愧天(애주불괴천) 내가 술 사랑하는 건 부끄러울 게 없지.
已聞淸比聖(이문청비성) 옛말에, 청주는 성인과 같고
復道濁如賢(부도탁여현) 탁주는 현인과 같다고 하였네.
賢聖旣已飮(성현기이음) 현인과 성인을 이미 들이켰으니
何必求神仙(하필구신선) 굳이 신선을 찾을 거 없지.
三杯通大道(삼배통대도) 석 잔이면 대도에 통할 수 있고
一斗合自然(일두합자연) 한 말이면 자연과 하나되는 거라.
但得酒中趣(단득주중취) 술 마시는 즐거움 홀로 지닐 뿐
勿爲醒者傳(물위성자전) 깨어 있는 자들에게 전할 거 없네.
3.
三月咸陽城(삼월함양성) 춘삼월 함양성은
千花晝如錦(천화주여금) 온갖 꽃이 비단을 펴 놓은 듯.
誰能春獨愁(수능춘독수) 뉘라서 봄날 수심 떨칠 수 있으랴
對此徑須飮(대차경수음) 이럴 땐 술을 마시는게 최고지.
窮通與修短(궁통여수단) 곤궁함 영달함과 수명의 장단은
造化夙所稟(조화숙소품) 태어날때 이미 다 정해진 거야.
一樽齊死生(일준제기생) 한 통 술에 삶과 죽음 같아보이니
萬事固難審(만사고난심) 세상 일 구절구절 알 거 뭐 있나.
醉後失天地(취후실천지) 취하면 세상천지 다 잊어버리고
兀然就孤枕(올연취고침) 홀로 베개 베고 잠이나 자는 거.
不知有吾身(부지유오신) 내 몸이 있음도 알지 못하니
此樂最爲甚(차락최위심) 이게 바로 최고의 즐거움이야.
4.
窮愁千萬端(궁수천만단) 천갈래 만갈래 이는 수심에
美酒三百杯(미주삼백배) 술 삼백잔을 마셔볼거나.
愁多酒雖少(수다주수소) 수심은 많고 술은 적지만
酒傾愁不來(주경수불래) 마신 뒤엔 수심이 사라졌다네.
所以知酒聖(소이지주성) 아, 이래서 옛날 주성이
酒酣心自開(주감심자개) 얼근히 취하면 마음이 트였었구나.
辭粟臥首陽(사속와수양) 백이는 수양 골짝에서 살다 죽었고
屢空飢顔回(누공기안회) 청렴하단 안회는 늘 배가 고팠지.
當代不樂飮(당대불락음) 당대에 술이나 즐길 일이지
虛名安用哉(허명안용재) 이름 그것 부질없이 남겨 무엇해.
蟹螯卽金液(해오즉금액) 게 집게발은 선약(仙藥)이고 *가재, 게 집게발 오螯
糟丘是蓬萊(조구시봉래) 술 지게미 언덕은 곧 봉래산이라.
且須飮美酒(차수음미주) 좋은 술 실컷 퍼 마시고서
乘月醉高臺(승월취고대) 달밤에 누대에서 취해 볼거나.
♣ 이백(李白 701∼762)
중국 당(唐)나라 시인.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농서군 성기현(成紀縣;지금의 甘肅省 秦安縣 부근) 출신.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라고 일컬어진다.
두보를 <시성(詩聖)>, 왕유(王維)를 <시불(詩佛)>, 이백은 <시선(詩仙)>이라고 한다. 이 밖에 적선인(謫仙人) 또는 벼슬이름을 따서 이한림(李翰林)이라고도 한다.
25세 때 촉(蜀)나라를 떠나 양쯔강〔楊子江〕을 따라 나와 평생 유랑생활을 했다. 이백은 어려서부터 시문(詩文)에 천재성을 발휘하는 한편 검술을 좋아했다.
젊었을 때 도교(道敎)에 심취하여 선계(仙界)에 대한 동경심을 가졌으며 산 속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환상성(幻想性)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며, 산은 그의 시세계의 주요 무대의 하나였다.
촉나라에서 나온 뒤 둥팅호〔洞庭湖〕 주변에서 오(吳)·월(越)나라(지금의 南京·杭州 일대) 등을 주유했고 안육(安陸;지금의 湖北省)에서 원(元)나라 재상 허어사의 손녀딸과 혼인하여 10년간의 세월을 보냈으나, 그 사이에도 가정에 정착하지 못하고 맹호연(孟浩然)·원단구(元丹丘) 등의 시인·도사와 전국을 여행했다.
그 뒤 임성(任城;지금의 山東省)과 남릉(南陵;지금의 安徽省)에 집을 장만했다. 임성에서는 공소부(孔巢父) 등과 추라이산〔租徠山〕에 은거하면서 <죽계(竹溪)의 육일(六逸)>이라고 하였다.
아내 허씨(許氏)가 죽은 뒤 유씨(劉氏)·송씨(宋氏)와 혼인했으며, 딸 평양(平陽)과 아들 백금(伯禽)을 두었다. 이백은 과거를 보지 않았으나,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장안(長安)에 가서 환대를 받고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었다.
이 1∼2년 동안이 그의 생애 가운데 유일한 영광의 시절이었다.
두보가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이백일두(李白一斗) 시백편(詩百篇), 장안의 저자거리 술집에서 잠이 든다.
천자가 불러도 배에 타지 아니하고 스스로 칭하기를 신(臣)이 이 주중(酒中)의 선(仙)>이라고 한 것은 그 무렵 이백의 모습을 전해 준 것이다.
그러나 이백의 불기(不羈)의 성격이 현종 측근들의 참언(讒言)을 자초하게 되었고 마침내 궁중에서 떠나게 되었다.
장안을 떠난 이백은 뤄양〔洛陽〕에서 11살 아래의 두보와 만나 친교를 맺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짧았지만 우정은 평생 유지되었다.
755년 안녹산(安祿山)의 난 때 현종은 쓰촨〔四川〕으로 도망하고 숙종(肅宗)이 즉위했다. 55살의 이백은 이때 루산〔廬山;江西省〕에서 숙종의 동생 영왕(永王)의 부름을 받고 그의 반란에 가담했다.
영왕이 숙종의 토벌을 받자 이백은 체포당하여 한때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뒤에 감형되었다. 야랑(夜郎;지금의 貴州省)으로 유배되어 양쯔강을 거슬러올라가 싼샤〔三峽〕까지 왔을 때 사면되었다. 말년에는 강남을 주유했으며, 당도현(當塗縣;지금의 安徽省) 현령 이양빙 곁에서 병으로 죽었다.
이백의 시는 두보의 시가 조탁(彫琢)이 극에 이르는 데 대하여, 흘러나오는 말이 그대로 시가 되는 시풍이며 두보의 오언율시(五言律詩)에 반하여 악부(樂府)와 칠언절구(七言絶句)에 능했다. 예를 들어 <양인대작산화개(兩人對酌山花開)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 등은 규범에 관계없이 자유스러운 발상과 리듬을 구사한 좋은 보기이다.
또 성당(盛唐)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의 이백은 인간·시대·자기에 대한 큰 기개·자부심을 시로 노래했다. 가령 《고풍(古風)》 가운데의 한 구절인 <대아(大雅) 오래 생기지 아니하고 내가 쇠하면 마침내는 누가 말할 것이다>,
《장진주(將進酒)》 가운데 한 구절인 <하늘이 나에개 재능을 준 것은 반드시 유용하게 쓰라고 그랬을 것이다> 등이 있다.
그러나 그 기개와 자부심의 시대는 개원(開元)에서 천보(天寶)로 이행되어감에 따라 전제 독재 밑에서 심해지는 부패한 현실로 인해서 깨졌다.
그는 《장진주》에서 <인생에서 뜻을 얻으려면 반드시 기쁜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야 하느니>라고 했듯이 산다는 기쁨에 정면으로 대결하였으며, 동시에 그가 말하는 <만고지수(萬古之愁)>, 즉 살기 위해 생기는 걱정을 항상 마음에 지니고 살았다.
또한 즐겨 술·달·산을 노래했고, 여정(旅情)·이별·규정(閨情)을 노래했으며, 수심을 격조높게, 때로는 잔잔하게 펼쳐보였다. 한편 이백의 시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 것이 많다.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 걱정으로 이처럼 길어지고(秋浦歌)>, <장안일편월(長安一片月) 집집마다 다듬이질 소리(子夜吳歌)>, <고인(故人) 황학루(黃鶴樓)를 떠나 연화삼월(煙花三月) 양주(揚州)로 내려간다(황학루에서 맹호연을 보내고)>, <촉도(蜀道)는 하늘에 오르기보다 어렵고(蜀道雖)>, <왜 벽산(碧山)에서 사느냐고 나에게 묻는데,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아니하니 마음은 절로 한가롭다(山中問答)>, <칼을 뽑아 물을 베어도 물은 여전히 그냥 흐르고 술잔을 들어 걱정을 지우지만 걱정은 여전히 걱정으로 남아 있다(宣州 謝眺樓에서 校書 叔雲과 전별하며)> 등은 잘 알려진 명구들이다.
이 밖에 《월하독작(月下獨酌)》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 《증왕륜(贈王倫)》 《파릉행》 《청평조사(淸平調詞)》 등 걸작이 많다.
이백에 대한 전설과 삽화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데 어머니가 태백성(太白星;금성)이 품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다고 해서 그 이름이 생겼다는 출생이야기부터, 흐르는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떠내려고 하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에 이르기까지 그가 장안에 있을 때 현종이 불렀는데 크게 취한 상태에서 환관 고역사(高力士)에게 신을 신기게 하며 즉석에서 시를 지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백 시문의 텍스트로는 당나라 위호(魏顥)가 편찬한 《이한림집(李翰林集)》과 이양빙의 《초당집(草堂集)》이 있으나 지금은 없다.
현존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북송(北宋)시대 악사(樂史)가 편찬한 《이한림집(李翰林集, 30권)》과 북송의 송민구(宋敏求)가 편찬한 《이태백집(30권)》이 있다.
주석본(註釋本)으로는 남송의 양제현주(楊齊賢註), 원(元)나라의 소사빈(蕭士贇) 보주(補註)외 《분류보주이태백집(分類補註李太白集)》과 청(淸)나라 왕기주(王琦註)의 《이태백문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