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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쥐 그래피티 사건’ 박정수의 부인 황진미님이, 검찰이 ‘공안사건’으로 확대시킨 수사 과정과 그 소회를 밝힌 글입니다. Weekly 수유너머 67호(2011-05- 24 발행) http://suyunomo.net/?p=7769에서 전재했습니다. 앞서 올린 <‘쥐와 벌’ - G20 그래피티, 법정에 서다>(2011.05.09 포스팅)와 <WE ARE WATCHING YOU>(2011-05-21 포스팅)에 이어지는 글입니다(카테고리 '역사-신화 좋아해'로 들어가시면 한꺼번에 읽으실 수 있습니다^^). - 라라와복래 And you my love / Chris Rea http://www.youtube.com/watch?v=jZsnSO5gCP8&feature=player_detailpage 쥐 벽서는 계속 출몰한다 – 실화극장 <쥐 그림 이야기> _ 황진미 영화평론가인 나는 요즘 실화극장에 푹 빠졌다. 쥐 그림 사건만 봐도 영화 저리 가라 할 기막힌 장면들이 빼곡하다. 6개월 전 G20행사에 ‘올인’하던 정부에 날아든 쥐 벽서는, 한 방의 총성이었다. 물론 장난감 총이었지만, 정부는 진짜 총으로 대접하였고, 이제 그 총성은 폭죽놀이가 되어 쥐불처럼 번져 간다. 2010년 10월 31일 새벽 1시경, 112신고가 접수된다. “G20 포스터에 기분 나쁜 그림이 그려져 있어, 빨갱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신고한다.” 출동한 순경은 박정수와 여대생 박00를 스프레이 통 등 ‘증거물’을 버리고 도주하는 현행범으로 체포한다며, “너희는 공범이라서 가중처벌 된다”고 겁을 잔뜩 주었단다. 묵비권을 행사하던 박정수는 남대문경찰서로 이송됐고, 야간조사는 불법이니 아침에 변호사가 오면 진술하겠다고 버텼다. 처음 형사과 형사는 단순 재물손괴 사건으로 조서를 꾸미는데, 검찰에서 계속 전화가 왔다. 검찰은 ‘G20 반대투쟁 등 불순한 의도를 가진 조직적인 범죄이니, 소속과 직업을 집중적으로 캐물으라’고 닦달하였다. 남대문서 유치장이 공사 중이라, 박정수는 중부서로 이송되었고,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에 배당되었다. 나는 네 살 배기 딸이랑 남대문서와 중부서를 전전하다 유치장 면회실에서 박정수를 만났다. “아빠, 왜 감옥에 갇혔어?”란 질문에, “쥐를 그려서”라고 답하는 남편과 나는 <너는 내 운명> 장면을 패러디하며 낄낄거렸다. 옆에서 받아 적던 순경도 킥킥댔다. 쥐를 그린 게 다라니, 곧 나오리라 예상한 것이다. 다음날 사람은 안 나오고, 박정수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집단, 흉기 등 재물손괴 등)’ 위반혐의로 체포했음을 알리는 우편물이 날아왔다. ‘조폭’도 아니고, 웬 ‘폭처법’? 법제처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공범이 있는 사건이라 가중처벌 된단 뜻이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박정수는 TV에서 보았던 밀실에서 6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이번엔 검찰의 주문대로, 정말 공안사건처럼 다루더란다. 영장은 기각됐지만, 박정수는 72시간을 꽉 채우고야 풀려났다. 밖에는 기자들이 취재를 오고, 인터넷엔 쥐 그림이 돌았다. 검찰의 ‘박정수 작가만들기’ 프로젝트에 입질이 왔다. 댓글과 패러디가 쏟아졌다. 쥐 벽서가 G20 홍보와 경호에 열을 올리던 정부의 촌스러운 작태에 염증을 느끼던 시민들에게 비판의 포문을 열게 한 것이다. 요란했던 G20행사가 별 볼일 없이 끝났지만, 수사는 계속됐다. 영장기각과 함께 ‘형사과’ 형사는 징계 받고 교체됐다. 시위법이나 인터넷 통신법 위반 사범을 주로 담당한다는 ‘지능과’ 형사와 공안2부 강수산나 검사가 수사를 맡았다. 강 검사는 계속 형사과 형사의 투미한 문제의식을 질타하며, 압수한 박정수의 휴대폰 통화기록과 CCTV 자료를 근거로 피의자를 5명으로 늘려 심문을 벌였다. 공범으로 기소된 최00은 아침 10시에 들어가서 밤 10시에 나왔다. 최00는 스프레이 통 한번 잡아 본 적이 없다. 박정수의 연구실 후배로, 현장 부근에서 민변에 연락하라는 등의 문자를 여러 개 주고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공범이 있어야만 ‘조직적인 공안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인지, 검사는 최00에게 “박정수가 왜 잡혔단 문자를 너한테 했나, 둘이 불륜이냐?”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게 정상인데 너는 왜 심야에 근처를 돌아다녔느냐” 따위의 저질 질문을 해댔다. 대답은 “제가 법대 출신이라서 저에게 연락한 것 같습니다.” “그날은 할로윈 데이라 늦게까지 길에 사람이 많았는데요.” 다섯 명의 피의자 휴대폰도 압수하고 “수유너머는 뭐하는 단체이며, 어떻게 구성·운영되는지”를 캐물었다. 대답은 장자 세미나, 노신 강독, 케포이 등 식미에 안 맞는 것들뿐이다. 박정수와의 ‘병맛’ 일문일답. “도안은 직접 했나?” “표절입니다.”(뱅크시 그림을 보여준다) “미술을 한 적이 있는가?” “초등학교 때, 도 미술대회에서 수상한 사실이 있으며,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수채화 과정을 들었습니다.” “쥐라면 도둑이나 하찮음, 부정, 간신과 수탈 등에 비유하는데, 쥐를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발음이 같아서.” 강수산나 검사는 “부잣집 잔치 집에 재를 뿌린 것”이라며 G20의 계급적 본질을 드러내는 발언을 하며 ‘일반손괴죄’보다 형량이 높은 ‘공용물건손상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수사기록엔 G20정상회의 준비위원회 사무관이 포스터 값과 설치비용이 장당 3만5천원이라 답한 진술서도 있지만, 4월 22일 공판에서 김성현 검사는 얼만지도 모를 ‘청사초롱의 꿈’을 강탈했다는 명연설과 함께 징역 10개월과 8개월을 구형하였다. 이창동, 장정일 등 문화계 인사와 네티즌들의 탄원서가 줄을 잇고, 해외 뱅크시 팬사이트 등에서 구명운동이 일었다. 마침 한국의 언론자유가 축소되었다는 프리덤하우스 등의 발표는 사건에 여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판사는 “G20을 방해할 목적은 없었다”며 공안사건이 아님을 명시했지만, “타인의 명예나 공중도덕을 침해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며, 벌금 200만원과 1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누구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냐는 질문이 진보신당 논평과 네티즌 사이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오히려 검찰은 벌금형을 선고한 사법부의 판단에 불복하여, 항소 마감일 오후 6시에 두 사람을 항소했다. 김여진과 1인 시위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선고 당일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은 쥐벽티로 벌금을 충당하자고 제안하여, 선주문으로 이미 1,000장이 팔려 배송 중이다. 또 다른 버전의 쥐벽티 1,000장 정도가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에서 제작되어 장애인 인권운동 벌금 충당용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6월 3일 홍대 ‘두리반’에서 열리는 후원파티 ‘파티하쥐’에서는 쥐 포스터를 직접 그려서 가져가는 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박정수는 쥐 그림을 들고 김여진의 ‘반값 등록금 1인 시위’에 연대한 데 이어, G20 국회의장 회의에 ‘금준미주는 천인혈…’이라는 한시가 적힌 쥐 그림을 들고 1인 시위를 펼쳤다. 올 여름 쥐 벽서는 여기저기서 출몰할 예정이다. 이제 무슨 죄목으로 이를 막을 것인가. WE ARE WATCHING YOU - 박정수(수유너머R) 지난 5월 13일 쥐 그래피티 선고가 있었습니다. 형법 제 141조 ‘공용서류 등 무효죄’에 의거하여 유죄! 벌금, 박정수 200만원 최** 100만원! G20 정상회의 홍보포스터가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기타 물건 또는 전자매체 등 특수매체기록”에 해당하는지, 쥐 그래피티가 그 ‘공용물건’의 효용을 어떻게 해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판사는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판사가 제시한 근거는 “우리 헌법 22조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무제한적인 기본권은 아니며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공중도덕을 침해한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해야 하는 자체적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G20 포스터가 법에 명시된 ‘공용서류’에 해당하는 이유는 말하지 않고 엉뚱하게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공중도덕’을 해친 죄를 물은 것입니다. 제게 적용된 법률이 ‘모욕죄’인지, 그렇다면 제가 누구를 모욕한 건지도 모르겠고, 공중도덕을 해친 게 벌금 300만원 물을 범죄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더 어처구니없는 건 “그래피티 작업으로 유명한 영국의 뱅크시 등은 원작품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인의 창작물을 훼손한 박씨와 다르다”라는 미술평론으로 처벌의 근거를 삼은 점입니다. 제가 시종일관 그래피티 예술의 공공성을 인정해 달라고 했더니, 사법부는 엉뚱하게 홍보포스터의 예술성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3차 공판 때도 저한테 저의 쥐 그림 첨삭이 포스터의 도안을 그린 원작자의 의도를 침해한다는 생각은 안 해 봤냐고 묻더니(저는 그게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선고 때도 포스터 “원작품”의 훼손을 근거로 제 행위가 그래피티 예술이 아니라고 단정했습니다.(혹시 판사가 G20 포스터 디자인 공모에 당선된 분의 지인인가?) 실형을 면하고 벌금형에 그친 데 솔직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그 ‘아량’에 화가 납니다. 정상참작(“누군가는 해학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이나 감형은 무죄를 선고하기 싫어서, 범죄가 아닌 것을 처벌대상으로 규정하기 위한 근대 사법의 장치라는 푸코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감옥에 가두는 대신 광장과 거리를 보이지 않는 감옥으로 둘러친 겁니다. 위축된 마음과 울분을 그냥 둘 수 없어서 다음 날 광화문 광장에 쥐 포스터를 들고 나갔습니다. 김여진씨가 1인 시위를 한다기에 꼽사리 끼어 ‘쥐 포스터는 범죄가 아니다. 또 잡아갈래?’ 라는 마음을 표출하려고. 날라리 외부세력들과 점심을 먹고 시청으로 향했습니다. 거기에는 1200일 넘게 농성을 하고 있는 재능노조 분들이 계십니다. 버젓이 노조활동하다가 하루아침에 불법노조로 취급되어 쫓겨난 분들입니다. 최근에는 20일 넘게 삭발 단식농성까지 했습니다. 가는 길에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하더군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길래 “세계가 4대강 참사를 주목합니다”라고 적힌 쥐 포스터를 들고 한참 서 있다가, 길을 건너 재능노조 농성장에 갔습니다. 갔더니, 단식으로 야위고 삭발로 파래진 머리로 나오신 분이 제 포스터를 보자마자, “도대체 G20이 뭐냐?”는 겁니다? “네?” “뭔데 또 농성장을 철거하겠다는 거냐? G20 끝난 거 아니냐?” 무슨 말씀인지 의아해하는데, “중구청에서 G20 국회의장회의 한다면서 거리 정화를 위해 농성장을 철거하겠다며 계고장을 보내 왔다”는 겁니다. 아! 저는 G20의 과거를 연장하고 있는데, 그분은 G20이 현재형이더군요. G20 국회의장회의가 5월 18일부터 3일간 있습니다. 별다른 홍보가 없길래 몰랐죠. 왜 홍보가 없나 했더니, 그냥 친목모임이더군요. 의제도 황당합니다. ‘선진국을 모델로 후진국을 개발하자’, ‘테러 방지를 위해 글로벌하게 노력하자’는 겁니다. 개발의 일환인지, 테러 방지를 위한 건지, 귀한 분들 오시니 마당 쓰는 건지, 재능노조 천막을 철거하겠다는 겁니다.(결국 16일 오전에 철거했습니다)
“어린이가 재능노조를 주목합니다”라고 적은 쥐 포스터를 들고 집에 가려고 을지로 쪽으로 가는데, 지난해 10월 31날 제가 붙잡힌 바로 그 가판대가 나오더군요. 23번째 쥐 그림을 그리려다 붙잡힌 곳이죠. 6개월이 지나 못다 그린 쥐 그림을 다시 그리는 마음으로 쥐 포스터를 들었습니다. 6개월 전에는 행인의 신고로 붙잡혔는데, 이번에는 행인에게 인증샷을 부탁, 공모자로 만들었습니다. G20회의로 대변되는 ‘개발’(development)과 ‘공안’(police)의 논리로 파괴되는 삶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느 삶이 더 크고 더 작겠냐마는 4대강 공사로 인해 파괴되는 삶의 크기는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5월 첫날 고작 90mm의 봄비에 4대강 공사 남한강 이포보, 강천보가 터졌습니다. 일주일 후 5월 8일 낙동강 구미보도 터졌습니다. 그 때문에 구미시 해평면 광역취수장 인근의 가물막이가 유실되면서 수위 저하로 구미, 김천, 칠곡군 생활용수 공급이 5일 넘게 중단되었습니다. 사람의 피해가 그럴진대 강 생명체들의 삶은 얼마나 파괴되었을까요. 그야말로 은폐된 재앙의 보가 ‘터졌습니다’ 세계가 4대강 참사를 주목합니다. 그 참사의 주범들을, WE ARE WATCHING YOU!
지난 5월 2일 인권·자유 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2010년의 세계 언론 상황을 평가한 ‘2011 언론자유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를 ‘언론 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 자유국’으로 강등했으며, 그 이유로 “한국 정부의 검열 증가와 함께 언론매체의 뉴스와 정보 콘텐츠에 대한 정부 영향력의 개입이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1990년에 ‘언론 자유국’이 된 우리나라가 2011년부터는 ‘부분적 언론 자유국’이 되었으니... 왜 그렇게 되었는지 여기 우리 주변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그 하나의 사례를 전합니다. 지난 4월 22일 G20 그래피티 사건 3차 공판이 있었습니다. 3차 공판에서 검찰은 두 피고인에게 각각 징역 10개월, 8개월에 해당하는 구형을 내렸습니다. 검찰은 G20이라는 대대적인 국가 행사를 조직적, 계획적으로 방해했으며 G20을 응원하는 국민의 꿈과 희망을 박탈했다며 구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쥐 그림’ 그래피티의 당사자인 박정수의 부인 황진미의 3차 공판 방청 글과 이 사건을 지켜보는 의견서와 탄원서를 싣습니다. 이 글들은 Weekly 수유너머 http://suyunomo.net/ 에 실린 것을 전재한 것입니다. -라라와복래 그래피티 3차 공판기 – 와우 개콘 돋는 밤! - 황진미4월 22일 서울 지방법원 5시, G20 포스터 쥐 그림 사건의 3차 공판을 보러 갔다. 쓰나미급 연예 스캔들이 터진 마당에, 과거 서태지의 열혈 팬이자, 정우성의 기럭지를 몹시도 사랑하는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인터넷 기사를 클릭질하거나 지인과 전화로 수다를 떨며 깜놀 가슴을 마사지하고 있을 시간에 내가 친히 재판정까지 나선 이유는, 피고가 나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서태지-이지아 커플도 아니고, 듣보잡 부부가 못 밝힐게 뭐 있나. 그렇다, 쥐 그림 박정수와 영화평론가 황진미는 법적ㆍ사실적 부부이다. 앞서 두 번의 공판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양측 심문과 구형이 3차 공판으로 미뤄진 상태여서 약간의 기대가 있긴 했지만, 이런 불세출의 쇼를 구경할 줄 어찌 알았으랴! 80분이 넘게 펼쳐진 이번 공판은 코미디 애호가인 나에겐 빅 재미를 선사한 개그 콘서트 번외편 공개방송이자, 최고의 코미디를 보면서도 절대 웃으면 안 되는 변태스러운 규칙으로 고문당하는 흔치 않은 체험이었다.
출석 확인과 더불어 검사의 심문이 시작되었다. “피고는 작년 10월 30일 롯데백화점 앞에서 G20 홍보물을 스프레이 등으로 훼손한 일이 있나요?” 하고 추상같이 물으며, 압수된 증거물을 떡하니 책상 위에 올려놓으신다. 인터넷 화면으로 익히 보아왔던 그 그림. 나도 실물로 보긴 처음이다. 오랜만에 실물 크기로 보니 아우라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푸핫” 웃음이 터진다. 평소 시사회에서 약간의 코믹 장면만 나와도 어김없이 큰 웃음을 터뜨려 다른 관객의 빈축을 사거나, 제작진들에겐 회심의 미소를 품게 하는 나로서는 정말이지 어쩔 도리가 없는 반사작용이었다. 판사가 근엄하게 주의를 주신다. “재판정에선 웃으면 안 돼요” 아차, 잘못하다간 법정소란 혐의로 감치처분을 받겠구나, 싶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방귀 참기보다 힘들다. 그 시각 피고석의 박정수는 자신의 답변보다 내가 또 웃어서 감치당하면 ‘애는 누가 보나’ 조마조마했더란다. “피고는 000, 000 등과 더불어 사전에 모의한 일이 있습니까?” “모의라기보다는 제가 그래피티 작업을 할 거라는 말을 한 적은 있습니다.” “피고 박정수는 000, 000 등과 더불어, 치밀한 사전 준비를 통하여 야간에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이, 세계 정상을 맞이하는 G20 행사에 계획적, 조직적으로 여러 장의 포스터에 쥐와 같이 불길한 존재를 그려 넣었습니다. 범행 도중 경찰에게 발각되자 마분지 그림틀, 스프레이 통, 장갑 등 범행 도구 일체를 두고 도주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이것은 통상적인 예술행위가 아니라 조직적 범죄행위에 해당됩니다.” 지루한 지난 줄거리 반복. 아, 검사가 생각하기에도 쥐는 불길한 존재가 맞구나. 불길해… 그나저나 범행 도구 한번 무시무시하구나. 뭐 그런 잡생각을 하다가 검사 옆 의자를 보니 서류 뭉치가 한 상자이다. 저따위 맥 빠진 심문을 준비하느라, 산더미 같은 서류를 읽었을 너도 참 욕본다, 저걸 일일이 만든 사무직 노동자는 또 얼마나 고달팠을까 생각하니, 원수를 사랑하고픈 마음이 절로 솟는다. 이어지는 변호인 측 심문. 의외의 사진을 스크린에 비추어 보여준다. “피고 박정수는 평소에도 주위의 생활공간을 버려진 물건들을 활용하여 꾸미는 일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연구실 주위의 작은 놀이터에 피고가 만들어 놓은 것들입니다. 피고, 이건 무슨 의미로 만든 거죠?” 화면엔 박정수가 요즘 꼭두새벽에 일어나 공들여 가꾸고 있는 일명 ‘갤러리 텃밭’이 나온다. 피고는 변호사의 질문을 받자, 여유작약 작품 설명을 해댄다. “저것은 아이들이 펜스를 위험하게 넘어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여수장우중문 시를 패러디하여… 저것은 버려진 변기에 수련을 심은 것으로 뒤샹의 변기에서 착안하여 ‘마농의 샘’이라고 제목을 붙였으며… 저것은 남자 청바지에 흙을 채워 고추를 심고 ‘남자의 부푼 꿈’이라고 제목을 붙여…저것과 한 쌍이 되는 작품으로…여자 청바지에 토마토를 심고 ‘여자의 열매’라고 제목을… 그러니까 남자의 꿈이 열매를 맺어서…” 이거 뭥미. 웬 아기자기 음담패설 듣는 작품 설명회인가. 그런데 또 듣고 있자니, 묘하게 몰입되네. 어디 또 해봐 싶은데 변호사가 대뜸 끊고, “이런 작업에 대해 최근 구청에서 조사가 나왔지요?” 묻는다. “네… 동네의 소외된 아이들과 같이 작업을 하여, 아이들도 재미있어 하고 정서에도 도움이 되는데, 구청에서 허가되지 않은 설치물이라 위험하다며 당장 철거를 하라고 해서, 제가 담당 공무원을 만나…”
“다시 포스터로 돌아가서요, 저기에 왜 쥐를 그려 넣은 거죠?” “그래피티 작가 중에 유명한 뱅크시 작품의 상당수가 쥐 그림입니다. 그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고, 도안도 쉽게 따왔습니다. 쥐는 또 G20과 발음이 같고요. 당시 G20 행사를 준비하면서, 정부가 88올림픽 때처럼, 외국인을 만나면 인사를 하라느니, 40조의 국가수익이 난다고 하며 마치 저 행사만 끝나면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양 너무 엄숙하게 홍보하고 있었고, 저는 그에 대해 제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내어 풍자적인 의미로 가필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에 해당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나요?” “그래피티 작업이 일종의 서브컬처로, 길거리 비보잉처럼 경찰과 마주치는 일이 생길 수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벼운 훈방 정도로 처리될 줄 알았지,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70시간이나 유치장에 구금이 되고, 이렇게 재판을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공공물을 훼손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공물 즉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닌 모두의 재산인 저 포스터에 시민의 일원으로서 일종의 참여를 한 것입니다.” 검사는 이런 분위기 참을 수가 없다는 듯, 아까보다 훨씬 높아진 언성으로 묻는다. “놀이터에 화분을 설치했다 치울 수 있는 것과는 달리, 포스터의 쥐 그림은 분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명백한 훼손이 아닙니까? 그리고 놀이터에 넘어다니지 말라는 의미의 설치물을 만드는 것은 놀이터의 취지에 맞지만, 이 포스터에 불경한 쥐를 그려 넣은 것은 포스터의 취지에 반하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주민의 신고로 체포되었는데, 그들이 보기에도 이것은 예술이 아니라 범죄라는 증명이지 않습니까?” 정곡을 찌르는 질문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고 득의양양해하는 검사와는 달리 피고의 답변은 시큰둥하다. “글쎄요. 관의 입장은 둘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던데요. 이것은 관에서 설치하고 홍보하는 것이니, 민은 이의를 제기하거나 어떠한 다른 것도 덧붙이지 말고 그냥 설치해준 대로 이용하고 홍보하는 대로 따르라는 것입니다. 저는 거기에 제 나름의 의견을 유머러스한 예술의 방식으로 표현하여 시민적 참여를 한 것이구요. 그리고 당시 신고한 주민이 시민사회 전체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검사의 분노 게이지가 급상승했는지 거의 샤우팅 수준으로 외쳐댔다. “피고는 예술을 운운하면서, 예술행위를 법보다 우위에 놓인 새로운 입법자로 간주하며, 불법적 방법으로 의사표시를 하였습니다. 그리곤 뱅크시의 권위에 기대어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뭐 이런 뜻의 말인데, 검사 스스로 말을 하다고 꼬여서, 알아듣기 곤란한 이상한 문장이 되어버렸다. 유감스럽게도 그 괴상한 비문을 정확히 옮기진 못하겠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예술이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는 다른 차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법의 기준이 아닌 시민사회적 기준에서 용인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한 2년 전엔 공영방송 KBS에서 그래피티를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있었구요. 서울시 디자인 사업을 홍보하는 포스터에 재미있게 말풍선을 집어넣은 친구들에게도 천만원의 벌금을 물리겠다는 으름장을 놓긴 했지만, 처벌되지 않았던 예도 있구요. 그리고 제가 뱅크시의 권위에 기댔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요, 뱅크시가 영국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그래피티 작가이긴 하지만, 기존 사회나 예술계에 어떤 권위를 가진 존재는 아니고요. 저는 다만 뱅크시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저의 작업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이때 판사가 개입하였다. “피고가 쥐를 그려 넣음으로써 저 포스터를 원래 그린 사람의 예술작업이 침해됐다는 생각은 안 하나요? 그리고 피고가 쥐를 그려 넣은 것처럼, 또 누군가는 저기에 코끼리를 그려 넣는다거나 하면 본래의 포스터로서의 가치가 상실되어 버릴 텐데, 그것은 공공물의 훼손이 된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놀이터에도 피고처럼 또 다른 사람들이 모두 무엇인가를 설치하겠다고 하면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겠어요? 그리고 뱅크시가 아직도 익명으로 활동을 하는 것은 그것이 범죄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요?” 판사의 질문은 나름 신선했다.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이라고 말하던 칸트 식으로 사고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판사가 말한 상황을 상상해보더라도 과히 나쁠 것 같진 않다. 물론 그런 장이 열린다고 해서 모두가 뭔가를 그려 넣거나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능력이나 욕구가 되는 사람들이 그런 행위를 할 것이요, 적당한 자정적 도태 과정을 거쳐 걸러질 것이다. 왜 제재가 없으면 무질서가 온 세계를 뒤덮을 것이라 생각하지? 왜 질서는 관의 강제에 의해서만 유지된다고 생각하지? 그러니까 법의 논리는 ‘공공(public)=관(government)’으로 사고하는 것이고, 박정수가 쥐 그림이나 갤러리 텃밭을 통해 제기하는 문제는 공공을 시민(civil) 자율의 차원에서 사고한다는 정치철학적 의미가 있구나, 뭐 그런 상념에 빠져 있는데, 피고가 답변을 한다. “세계 최고의 경찰력과 CCTV를 보유한 영국에서 뱅크시가 계속 활동을 하는 것은, 영국사회가 그를 잡지 못해서가 아니라 잡지 않기 때문입니다. 뱅크시가 익명을 유지하는 것은 범죄성 때문이 아니라, 그래피티라는 작업이 지닌 게릴라적인 성격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고, 또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소유하고 판매하는 식의 작가가 되길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공공성으로 작품을 시민사회에 돌려주고 싶어 하는 것이고, 또 쓸데없는 유명세로 성가심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겠지요.” 오호, 내 남편이 언제 뱅크시에 대해 저렇게 공부를 많이 했나, 신통방통해하는 찰라 검사가 최대한 언성을 높여 말한다. 이 법정에서 자꾸만 뱅크시가 언급되는 것이 이상한 술수에 말려드는 느낌이 든다는 듯 아주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이 포스터를 보십시오. 청사초롱은 예부터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쓰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이 청사초롱을 마치 쥐가 들고 있는 것처럼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원래 포스터에는 누가 청사초롱을 들고 있는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누구인지, 누구여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G20 대회를 통해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국가의 번영을 이루겠다는 우리 국민들, 우리의 아이들이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피고 박정수는 우리 국민들과 아이들로부터 청사초롱과 번영에 대한 꿈을 강탈하였습니다. 이런 피고인 박정수에게 징역 10개월을 구형합니다. 함께 범행을 사전에 모의하고 현장 부근에서 박정수와 연락을 취했던 피고 000에게는 징역 8개월을 구형합니다.” 검사는 목소리가 갈라져 음 이탈이 될 정도로 열변을 토하였다. 손발이 오글거리면서도 뭔가 참 알 수 없는 감흥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뭐지? 쥐가 놓인 그 자리, 선진국으로 도약, 국가의 번영, 아이들의 꿈, 강탈, 그리고 뭐 뭐 징역 10개월? (말이면, 다 하냐?) 아, 검사는 정말로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을 믿는 것인가, 아니면 믿는 척 연기를 하는 것인가. 본래부터 수사과정을 통해 악감이 쌓인 수사검사도 아니고, 수사검사가 올린 서류만 보고 공판을 하는 공판검사에게 저런 종류의 분노는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이데올로기적 확신? 그런데 검사는 지금 쥐 그림이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는 논박을 하는 중 아니었나? 하지만 저 검사의 말보다 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말고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용납할 수 없으며 이를 표현하면 범법행위가 된다는 뜻? 와… 저 장면을 그대로 찍어서 동영상을 유투브에 올린다면 서태지 스캔들과 함께 검색어 순서를 다퉈 볼 수 있었을 텐데, 아깝다. 누군가 <100분 토론>에 시민논객으로라도 나와서 저런 논리와 말투로 웅변을 해댔다면 다음날 ‘병림픽 스타’로 급부상했을 텐데. 가만, 이걸 단편 극영화로 재현을 해보면 어떠려나. 그러면 윤성호 감독의 <우익소년 윤성호> 같은 블랙코미디가 되려나. 이런 장면을 장편 극영화에 삽입을 하면 어떨까. 누군가 그렇게 영화를 찍으면 나 같은 평론가로부터 검사를 너무 유치하게 그림으로써 첨예한 정치적 갈등을 검사의 인격 문제로 환치시키며 논의를 저열하게 축소시켜버렸다며 욕 얻어먹기 딱 좋은 설정 아닌가. 역시 현실은 영화를 압도하는 구나. 뱅크시의 공공예술이 어떻고, 공공성과 시민적 참여가 어떻고 하는 수준 높은 예술적 정치적 담론이 이 자리에는 참 어울리지 않는 뻘소리였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그러니까 여기는 G20으로 선진국이 되어보려 안달을 해대는 후진국 대한민국이 맞구나 하며 정신이 번쩍 나는 것이었다. 판사가 “피고, 최후진술하세요.” 진행을 했다. “포스터에 대해서건 텃밭에 대해서건 제 행위에 대한 관의 반응은 한 가지입니다. 국가가 하는 일에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주는 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포스터에 쥐를 그려 넣은 행위가 징역 10개월에 해당된다니, 법 앞에 선 일반인으로서 몹시 당황스럽고…… 겁이 납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것도.” 잉?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앞으론 범법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반성인가, 아니면 너희가 그 따위이면 나도 그만두겠다는 냉소인가? 내용상 반성인데, 말의 형식은 이상하게 삐친 것 같고 뭔가 달래거나 붙잡아야 될 것 같은 묘한 여운을 남기는 말이다. 판사는 저 말을 반성으로 알아들으려나, 아니면 뭐 꼭 다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고… 왜, 더 해보시지, 이거 섭섭한걸, 하고 받아들이려나. 선고는 5월 13일로 미루어졌다. 법정 바깥으로 나오니, 그동안 억지로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른 이들은 징역 10개월을 구형받았는데 뭐가 좋으냐고 묻는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웃긴 걸 웃지 못하게 하는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생체반응이 한참을 갔다. 우와. 저기서 일하는 속기사나 질서요원은 웃고 싶어서 어떻게 한다니. 복남씨 말씀에 참으면 병 된다는데. 검사는 어떻게 웃지도 않고 쥐 그림을 똑바로 가리키며 “번영된 국가를 향한 아이들의 꿈을 강탈…” 어쩌고 하는 대사를 자기 확신에 찬 듯 말하며 심지어 완벽한 분노 크리를 탈 수 있을까? 웃기면서도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참 안됐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인 일인가. 웃자고 한 짓에 죽자고 매달리며, 그것도 벌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건에 한 상자 분량의 서류 뭉치를 뒤적이며 날콩 씹는 쌩소리를 해대는 검사도 참 3D 업종이구나 싶은 측은지심이 밀려오는 것이다. 집에 오니 지하철 성추행 현행범이 현직 판사라는 뉴스가 나온다. 이해가 갈 만도 하다. 그토록 인간의 성정을 억압한 작업환경에서 하루 종일 소외된 노동에 시달리며 오로지 법의 잣대 외에는 다른 가치를 생각지 못하는 판검사들이니, 욕망 역시 자연스럽게 발산되지 못하고 금기에 대한 일차적 위반에 집중되어, 퇴폐 성접대를 받거나 지하철 성추행을 향하는 것이겠지. 과연 억압은 변태를 낳는구나. 60년대 고물상을 하다가 장물취득 혐의로 법정에 섰다는 나의 부모님은 판검사의 위엄에 감명을 받아, 천한 장사치로 살지 말고 판검사가 되라고 자식에게 가르치셨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어도, 발랄한 예술하며 살아라. 소외된 판검사 따위 될 생각 절대 하지 말고.” 의견서/ 공적인 영역에 대한 한국의 가혹한 공안을 중단하라 -켄 카와시마(토론토 대학 교수)토론토 대학에서 일본과 한국의 근대사를 연구하는 교수로서, 그리고 서울에서 힘들게 일하며 살고 있는 가족과 친구를 둔 사람으로서, 나는 지난 G20 행사에 대해 자신의 비판적 견해를 패러디 기법의 그래피티로 표현했다고 박정수와 최**을 기소한 것에 유감의 뜻을 전한다. 이 두 사람의 기소는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나는 한국의 경찰, 검찰, 법원이 생각하는 것처럼, 박정수와 최**의 그래피티가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훼손한 의미가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 그래피티가 뭔가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한국사회에 공적인 비판정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희망이다. 만약 한국 정부의 이미지가 누군가에 의해 훼손되었다면 그것은 그들의 사소한 낙서를 기소한 검찰과 법원이다. 공공 홍보물에 그래피티를 했다고 기소하고, G20 반대 시위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안(public security)과 국가 안보의 이름으로 공적 영역의 이미지 교류까지 탄압하는 공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때 ‘공안’이란 결국 G20의 실체, 즉 전 세계 노동자들의 착취를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국제 금융집단들의 회의를 비판하려는 목소리를 억누르고 범죄시하는 정치적 기회로 이용될 뿐이다. 박정수와 최**의 낙서가 기소되었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의 법적, 억압적 기구들이 얼마나 병적으로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점은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란 공안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병적인 치안화(policing)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명박이 쥐처럼 생겼을 뿐만 아니라 유해동물처럼 행동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박정수와 최**에 대한 이번 기소는 이명박 정부에서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이명박 정부는 경찰행정과 치안유지법을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1987년 민주화 시위 이전 상태로 한국사회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박정수와 최**의 기소는 이명박 정부가 87년 이전 군사독재보다 결코 못하지 않게 일상생활을 군사화함으로써 역사적 퇴행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권력을 가진 자들은 ‘공안’에 관한 수많은 신자유주의적 상투어들로 경찰 속에 숨어 자신의 이익을 누리고 있다.
G20 ‘쥐벽서’ 사건에 대한 탄원서 -이창동(영화감독)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저는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창동입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표현의 자유를 정신적 양식으로 삼아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의 영화감독으로서, 그리고 한때 문화관광부 장관이라는 중책을 맡아 문화예술 창작을 고취시키기 위한 행정의 책임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이번 세칭 ‘G20 정상회의 포스터 쥐 그림 사건’으로 기소된 박정수 피고인에 대한 법적 처리가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척도, 예술적 방법에 의한 풍자와 비판에 대한 관용과 이해라는 중대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여 재판장님의 현명하고 관대한 처분을 호소하기 위해 이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피고인 박정수는 국문학 박사로, 대학에서 교양국어와 환상문학 등을 강의하며,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지젝의 저작 등 다수의 서적을 번역하였고,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등을 집필한 인문학자입니다. 사회 참여도 활발하여,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한 ‘미신고 장애인시설 인권 실태조사’ 사업과, 교도소 평화인문학, 지역도서관 인문학강의 등에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장애인 야학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플랜코리아’와 ‘세이브더칠드런’ 등 아동복지단체에 6년째 후원해 온 민주시민입니다. 현재 지역사회에서 초, 중학생들과 더불어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으며, 누구보다 육아와 가사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성실한 가장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박정수가 G20 홍보물에 그라피티 작업을 하여, 비록 공용물건 훼손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였음이 인정되지만, 이는 사회적으로 관용되는 예술의 범위를 확장하여 표현의 자유를 높이고 우리사회를 더욱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일이었음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G20 정상회의는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박정수의 행위로 인해 특별히 G20 대회가 방해된 바가 없으며 공공의 재산상의 손실도 50만원 정도로 미미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박정수의 행위는 국민들에게 풍자적인 웃음과 해학을 제공해 주었을 뿐, 어느 누구에게도 심대한 피해를 입히지 않았으며, 국가의 위신을 실추시킨 바도 없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그라피티는 이미 세계적으로 수십 년 전부터 새로운 예술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것이 생성되게 된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매체의 특성상 일정한 도발성과 기존권력에 대한 풍자와 비판, 그리고 ‘허가받지 않은 장소’에 그려진다는 위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박정수가 제작해서 유통한 몇 점의 그라피티도 이러한 매체의 속성을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번 박정수의 표현물에 무거운 형벌이 가해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성숙도,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예술적 창의성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깊이 헤아려주시기 바라며, 피고인 박정수를 선처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