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글의 적을 적겠다. 좀 풀어쓰자면, 내가 글을 쓰는 데 방해하는 것의 열거라 하겠다. 음. 보통 이런 ‘~의 적’이라는 종류의 글에는 필연적으로 붙는 것이 있다. 바로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 열의 일고여덟은 봤던 것 같다.
좀 겸허하게 표현하자면, 외부의 적은 없다. 한 번 나의 생활과 글을 돌아보자니, 외부의 적은 하나도 없었다. 다 내부의 적이었다. 내가 적이었다. 최소한 글쓰기에 있어서는 내가 강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쓰려는 열정(이것보다 더 센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이 없었다. 그저 서평을 의무적으로 쓸 뿐이었다. 이것 역시 대충이었다. 충분히 묵상, 생각하고 글을 쓰고, 글을 쓴 다음에 충분히 퇴고하며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래 이게 내 글이지, 그래 이게 내 스타일이야, 마음에 들어’ 라며 내 무릎을 딱 쳤던 기억이 없다. 한마디로 내가 드러나지 않는, 내 냄새가 없는, 그저 무미건조한 공산품같은 글만 있었다. 그것을 글이라 표현할 수 있다면.
일 년 전. 그래 딱 일 년 전이다. 로고스서원 시절, 난 행복했다. 다른 열아홉가지 불행한 일이 있었지만, 그 시절 글을 쓰는 것 한 가지로 행복했다. 일주일에 한 권씩 읽고, 한 편의 글을 쓰는 것. 처음엔 무지 힘들었다. 그래도 안 읽고, 안 쓰면 가서 할 말이 없기에 꾸역꾸역 썼다. 조금씩 재밌어졌다. 내가 글을 쓰니, 가서 할 말도 생겼고, 들을 말도 생겼다. 글에 조금씩 자신도 붙었다. 공산당박수의 영향도 컸고, 무엇보다 매주 글을 쓰는 것이 습관이 되었었나 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런 강제성이 없어서 그런가. 로고스를 마치며, ‘그래 책을 써야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낼 거야!’라며 가졌던 굳은 결의도 이젠 없다. 그저 ‘써야 되는데, 오늘은 피곤하니까(이외에 백 한 가지 다른 이유가 있다) 내일(모레, 다음 주,다음 달) 쓰자’며 합리화의 달인만 있다.
아예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었다. 나름 내 삶을 글로 쓰고 싶었다. 그래서 에세이 식으로 쓰고, 오마이뉴스에 올렸다. 반응도 괜찮았다. 메인에도 한 번 걸렸고, 원고료도 쏠쏠했다. 라디오작가에게 연락도 왔고(나가진 않았다), 팟캐스트 방송에도 출연(전화)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은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삶 스스로 만족하지 않는데, 그것을 글로 쓴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나는 정성을 다해 썼는데, 달린 비아냥거리는 댓글. 그게 또 싫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핑계삼아 그 글은 쓰지 않는다.
한 매체와 연결되어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여행기. 내가 좋아하는 여행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그것을 글로 푼다는 것. 가끔은 부담도 되지만, 재미있다. 나중에는 이런 여행 에세이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신춘문예를 노려도 봤다. 물론, 완성도 못했고,(한 4-5장 썼나) 당연히 응모도 못했다. 그렇지만, 소설을 쓰는 재미를 조금(아주 조금) 맛보았다.
이것이 일 년간 내 글쓰기의 이력이다. 이력치곤 참 빈곤하다. 이쯤에서 두 번째를 말하고 싶다. 글쓰기의 적 두 번째. 바로 목표가 없었다.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삶이 바쁘고 고단해서’라는 말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진부하다.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으며,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까 이야기했지만, 자꾸 미루기만 했다. 목표는 당연히 없었다.
지금은 생겼다. 우선 매일매일 조금씩 쓰는 것이다. 이제 4일 째 쓴다. 아침장사를 하고 나서, 9시나 9시반부터 3-40분이다. 이 시간엔 손님도 거의 없고, 내가 SNS나 인터넷만 하지 않는다면, 원고지 15장-20장 분량이 나온다. 쓰고 보니, 모닝페이퍼 같은 느낌이다. 나는 나만의 모닝페이퍼를 ‘잡기’라 명명했다. 일기(日記) 비슷하기도 하지만, 더 잡스러운 무언가가 첨가되기에 잡기라 한다. 말장난을 하자면, 생각을 ‘잡는’ 시간이며, 문장과 단어를 ‘잡는’ 시간이고, 최종적으로는 글을 ‘잡는’ 시간이다. 다양한 것(잡)을 적으며, 다양한 것을 잡는 것이다. 작가로서의 습작도 겸한다.
이것이 단기 목표라면, 중장기 목표는 이것이다. 전업작가. 기독교 쪽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작가가 되려면, 대부분은 ‘신춘문예’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물론, 요즘은 SNS를 통해 작가가 발굴되기도 한다. 그래서 올해는 신춘문예에 도전해 보려 한다. 그 올해가 또 내년이 될지도, 내후년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일단 도전해 봐야지 않겠나.
중장기 목표는 계속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 어떤 신문에 응모할지도 정하지 못했고, 어떤 작품을 써야 할지도 못 정했다. 하지만, 올 여름(아! 지금이 여름이구나)에는 확실한 주제를 잡고, 써 내려갈 것이다.
매일 ‘잡기’ 쓰기와 전업작가 되기! 이것이 일단은 내 목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참 노력할 것이 많다. 하지만, 작가는 나이 제한이 없기에 해 볼 만하다. 잡기도 마찬가지다. 잡기를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 내 안에 아직도 작가에 대한 마음이 있구나. 난 글을 쓸 때 행복하구나!’하는 것을 팍팍 느끼고 있다.
김훈, 이승우, 김탁환, 김성중, 이기호, 성석제, 윤대녕, 김영하, 김중혁, 김애란, 이장혁, 심상명, 편혜영, 한강, 황정은...
난 이들에게 빚을 졌다. 나중에 이들에게 밥을 살 것이다. 아니 내가 후배니 밥을 얻어 먹어야겠다. 그때, 내 이름으로 나온 책을 저들에게 주고 싶다. “당신 때문에 내가 작가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나. 적은 나니까, 나만 알면 된다. 내 게으름과 미룸, 열정없음과 그 외 수십 가지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갑자기, 김영하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말하다>에서 그랬다. 작가는 작가가 될 수 없는 수백 가지 이유가 있더라도, 꼭 되어야만 하는 ‘단 한 가지’가 있으면 되는 거라고. 이 말을 다시 한 번 머리에 새겨 본다.
2015년 6월의 마지막 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난 작가가 될 것이다!
첫댓글 쓰다보니, 연구원님들과 나누고 싶어서 부끄럽지만 올립니다^^ 퇴고가 거의 없어서 투박해도 양해를 ;;
무슨 말씀을... 어찌 지내는지, 그리고 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본능이 여전함을 보네요. 고마워요^^
@김기현 예 사부님 고맙습니다 ^^ 해답은 치열함인 것 같네요 . 삶에 대한, 글에 대한. 사부님의 삶도 글도 언제나 그러하고 발전하길 응원합니다^^
역시 큰 적은 멀리 있지않네요~그리고 좋은내면 고백에 ~ 박수를! 조급하지는 않지만, 멀리보고 걸어간다면 ...정말 답은 멀리 있지는 않을 듯 ~ 미씽 유~
온집사님 항상 고맙고 힘이 납니다^^ 저 역시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ㅎ 예~ 같이 멀리보고 걸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