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6월 17일 일요일 * 새벽 02시30분] 한계령.
- 새재사랑산악회 대원 42명을 태운 전원관광버스(기사 최영진님)가 한계령(寒溪嶺) 휴게소에 도착했다. 캄캄한 한밤중이다. 멀리 동해안 양양 시내의 불빛이 몇 개 떠올라 있을 뿐 사위는 검은 장막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서울에서 11시 20분에 출발했으니 세 시간 도 채 안 결려 도착한 것이다.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어둠의 고갯마루를 넘는 샛바람이다. 시원하다. 아니 시원하다 못해 한기(寒氣)가 느껴진다. 그래서 이 더운 여름에도 이름이 한계령(寒溪嶺)인가. 요사이 서울의 한낮은 연일 30℃를 상회하는 불볕더위였다. 낮의 더위와 차 안의 탁한 공기에 시달려 온 몸을 식힌다.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문득 오래 전에 유행했던 하덕규가 작사·작곡하고 양희은이 노래한 〈한계령〉이 머리에 떠올랐다.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버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어깨를 떠미네
그러나 노랫말과는 달리 우리는 이제부터 산을 올라야 한다. 운명처럼 여기까지 왔다. 세상의 하고 많은 아픔들을 가슴에 안고 나는 오늘 산을 올라야 한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가야 할 길을 찾아 멀고 험준한 산길을 열어가야 한다. 그리고 산의 정상에 올라서야 한다. 어차피 또 돌아올 수밖에 없는 길이지만...
[새벽 02시45분] 한계령 휴게소에 산행을 시작하다.
- 대원 40명, 저마다 이마에 랜턴 불을 밝히고 칠흑 어둠 속의 산길을 연다. 처음부터 가파른 계단 그리고 오름길, 금방 몸이 더워지고 땀이 흐른다. 얼마 안가 겉옷(파카)을 접어서 배낭에 집어넣고 하늘을 바라보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저마다의 광채(光彩)로 반짝이고 있었다. 아아, 별밤! 까만 밤하늘, 이마 위에 별들이 쏟아져 내린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 도시의 하늘은 별을 잃어버렸다. 얼마만인가. 아득한 세월 저편에서 잊혀져 간 소년의 꿈과 설렘을 안겨주던 그 여름밤의 은은한 추억... 생각난다. 시골집 마당의 들마루 위에서 어머니의 무릎에 베고 누워 별 바라기를 하던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렇듯 별은 변함없이 반짝이고 있는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밤길 산행은 계속되었다. 거친 숨소리와 대원들의 발자국 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휘젓듯이 몰아치는 밤바람. 그 바람결에 온 몸을 뒤채며 서로의 몸을 비비는 나뭇잎 소리가 우리들 이마의 굵은 땀방울을 쓸어가기도 했다. 몸이 뜨거워진 만큼 바람결이 더욱 상쾌하다. 기분이 좋다. 여름밤 야간 산행의 호젓하고 신선한 기분은 참으로 별다른 맛을 느끼는 향복(享福)이다.
[새벽 04시20분] - 설악의 주능 서북능선(갈림길)에 이르다.
-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며 1시간 30분 정도 치고 오르니 서북능선이다. 드디어 서쪽의 귀때기청봉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주능선에 오른 것이다. 능선의 갈림길 쉼터에 올라서니 멀리 동쪽 하늘이 벌겋게 물들어 있다. 길게 드리워진 붉은 기운이 가쁜 숨결을 몰아쉬며 올라온 산행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명(黎明)이다! 하늘이 열리고 있다! 얼마 안 있어 만산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첩첩산중 그 산너울이 조용히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야음(夜陰)을 물리는 웅숭한 빛의 촉수(觸手)가 험준한 산릉을 타고 뻗어오고 있는 것이다. 뒤떨어진 대원들을 기다리며 모두들 그 여명의 모습에 감탄하고 환성을 터뜨린다. 그리고 정겨운 사람들과 더불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서북능성의 질주]
- 날이 밝아오고 있다. 산길은 험악했다. 너덜지대의 크고 작은 바위들은 불규칙하게 모가 나고 그 품새가 날카롭다. 가파른 산길은 수없이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대원 여럿이 죽 이어서 걷는 사이, 날은 완연히 푸른 하늘을 열고, 그리하여 주변의 경관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능선 오른쪽은 남설악 지역이다. 그 기암절벽이 발아래 펼쳐지고 있었다.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 유월의 푸른 산 여기저기에 절경을 이루며 솟아있다. 고개를 드니 저 멀리 우리가 출발한 한계령 고갯길도 보이고, 건너편의 우람한 자태로 솟아있는 점봉산이 거대한 침묵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남으로 남으로 백두대간의 첩첩연봉들이 끝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남설악 조망터에서 끝청에 이르는 독주]
- 조망의 쉼터에서 뒷사람을 기다리며 머무는 잠간 사이 땀에 젖은 온몸에는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고 손끝은 시려오기 시작했다. 서희선 님과 남위숙 님을 비롯한 몇몇 대원들이 앞서 출발했으므로, 청송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추적(追跡)의 독주(獨走)를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길은 흙길이었다. 하아 발길에 닿는 부드러운 흙의 감촉이 좋다. 간간히 푸른 숲속에는 때늦은 철쭉꽃이 수줍은 듯 피어있었다. 이렇게 계절감을 상실하고 늦게 핀 것은 고산의 찬 기운 탓이리라. 사람 키 높이만큼 큰 산철쭉나무에 한두 송이 함초롬히 핀 꽃봉오리가 무척 외롭고 애틋하게 보였다. 모든 생명에게는 때가 있으니 그저 천문과 지리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혼자서 내닫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가는 길 군데군데에서 앞서 가던 다른 산악회 대원들을 제치고 나아갔다. 얼마를 갔을까. 눈앞에 불쑥 다가온 거대한 산봉 위로 둥실 해가 떠올랐다. 끝청의 턱 밑에 이른 것이다. 거기서 그 특유의 ‘은근과 끈기의 보법’으로 걸어가는 남위숙님을 만나고 이어서 가파른 오름길을 어기차게 뛰어올랐다. 끝청 산봉우리에 오르니 막 선착한 서희선님이 사방을 조망(眺望)하고 있었다. 해는 동쪽 하늘 위에 솟아올라서 따스하고 살가운 빛살을 뿌리고 있었다. 고산의 아침 공기가 차가운 탓인가 아침 첫 햇살이 따스한 느낌을 준다. 시공(時空)은 맑고 깨끗했다. 더없이 맑은 시계(視界)이다.
[끝청에서의 조망]
- 내설악의 장엄하고도 절묘한 풍광은 개결(介潔)했다. 초록빛 바다의 크고 작은 파도가 물결 치고 있었다. 연이은 산봉들의 모습이 정갈한 자태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서쪽으로 거대하게 솟아있는 귀때기청봉, 동쪽에는 중청 위에 올라앉은 하얀 기구의 기상관측대가 눈에 들어 왔다. 북쪽으로는 중청-소청의 산줄기에서 뻗어내려간 절묘한 기암연봉으로 줄달음치는 용아장성, 그 왼쪽 아래 깊은 수림(樹林)으로 아득한 골짜기로 이루며 뻗어가고 있는 것이 수렴동 계곡이다. 그리고 소청아래 용아장성이 시작되는 기암절벽 중턱, 작은 청기와 지붕의 봉정암이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다.... 잠시 고개를 돌려 그 오른 쪽을 바라보니 백두대간의 장대한 설악산 등줄기, 공룡능선이 온 몸에 초록색 비늘옷을 두르고 이른 아침에 깊은 숨결을 고르고 있었다. 이어지고 휘어지며 굽이굽이 돌아가는 공룡의 용태(容態)는 그야말로 용틀임 그것이었다. ‘장엄하다!’는 말만 속으로 되뇐다. 맑은 하늘아래 펼쳐져 있는 설악의 용자(容姿)가 아름답다.
- 오늘은 그야말로 하늘이 복청(福淸)이다. 천지가 이렇듯 청아하고 시공이 이렇게 맑고 투명하니 보아라, 저기 한 무더기로 용출(聳出)한 울산바위를 비롯하여 미시령을 안고 있는 마산봉, 그 너머에 향로봉이 우뚝하게 솟아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금강산 연봉이 수천 년의 침묵을 품은 듯 조용히 동해로 뻗어가고 있지 아니한가.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모두 선연하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맑게 씻은 소년의 얼굴이다. 유월의 설악산의 산봉들이 제 각각 자신의 정갈한 모습을 내세우며 고운 얼굴을 맞대고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었다. 생동감이 넘치는 산하의 모습은 그냥 보기에는 아깝다. 가슴에 산을 안고 힘겨운 등정의 노고를 감수하지 않고는 맛 볼 수 없는, 값진 복락(福樂)이다.
- 이렇게 끝봉에서 바라보는 내설악의 절경(絶景)과 백두대간의 장관(壯觀)을 어찌 필설(筆舌)로 다할 것인가. 온 몸으로 느끼는 뿌듯한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이 순간의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이 아름다운 산하에 대한 평소의 절절한 애착이었고... 30여 년 동안의 하고 많은 산행 경력을 통해서 얻어진 마음의 화두(話頭)는 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산을 안고 산에 오르고 산을 지고 산을 내려오면 어느새 나 또한 하나의 산이 되어버리는’ 그런 경지(境地) 말이다.
[아침 06시 40분 중청대피소 도착]
- 중청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06시 40분이었다. 한계령을 출발한 후 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뒤 따라오는 대원과의 간격이 꽤 있을 것이다. 산장은 많은 등산객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안이나 밖이나 사람들로 넘치고 또 분주하게 오고갔다. 바람 또한 세차게 불어 먼지가 어지럽게 날리기도 했다. 바깥에서는 식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곧 이어 당도할 대원들을 위하여 자리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서희선·남위숙님과 더불어 산장 안 마루 바닥 구석에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아, 앞서 식사하고 가는 사람들의 자리를 우리 영역으로 확보해 나갔다. 청정한 새벽 산길을 달려올 때의 그 당당한 호기와는 달리,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마루 바닥에 좌판을 펴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자니 그 모습이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붐비다 보니 산장(山莊)은 온통 바로 난장(亂場) 그것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 수만큼 사람값이 줄어드는 법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평소 산행에서 서늘한 나무 그늘, 전망이 좋은 암반에 앉아서 식사를 할 때는 그것 자체가 우아한 자연적 풍류였다. 그러나 오늘은 이런저런 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속속 도착한 대원들과 더불어 그런대로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식사하면서 환담했다. 후미의 대원이 도착해서 식사를 마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해가 중천에 떠서 햇살이 뜨겁다. 오전 09시 정각을 기하여 인원을 점검한 후 중청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호산아(好山兒), 대청봉(大靑峰)에 서다]
- 대청봉은 설악산 주봉(主峰)이다. 남한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1,708m)으로 내·외설악의 700여 개 산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다. 정상에 서서 천하를 조망한다. 공룡능선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이 내설악이요 동쪽이 외설악이다. 동북쪽으로는 화채능선이 치고나가 권금성에 이르고, 공룡능선과 화채능선 사이의 깊은 골짜기가 천하 절경의 천불동 계곡이다. 고개 들어 동쪽을 바라보니 속초시가지와 동해바다. 그리고 그 바닷가에 인접해 있는 양양공항까지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고개를 돌려 어디를 보아도 사통팔달(四通八達), 확 트인 시야가 쾌청하고 선명하다. 그야말로 오늘은 하늘이 대청(大靑)이고 산색이 대청(大靑)이고 기분 또한 대청(大淸)이다. 설악산을 수십 차례 등정했지만 이렇게 시계가 투명하고 산뜻한 날은 오늘이 처음이다. 늘 구름이 끼어 있거나 뿌연 안개가 드리워졌거나 눈보라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악천후를 겪기도 했다. 삼대(三代)가 덕을 쌓아야 명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더니 우리 대원의 덕성(德性)이 거기에 이르렀음인가. 복 받은 날이다!
- 산정(山頂)에는 투박한 바윗돌에 굵은 글씨로 새겨진 ‘대청봉’이라는 한글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은 단연 만인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이 빗돌이 대설악의 정상을 가리키는 기념비이고 등산객에게는 자기가 거기에 올랐다는 증표가 되는 것인 만큼 개인이든 단체든 한 방을 아니 박을 수 없는 곳이다. 환호하는 새재사랑산악회 대원들의 얼굴도 저 유월의 산빛처럼 싱그럽다. 도솔봉등반대회 호산아팀의 선두주자인 지우정님은 노익장(老益壯)의 끈기와 멋을 지니신 분인데, 설악산 대청봉 등정은 오늘 처음이라고 했다. 선생에게는 참으로 뜻 깊은 산행이다. 이 대목에서 한 말씀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배님은 오늘을 기하여 진짜 산꾼으로서 머리를 올리셨다’고 격려했다. 환하게 웃는 얼굴빛이 소년처럼 순수하여 보기에 좋았다.
[오전 09시 30분, ‘오색(五色)’으로의 하산]
- 대청봉 중천에 뜬 해가 독기를 뿜어내듯 뜨거운 불볕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하산은 예정대로 오색이다. 정상 부근의 떨기나무 지대를 내려오니 여름 특유의 활엽수가 숲의 터널을 이루고 있다. 햇빛은 뜨거우나 그늘은 서늘하다. 설악산 하산 코스로는 제일 짧은 거리(5km)이지만 그 경사면 워낙 가파르기 때문에 발목이나 무릎의 관절에 매우 큰 부담을 준다. 최근 국립공원 정비 사업의 하나로 가파른 곳곳에는 철제 사다리와 나무 계단을 가설해 놓았고 약간 완만한 곳은 자연석 돌로 계단 길을 정비해 놓았는데, 몸무게가 무겁게 실리거나 하체 관절이 좋지 않은 분들에게는 이 하산 길이 여간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사실 건강한 사람에게도 급전직하(急轉直下)의 이 오색 길은 참으로 길고 험난하다. 그래서 우리 고향말로 아주 ‘숭악한’ 산길이다. 사실 이름에 ‘악(嶽 혹은 岳)’자가 들어가는 산은 돌과 바위가 많은 험산이다. 글자를 풀어 봐도 ‘악(嶽)은 ’지옥(地獄)같은 산(山)‘이 아닌가. 그러나 사람에게는 험산이지만 그 경관은 아름다운 명산이다. 남한의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이 설악산(雪嶽山)을 비롯하여, 사다리병창의 험로를 끼고 있는 영서지방의 최고봉인 원주의 치악산(雉嶽山), 경기도의 최고봉인 가평의 화악산(和岳山)과 경기도의 금강산이라고 일컬어지는 가평 운악산(雲岳山), 그리고 한양(서울) 남천(南天)에 불같이 솟아있는 근골(筋骨)의 관악산(冠岳山)이 다 그 이름값을 하는 산들이다. 갈래로 말하면 이런 산을 골산(骨山)이라고 한다. 내려오는 곳곳에 고통스런 표정으로 겨우겨우 발을 내딛으며 내려오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힘들고 매우 고통스런 표정이다. 우리 《새재사랑》의 선두 그룹은 청송대장을 앞세우고 거침없이 고도를 낮추며 아래로 아래로 내리꽂았다. 어차피 시간차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미리 가서 필요한 일들을 하기 위함이었다.
- 호산아도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아프고 무릎 관절에도 은근한 통증이 스며 왔다. 한 시간 동안 내려오니 오색으로 흐르는 계곡이다. 하산 길의 중간지점. 계곡에는 몇 몇 여성 등산객들이 발을 담그고 산중 망중한(忙中閑)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와아. 시원하겠다! ...’ 그러나 우리 일행은 멈추지 않고 계곡의 철제 다리를 건너 그대로 산행을 계속했다. 조금 내려오니 왼쪽의 깊은 계곡에는,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반석 위에서 한 줄기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설악 폭포’, 숲 속에 감추어진 비경이다. 물소리가 청랑하고 시원하다. 우리가 걷는 산길은 수림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뜨거웠다. 목이 마르고 다리가 아프다. 플라스틱 물통의 미지근한 물마저 바닥이 났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니, 문득 십이선녀탕 그 순수 극치의 알탕(?)이 간절했지만 그것이 어디 가당한 일이겠는가. 꿈꾸는 것만으로 마음을 달랜다. 산비알을 돌아 등성이 하나를 넘어 오색 마을이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쉼터에서 잠시 휴식한 후 그대로 하산 길을 재촉했다. 마지막까지 산의 경사면은 인정사정없이 가팔랐다. 노자(老子)가 자연을 두고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던가. 설악의 매정한 성깔을 몸으로 느끼며 ‘오색 등산로 입구’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5분이었다. 대청을 출발한 지 2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결국 설악산 계곡에서는 그 좋은 ‘물맛’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가슴으로 받는 청정하고 신선한 청산의 바람결이 더운 가슴을 식히고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온몸이 아프도록 절절하게 아름다운 산행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오늘 또 하나의 산이 되었다.’ 장엄 독백의 버전으로 말하면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산의 정상에서는 호연지기(浩然之氣)로 가슴이 벌어졌고 산을 내려와서는 모든 것을 이룬데 대한 기분으로 기고만장(氣高萬丈)이다.
- 고락(苦樂)을 같이 하면서 더불어 땀을 흘린 동지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밝고 아름답다. 묵은 땀을 흘려버리고 청정한 산의 정기(精氣)를 흠뻑 받은 탓이리라. 관광버스 주차장에 내려와 후미 대원들이 하산을 완료하여 버스가 출발하기까지는 2시간 30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늦은 사연인즉, 여자 대원 한 분이 발목을 삐끗하여 내려오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녀를 도우며 내려온 황구 부대장님 등 두어 분의 노고가 컸다. 멋지다!
첫댓글 참!! 생생하게 쓰셧네요....지금도 그날의 환상적인 산행 중 인것 같아요...잘 읽고 갑니다
호산아님.... 대청봉 책 한권 읽은 것 같습니다......생생한 대청봉길 잘 읽고 갑니다...
룰루랄라 산을 사랑하시는분들은 모두 시인갖고 때론 신령님 갖아요 산행후기 감사합니다 룰루랄라
호산아님의 산행기는 감칠 맛이 넘치는 것을 느낍니다..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은 설악에 가 있더군요.. 워낙 장문이라 어제 퇴근하면서 전철에서 읽었지요.. 산행기에 감동했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호산아 조장님! 풍부한 감수성, 산에 대한 남다른 지식 등이 돋보이는 명문이네요-- 따로 저장해서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그리고 지난 수해로 헝클어진 한계령 주변지역을 보노라니 가슴아프더군요!
못간게 아쉽긴 하지만 상상하며읽으니 설악산 같다온 기분이예요.내년에 또가겠죠. 기다려 지내요.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