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8일- 요한복음 4:1-14
잠언 7:1-4/ 찬송 526장
사마리아 여자에게
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십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해 가는 길은 당시 여러 경로 중에서 지름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 요한보다 더 많은 세례를 베풀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성공은 바리새인들에게는 위기감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장차 예수님과 바리새인 사이 긴장과 압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른 곳은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입니다. 그곳은 조상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 세겜과 가까웠습니다(창 48:22). 사마리아인은 요셉의 두 아들(에브라임, 므낫세)의 후손입니다.
그곳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피곤하신 예수님은 우물 곁에 앉아 쉬셨는데, 때는 여섯 시쯤(정오)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간 새,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려고 우물로 나왔습니다. 보통 사람은 물 긷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7)고 하시니, 여자가 반문합니다.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은 당시 풍속을 거스르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보이신 행동은 부정(不淨)의 법에 개의치 않는 자유로운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갈등하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상종하지 않았는데, 게다가 상대는 사마리아 사람 중에서도 여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를 통해 장벽을 하나씩 허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두 가지를 일깨우십니다. ‘하나님의 선물’과 ‘물을 구하는 자의 정체성’입니다.
그때까지 여자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앞에 선 유대인은 단지 물을 구하는 나그네가 아니라, 생명의 물을 주실 분입니다.
그곳은 야곱의 우물로, 조상 야곱은 그들에게 생명의 젖줄을 유산으로 남겨주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에게 당신은 조상 야곱보다 더 크냐고 묻습니다.
여자는 우물에서 스스로 생수를 긷기 어려울 예수님이 조상 야곱보다 결코 위대할 수 없다고 장담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자에게 생수를 주실 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4).
야곱의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한 해결책입니다. 그 생수는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과 영원한 관계를 맺으십니다.
샬롬샬롬
☀ 다시 봄
1) 사마리아인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후손으로, 팔레스타인 중부 서쪽 지역에 살았습니다. 주전 722년, 북왕국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여러 이방 민족을 이곳으로 이주시켰습니다(왕하 17:24-41).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피가 섞인 사마리아인을 자기 동포로 인정하지 않고, 배격하는 배경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사마리아 오경(율법)을 갖추고, 그리심 산에서 제사를 지냈지만, 유대인들은 그들을 부정하게 여겼고, 철저히 교류를 끊고 살았습니다. 완전한 단절입니다.
☀ 새겨 봄
1) 예수님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경계를 허무십니다. 역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마리아인의 혼혈과 오래도록 서로 반목해온 적대감도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은총 앞에서 둘 사이의 의와 불의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스스로 우월하다는 유대인이라고 해서 죄인으로 정죄 받은 사마리아인보다 하나님의 은총이 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모두에게 구별과 차별이 없습니다.
첫댓글 주님 세상을 살아갈 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별과 차별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 예수님을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모두에게 구별과 차별이 없습니다. "
인종주의가 생겨난 이유는 식민지역의 가난한 백인과 원주민들 사이에 분열을 초래하여 소수의 부유층 백인에게 저항하지 못하게 하려는 이유였습니다. 구별과 차별은 사회를 둘로 나눈것 같지만 그것은 철저한 정치적 전략이라는 분석입니다. 가난한 갈릴리 사람들과 함께 하며 종교 귀족들을 비판했던 예수님은 차별과 구별의 정치적 장난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그여자 사마리아인, 이중의 차별을 겪는 여자의 이야기와 연결함으로서 차별을 없애버립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 저에게도 목마르지 않을 주님의 생수를 주옵소서.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의 은총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