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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파노라마
“잠언”하면 어떤 선입관을 갖게 되는가? 격언(格言)집이나 명언(名言)집이라는 관념입니다. 그런데 “잠언”에 구원과 결부되는 “여호와”라는 호칭이 무려 87번이나 등장한다면 형제는 놀라지 않으시겠습니까? “여호와”라는 호칭은 “하나님”이라는 호칭과는 달리 “언약, 구속” 등과 결부된 칭호로 이는 잠언서의 성격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경외”도 19번이나 나타나는데 잠언서의 구조는,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1:7)하고 시작하여
㉡ 중간쯤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19:23) 말씀하고
㉢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31:30)하고 끝마치는 구조(構造)입니다.
이 여호와 경외라는 주제는 시편(시 111:10)과 욥기(욥 28:28)의 중심주제이기도 하고, 전도서에서도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本分)이니라”(전 12:13)하고, 결론을 맺는 “사람의 본분”이 되는 핵심적인 말씀인 것입니다.
① 잠언서는 서두(序頭)에서 기록목적(1:1-6)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기”(2)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 “지혜”(智慧)가 “여호와 경외”와 결부된 신학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면 ㉯ “훈계”(訓戒)는 실천윤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잠언서는 크게 두 부분(1-9장, 10-31장)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 1-9장이 “지혜”를 알게 하는 원리적(原理的)인 말씀이고
㉡ 10-31장은 “훈계”를 알게 하는 상론(詳論)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리(1-9장)
② 먼저 원리적인 1-9장의 구도를 파악해야 잠언을 올바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 1-9장 안에는 “내 아들아” 하는 “아들”이 19번이나 나옵니다.
㉡ 그리고 “지혜”라는 말이 31번
㉢ “음녀 또는 이방 계집”이라는 말도 합해서 12번 등장을 합니다.
이는 “사랑하는 아들”을 가운데 놓고 “지혜와 음녀”가 자기 소유(所有)를 만들려고 대결(對決)을 하는 구도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러한 구조(構造)가 욥기에도 등장합니다. 욥을 가운데 놓고 하나님과 사탄이 대결하는 구도입니다. 그리고 이런 영적 싸움은 에덴에서 시작하여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잠언서가 우리에게 적실성이 있는 것입니다.
③ 그리하여 “지혜(智慧)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廣場)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1:20-23)하고 초청(招請)합니다.
㉠ 그런가 하면 음녀(淫女)도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城邑)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들을 불러 이르되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9:14-17)하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 7장에서는 음녀의 유혹에 걸려든 어리석은 소년 하나를 보여주기까지 하는데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7:21-23) 합니다.
④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음녀”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되는가?
㉠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4:5-7)하고 거듭거듭 “지혜”(智慧)를 강조합니다.
㉡ “지혜”를 얻게 되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2:5)
㉢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3:18) 합니다.
⑤ 그렇다면 잠언서에 65회 이상 등장하는 “지혜”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 “지혜”가 잠언서를 올바로 해석하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잠언은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1:1)하고 시작됩니다.
㉠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왕상 3:12)한 “지혜”(智慧)를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서두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1:7)고 말씀하고 있는데 솔로몬에게 베푸신 지혜가 철학적인 지혜이겠습니까?
⑥ 솔로몬은 하나님께 받은 지혜로 “잠언, 전도서, 아가서” 등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들의 중심주제는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잠언서의 지혜는,
㉠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지혜)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8:22-23)하고 태초부터 계신 “지혜”라고 말씀합니다.
㉡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創造)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8:8-30)한 창조주가 되시는 지혜입니다.
㉢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1:23)하는 성령을 부어주겠다 하시는 지혜입니다.
그러면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계셨으며, 창조자시요,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겠다 하는 “지혜”가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는 점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⑦ 이사야 선지자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智慧)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 11:1-2)하고 예언하였습니다.
㉠ 이 예언이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智慧)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눅 2:40)하고 그리스도로 성취된 것입니다.
㉡ 이점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智慧)니라”(고전 1:24)하고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智慧)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救贖)함이 되셨으니”(고전 1:30)하고 말씀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智慧)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6-7) 합니다.
⑧ 이런 맥락에서 잠언서에서도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23:11)한 “구속(救贖)자”와,
㉠ “인자(仁慈)와 진리(眞理)로 인하여 죄악이 속(贖)하게 되고” (16:6)하는 속죄교리와
㉡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8:35)한 영생과
㉢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며”(1:23)한 “성령”의 거듭남을 대하게 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 그러므로 잠언에서도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한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⑨ 이런 맥ㅁ락에서 잠언서는 계속적으로 두 부류, 두 길을 대조(對照)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4:18-19)이 대조되어 있고
㉡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2:18-19)이 대조되어 있고
㉢ 의인의 집과 악인의 집”(3:33) 등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⑩ 두 부류, 두 길의 대결(對決)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곳이 9장입니다.
㉠ “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로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자기의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9:1-4)하고 잔치에 초대(招待)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천국잔치 비유를 연상하게 하는 복음초청인 것입니다.
㉡ 그런가하면 “미련한 여인이 떠들며,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들을 불러 이르되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하고 유혹합니다. 그리고 9장은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9:18)하고 마치고 있습니다. 이상이 잠언에 나타난 원론(原論)적인 말씀입니다.
상론(10-31장)
⑪ 이처럼 1-9장에 나타난 원론(原論)에 확고해야 10-31장에서 말씀하는 상론(詳論)에 충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잠언들이 필요한 것인가? 유혹하는 “음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신약성경에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하고 말씀합니다.
㉠ 그러므로 10-31장의 내용들은 해설해야 알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또한 몰라서 실천을 못하는 것들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실천하지를 못하는 것인가? 원인은 왜 이런 삶을 살아야하는가 하는 원리(原理)에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윤리가 다른 종교의 윤리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한 사랑의 줄에 이끌려 사는 삶, 곧 복음이 이끄는 삶이 다른 것입니다.
㉡ 잠언은 근 3천 년 전에 주어진 말씀들입니다. 이 잠언이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어떻게 적용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적용(適用)의 문제입니다. 구약성경을 오늘의 성도들에게 직선적(直線的)으로 적용을 하는 것이 교훈적인 입장인데,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는 실종이 되고 설 자리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잠언서도 명언(名言)이나 격언처럼 적용할 것이 아니라, “왜냐하면····그러므로”라는 구속원리에 입각해서 적용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이 어찌하여 잠언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그것은 축복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요, 잠언을 실천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한 구속의 원리에 의해서인 것입니다.
⑫ 이런 맥락에서 잠언의 말씀이 성도들에게 “지혜와 훈계”를 주는 말씀이지만, 특히 목회자들에게 주어진 “목회서신”과 같은 경계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아들”을 음녀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회(牧會)적인 섬김이기 때문입니다.
㉠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27:23) 하십니다. 이런 경우 바울은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고전 9:9) 합니다.
㉡ 그러므로 “충성(忠誠)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主人)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25:13)
㉢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使臣)은 양약이 되느니라”(13:17)하고 “충성된 종”에 대해서 거듭 말씀하십니다.
㉣ 또한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25:25) 합니다. 목회자란 보냄을 받은 사신들입니다. 참으로 충성된 사신들이 되어서 “좋은 기별”을 전해드림으로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⑬ 반면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다”(24:30-32)하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포도원이 이와 같지 않기를 바랍니다.
㉠ 그래서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10:26) 합니다. 주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이와 같은 종을 “게으르고 악한 종아” 하십니다.
㉡ 잠언서는 의외라 싶게 “누가 현숙한 여인(女人)을 찾아 얻겠느냐”(31:10)하고 현숙한 아내라는 주제로 마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숙한 여인이 하고 있는 것들을 주목해 보면,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13),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며 일을 정하여 맡기며(15),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 밀며”(20) 등 목회자들이 하는 섬김이라는 점입니다.
㉢ 그리하여 잠언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31:30)하고 마치고 있습니다. 잠언서를 통해서 우선적으로 선생 된 우리들이 “현숙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