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 6년 수행후 매년 서너달씩 도보로 전국 순례
“삼독심 없애는 게 수행…걸으면 그런건 절로 사라져”
편리와 빠름이 미덕인 사회다. 산과 강의 속살을 헤집은 도로망들이 마치 얽힌 실타래 같고, 그 길마저 각질 같은 콘크리트로 뒤덮여 있다. 그 옛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려면 족히 이삼십일은 걸렸겠지만 요즘은 자동차나 기차를 타면 반나절이면 갈 수 있다. 이제 그것도 느린지 오는 4월 1일이면 서울서 부산까지 2시간 40분만에 주파하는 놀라운 속도전의 세상이 시작된다.
이런 ‘빨리 빨리’ 문화 속에서 느림은 곧 게으름이며 무능력으로 취급받기 싶다. 도봉산 선각원(蟬覺院) 원공 스님. 그는 현대사회 속에서 기인(奇人)아니면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평가 받기 십상이다. 지금까지 26년의 세월을 자동차나 기차를 타지 않고 오로지 두 발에 의지해 전국을 누비고 있는 까닭이다.
스님은 지난 70년대 무문관(無門關) 수행을 마치면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무문관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몇 년이고 바깥세상을 안 나오며 ‘이 자리에서 깨치지 못하면 죽겠다’는 각오로 가행정진하는 한국선불교의 상징이다. 그런 스님이 무문관을 박차고 나오며 시작한 게 행선(行禪)이었다. 막힌 몇 평의 공간뿐 아니라 하늘 아래 수행터가 아닌 곳이 어디 있으랴는 생각에서였다.
스님이 지금까지 걸은 거리는 지구를 몇 바퀴 돌고도 남을 거리다.
지난 80년부터 83년까지 1000일간 전국을 걸은 것을 비롯해 155일 휴전선 순례, 통일기원 180일 국토순례, 통일염원 북한 농민을 위한 123일 백두대간 종주, 한민족동질성 회복 108일 도보순례, 이산가족 고향자유왕래 염원 220일 순례, 그리고 재작년에는 123일간 한국과 일본 전역을 도는 환경과 평화를 위한 도보 대장정을 개최하기도 했다. 특히 한·일 평화도보대장정을 생생히 기록한 『우리는 왜 그 길을 걸었을까』(호미)는 걷기수행의 한 유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렇듯 일년에 몇 달 씩 길을 걷는 원공 스님. 그러면 스님은 왜 걸을까.
“사람이 직립 동물이니까 걷는 거야. 옛날 스님들도 다 걸어 다녔잖아. 자동차가 없거나 귀한 시대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걷는 게 수행이기 때문이야.”
스님에 따르면 선(禪)과 걷는 행위는 둘이 아니다.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갖가지 번뇌들이 떨어져 나가고 나중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 무념무상의 상태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실제 걷기는 오랜 전통을 지닌 불교수행법이다.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법을 전하다 길에서 입적한 부처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걷기의 대가였고, 그런 전통이 한국불교의 만행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만행은 안거를 마친 수좌들이 구름처럼 바람처럼 산천을 거닐며 세상을 배우고, 또 선지식을 찾아 그동안 정진해 온 것에 대한 점검을 받는 것을 말한다. 청담 스님이 10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단 하루로 신발을 신지 않고 걸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요즘은 뭐든지 빠르고 편리한 게 좋은 줄 알지. 그러다보니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만 남는 거야. 빠른 것 좋아하다가 시간의 노예가 돼버린 꼴이지.”
스님은 빨리 가는 것이 얼핏 시간을 버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고 지적한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경우 목적지를 위해 자칫 과정을 헛되이 보내기 쉽지만 걷는 일은 육근(六根), 즉 온 몸과 마음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통해 땅과 하늘과 교감하기 때문이다. 그곳이 비록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위일지라도.
“수행이라고 별 거 있나. 탐(貪)·진(瞋)·치(痴) 삼독심 없애면 그 게 수행 아니겠어. 걷다보면 특별한 방법이나 생각을 갖지 않아도 저절로 수행이 돼. 익숙하다고 여기는 것이 낯설게 다가오고 낯선 것들이 자연스럽게 되지. 나중에는 온 몸으로 자연의 숨결을 느끼고 그것들과 대화를 하게 돼. 아무리 모난 돌이라도 흐르는 물속에 오래 있으면 둥글둥글 원만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야. 그럴 때 삼라만상은 나의 선지식이자 도반이 되는 게지.”
오랜 세월 걷다보니 스님은 우리나라 산천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하게 안다. 그리고 이제는 스님이 한발 한달 딛고 다녔던 그 모든 곳이 고향처럼 느껴진단다.
까만 아스팔트의 깨진 틈을 비집고 생명을 틔운 어린 풀, 어느 한적한 숲 속에서 만난 산짐승의 맑은 눈, 아직도 불을 때 밥을 하는 산골마을 풍경, 밤길을 걷다 우연히 바라본 하늘서 만난 별들의 바다, 예기치 않은 길벗과의 기분 좋은 동행 등. 걷지 않고서 어떻게 이들과 만날 수 있으랴. 여기에 걷기는 자연스레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는 법도 배울 수 있다.
“먼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소유의 의미를 철저히 깨달아가는 과정이야. 생각해봐. 아무리 욕심나는 것이 있어도 걷는 사람이 그 걸 둘러메고 갈 수 있겠어. 있는 것도 하나하나 덜어내도 부족할 판에…. 오래 걷다보면 간소한 생활에 저절로 익숙해져.”
실제 도봉산 아래 자리 잡은 선각원은 간소하기 그지없다. 그 흔한 그림 한 점 없고, 달력이나 시계, 심지어 밥상도 없어 방바닥에 음식을 놓고 먹어야 한다. 날이 저물어도 불을 켜는 대신 손전등을 이용한다.
“손은 잡으라고 있는 거고, 발은 걸으라고 있는 거잖아. 몸이 불편하다면 모르겠지만 멀쩡한 사람이 왜 그토록 보철기구들에 의지해서 살아. 그 게 처음엔 편한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자신을 이리저리 옭아매는 괴로움의 시작이야.”
먼 길을 걷는다는 것이 듣는 사람에게야 낭만적일지 몰라도 실제 걷는 이에게는 고통에 온 몸을 내맡기는 일일 수 있다. 추위와 배고픔, 퉁퉁 부어오르는 발, 고통이 이런 것이구나 싶을 정도의 갑작스런 근육경련, 길을 잘못 들어 가시밭길을 헤쳐가야 하고 산비탈을 오르내리는 일도 많다. 원공 스님도 길을 걷다 구덩이에 빠져 죽을 뻔한 일화들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자동차다.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도로를 걷기 위해서는 때때로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씽씽 달리는 난폭차량들은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존재들인 탓이다. 산중에도 사람 전용 터널을 뚫어놓은 유럽이나 일본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사람 낳고 자동차 낳지, 자동차 낳고 사람 낳은 것 아니잖아. 그런데 우리나라의 모든 길은 자동차 중심이야. 개울이 있으면 돌아가고 산이 있으면 넘어가면 될 것을 굳이 산에다 구멍을 뚫고 다리를 놓거든. 도시고 시골이고 다 마찬가지야. 광화문에를 한 번 가봐. 거기 건너가려면 어린이고 나이든 이고 다 땅속 깊이 기어들어가야 하니. 쯧쯧쯧.”
스님은 비록 장거리가 아니더라도 늘 걷을 것을 권한다. 걸으면 사람이 보이고 자연이 보이고 자기 자신이 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건강은 물론 여유로운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도 걷기의 즐거움이라고 거듭 예찬한다.
지난해 3월말 100일간 한민족 도보대행진을 이끌었던 스님은 지난 2월 8일 다시 먼 길을 떠났다.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을 거쳐 일본 규슈지방을 도는 약 4개월간의 대장정이다. 낡고 큼직한 신발과 단촐한 배낭. 스님의 ‘시대에의 역행’은 어쩌면 ‘오래된 미래’를 향한 힘찬 발걸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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