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 위치한 1984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문인지 벽인지 잠깐 멈칫하게 되는 무뚝뚝한 나무문을 밀면 독특한 아우라의 편집매장이 펼쳐진다. 한쪽 구석에선 바리스타들이 부지런히 커피를 내린다. 유명 디자이너를 초청해 강연을 열기도 한다. 모던한 책장같은 매대에는 디터람스의 시계부터 이름모를 디자이너의 에코백까지 차곡차곡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가장 재미있는 사실은 1984가 출판사라는 것.
최근 1984는 주목받는 젊은 아티스트들과 찰스장과 고전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해 재발간했다. 책이라는 매체의 변화에 디자인으로 대답하는 1984의 대표, 전용훈을 만났다.
1984의 시작이 궁금해요.
1984의 공간은 파주출판단지에서 이사온 혜원출판사의 사옥이예요. 출판사는 외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 그리고 제게 이어진 가업이예요. 재미있는 것은 같은 출판사이지만 집중하는 분야가 달랐다는 거죠. 기자출신이셨던 외할아버지의 희망사는 사실에 근거한 책들을 출판했고 힘든 시절 시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던 아버지의 혜원출판사는 시집, 그리고 1984는 패션과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은 저를 닮았죠.
아버지 아래서 영업과 마케팅에서부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출판이 유통에만 기대다보니 독자의 취향을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죠. 당시는 스티브 잡스 생전이라 종이책이라는 것이 과연 존속할 것인가, 출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라는 담론이 많던 시기였어요.
처음에는 이 공간에서 극단적으로 상업적인 장사를 해볼까도 생각했어요.
극단적으로 상업적이라면 어떤 장사를 말하는 거죠?
예를 들자면 고깃집이라거나.
출판사에 고깃집이요? (폭소)
제가 하고 싶어하는 책들이 상업적인 책들이 아니었어요. 때문에 진짜 내가 좋아하는 걸 위해서는 포기를 해야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놔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독자들의 취향에서 갤러리, 패션, 편집샵, 세미나, 파티까지 서비스 하는 공간을 생각했어요. 내가 원하는 걸 대중도 원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내가 출판 베이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장 진정성 있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최근에 디자이너 붕가붕가레코드 수석디자이너 김기조, 아메바컬쳐 아티스트 김대홍, 아티스트 제이플로우, 찰스장과 『어린왕자』,『동물농장』,『테스』,『1984년』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해 재발간 했어요. 디자인이 파격적인데요.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책을 읽게 하고 싶었어요. 책 한권 보지 않는 젊은 패션피플들도 사서 들고 다닐 수 있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죠. 파티에 가고 인생을 즐기는 친구들도, 고전을 읽고 지루한 것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는 매체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인지 전통적인 서점보다는 독립서점과 디자인 관련 스토어에서 판매가 좋은 편이예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기 위해 장기적 플랜을 잡고 있어요. 시리즈가 앞으로 10권, 20권 나오면 재미있는 미래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리디자인된 1984의 고전 시리즈 (c)1984
책을 많이 사는 편인데 그렇다보니 공간적인 측면에서도 부담이 가서 요즘은 전자책을 많이 구매해요. 하지만 예쁘고 잘 만들어진 책의 경우 종이책을 사는 편입니다. 그런데 한국책 중에는 그런 책이 흔치 않아요.
국내 책들이 물질적으로 매혹적이지가 못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웠죠. 1984의 책들은 그런 쪽으로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이예요. 그래서 디자이너들이 많이 힘들어하긴 하는데 (웃음)
전자책이라는 좋은 대체제가 생겼잖아요? 나무를 베지 않고도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건데 환경적으로도 종이책을 만들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도 이 책이 내용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가치가 있고 디자인적으로도 훌륭하기 때문에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발동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발전해야할 여지가 아직 많죠.
책과 디자인의 관계,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모노클의 편집장 타일러 브륄레가 아이패드가 잡지를 대체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이런 말을 했어요.
"미디어는 소비자가 정보를 전달받는 수단에서 더 나아가 소비자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명품 브랜드처럼, 당신이 읽는 미디어가 당신을 나타낼 수 있다는 뜻이다.”
아이패드가 뒷면에 LCD 가 달리기 전까진 불가능한 일이죠. 책에 있어 디자인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줄 수 있는 취향이라고 생각해요.
출판사 외에도 편집샵을 겸하고 있는데?
저한테는 1984의 공간도 책이예요. 하나의 지면이고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창이죠. 매출보다 중요한 게 고유한 아우라를 표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한 래퍼가 만든 브랜드인데 철학적인 옷을 만들어요. 이 옷처럼 가치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소개하고 다양하지만 1984의 색을 대중에게 전하고 싶어요. 9월 경에 홈페이지가 오픈되고 온라인으로도 고객들을 만날 예정이예요.
1984의 공간 (c) 1984
최근에 친한 디자이너가 1984에서 디자이너 디터 람스의 브라운 시계를 사고 무척 기뻐하는 모습을 봤어요. 1984의 상품을 셀렉트 하는데 기준이 있다면?
디터 람스의 철학은 Less is more. 잖아요? 그 문장이 브라운의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카피로로 말할 수 있는 브랜드들을 셀렉트하려고 하고 있어요. 단순히 한 브랜드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신념과 1984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내는거죠. 앞으로는 1984 브랜드의 비중을 늘려가려고 하고 있어요.
마스터의 입장에서 좋아하는 책과 공간이 있다면?
파이돈의 책들을 좋아해요. 파이돈의 책들이 쌓여있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데 하나의 박물관처럼 보였죠. 정말 멋지다, 라는 탄성이 나오는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흐트의 셀레시즈라는 서점을 정말 좋아해요. 성당위에 서점을 지었어요. 카페도 있어요. 성당을 해치지 않으려고 철판으로 선반을 만들었어요. 굉장히 멋진 곳이죠.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1984의 미래는?
역사적인 공간이 되고 싶어요. 당장 상업적으로 가기보다는 시간적인 아우라를 가지고 싶어요. 1984의 책, 일, 모든 것이 문화에 이바지 하는 무언가가 되었으면 해요.
글 김누리 @Noori_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