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이 만 86세 곧 90을 바라보는 나이, 생각해보면 오래산것도 같지만 100세시대 운운하는 때라 이명섭 동기동창과의 사별은 유난히 아쉽고 서글퍼진다. 고인은 고등학교 졸업이후 동기동창들을 남달리 자상하게 챙긴 다정다감한 벗이었다.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해 분위기를 즐겁게 했는가하면 틈만 니면 모임을 주선해 어찌보면 회장아닌 회장으로 4.6회를 역동적으로 이끌어 온 친구였다. 일주일에 3일씩 투석을 해야하는 그 고통속에서도 친구들을 불러내 식사를 함께 했고 오랜 신병에 시달리면서도 수시로 동창들 건강을 걱정하곤 했던 그였다. 년말 4.6회 송년모임에도 꼭 참석하겠다고 벼르던 그가 모임 이틀을 남겨놓고 유명을 달리하다니 도무지 믿겨 지지가 않는 부음이다. 어찌보면 좀더 살나이에 유명을 달리하니 망연자실 4.6회는 큰 대들보를 잃은 슬픔에 할말을 잃고있다. 이명섭 고인은 제천중고와 고대를 나온뒤 줄곧 가업을 돌보며 일생을 사업가로 자산을 축적해 왔다. 비교적 어려움을 모르고 살면서 아들을 유학 보내 대성했으니 세상에 무엇이 부럽다 할것인가. 빈소엔 늦게까지 장석주 회장과 정이훈 총무 오성진 이인석 정운종이 자리를 함께했고 오전엔 멀리 제천서 정규원동문이 하루전엔 강성태동문도 다녀갔다. 장회장은 하루종일 마신술로 잠시 혼절하는가 했더니 금시 툭툭털고 깨어나 자리를 뜨니 암벽등산으로 단련된 몸 그의 노익장이 부럽다. 윤우식 이준원과도 오랜 만에 전화통화 아쉽지만 살만큼 살다간 고인의 명복을 빌며 가시는 길 부디 평안하기만을 바랄뿐 저녁늦게 빈소를 떠나니 아! 인생무상, 돌아서는 발길 무겁기 그지 없다. (문상을 마치고 돌아오며 지하철안에서 정운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