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영하로 내려갔다. 옷을 단속해 입고, 휴대폰 문자를 보낸 데로 ‘학동증심사 입구역’ 정류장으로 나갔다. 모두 7명(월봉 산해 석당 아석 월전 인광 송헌 등)이 10시부터 산행을 시작하였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조대부속고등학교 앞을 지난다음 에이원 골프 연습장 옆을 지났다. ‘시민쉼터’라는 정자에서 쉬면서 오늘의 산행 목적지-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협의하였다. 우선 철탑까지 가보고 여력이 있으면 팔각정도 갈 수 있다고 하였다. 다만 점심 먹을 식당은 코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가능하면 팔각정까지 갈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하산 길은 되돌아오지 않고 팔각정을 넘어가 ‘깨재’에서 지산유원지로 내려가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그래서 지금 서울에서 오고 있는 삼정에게 일단 지산유원지 쪽으로 점심을 먹으러 오도록 문자를 보냈다.
조선대 학군단 기숙사를 지나면서부터는 아주 좋은 등산로였다. 이름 하여 ‘무등산자락다님길’이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숲길은 순한 흙길이어서 발을 디딜 때마다 포근한 양탄자를 밟은 듯한 촉감을 느끼게 하였다. 깃대봉에 도착하였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깃대봉 광장의 양지바른 벤치에서는 10여명의 우리 또래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담소도 하고 물인가 술인가를 마시면서 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잠시 쉬면서 숨을 돌리다가 깃대봉 광장에서 이어진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서 ‘허심정’(옆에는 ‘부덕정’)을 지났다. 기온은 그대로였지만 이제 서서히 체온이 올라오고 햇볕도 강렬해서 추위는 느낄 수 없었고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더니만 가슴과 등에서는 뜨거운 열기로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철탑이 있는 쉼터까지 갔을 때, 편하게 지산유원지로 내려가느냐 힘들지만 팔각정까지 올라가느냐 중에서 다수가 팔각정을 넘자고 하였다. 조금 힘들어 해서 철탑 아래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
팔각정으로 올라가는 길은 매우 심한 급경사였다. 그래서 거북이걸음으로 올라갔다. 능선에 있는 벤치까지 올라가서 또 녹차를 마셨다. 씁쓰레한 녹차는 아까 시민쉼터에서 마셨을 때보다 훨씬 더 부족한 수분을 보충해 주는 느낌이었다. 이제 이 능선을 조금만 더 올라가면 팔각정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들떴다. 하얀 팔각정 2층 전망대에서 동쪽에 있는 광주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요즈음 자주 느끼지 못했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맛볼 수 있었다. 이 맛에 우리는 등산을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등산을 하여도 높이 올라가지 못하니까 이런 호연지기를 느낄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오늘은 이 팔각정이 그린 높지 않는 곳에 있었지만 이런 맛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날씨까지 청명하여 광주 시내 거의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도 그만큼 크고 넓어진 것이다. 몸속에 도사리고 있었던 모든 자질구레한 쓰레기들을 싸~악 털어버릴 수 있었다. 팔각정 서쪽으로는 멀리는 무등산 상봉이 보이고 잔잔하게 낮아지면서 가까이 향로봉 아래 노란 두 줄 선이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바로 곧 설치될 모노레일 길이었다.
팔각정에서 내려오는데 삼정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유원지 근방으로 갈 터인데 우리와 합류할 수 있도록 시간을 조율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팔각정에 있는데 곧 바로 하산할 것이니 속도를 감안하도록 권하고, 지산유원지 쪽으로 갔을 때 가끔 갔던 식당으로 오도록 알려 주었다.
모노레일 탑승역과 리프트 카 종착역을 지나서 ‘깨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지산유원지로 내려왔다. 우리 일행은 지산유원지 저수지 부근에서 삼정을 만났다.
가끔 가서 점심을 먹었던 식당은 ‘남가정’이라는 이름을 달고 고급 식당으로 변해 있었다. 음식 값이 비싼 집이 된 것이다. 오늘은 인광선생이 생일 턱을 쏜다고 하여, 1만5천 원짜리 비싼 음식으로 인광선생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축배를 들어 건배하였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길게 무려 3시간 반 동안 줄곧 떠들고 웃으면서 보낸 유쾌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