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16:13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가 210530 성령강림절 둘째 주일
들어가는 말
2030 청년들은 나라의 기상이요, 미래입니다.
그래서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지극히 상투적인, 그리고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즘 청년들이 길을 잃었습니다.
요즘 2030청년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위태위태합니다.
가상화폐 열풍이 광풍처럼 몰아치더니, 주식투자 열풍까지.... 격랑이는 바다에 외로운 돗단배 처럼 아슬아슬해 보입니다.
가상화폐는 온라인으로만 거래하는 전자화폐의 일종입니다.
전자화폐란 금전적 가치를 전자정보로 저장해 사용하는 결제 수단입니다.
실물이 없고 인터넷이라고 하는 가상환경에서만 통용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상화폐, 거래자들의 안전과 보호장치가 거의 전부하다는 것.
우리가 가진 화폐들은, 심지어 주식투자까지, 일정한 보호와 안전이 보장이 되는데 가상화폐들은 민간에서 발행, 운영함으로 거의 통제가 안되는 것,
그래서 돈을 버는 사람은 순식간에 떼 돈을 벌고, 잃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떼 돈을 잃는 그야말로 투기입니다.
그런데 젊은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 가상화폐 투장에 빠져있다는 것이고,
또 한 편에서는 주식투자의 열풍이 부는데, 여기도 역시 젊은이들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3-4년 전에 가상화폐 열풍이 불 때 잘 아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며 만류를 했습니다.
이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것은 도박이고, 설령 떼 돈을 번다고 해도 / 그것은 칼만 들지 않았을 뿐 강도짖이나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땀흘려 번 것도 아닐뿐더러, 결국 떼 돈을 벌었다는 것은 떼 돈을 잃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양심적인 그리스도인이 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가상화폐는 거래는 중지될 정도로 급락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떼 돈을 잃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상화폐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를 때 가지고 있던 가상화폐를 즉각 판 사람들은 떼 돈을 벌었고, 그 가격이 오를 때 사서 더 오를 것이라고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떼 돈을 잃은 것입니다.
왜, 젊은이들이 이렇게 보장도 보호도 안되는 가상화폐 코인에 빠져 드는가?
왜, 주식 거래의 한탕주의에 빠져드는가?
절망감 때문입니다.
취직도 안되고, 또 취직을 한다한들,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젊은이들의 절망감은 어디서 왔을까요?
누가 꽃다운 청춘들에게, 도박과 같은 늪에 빠지게 했을까요?
저는 기성세대, 그중에서도 권력과 부를 가진 기득권 층이 그 주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2030 세대, 젊은이들은 선대들처럼 사실 그렇게 고생고생하며 자라지 않았습니다.
하나 둘만 낳아서 잘 기르자고 하던 시대에 태어나 어렵지 않게 성장해 온 세대입니다.
그래서 대개는 다 대학도 졸업하고 이제 안정된 생활이 가능한줄 알았는데 사회에 나와 보니 취직도 어렵고, 취직해도 월급이 쥐꼬리만 하고, 그리고 돈과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의 횡포에 견딜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꿈을 꾸기도, 꾸어 온 꿈을 이룰 희망도 다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확천금을 놀리고 도박같은 가상화폐, 주식 투자의 열풍에 휩싸이게 되고, 가장 보수적인 정당에서도 국회의원 한번 하지 않은 사람이 당 대표 예비선거에서 1위를 차지하는 돌풍이 일어났고, 보수정당에는 눈길을 한번 주지 않던 2030 세대가 지난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권선거에서는 열명 가운데 일곱명이 지지하는 파란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보수정당을 희망으로 본 것이라기 보다는 절망의 표현입니다.
기성세대, 그중에서도 권력과 부를 가진 기득권 층이 절망의 주범이라고 생각합니다.
ex)단적인 예를 봅시다
1)얼마전 일이기는 하지만 어떤 젊은 검사는 직속상관인 모 부장검사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했습니다.
2)엊그제 보도된 내용으로 어떤 여자 변호사는 변호사사무실의 대표변호사에게 수개월 간 성폭력을 당하다가 자기 실명을 내걸고 그 변호사를 고발했고, 고발당한 대표변화사는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검사, 변호사는 우리가 흔히 출세한 사람들이라고 하고 사실 출세한 사람 맞습니다.
그만한 출세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출세한 사람들 조차도 부와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의 횡포에 시달리다 자살하기도 하고, 여자의 몸으로 자기를 이름을 공개하며 대표 변호사를 고발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뭐가 문제인가요?
뭐가 문제인가요?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잘못 인도한 것입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횡포를 부리며 후진들의 길을 잘못 인도한 것입니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다면 후진들에게 손을 잡아 주고, 함께 사는 길로 인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돈과 권력으로 길을 막아 버리니 젊은이들이 절망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참 소중한 것이 많이 있지만 참 고맙고 감사한 분들이 있습니다.
참 좋은 선생님, 참 좋은 선배입니다.
모두 우리네 인생의 인도자들입니다.
좋은 선생님은 제자들을 바르게 인도합니다.
좋은 선배는 그가 경험한 것을 후배와 나눕니다.
그것들을 우리네 인생의 노하우, 축적된 기능과 기술입니다.
하다 못해 호떡 장사를 해도 경험있는 분의 조언과 지도가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안계시고, 좋은 선배가 없어서 여러분을 인도해 줄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좋은 선배보다, 좋은 선생님보다 더 좋은, 비교할수 없이 더 좋은 인도자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
'진리의 성령이란, 진리를 전달하시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진리를 가져와서 세상 사람들의 양심에 그 진리를 심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진리 가운데로'란 성령이 성도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신 목적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하는 일입니다(15:26).
성령은 세상을 책망하시는 반면(16:8-11) 제자들과 성도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십니다.
*한편 '인도하다'(호데게오)는 '인도하다'는 의미와 '가르치다'는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
예수님은 자기의 의도대로 말씀하지 않았습니다(8:26;12:49;14:10).
이와 같이 성령도 자기 임의로 말씀하시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씀합니다.
비록 듣는 사람이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예수님 자신이 해야 할 모든 말씀은 다 드러내셨습니다(4:25).
성령이 말하는 것은 예수가 선포하셨던 말씀에 대한 단순한 보충이 아니라 성부께서 계획하셨고 성자가 선포하고 실행하셨던 전 구속 사역에 관한 말씀의 의미를 풍부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
여기서 '듣다'는 현재 시제로 언급되어 성령이 끊임없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말씀을 듣고 사역하심을 의미합니다.
이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이 함께 사역하심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말하지 않는’ 은 성령뿐만 아니라 성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12: 49과 요14: 10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장래 일'(타 에르코메나)은 문자적으로 '다가오는 일들'을 뜻하는데, 장래 일에 대한 예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모두 아시므로 제자들에게 장래 일을 깨닫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의 사역은 요한계시록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이 예언의 기능 역시 예수의 말씀과 별개가 아니라 철저히 그의 말씀과 결부되어 주어진 것입니다
성령의 사역은, 성령의 하시는 일은 성도들을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으로, 현재나 장래나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신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성자 하나님을 대신하여 보내 주신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인도하시니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걱정하지 말고 그 인도하심을 아멘으로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하심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인줄을 어떻게 알수 있을까요?
성령행전이라일컬어지는 사도행전에서 두가지 사례를 통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알아봅시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다양하지만 오늘 두가지로 상고해본 방식이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성령의 인도하시는 현상입니다.
첫째, 사도행전 13자에 보면 바울 사도의 1차 선교여행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에 성령의 인도하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행전13:1-3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2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주를 섬기다
구약에서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봉사의 일을 수행했던 사실을 묘사하는 것으로 자주 사용되었고(출 28: 35 ,43) ,
신약에서는 교회의 공적인 예배 행위를 표현하는 단어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녹 1: 23; 롬 15 : 27). 그러므로 공동 번역은 본절을 ‘단식을 하며 주님께 예배드리고 있을 때에’라고번역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어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 하시니.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교회에서 그들에게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을 때 성령께서 특별한 계시를 주셨다. 그런데 성령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계시하셨는지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으나 성령께서 모두의 마음에 이방선교에 대한 감동을 주신 것으로 보입니다.
3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구별하여 파
송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으로 세계 선교의 닻이 비로소 올려진 것이고, 오늘날 세계종교인 기독교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 사도행전 13장에서 성령은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이방선교를 위해 한 마음이 되게 하셨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둘째, 유럽선교의 문이 열리게 된 사도행전 16장의 말씀에 성령의 인도하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6-10
(3차전도 여행지도)
대표사진 삭제
AI 활용 설정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2차 전도 사역을 시작한 바울(1-5절)은 계속해서 1차 전도여행때와 마찬가지로 소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 증거를 계속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바울은 성령의 제지를 받아 소아시아로 갈 수 없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 방향을 바꾸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 비두니아 지역으로 북상하려고 했으나 성령께서는 그 길마저도 제지하셨습니다(6. 7절).
이렇게 되자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바꾸어 드로아에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8절)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해 바울의 발길을 유럽쪽으로 돌리게 하셨습니다
남쪽으로도 북쪽으로 가는 길이 막혀 드로아에 머물고 있을 때에 바울에게 환상이 임했습니다.
– 꼭 아시아에서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는 것은 바울의 결정으로 잘못된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길이 자구 막힐 때 마게도냐 사람이 환상으로 나타나 “와서 우리를 도우라”라고 할 때 아, 마게도냐로 가라는 성령의 인도로 믿었습니다
->아시아만 아니라 마게도냐도 복음을 들어야 하는 것은 일반임으로!
->여기서 성령의 인도하심은 두가지로 나타납니다.
아시아로도 아시아 윗지방으로 가지 못하게 막으시고
마게도냐에서는 환상으로 나타나 바울을 부르시고...
->바울 사도는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확신했고, 마침내 오늘날의 발칸 반도에 복음을 성공적으로 전하게 되었고, 유럽선교의 초석을 놓은 것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인도하심은 오늘 두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각인의 마음에 성령의 감동을 주심으로 인도하시고, 어떤 일을 막으시고 여시는 방법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일반적인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 한가지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4:26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주님의 말씀, 성경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진리의 말씀, 성경이 완성된 시대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더 이상 우리의 구원을 위해 덧붙일 필요가 없는 완벽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기록된 진리의 말씀인 성경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기억나게 하신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구원의 길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완전한 말씀이고, 성령께서는 그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사실은 그래서 성경이 완성된 다음부터는 초대교회에 등장했던 예언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제는 완벽한 진리의 말씀이요 구원의 완성품인 성경과 그 성경을 가르치고 기억나게 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순종하면 구원과 승리의 길을 갈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모든 문제의 답입니다.
ex)1960년 미국의 제 35대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 때, 프랑스의 드골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며 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케네디 대통령,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세를 쥐고 있오. 당신 손에 있는 권세로 세계의 역사와 운명이 좌우됩니다. 당신은 노련한 전문가인 수많은 보좌관을 데리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많은 보좌관이 제각기 자기의 전문적인 지식을 당신에게 말할 것이고, 당신은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 다 귀를 기울이다 보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을 보좌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모두 다 경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하나님 앞에 묵상하고 내면의 음성을 들어서 하십시오”
기독교 문화권에 속한 지도자들로서 의례적인 말 같지만 사실입니다.
설령 개인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중대한 문제에 부딪히면 성령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십시오.
천지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우리 모두를 승리로 인도하실 줄로 믿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돈과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잘못 인도하여 2030세대가 좌충우돌 갈바를 알지 못하고 헤메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하면서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천민자본주의의 풍조가 만연하게 된 결과입니다.
이것은 일찌기 맑스 베버라고 하는 사회학자가 규정한 악성 자본주의의 폐해입니다.
*천민자본주의 [賤民資本主義]
베버(Weber, M.)가 사용한 사회학 용어의 하나.
생산 활동을 통하여 영리를 추구하지 아니하고 고리대금업과 같은 자본의 운영을 이윤 추구의 기본적인 형태로 삼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인데요.
가상화폐와, 주식 투기, 부동산 투기가 대표적인 천민 자본주의의 표본일 것입니다.
물질 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절망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저항은 있겠지만 앞으로 자본주의는 더욱 악성으로 흐를 것이 분명하고, 세계는 더욱 혼란해 질 것입니다.
그 혼란 속에서도 악성자본주의에 길들여진 모든 세계인들은 고통을 운명처럼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부와 권력의 화신이 된 기득권 세대의 잘못된 인도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정신에 어긋난 천민자본주의의 인도를 단호히 거부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실 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6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희랍어에서 '또 다른'이라는 말은 '동일한 하나'를 의미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와 동일한 분이시며 하나의 인격체이십니다.
'보혜사(保惠師)'라는 말은 '곁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파라클레테'라는 희랍어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은 요한일서 2: 1에 나오는 '대언자'로 번역된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변호사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변호이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돕고 가르치고 중재하기 위하여 보내진 우리 옆에, 우리안에, 우리와 함께 계시며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아멘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구원이 있고 행복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