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6•25전쟁 군가(軍歌)
1. 비목(碑木)(1967년/한명희 작사/장일남 작곡)
<1절>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2절>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비목(이름을 알 수 없는 전우 묘지) / 전우 비목 앞에서 기도 / 비목 문화제 행사
※비목(碑木): 엉성한 나무로 세운 비목은 6•25 전투에서 사라진 전우(戰友)의 묘지 나무 십자가이다.
2. 전우야 잘자라(1950년/유호 작사/박시춘<1913년생> 작곡) ♣군가(軍歌)로 불림
◆ 6.25 전쟁 때 군인들이 즐겨 부르던 陣中가요
<1절>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여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쓰러져간 전우야 자거라.
<2절>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3절>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 주는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4절>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 노랫말(가사)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 6·25의 아픔이다.
♣ 비록 군가(軍歌)로 군인들이 부르던 노래였지만 어린이들도 즐겨 부르던 노래이다.
3. 무찌르자 오랑캐(승리의 노래)(이선근 작사/권태호 작곡/고려와 거란의 전쟁)
- 무찌르자 오랑캐 몇천만이냐 대한 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과거 고무줄놀이(무찌르자 오랑캐) / 정월 대보름 강강술래 / 동고리 받기(강릉 전통마을 학산 농악팀 공연)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대한 남아(男兒) 가는 데 초개(草芥)로구나.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이 노래는 6.25 때 불리던 우리나라 군가(軍歌) ‘승리의 노래’ 인데 내가 어렸을 적에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할 때 팔짝팔짝 뛰면서 부르던 노래로 더 기억에 생생하다.
◆ 작곡가 ♣ 박시춘(朴是春/1913년생)
작곡가 박시춘 / 작곡가 김성도 / 전우야 잘자라(6.25의 아픔)
박시춘(朴是春)은 한국의 대중음악 작곡가. 1982년 대중가요 창작인 최초로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았다.
일본 유학 시절 순회공연단을 따라다니면서 트럼펫과 바이올린, 기타 등 악기 연주를 익혔다고 한다.
‘몬테카를로의 갓난이’ 등을 발표하며 작곡가로 데뷔했고 가수 남인수가 부른 ‘애수의 소야곡’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
이후 3,000여 곡이 넘는 대중가요를 작곡하고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들은 트로트 가요의 분위기 속에서도 비교적 밝고 소박한 곡들이 많다.
대표작으로 ‘애수의 소야곡’, ‘가거라 38선’, ‘비 내리는 고모령’,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이 유명했다.
김성도(金聖道)는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 황해도 경신학교, 함흥 영생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 광복 후 월남하여 민중서관 편집국장, 고교교사로 근무했고 경북 여자 사범대학, 계명기독대학 등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했다.
1957년에는 대구 아동문학회를 창립하였고, 한국 현대 아동문학가 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 재미있는 것은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에서는 중공군(中共軍)과 북한 공산군을 오랑캐라 불렀다.
<오랑캐=불알이 5개 달린 개(犬), 초개(草芥)=하잘것없는 지푸라기>
★ 오랑캐는 원래 중국 소수민족 ‘우랑카이 족’인데 우리는 오랑캐라 불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