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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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첫 순교자이신
당신을 흠숭하나이다.
당신은 십자가에서 저희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순교자와 함께
당신을 흠숭합니다.
예수님,
오늘 제약함이 드러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당신의 강함이 들어 높여지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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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지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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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젊은이들에게 주님께 향하는 믿음의 열정을 일으켜주시어
사제 성소와 수도 성소에 부르시는 주님의 초대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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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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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루카 11,1-4 또는 루카 1,26-38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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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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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선택을 위한 도움, 기도
기도, 정말 올바르게 하고 싶고 깊이와 맛을 느끼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 것이 기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고민을 우리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항상 함께 있던 제자들도 했나 봅니다.
기도란 주님과의 대화라고 들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대화인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주로 우리가 사용하는 기도문을 외워서 반복하는 방식이 기도문에 개인의 생각과 의미를 잘 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무미건조한 기도가 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기도 중의 기도이고 모범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개인적으로 응용해서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지 못한다면 결국 대화가 아닌 독백이 될 뿐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기도로 드릴 수 있을 때 살아 있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산에 갈 때 그 자연과 날씨를 통해 주님과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저 가지가지 녹색들 너무 아름답습니다”, “주님, 오늘 하늘은 너무 높고 푸르네요.”
또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주님을 넣어서 불러볼 수도 있습니다. 음식을 할 때나 무엇을 만들 때도 주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해보세요. “주님, 간은 이 정도면 될까요 ?”, “주님, 목수셨으니 지금 제가 만드는 이 소품 잘 만들 수 있도록 좀 도와주세요.” 이런 생활 속의 기도가 주님과의 거리를 가깝게 해주고, 대화하는 기도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화하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생활 속에서 다가오는 많은 선택 상황에서 하느님의 뜻을 여쭤보고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선택이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곧 기도는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이요한 신부(부산교구 안락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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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독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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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찬미 노래를 바치는 교회
성서에 수집되어 있는 시편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쓰여진 것이다. 교회는 초기부터 신자들의 신심을 기르는 데 시편을 사용하여 놀라운 효과를 거두었다. 이 시편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고 하느님의 이름을 자기 입으로 찬양했다." 더욱이 시편은 옛 법의 관습을 따라 거룩한 전례와 성무일도에서 주요한 부분을 담당해왔다.
성 바실리오는 시편을 "교회의 소리"라 하고 우리 선대 교황 우르바노 8세는 "하느님과 어린양의 옥좌 앞에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거룩한 찬미가의 메아리" 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성 아타나시오의 말에 의하면, 시편은 특히 자신의 주요 직분이 하느님을 예배하는 데에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어떻게 하느님을 찬미하고 무슨 말로 합당하게 찬미해야하는지" 가르쳐 준다. 따라서 성 아우구스띠노는 아름다운말로 이렇게 표현한다.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사람들이 당신을 합당하게 찬양할 수 있는지 보여 주시고자 먼저 당신 스스로를 찬양하셨고, 이렇게 하심으로 사람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법을 배웠다."
시편은 또 우리 영혼 안에 모든 덕행을 얻고자 하는 열의를 불붙일 힘을 지니고 있다. "사도 바울로가 말하듯 '성경은 신구약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는 데 유익한 책' 이지만 시편집은 성경의 다른 모든 책들의 열매를 담고 있는 정원처럼 찬미가를 부르고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열매와 다른 책들의 열매를 모두 보여준다." 고 아타나시오는 말한다. 그는 계속하여 이렇게 덧붙인다. "시편은 그것을 부르는 사람에게 거울과도 같아 그 안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감을 볼 수 있으므로 그 정감의 생생한 표현이 된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여, 나는 당신 교회가 부르는 감미로운 노랫소리에 가슴 뭉클하여 당신을 노래하는 찬미가와 찬가의 아름다움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나이다. 이 노랫소리는 내 귀에 흘러 들어가 진리가 내 마음을 축축히 적셔 주게 하고 내 신심의 정이 불타오르게 하여 눈물이 쏟아지게 했나이다. 이때 내 마음은 그 찬미 노래로 얼마나 행복에 넘쳤는지 모르나이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엄위와 그분의 전능하심과 표현할 수 없는 정의, 그분의 선과 자비 그리고 그분의 다른 무한한 속성을 그렇게도 숭고하게 전하는 시편의 많은 부분들을 들을 때 감동 받지 않을 이 누가 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시편에 나오는 하느님에로부터 받은 축복에 대한 감사의 노래, 소망하는 은총에 대한 겸손하고 신뢰에 찬 기도, 그리고 죄를 뉘우치는 영혼의 외침에 감동 받지 않을 이 어디 있겠는가? 성 아우구스띠노의 말처럼, "모든 시편 속에서 노래하시고 애통하시며 희망에 부풀어 즐거워하시고 고뇌에 차 탄식하시는" 구속주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불타오르지 않을 이 누가 있겠는가?
* 성 비오 10세 교황의 「성무일도에 관한 교황령」에서 (AAS 3[1911], 633-635)
[오요한 신부님의 '가톨릭 영성' 사이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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