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화된 베스트셀러 웹툰 <이끼>가 나왔을 때. 혹자는 “혜성 같은 신인이 나타났다”고 했고, 혹자는 “이 작가는 평생의 재능을 다 쓴 것 같다”고도 했다. 1988년 허영만 문하생으로 만화계에 입문해 93년『비상착륙』으로 데뷔, 이미 <이끼> 이전에『연씨별곡』『야후 YAHOO』『水上한 아이들』『로망스』 등의 걸출한 작품들을 발표한 만화가 윤태호 이야기다. 처음으로 도전한 웹툰 <이끼>로 윤태호라는 이름이 유명해지자, 이번엔 다음 작품에 대한 그의 부담감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3년이다. <이끼> 이후 윤태호가 바둑과 직장생활의 희로애락을 절묘하게 연결시킨, 이른바 ‘직장인 만화’ <미생>을 보란 듯이 내놓기까지 걸린 시간이. 지난 1월부터 포털사이트 다음 ‘만화속세상’에 연재 중인 웹툰 <미생>은 최장기간 평점 1위를 지키고 있다.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열한 살에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갔지만 열여덟에 입단에 실패, 사회에 내동댕이쳐 진 검정고시 출신 고졸 장그래가 주인공. 숨 쉴 틈 없이 바쁜 종합상사의 인턴으로 사회에 첫발을 담근 장그래의 고된 회사생활이 그려진다. 2개월의 인턴 생활 후 정식 사원이 되기 위해 벌이는 전쟁 같은 입사 PT시험 준비과정은 정말이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미생>이 ‘샐러리맨 만화의 진리’, ‘만화가 아닌 인생 교과서’ 등의 평을 듣는 이유, TV드라마 제작 논의가 오가는 이유, 일단 한번 보면 안다.
『미생』 단행본 1, 2권이 출간됐다. 웹툰에선 매 화마다 바둑 기보만 있던 것을, 단행본에선 중앙일보 바둑전문기자 박치문의 기보해설을 더했다.
내가 팬의 입장에서 박치문 선생님을 추천했다. 그 분이 쓴 책도 몇 권 읽었고, 바둑 쪽에선 워낙 유명하신 분이다. 글도 참 좋지 않나? 바둑 전문가이자 문장가시다.
먼저 출판버전으로 그린 후에 웹툰에 올릴 땐 컷들을 다시 조립한다고?
웹툰 올릴 땐 프레임을 하나하나 떼서 붙이니까 수고롭지만, 대신 책 낼 땐 편하니까. 출판 버전은 내레이션도 그림 안에 들어가 있는데, 웹툰에선 그림 밖에 있거든. 『이끼』단행본을 만들고 보니까 웹툰 버전을 바꾼 거라 페이지가 좀 허술하게 넘어가는 느낌이 있더라. 그래서 이번엔 역순으로 작업하고 있다.
바둑 만화는 10년 전부터 구상했다면서? 10급 정도의 실력을 갖춘 바둑 애호가이고.
20대 초반에 화실 형한테 바둑을 처음 배웠다. 아마추어 바둑은 18급부터 시작해서 1급까지 가고, 프로가 되면 1단이다. 단이 높을수록 실력이 뛰어난 거다. 근데 난 10급 정도 둔다. 별로 내세울 만하진 않다.(웃음)
바둑 관련 책들을 보면, 프로 바둑기사였는데 생활고를 못 이기고 내기 바둑기사가 된 사람 이야기가 나오더라. 한때는 바둑의 신동이었는데. 거기에 착안해서 내기 바둑꾼들의 이야기를 <타짜> 같이 해보면 어떨까 했지. 무서운 세계일거다. 내기 바둑을 두려면, 실제로는 3단의 실력을 갖고 있는데 자기 실력을 감추고 5급 정도를 둬야 한다. 5급은 절대 못 보는, 바둑 용어로 사활이나 수순이 있는데 그걸 들키면 안 되니까. 그 만화에선 바둑 두는 내용이 굉장히 중요한 거지. 그런데 바둑판의 그 수들을 그림으로 감당할 자신이 없더라. 나는 10급이니까,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하루에 바둑 한판 두는 것도 힘든 사람이라.(웃음) 주저주저하다가 포기했다.
샐러리맨 만화 역시 구상은 오래 전부터?
IMF 사태가 지나가고, 창업 열풍이 불지 않았나. 그래서 ‘창업 만화’를 준비했다. 벤처기업 조사도 하고, 재무재표 읽는 법도 익히고. 한 마디로 ‘돈 버는 만화’를 하려고. 근데 진짜 어렵더라. 누가 가이드해주지 않으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한 회계사를 만나서 “혹시 스터디가 될까요?”하고 물었더니 “아, 얼마든지요. 1시간에 30만 원”이라는 거다. 30만 원.(웃음) 그래서 스터디 무산, 창업만화도 보류했다.
큰 슬픔이 있는 사람은 일희일비하지 않는 법

그런 조사들이 밑바탕이 돼 <미생>의 탄생으로 이어진 건가?
밑거름이 있는 상태에서 위즈덤하우스 측에서 먼저 제의가 왔다. 처음엔『꼴』『식객』처럼 정보집약적인 만화로 하자는 거였다. ‘위기10결’이라고 바둑에도 10계명이 있는데 그걸 직장인 처세로 기획해서 바둑의 고수가 딱딱 집어서 교훈을 준다는. 근데 내 스타일과는 조금 안 맞는 것 같아서 지금의 만화 꼴을 만드는데 꼬박 3년이 걸렸다. 한국기원 취재는 3년간 했는데, 회사 내부 취재는 쉽지 않더라.
내가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다. 과장과 부장 중에 누가 더 높은 줄도 몰랐다. 그럼 차장은 어디에 위치하는 거지?, 그랬거든.(웃음) 계속 공식 요청을 했는데 기업 취재를 다 거절 당했다. 웹툰 연재 시작하고 3회차부터 취재원 대여섯 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만화 앞부분엔 회사 이야기가 모호하게 나올 거다. 구체적이지 않고, 인상적으로만 다뤘다.
그 점이 놀라웠다. 회사생활을 하지 않은 작가가 오피스 라이프의 세세한 결을 이토록 명확하게 집어내다니! 취재원들의 소스를 어떻게 가공했나?
기업 취재에 대한 갈증이 대단했는데, 취재원들을 만나니 궁금한 게 많아서 엄청 많이 물어봤지. 처음엔 “이벤트가 없어 뵈는 사무직은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술만 먹었다 하면 상사 욕하고, 회사 욕하고 그럽니까”했다. 그러니까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채로운 얘길 해주더라.(웃음) 대화하다가 전문용어가 나오면 그걸 기억해 뒀다가 인터넷에서 검색을 한다. 그 용어의 뜻과 관련사례들을 검색해 들어간다. 가령, 클레임. 그럼 어떤 경우에 회사 내에서 클레임을 거나 찾아봐, 그럼 정말 별거 아니다. 그냥 서로 빈정이 상했을 뿐이야. 이런 거구나, 문제 자체가 큰 게 아니고 작은 문제가 크게 느껴지는 거란 걸 알게 된다.
사무직이라는 게 빅이슈가 별로 없지 않나. 현장 근로자들은 일단 몸을 쓰고, 방심하면 다친다. 근데 사무실은 파티션이란 게 있어서 몸을 수그리면 감춰진다. 그 속에서 오늘까지 기안서는 만들어야 하니까 글꼴, 띄어쓰기, 정보가 압축이 잘 됐는지, 그리고 내가 가진 정보보다 더 최신 자료는 없는지 찾아본다. 내가 쓴 보고가 논리적으로 맞는지, 팀장님에게 ‘빠꾸’ 먹지 않을지 셈해보는 중에 갑자기 회의를 들어오래. 다녀 오면 시간은 부족하고, 집중은 안 되는데 어쨌거나 기안서 작성은 오늘 끝내야 하고. 제 3자 입장에서 볼 땐 진짜 비효율적이더라. 근데 또 어쩔 수 없고.
장그래가 속한 영업3팀 오과장을 비롯한 회사의 상사들은 꽤 정직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편이다. 한마디로 상식이 통한다. 그런 점이 대단히 드라마틱하다고 느꼈다. 교활한 사내정치나 연애가 주가 되는 대부분의 직장인 스토리와는 다른 방식의 판타지 같은 것.
다른 작품들에서 회사 내 악마들은 이미 다 나왔기 때문에, 난 나만의 방식으로 상사들을 그리고 싶었다. 물론 창작물이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기본적으로 만화이지 않나. 장그래와 함께 인턴으로 들어간 뿔테 안경 쓴 장백기가 처음으로 업무를 받아서 기분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장백기가 음악을 볼륨 2로 틀어놓고 발을 까딱까딱 맞추면, 음표가 그려지면서 그간 장백기를 갈궜던 대리도 기분 좋게 그 음악을 듣는. 근데 웹툰 밑에, ‘사무실에서 음악 못 듣습니다’ 같은 댓글이 많은 거다.(웃음) 그 정도로 감정이입을 해주는 것 같다. 최근 연재분에서 영업3팀에 악당 과장이 들어왔다. 댓글도 뜨겁더라. 앞으론 팀원들이 대동단결해서 악당을 물리치는 얘기로 가려고 한다.
주인공 장그래는 어린 나이에 바둑 입단 실패라는 인생의 쓴맛을 본 인물이다. 실제 모델이 있나?
그렇진 않다. 하지만 장그래처럼 어린 나이에 입단에 실패한 사람들은 많다. 한국기원에는 연구생 조직이 있거든. 프로가 되는 바둑 기사들은 대부분 천재다. 이 사람들이 6, 7살 때 바둑에 재능을 보이면 초등학교 오전 수업만 듣고, 오후엔 혼자 앉아서 바둑을 둔다. 마치 무용, 체육 특기생들이 훈련하듯이. 그러다가 동네 바둑학원, 도장을 가고, 프로 바둑 기사가 운영하는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한국기원에서 운영을 하는.
우리나라에선 프로 바둑 기사가 되려면 한국기원 소속이어야 한다. 한국 기원에서 운영하는 연구생 리그를 계속 해야 한다. 경기 승패에 따라 총 12진까지 나뉘는데, 각 진마다 10명 가량 있대. 근데 1년에 입단할 수 있는 숫자는 9명인가, 10명인가 그렇다. 만약 연구생이 18살이 될 때까지 프로 입단하지 못하면 퇴출된다. 그러니까 연구생 대부분은 장그래나 다름없다. 18살에 실패자가 돼, 할 줄 아는 건 바둑뿐인데 갑자기 사회에 던져진. <미생> 준비하면서 한국기원 갔을 때 입단 실패한 분들을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이익을 위해서 그 분들에게 실례를 범하는 것 같아서. 그래도 입단은 실패했지만 지금 매우 잘 살고 있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기자들이 물어보더라. 혹시 장그래라는 캐릭터를 직장인의 모델로 생각하냐고. 그렇진 않다. 장그래는 굉장히 큰 슬픔이 있기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너무 쉽게 웃고 슬퍼하면, 자신의 큰 슬픔이 상처 받을까봐. 그래서 장그래는 회사 최종합격 통보를 받고서도, 덤덤하게 엄마한테 전화해서 그 사실을 알린다.
인턴사원으로 2달을 보내고 PT면접을 통해 정식 사원이 되는 과정이 굉장히 스펙터클하게 그려진다. 거의 ‘회사원 전쟁’을 보는 것 같았다.
실제론 이렇게까지 호되게 시키진 않는다더라.(웃음) 인턴들이 경쟁하는 방식도 내가 지어낸 거고. 대부분 면접 보러 가서 가장 모욕을 느끼고, 힘들다고 하는 건 임원급들의 ‘예의없음’ 이더라. 만화에서처럼 면접관들이 성실하게 질문하는 경우도 드물다고 하고. 내가 먼저 설정을 해놓고 취재원들에게 물어본다. “이런 게 가능할까요?” “무리하진 않습니다.” 그러면 난 한다.
당최 신입 같지 않은 장그래의 동기이자 프로 포스의 ‘안영이’는 출신의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다. 나, 출생의 비밀 같은 거 안 좋아한다. 그냥 강한 여성이 좋다.(웃음)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남성과 똑같은 경쟁을 시키고 공정한 평가를 해주고, 정당하게 여성을 승진시키지 않거든. 어쩌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은 성과를 내야 비슷한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회사에서 일정 직급 이상 되는 여성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꽤나 성격적으로 단호하고, 깔끔하고, 한편으론 무시무시하다. 그리고 진짜 똑똑하다.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 확실하고, 말 허투루 하지 않고. 그래서 사회에 나왔을 때부터 완벽한, 이런 여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앞으론 최동훈 감독 스타일로!

데뷔 이후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학원물, 야구만화, 고전 패러디 만화, 개그 컬트 만화,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한 만화 등등. 그림체도 모두 다르다.
내가 같은 그림은 못 그린다. 동어반복이 체질상 안 맞는다. 그래서 ‘작화 붕괴’라는 얘기도 있고.(웃음) 이번엔 <이끼>에 비하면 채도를 낮춰서 모노톤으로 잡았다. 전반적으로 밝고 나름 우아해 보이게 설정했다. 요즘 웹툰 보면 ‘쨍’한 느낌인데, 거기에 비하면 소박하고 담담하게. 드라마로 치면, 미니시리즈가 아니고 일일연속극처럼 보게 되길 바랐다.
하지만 사회구조적 모순 안에서 사람들의 심리와 생활을 다룬다는 점은 작품들의 공통점이다.
내가 구조적인 걸 엄청 좋아한다. 구조를 뜯어서 이렇게 저렇게 배치해서, 그들의 총합이 어떤 메시지로 보여지는 것.
허영만 문하생으로 만화계에 입문했는데, 어떤 계기로?
나는 만화를 그리는 게 유일한 꿈이었다. 살면서 만화 말고 다른 일을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학창시절엔 체육특기생처럼 미술대회를 1년에 50번 정도를 나갔다. 보통 1박2일로 전국에서 하는 온갖 경시대회, 포스터 대회 등에 참가하는 거다. 한번 다녀오면 또 공부가 안 돼.(웃음) 돈이 없어서 대학 진학이 어려웠고, 죽기살기로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 서울에 상경했다. 만화학원이 처음에 강남역 앞에 있었다. 88년도 여름에 한 3개월 노숙을 했다. 분수대에도 누워있다가 경비들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고. 그땐 노숙이란 말을 몰라서 ‘벤치생활’이라고.(웃음) 그 때 같이 벤치생활하던 사람 중에 허영만 선생님 문하생이 있어서 우여곡절 끝에 들어가게 됐다. 2, 3년 정도 있었지.
꾸준히 작가 생활을 하다 <이끼>에 이르러서 큰 인기를 얻었다.
그 때 내 이름이 생긴 거지. 만화가 친구들 사이에서만 인정받는 작가에서 독자들도 알아주는 작가가 됐다. 근데 <이끼> 할 때 누군가 인터넷 게시판에 ‘이 작가는 평생의 재능을 다 써버린 것 같아’라고 썼더라. 괜히 나도 걱정스러웠다. 나만 몰랐지 정말 재능을 다 써버린 게 아닐까, 불안하더라고. 그래서 <미생>은 <이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운 작품이다.
라이벌이라면?
누구 한 사람을 한가하게 찍고 있기엔 그리 만만한 세상이 아니다.(웃음) 이 사람인가 싶으면 저 사람이고, 저 사람인가 싶으면 이 사람이고. 그래서 강풀이니 주호민이니 굉장히 빨리 친해지고 있다. 내 눈에 보이는 데 있어야 안 무섭지.(웃음)
작가로서 목표는 뭔가?
내 지면이 대체되지 않는 것. 창작자한테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때는 허영만, 이현세 선생님처럼 많은 작품을 못한다. 대본소도 없어졌고. <이끼>가 완결까지 총 4년 정도 걸렸고, <미생>도 기획부터 벌써 3년이 지나가 버렸다. 죽을 때까지 몇 타이틀을 할 수 있나 셈해 보면, 이제 대여섯 타이틀 정도 밖에 안 남았다. 그래서 한 작품, 한 작품을 매우 잘 해야 한다.
다음 작품에선 인천상륙작전 이야길 할 거라고?
맞다. 계속 책 읽고 조사 중이다. 그런데 그걸 준비하다 갑자기 또 지난 1976년 발견한 ‘신안 앞바다 보물선’, 700여 년 전에 침몰된 거, 도굴꾼들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그래서 자료들을 찾아보는데 정말 재미있다.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보물이 있다, 없다가 중요한 게 아니다. 거기로 누군가는 가야 하는데 그게 왜 가치가 있는 지를 아는 사람, 팔 수 있는 루트를 아는 사람, 대장, 잠수부 등등이 있어야 돼. 대장은 이 모임의 어떤 면을 장악하고 있을까가 궁금해지는 그런 만화, 진짜 재미있겠지?
아이들도 태어나고 삶이 행복해져서, 앞으로 <이끼> 같은 어두운 이야기는 못할 것 같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이런 거지. 똑같이 어두운 이야기라도 이창동 감독이 하는 것과, 최동훈 감독이 하는 게 다르지 않나. 최동훈 감독의 엔터테인먼트적인 면, 그걸 구현해 보고 싶은 거다. 주제는 어둡지만. 지금까지는 내가 이창동 감독 내지는 김기덕 감독 스타일의 삶을 살아왔다면, 이젠 <미생>을 통해 확 다른 세계로 넘어가서 내 방의 벽지를 만 원권으로 바르리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 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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