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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섬&산) 좋은사람들--버스매일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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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여행 후기 스크랩 바윗길을 걸으며 훔쳐보는 아름다운 섬 풍경들, 금당도(‘18.5.14)
갈하늘 추천 0 조회 680 18.05.28 04: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금당도(金塘島) 여행

 

여 행 일 : ‘18. 5. 14()

소 재 지 : 전남 완도군 금당면 육산리(陸山里), 차우리(車牛里), 가학리(駕鶴里)

여행코스 : 율포항남도갯길 들머리공산금당산가학재삼랑산오봉산세추목재(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완도군의 동쪽 끝에 위치한 면적 15.5의 섬으로 행정구역은 완도에 속하지만 거리상으로는 고흥과 더 가깝다. 1896년 이전에는 장흥군에 속했다고도 한다. 3개의 유인도와 15개의 무인도를 거느린 금당면의 중심 섬이며, 552세대 1,042(2017년 기준)이 살고 있으니 비교적 큰 섬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섬의 가장 큰 특징은 산들이 모두 울퉁불퉁한 근육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공산과 금당산, 삼랑산, 오봉산, 봉자산 등 고도(高度) 2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는데, 대부분이 암릉이라서 뛰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이곳 금당도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해안선 트레킹보다는 이 다섯 산을 종주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안의 경관이 뒤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해안에 형성된 기암절벽의 경관도 역시 뛰어나다. 조선 후기의 문인 위세직(魏世稷, 1655~1721)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금당별곡(金塘別曲)’이라는 기행가사(紀行歌辭)를 남겼을 정도다. 이 가사에 금당팔경으로도 불리는 금당도의 여덟 가지 절경 이야기가 담겨 있다. 참고로 금당도는 한자로 '金堂島'였는데 일제강점기 이후 '金塘島'로 바뀌었다고 한다. 금당(金堂)은 석가모니불을 모셔두는 곳을 말하기도 한다. 예전에 금이 많이 나서 ''자가 붙었다는 말도 있다. 금일도(金日島), 생일도의 금곡리(金谷里)처럼 금이 산출된 것에서 연유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금댕이''금당'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찾아가는 길 : 일단은 녹동신항 연안여객선 터미널까지 와야만 한다. 금당도로 들어가는 배가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녹동은 남해고속도로(순천-영암) 고흥 IC에서 빠져나와 15번 국도를 타고 고흥읍까지 들어온 다음 호형교차로(고흥군 고흥읍 호형리)에서 27번 국도로 갈아타면 된다. 시내를 통과한 후 바닷가에 이르면 연안여객선 터미널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장흥군 회진면 노력도에서도 금당도의 가학항을 오가는 철부선이 운항되고 있으니 참조한다. 노력항에서는 하루 5(06:30, 08:30, 11:30, 14:30, 17:00) 배가 뜨는데 시간은 대략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금당도까지는 차도선(車渡船)을 이용한다. ‘은해 페리호가 하루 4(06:00, 09:15, 13:00, 16:00), 울포항에서도 하루 4(08:00, 11:20, 15:00, 17:50) 왕복 운항하고 있다. 하지만 계절에 따라 운행시간과 횟수가 달라진다니 운항사인 평화해운(061-843-2300)’에 미리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금당도까지는 대략 45분 정도가 소요된다.



거금대교 아래를 지난 후 연홍도 사이를 빠져나오면 금당도가 길게 늘어서 있다. 하얀 바위섬은 마치 커다란 누에가 누워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어서 배는 3개의 유인도와 15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금당면의 면소재지인 울포항으로 들어선다. 항구로 들어서자 녹색등대가 뱃길을 안내한다. 빨강등대와 흰색등대가 배를 맞는 다른 항구들과는 다른 풍경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빨강등대는 배가 항구로 들어올 때 항로의 오른쪽에 설치돼 항구가 왼쪽에 있음을 알린다. 반면에 흰색등대는 그 반대다. 녹색등대는 흰색등대 역할을 한다. 다만 흰색등대는 뭍에 설치돼 있고 녹색등대는 바다에 설치돼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색상이 보이지 않는 밤, 육상의 빨강등대는 붉은 빛을 흰색등대는 초록빛을 밝힌다. 참고로 빨강색과 검정색 조합의 등대도 있다. 주변에 암초지대()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란다. 그리고 빨간색이니 왼쪽으로 뱃길을 잡아야 한단다.




배에서 내리면 새 천년(千年)을 여는 완도군 금당면(莞島郡 金塘面)’이라고 쓰인 커다란 빗돌(碑石)이 길손을 맞는다. 표지석 아래에는 섬의 연혁에 대해 적어놓았다. 금당도에 다녀갔다는 인증사진을 찍기에 딱 좋은 조형물이지 싶다. 그렇다고 사진만 찍고 그냥 가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자. 빗돌의 뒷면에 금당팔경(金塘八景)’의 여덟 문장을 새겨 놓았으니 한번쯤 읽어보고 가자는 얘기이다. ‘금당팔경이란 금당별곡(金塘別曲)‘에 나오는 여덟 절경(絶景)들로서, 장흥 위씨(魏氏)’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첩()삼족당가첩(三足堂歌帖)’에 나오는 기행가사(紀行歌辭)이다. 이로 인해 위세보(魏世寶, 1669-1707)가 지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그의 저서인 석병집(石屛集)에서 삼종형작 금당별곡(三從兄作 金塘別曲)’이라는 기록이 발견된 뒤부터 위세직(魏世稷, 1655-1721)으로 정정된바 있다. 세직(世稷)은 당쟁에 휘말려 장흥으로 유배 온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 1628-1692)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여지승람(輿地勝覽) 장흥조(長興條) 편찬에도 참여한 선비이다. 아무튼 이 작품은 회령진 만호 조충배(趙忠培)의 초청을 받은 수우옹(守愚翁, 세직의 호)이 그의 셋째 동생 백신(伯紳)과 함께 금당도(金塘島)와 만화도(萬花島)를 거쳐 돌아오기까지의 자연경물을 서경적으로 읊은 일종의 해양기행가사이다. 참고로 금당별곡(金塘別曲)에 나오는 팔경(八景)은 공산제월(孔山霽月)과 사동효종(寺洞曉鐘), 기봉세우(箕峯細雨), 울포귀범(鬱浦歸帆), 적벽청풍(赤壁淸風), 화조모운(花鳥暮雲), 학잠낙조(鶴岑落照) 등이다.



선착장에는 작은 고깃배 몇 척이 정박해 있을 따름이다. 그만큼 한적한 항구라는 얘기일 것이다. 배들 너머로 보이는 섬은 비견도(飛見島)이다. 이곳 금당도 및 허우도와 함께 금당면을 구성하고 있는 3개의 유인도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면 이 앞바다는 위세적이 노래한 금당팔경(金塘八景)’ 가운데 제5경인 울포귀범(鬱浦歸帆)’의 배경지가 되겠다. ‘비견리 앞 작은 호수를 배경으로 돌아오는 황포돛배의 모습이 물 수반위에 놓인 꽃 봉우리처럼 아름답다는 그 바다 말이다.



울포항에 내리면 커다란 수협건물이 마주보고 서있다. 산행 시작점은 수협 건물 오른쪽으로 바로 올라갈 수도 있고, 마을을 지나서 면사무소 뒤로 오르는 길도 있다. 면사무소에서 시작하기로 하고 수협건물의 왼편으로 들어선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마을안길 풍경을 담고 싶어서이다. 아니나 다를까 골목에는 눈요깃거리가 제법 많다. 길가 담벼락의 곳곳에다 원색의 벽화(壁畫)들을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낚싯대가 아닐까 싶다. 커다란 바닷고기를 끌어올리는 그림인데 아예 포토존이라고 적어놓기까지 했다.



7~8분쯤 진행하면 금당면사무소가 나온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아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이곳에서는 무조건 면사무소의 마당으로 들어서고 봐야 한다. 마당에 늘어선 보건소와 면사무소, 그리고 복지회관 건물들을 차례로 지났다 싶으면 저만큼에 들머리가 보인다. 초입에 등산로 종합안내도남도 갯길 6000리 경치좋은 길이라고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면소재지인 이곳 '울포(鬱浦)'는 술맛이 좋다고 해서 울금(鬱今)이라 호칭했으나, 이후 울포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1770년 조선 영조 대에 인천 이씨가 금일읍 평일도에서 떼배를 타고 처음 들어왔으며 그 후 김씨 등이 이주하여 형성했다고 한다.



남도갯길 6000란 전라남도의 해안선을 따라 조성해 놓은 둘레길을 일컫는 말이다. 전라남도는 전국의 50%에 달하는 해안선(6419km)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영광에서 광양까지의 2500km, 6000리 구간에 탐방로를 내놓고 남도갯길 6000란 이름을 붙였다. 이 길에 포함되는 지역은 영광, 함평, 무안, 목포, 진도, 해남, 완도, 강진, 장흥, 보성, 고흥, 순천, 여수, 광양 총 14개 시군으로 우리나라 전체 갯벌의 44%를 차지할 정도로 광활한 곳이다. 굴곡이 심한 해안선을 따라 발달한 남도 갯길은 겨울에도 풍부한 먹을거리를 자랑한다. 눈과 입이 함께 즐거울 수 있다는 얘기이다. 아무튼 수려한 경관과 희귀 동식물, 문화, 역사, 맛집 등을 걸으면서 느끼도록 설정된 도보 탐방길이라고 보면 되겠다.



통나무 계단을 깔아놓은 산길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잠시 후 커다란 바위 옆을 지나자 산길은 능선에 올라선다. 이정표는 없으나 공산은 이곳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오솔길은 아까 수협 앞에서 오른편으로 갈려나갔던 길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산길에 들어서자마자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이 길손을 맞는다. 기분 좋은 향기가 코끝을 맴 돈다. 나도 모르게 침이 가득 고인다. 좋다. 아무래도 오늘은 행복한 산행이 될 것 같다.



능선을 따라 잠시 걷다보면 오른편으로 기이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고개를 내민다. 윗부분이 둥글고 반질반질하게 생긴 것이 스님의 머리를 빼다 닮았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스님바위’, 거기다 금당팔경(金塘八景)의 세 번째 자리에다 그 이름을 떡하니 올려놓았다. 이곳 금당도를 세상에 알린 것은 물론 위세직의 금당별곡(金塘別曲)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또 다른 여덟 곳 비경을 금당팔경(金塘八景)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금당도의 37km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기암괴석들인데, 파도와 비바람에 만고풍상(萬古風霜)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형상들이 하나같이 신비롭다면서 말이다. 아무튼 저 스님바위에다 병풍바위와 부채바위, 교암청풍, 연산호 군락지, 초가바위, 코끼리바위, 남근바위 등을 합쳐 금당팔경(金塘八景)이라 부르니 참조한다.



8분 후 산길은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이어서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공산(孔山)’이 얼굴을 내민다. 뾰쪽하게 솟아오른 바위봉우리가 오르기도 전부터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 위험스러워 보인다는 얘기이다. 아무튼 저 봉우리는 위세적이 거론했던 금당팔경(金塘八景) 가운데 제1경이다. 둥근 보름달이 공산 위에 걸치면서 사방이 달빛으로 가득한데 그 아래서 유림들이 도를 닦는다는 공산제월(孔山霽月)’이 바로 저곳인 것이다.



원시의 밀림을 방불케 하는 울창한 숲길을 따라 5분 정도 더 걷자 차우고개가 나온다. 차우마을과 선착장을 잇는 고갯마루이다. 차우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도로로 내려섰다가 다시 산길로 들어선다. ! 이 구간에서 바닷가로 내려가는 갈림길(이정표 : 공산 가는 길/ 바닷가 가는 길)을 만난다는 걸 깜빡 잊을 뻔 했다. 금당팔경 가운데 하나인 부채바위와 병풍바위를 만날 수 있다는 해안산책로로 연결되지 않나 싶다. 참고로 차우리1640년 조선시대 인조 때부터 사람이 거주해 왔다고 한다. ‘진주 강씨가 고흥에서 처음으로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한 곳으로 마을 뒷산인 공산을 수리(독수리)가 넘어 왔다고 해서 '수리 넘어'로 불러오다가 언제부턴가 차우리(車牛里)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고쳐진 이유를 그 독수리가 다시 공산을 타고 넘어갔다는 데서 찾는 사람들도 있으나 나에겐 공허하게만 들린다. 한자음에 어울리는 접점을 찾을 수 없어서이다.




키 작은 소나무들이 늘어선 능선을 지난다. 왼편에 차우마을과 오른편에 오동도와 연홍도, 그 너머 육지를 닮은 거금도를 양 옆구리에 끼고 걷는 기분 좋은 산길이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더 걷자 작은 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되면서 공산으로 오르는 바윗길이 나타난다. 멀리서 봤을 때는 우락부락한 바위산이었는데 막상 이르고 보니 생각보다는 순한 것 같다. 그저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고생할 일만 걱정하면 될 것 같다.



공산으로 오르는 길은 멀고도 멀다. 거기다 가파르기까지 하다. 밧줄로 난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싶다. 하긴 이렇게 멋지고 웅장한 산이 그 귀한 몸을 어찌 쉽게 허락하겠는가. 이런 곳에서는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다. 길가에 매어놓은 밧줄난간에 의지해서 최대한으로 느릿느릿 오르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도 힘들다면 잠시 쉬어가는 지혜를 발휘해 보자. 좌우로 펼쳐지는 섬 풍경들이 그 힘듦을 반감시켜줄 것이다.



숨이 턱에 찰 즈음에야 겨우 정상(138m)에 올라선다. 차우고개에서 18, 면사무소에서 산행을 시작한지는 31분이 지났다. 바위로 이루어진 공산의 정상은 비좁기 짝이 없는데, 정상표지석은 바위봉우리의 맨 꼭대기에다 올려놓았다. 그러다보니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끼리 서로 부대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이런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이 다들 행복한 표정들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주변 풍광들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거칠 것이 없다.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일절 없기 때문이다. 차우리를 가운데에 놓고 양쪽으로 바다가 펼쳐지는데, 그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수도 없이 떠있다. 솔섬과 대·소납다지, ··소화도 등 금당도의 섬들은 물론이고, 오른편으로는 오동도와 연홍도, 거금도 등 고흥군에 속하는 섬들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조망을 실컷 즐겼다면 이젠 금당산으로 가야 할 차례이다. 올라왔던 반대편에 매어진 밧줄에 의지해서 내려서면 될 일이다. 이후로도 산길은 바윗길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능선의 폭이 넓은데다 경사까지 완만하니 말이다.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될 따름이라는 얘기이다. 그저 좌우로 펼쳐지는 시원스런 조망을 즐기면서 느긋하면 걸으면 될 일이다.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금당산이 고개를 내민다. 한쪽 면을 떼어낸 채 위태롭게 서 있는 형상이다. 그 떨어진 곳을 바다에서 보면 부채바위처럼 펼쳐진다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진행하자 금당면사무소로 연결된다는 길 하나가 오른쪽으로 나뉜다. 물론 공산에서부터 걸린 시간이다. 그런데 이곳에 세워놓은 이정표(쟁그랑산0.5Km/ 금당면사무소1.5Km/ 공산1Km)가 눈길을 끈다. ‘쟁그랑산이라는 뜬금없는 지명이 툭 튀어나온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금당산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쉼터를 지나자마자 이정표(가학산4.0Km/ 병풍바위 해변0.2Km/ 공산1.2Km) 하나가 얼굴을 내민다. 오른편 갈림길로 진행할 경우 병풍바위 해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병풍바위라면 금당팔경(金塘八景)의 제1경이 분명할진데 망설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200m만 가면 된다는데 말이다. 냉큼 들어서고 본다.





오른편으로 들어서서 3~4분쯤 진행하자 거대한 바위절벽이 나타난다. 수백 길의 해안절벽이 널따랗게 펼쳐지는 것이다. 동릉을 타고 오는 길에 눈길을 끌던 그 거대한 바위 벼랑이 금당팔경(金塘八景)의 제1경인 병풍바위였던 것이다. 아니 이쪽 방향에 있다는 부채바위일지도 모르겠다. 부챗살을 활짝 펼쳐놓은 것 같이 생겼다는 새로운 금당팔경(金塘八景) 가운데 제2경이라는 그 부채바위 말이다. 아무튼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라는데, 아쉽게도 아래에서 올려다보거나 옆모습만 눈에 담을 수 있을 따름이다. 배를 탔을 때에나 전체적인 형상을 감상할 수가 있단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금당산으로 향한다. 이제부터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냥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지()’ 자를 쓰고 나서야 겨우 위로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르다. 그렇게 10분 남짓 오르면 능선은 분지처럼 널따랗게 변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금당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공산 정상에서 내려선지 45분만이다.



서너 평 남짓 되는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작은 바윗덩어리 몇 개가 널브러져 있어 어수선한 풍경이다. 오석(烏石)으로 만든 정상표지석은 공터의 한쪽 귀퉁이에다 세워놓았다. 금당산은 복개산이란 다른 이름이 있는가 하면 쟁그랑산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이름이 많다는 건 그만큼 사연도 많다는 얘기가 된다. 예전에 쟁그랑산 꼭대기에 바위 못이 있었는데 어느 스님이 복개를 띄웠더니 바람에 부딪혀 쟁그랑거렸다는 설화가 마을 사람들 사이에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온단다. 그렇다고 못을 찾아보는 우()는 범하지 말자. 얘기는 얘기일 따름이니까 말이다. 다만 돌맹이 하나를 집어 들어 바위에 떨어뜨려보는 것쯤은 괜찮다. 재수 좋으면 쟁그랑산이라는 이름을 낳게 한 쇳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정상에서의 조망은 별로이다. 주변이 잡목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것까지는 없다. 조금만 더 북쪽으로 나아가면 된다. 시야가 툭 트이면서 삼랑산과 오봉산으로 이어지는 섬 서쪽 능선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온통 바위투성이로 이루어진 험상궂은 암릉이다.



하산은 육동마을 방향이다. 주능선은 북쪽 방향으로 이어지지만 산길이 희미한데다 거칠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다. 그저 10시 방향, 아니 삼산저수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내려간다고 보면 되겠다. 얼마간 내려갔을까 산길이 왼편으로 크게 휘면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하지만 길이 제법 또렷하게 나있어 진행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잠시 후 능선에 케언(cairn) 몇 기가 나타난다. 아까 금당산으로 오를 때도 만났었는데 그것 보다는 훨씬 더 규모 있게 쌓아올렸다. 바라는 바가 그만큼 간절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돌맹이 하나을 올려놓는 게 보인다. 장난기가 발동했는가 보다. 평소에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던 돌탑에 관심을 표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아니 눈앞에 펼쳐지는 바윗길에 오금이 저렸을 수도 있겠다. 그걸 잊기 위한 바람의 돌 하나쯤 올려놓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능선은 왼편으로 활처럼 휘어진다. 그리고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외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잘 생긴 암릉도 나타난다. 잘게 부서지는 바위들은 큰 너럭바위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고래등 같은 바위도 보여준다. 바위 이름이야 다 있겠지만 알 수가 없다. 아무튼 바위들이 웅장하지는 않지만 금당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들이어선지 신선함을 준다. 시야(視野)를 막는 것이 없으니 조망 또한 거칠 것이 없다. 한마디로 멋진 산길이라 하겠다.



그렇게 한참을 진행하던 산길이 가파르게 아래로 향한다. 그 가파름이 자칫 부담스러웠던가 보다. 탐방로 주변의 잡목들을 제거한 것으로도 모자라 길게 밧줄까지 매어놓은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서 상수도용으로 보이는 물탱크를 만난다. 금당산 정상에서 내려선지 40분만이다.



물탱크를 지났다싶으면 탐방로는 도로를 따르게 된다. 몇 번의 갈림길을 만나지만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아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 첫 번째로 만나는 시멘트포장 도로에서는 왼편의 육동마을 방향이다. 곧이어 만나게 되는 아스팔트 포장도로에서는 오른편 가학리방향이다. 이어서 10분 남짓 더 걸으면 도로가 둘로 나뉜다. 이곳에서는 도로표지판(신흥리/ 가학항)을 참조하면 된다. 오른편 가학항으로 진행하면 된다는 얘기이다. 이후부터는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그렇게 10분 남짓 진행하면 가학재에 올라선다. 절개지 꼭대기에 외롭게 서있는 소나무들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고갯마루이다. 가학재는 개기재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고개 너머에 있는 개기마을(開基里)’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개기리란 금당도에서 가장 먼저 개척된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말이다. 이후 마을의 전체적인 형세가 학() 모양으로 생겼다는 것과 그 학이 멍애 를 넘었다 해서 멍넘어라고 불리어 오다가 한자명으로 고치면서 가학리(駕鶴里)로 변했는데, 이에 따라 고개 이름도 가학재로 변했다. 물탱크에서 이곳까지는 25분이 걸렸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지루했던 구간이 아닐까 싶다.



산길은 고갯마루의 맨 꼭대기에서 왼쪽으로 열린다. 초입에 이정표(오봉산2.5Km/ 가학산0.5Km/ 옥동마을1.5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후부터 산길은 서쪽 능선, 서릉(西陵)’을 따른다. 섬 북쪽 가학리와 육동마을을 잇는 고갯마루인 개기재에서 남쪽 봉자산까지 길게 뻗어 있다. 거리는 약 4.5km로 삼랑산, 오봉산, 봉자산을 넘는 기복이 심한 코스다. 대신 금당도 서쪽과 남쪽의 수려한 풍광이 계속해서 조망되는 등 눈이 한껏 호사를 누리게 되는 멋진 구간이다. 아무튼 능선을 따라 난 길은 임도처럼 넓다. 방화선으로 닦아놓았지 않나 싶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진행하면 ‘221m’봉에 올라선다. 잠시 후에 걷게 될 능선과 그 오른편에 있는 송아지목이라는 작은 섬이 조망되는 것 외에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봉우리이다. 그러다보니 정상표지석이 세워졌을 리가 없다. 그 흔한 이정표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돌맹이 몇 개를 모아놓고 그중 하나에다 금당도 221m이라고 적어놓았을 따름이다.



221m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거칠어진다. 수풀에 가시덤불이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안부를 지나 바위지대가 시작되면서 고생은 끝이다. 능선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 거의 없어 상쾌하고 시원하다. 그저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을 즐기기만 하면 될 일이다. 물론 경사는 좀 가팔라졌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에 취하다보면 그까짓 정도는 느껴지지도 않는다. 다만 햇볕을 가려줄 그늘이 없다는 게 흠일 수도 있겠다.





금당도의 두 항구 가운데 하나인 가학항과 그 앞에 떠있는 도각도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가 하면 양식장으로 가득한 섬 서쪽 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재도, 질마도, 황도 등 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들이 그려내는 수묵화 같은 풍광이 감동적이다. 그 뒤를 감싸고 있는 조약도와 금일도의 넉넉한 모습도 아름답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길죽하게 생긴 질마도가 아닐까 싶다. 무인도(無人島) 임에도 불구하고 우물이 있다고 해서 한때 부동산개발업자들의 타깃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금당 33가운데 하나로 꼽혀있으니 경관이 고움은 물론이다. 현재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몽골텐트 등의 임시시설을 지어놓고 회사 휴양지로 사용하고 있단다. 관광지로 개발하려 했으나 허가 절차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푸른 바다 위에 마치 구슬을 뿌린 듯 크고 작은 섬들이 아름다운 다도해 풍경을 이룬다. 바다 경치가 일품이다. 그래서 완도의 완()'빙그레 웃을 완' 자인지도 모르겠다. 완도에선 경치에 웃고, 맛에 웃고, 인심에 한 번 더 웃는다니 말이다. 이쯤에서 아재 개그하나쯤 하고 넘어가보자. 금당도는 한때 부자섬으로 불렸다고 한다.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 (海苔) 값이 금값이었을 때는 김의 수확, 가공작업을 하느라 바빠서 대변을 보고 뒷처리로 흘러넘치는 지폐 다발을 사용하면 부근을 어슬렁거리던 똥개들이 돈을 입에 물고 다녔단다.



암릉이 계속되는가 싶었는데 느닷없이 잡목이 우거진 숲길로 바뀌어버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당도에서 가장 높은 삼랑산(219.8m)에 올라선다. 가학재를 출발한지 45분만이다. 작은 바위들이 널브러져 있는 정상은 아까 지나왔던 금당산과 비슷한 풍경를 보여준다. 오석(烏石)으로 된 정상표지석을 세워놓은 것 또한 같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정상석의 앞에다 삼각점(거금 21)을 설치해 놓았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빼어나다. 금당도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산릉들이 울퉁불퉁한 모습으로 넓게 펼쳐진다. 이를 감싸고 있는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금당도의 본모습이 아닐까 싶다. 정면으로는 진행할 봉우리들이 늘어선 뒤로 하늘과 맞닿은 능선이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이 바다에 수를 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건 서쪽 바다 건너로 보이는 남도의 명산들이 아닐까 싶다. 장흥 천관산에서 해남 두륜산과 달마산, 완도 상황봉으로 이어지는 수려한 하늘금이 매혹적이다.




오봉산으로 향한다. 바윗길을 짧게 내려섰다가 반대편 능선을 치고 오르면 바위봉우리인 ‘199m이다. 탐방로는 봉우리의 꼭짓점을 피해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한다. 그렇다고 이를 따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조망이 뛰어난 곳이니 꼭 올라가 보라는 얘기이다. 그것도 20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이니 말이다.



정상에 서면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한 너른 들녘이 내려다보인다. 간척공사로 인해 생겨난 농토, 즉 간척지(干拓地)일 것이다. 간척지가 생겼지만 여전히 바다는 금당도의 핵심이다. 누군가는 금당도 앞바다를 일러 여객선이 오가는 뱃길만 빼고 모두가 양식장이라고 했다. 미역, 다시마, 톳 어장이 광활하게 펼쳐진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널따란 바다는 온통 양식시설임을 알리는 부표들로 덮여있다. 이곳 금당도가 동쪽의 고흥반도와 서쪽의 장흥반도 사이에 있는 탓에, 항상 파도가 잔잔하고 수온이 적당한 천혜의 어장이기 때문이란다. 집집마다 선외기(船外機) 한두 척은 부리고 있다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참고로 금당도에는 육산리 외에도 차우리와 가학리 등 3개의 리에 크고 작은 마을 6개가 있으며 두 개의 항구가 있다. 동남쪽의 비견도를 바라보는 울포항과 북서쪽의 가학항이 바로 그것이다.



조망을 즐기다가 또 다시 길을 나선다. 긴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15분쯤 내려서면 안부 삼거리에 내려선다. 왼편으로 내려가면 삼산마을로 연결되지 않나 싶다. 오봉산으로 가려면 곧장 능선을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또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거기다 가파르기까지 해서 꽤나 힘이 드는 구간이다. 아니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아닐까 싶다. 이곳까지 오느라 체력이 고갈된 데다 때 이른 더위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분 남짓 오르면 드디어 오봉산(178m) 정상이다. 이곳도 역시 오석(烏石)으로 된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별로이다. 잡목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자산 방향으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시야가 열린다. 진행방향에 우뚝 솟아오른 봉자산은 물론이고 금당도 남쪽 바다와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마디로 고운 풍경이다.


하산을 시작한다. 바위손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정상 어림의 바위지대를 지나면 산길은 숲속을 파고들며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그리고 가파른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부담을 느낀 지자체에서 밧줄을 매어놓았지만 크게 도움은 되지 못하겠다. 매어놓은 위치가 탐방로에서 약간 비켜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닥에 깔려있어서 붙잡기가 마땅찮기 때문이다.



산행날머리는 세추목재

그렇게 16분 정도를 내려서면 깔끔하게 지어진 정자가 나오고, 곧이어 아스팔트 포장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세추목재이다. 이왕에 온 김에 봉자산(188.6m)까지 올라가보라며 세워놓은 이정표(봉자산, 막끝/ 오봉산, 삼랑산, 금당산) 앞에서 넘어갈까 말까로 고민이 시작된다. 섬 여행은 항상 시간에 쫓긴다. 울포항까지 나가는 시간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린 그럴 필요가 없다. 아직도 3시간 정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하고 택시를 부른다. 이미 지쳐버린 집사람의 얼굴표정이 그렇게 하라니 어쩌겠는가. 아무튼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30분이 걸렸다. 점심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실제로는 4시간이 걸린 셈이다.



에필로그(epilogue),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아담한 섬 금당도는 곳곳에서 섬들이 수놓은 다도해의 풍경이 아스라이 내보인다. 그러나 금당도의 진짜 비경을 만나려면 역시 바다로 나가야 한다. 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다보면 여느 섬에서 볼 수 없는 장관이 바다에 떠있다. 억겁의 세월 동안 파도에 씻기고 바닷바람에 깎인 해안절벽들이 섬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병풍바위와 부채바위, 스님바위, 교암청풍, 금당절벽, 초가바위, 코끼리바위, 남근바위 등 섬 주민이 자랑하는 금당도 8경이 그 해안절벽에서 나왔으니, 그 천하의 절경을 어찌 감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금당팔경을 돌아보고 싶다면 고흥의 녹동항으로 가라는 것이다. 고흥군에서 시티 투어버스에다 금당팔경 유람선코스를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남의 관할에 있는 명승을 무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해서라도 절경을 구경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완도군에서는 그런 프로그램을 개발할 생각이 아직까지 없으니 말이다. 물론 금당도에 도착해서 유람선을 찾아보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10인 정원의 배를 이용하는 요금으로 20만원을 물어야하니 부담이 만만찮다. 거기다 정원을 못 채울 경우에는 나머지 사람들이 차액까지 부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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