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 - 한지민 지음/북로그컴퍼니
배우 한지민~ 사람이 참 맑습니다. 짙은 화장으로 가린 얼굴의 거짓 웃음이 아닙니다. 몇 년 전부터 명동에서 JTS국제어린이 구호캠페인에 참여하는 한지민씨를 보아왔습니다. 평소에 영화나 TV를 잘 보지 않는지라 연예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얼굴의 미소는 절로 기분좋게 만듭니다.
ⓒ 북로그컴퍼니
나도 젊은 사람축에 속하고 서서히 기성세대(?)의 언저리로 진입하는 듯한 늙수레한 총각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참 좋아하더군요. 특히 대학생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열광적입니다. 그 맑은 미소에 거짓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뭐 연예인들의 웃음이 모두 거짓이다 라고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보아 온 한지민씨의 모습이 <참 맑다> 라는 것입니다.
그녀가 이번 여름 초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글과 그림을 담은 책을 냈습니다.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라는 책입니다. 표지에는 <한지민의 필리핀 도네이션 북>이라고 써여있다. 저자인세는 모두 기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몇 달 전에 노희경작가가 “학교를 하나 지어주면 어떨까?”하고 꺼낸 말이 일의 발단이 되어 직접 방문하여 <선생님>이 되기로 한 것, 그리고 그 곳의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4박 5일의 일정을 보내고 돌아온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에 도착해서도 다시 민다나오섬까지 두 시간을 더 국내선으로 가야하는 곳. 거기서도 다시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산길 - 그야말로 산넘고 물건너 정글헤쳐가야 한다 - 을 18km를 걸어들어가야 했습니다. 그곳에는 대학생들의 국제봉사활동인 <선재수련>으로 매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다녀온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8km를 걸어가는 동안 정글의 나무에서 거머리가 떨어지기 때문에 중간에 쉴 수가 없다고 합니다.
배우 한지민은 'Ji'라는 영어이름을 사용하면서 선생님으로서 시간을 보냅니다. 마을의 환영행사도 마치고 선생님으로 생활이 시작되는데 아이들에게 피리를 가르칩니다. 낮의 수업이 끝나고 아쉬워 저녁에는 전깃불이 없어 촛불을 켜고 촛불학교를 열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또 아이들이 커서 되고 싶은 사람을 그려보는 그림시간도 가졌습니다.
JTS의 지원으로 겨우 학교를 지었지만 선생님이 없는 학교에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소녀도 있었습니다. 알라원 마을잔치를 겸한 학예발표는 축제입니다. 비오는 날에 가정방문을 하여 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노희경작가는 소박한 의료캠프를 차려 ‘아픈 사람은 오세요’하며 손톱도 깎아주고 작은 상처들을 치료도 해주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예쁜 사진과 그림이 함께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하고 눈물고이게 만든 장면이 몇몇군데 있습니다.
<35쪽>
앞서 산을 오르다 한 번 씩 다리쉼을 하며 동료들을 기다리는데, 두꺼운 등산양말을 ?고 거머리가 들어온 것!
“으악!” 소리를 지르며 떼어냈을 때는 이미 늦어서, 실처럼 가느다랗던 놈이 순식간에 통통하게 부펄어 올랐다. 양말을 벗어보니, 얼마나 깊이 물었는지 한 시간 동안 피가 멈추지 않았다.
민다나오에서 활동하는 최정연 간사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적당히 먹고 배부르면 떨어져요. 너무 겁먹지 말고 그냥 좀 주세요.”
하하하! 이런 거였구나, 하하하!
<70쪽>
깊은 밤, 교실 지붕을 세차게 때리며 또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불빛도 없는 밤, 교실 뒤쪽에 간이 시설로 파놓은 화장실까지 가자니 더럭 겁이 납니다. 동행하려고 두어 명이 따라 나섰지요.
손전등을 들고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는데, 갑자기 마을 쪽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게 아니겠어요? 저쪽에서도 불빛이 반짝입니다. 비는 세차게 쏟아지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아, 우리가 아까 나눠준 손전등인가봐.”
저녁 무렵, 집집마다 손전등을 나눠주었습니다. 밤에 급하게 필요할 때 쓰라고 준 것이지요.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그 불빛을 우리에게 비춰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라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되어, 밤새 학교 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교실에서 손전등이 나오자, 이 집 저 집에서 불빛을 깜빡이며 신호를 보내준 것입니다.
<72쪽>
새벽 5시, 피리소리가 들린다. 환청인가?
아직 해도 뜨기 전인데 운동장엔 벌써 아이들이 와 있다.
“아메스트라! 마에스트라!”
짐짓 선생님을 부르며 장난을 친다.
<179쪽>
아이들은 눈물 대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주었다!
이별을 이토록 아름답게 바꾸어준
나의 친구들, 고마워!
이 책을 읽는 중간중간 눈시울을 붉히며, 그것도 들킬까싶어 몰래 얼굴을 돌려 하늘을 몇 번이나 쳐다봤는지 모릅니다. 가기전에 ‘절대 눈물흘리지 말자’라고 다짐했다던 한지민씨도 예쁘고, 우리는 불쌍한 사람 도와주러가는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배우러 간다고 이야기했던 노희경작가도 예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국내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외국까지 가서 도와주느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치고 국내의 어려운 이웃에게라도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을 못봤거든요. 산속에서 전통의 문화를 존중하고 지켜주면서 그들의 선생님이 되어 그들과 호흡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열게했던 한지민씨~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는 한편의 다큐멘터리다. 무겁고 어색한 성우의 나레이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깜찍하고 발랄한 한지민이 직접 나레이션하는 가볍지만 감동적인 다큐를 한 편 보는 것 같습니다. (지난 8월 15일에는 tvN에서도 방송되었습니다. 중간 중간 재방송되니까 영상으로 봐도감동입니다. tvN 캡쳐화면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