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디비니티는 거룩한 삶과 사랑의 실천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단순히 교인의 감소나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 약화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목회의 중심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교회는 성장하고 활동은 많아졌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삶으로 체험하는 신앙, 곧 디비니티(Divinity)의 깊이는 약해지고 있다. 목회가 행정과 프로그램, 조직 운영에 머무를 때 교회는 살아 있는 신앙 공동체로서의 생명력을 잃을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존 웨슬리의 목회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웨슬리에게 목회는 단순히 교회를 관리하거나 종교적 행사를 진행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의 목회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인간이 새롭게 변화되어 가도록 돕는 거룩한 사역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웨슬리의 목회는 디비니티의 목회라고 말할 수 있다.
웨슬리에게 신학은 책 속에 머무르는 지식이 아니었다. 신학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고, 죄인을 거룩하게 하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만드는 살아 있는 진리였다. 따라서 웨슬리의 목회와 디비니티는 결코 분리될 수 없었다.
1. 디비니티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목회이다
웨슬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인간의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하나님을 많이 알고 성경을 많이 읽으며 교리적으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마음을 변화시키고 삶을 변화시킬 때 비로소 그 지식은 살아 있는 디비니티가 된다.
웨슬리는 젊은 시절부터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는 규칙적으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성경을 연구했다. 그러나 그 모든 종교적 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참된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올더스게이트에서 로마서 강해를 듣는 가운데 자신의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은혜를 경험하였다. 이 사건은 웨슬리의 신앙과 목회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그에게 기독교는 단순히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아는 종교가 아니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마음속에 실제로 역사하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웨슬리의 목회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향했다. 그는 사람들의 외적인 행동만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지고, 그 마음에서 새로운 삶이 나타나도록 돕고자 했다.
오늘날의 목회도 이와 같은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가보다, 우리의 목회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고 사랑하도록 만들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교회의 성공은 단순한 숫자로 측정될 수 없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자신의 삶이 복음으로 변화되며,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된 목회의 열매이다.
디비니티의 관점에서 목회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 은혜 안에서 살아가도록 돕는 일이다. 설교자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도들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목회자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돕고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웨슬리의 디비니티 목회가 오늘의 한국교회에 던지는 첫 번째 물음이다.
2. 디비니티는 은혜의 수단을 통하여 영혼을 돌보는 목회이다
웨슬리의 목회에서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은혜의 수단(Means of Grace)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에게 주어지는 구체적인 통로가 있다고 믿었다. 말씀, 기도, 성찬, 금식, 그리스도인의 교제와 같은 신앙의 실천은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거룩한 통로였다.
이러한 웨슬리의 목회관은 오늘날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현대인은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지만 영적으로는 더욱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지혜는 부족하고,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깊은 영적 관계는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는 단순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보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경험하도록 도와야 한다. 웨슬리가 강조했던 말씀과 기도, 성찬과 교제의 회복은 바로 이러한 목회의 중심을 제시한다.
웨슬리는 설교만 하고 성도들을 떠나보내지 않았다. 그는 소그룹을 조직하고 신자들이 서로의 삶을 돌아보도록 했다. 클래스 모임과 밴드 모임을 통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곳에서 신앙은 개인적인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적인 책임으로 발전하였다.
“당신의 영혼은 어떠합니까?”라는 질문은 웨슬리 공동체의 중요한 영적 질문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함께 살피는 목회적 질문이었다.
오늘의 목회도 이 질문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성도들의 이름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영혼의 상태까지 알고 있는가?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의 숫자는 알고 있지만, 그 사람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는 알고 있는가?
디비니티의 목회는 바로 영혼을 돌보는 목회이다. 목회자는 단순히 교회의 일을 처리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서 돌보는 영적 목자이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목회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목회의 중심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것이다.”
말씀을 읽도록 돕고, 기도하도록 격려하며,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책임지는 삶을 살도록 돕는 것, 이것이 바로 디비니티의 관점에서 바라본 목회이다.
3. 디비니티의 완성은 거룩한 삶과 사랑의 실천에 있다
웨슬리 신학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성화와 그리스도인의 완전이었다. 그러나 웨슬리가 말한 완전은 인간이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그 사랑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는 상태를 의미했다.
웨슬리에게 참된 디비니티는 결국 사랑으로 나타나야 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신앙이 될 수 없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가난한 사람과 고통받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면 그 신앙은 아직 삶으로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웨슬리는 교회 안에서의 경건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의 자비의 실천을 강조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병든 사람을 방문하며, 소외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의 목회는 강단 안에 머물지 않았다. 거리와 광장, 감옥과 병든 자의 곁까지 나아갔다.
이것이 바로 웨슬리의 디비니티가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이다.
하나님을 깊이 아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참된 영성은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웃의 아픔에 더욱 민감해져야 하며,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의 불의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이 질문을 들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세상 속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우리의 예배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우리의 기도는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웨슬리의 목회는 분명하게 대답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을 사랑해야 하며, 참된 신앙은 반드시 삶의 변화로 나타나야 한다.
디비니티의 목적은 단순히 신학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디비니티의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간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웨슬리의 목회는 결국 사랑의 목회였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성도들을 사랑하고, 세상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목회였다.
맺는말
오늘날 우리는 다시 목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의 미래는 더 많은 프로그램이나 화려한 건물에만 달려 있지 않다. 진정한 교회의 미래는 하나님을 깊이 알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변화되며, 세상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세워지는가에 달려 있다.
존 웨슬리의 목회와 디비니티는 우리에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삶을 변화시키는 살아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둘째, 목회는 은혜의 수단을 통하여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는 사역이어야 한다.
셋째, 참된 디비니티는 거룩한 삶과 사랑의 실천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웨슬리가 꿈꾸었던 교회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아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세워 주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며, 세상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공동체였다.
오늘의 목회자와 교회가 다시 이러한 웨슬리의 디비니티를 회복한다면, 교회는 세상의 변화에 흔들리는 기관이 아니라 시대를 변화시키는 영적 공동체가 될 것이다.
결국 목회의 가장 깊은 목적은 사람을 목회자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존 웨슬리가 자신의 삶과 목회를 통하여 보여준 가장 위대한 디비니티의 정신일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변화되며, 그 사랑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것.”
바로 여기에 존 웨슬리의 목회가 우리 시대에 다시 들려주는 디비니티의 메시지가 있다.
경기연회 남양지방회 원천교회
곽일석 목사(iskwa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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