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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위 노래는 일제강점기 때 유명했던 윤심덕의 '사의 찬미'의 일부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소프라노로 이름 높았던 윤심덕은 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윤심덕은 유부남이며 희곡작가인 김우진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졌고, 결국 현해탄 연락선 위에서 바다에 몸을 던져 동반 자살했다.
이 '사의 찬미' 윤심덕이 판소리계에도 있는데 바로 뜨거운 사랑에 몸부림치다 비운의 삶을 마감한 불세출의 여류 명창 안향련이다.
안향련은 1944년 전남 광산군 송정리에서 태어나 명창 정응민, 정권진, 장영찬에게서 판소리를 배웠으며, 1995년 세상을 뜬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 김소희 명창의 수제자였다. 또 안향련은 '남원명창대회'에서 조상현, 성창순에 이어 3회 대회에서 장원을 한 소리꾼이다.
김소희 명창은 생전에 안향련을 "나를 능가하는 명창"이라고 추켜세웠다고 한다. 이는 김소희 명창의 겸손한 표현일 수도 있으나 그 정도로 그녀의 타고난 천구성(애원성이 가미된 맑고 고운 소리)과 아무 사설에나 곡만 붙이면 소리가 될 정도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안향련의 죽음 뒤 김소희 명창은 애통한 마음으로 제자를 위해 진도씻김굿을 해주었다.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 '소리의 신'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비는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굿이 절정에 이르자 김소희를 비롯한 명창들의 슬픔이 폭발해 굿 노래를 따라하면서 굿이 깨질 지경까지 갔었다고 한다.
일부 평자는 "남자 명창은 임방울, 여자 명창은 안향련"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녀는 타고난 목에 후천적인 노력과 함께 동양방송(TBC)의 한 프로그램이 발굴, 지원하면서 1970년대 각 방송국을 섭렵해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안향련은 유부남인 한 한국화가와 못다 이룬 사랑을 비관한 때문인지 1981년 12월의 어느날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37살의 짧은 삶을 마감한다.
▲ 안향련 유고 전집음반 표지 | |
ⓒ2005 신나라 |
어쩌면 그녀의 불우한 삶은 남자와 동반자살하지 않은 것만 빼고는 '사의 찬미' 윤심덕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뛰어난 예술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예술계에 커다란 손실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김헌선 교수의 말처럼 또 다른 면으로 본다면 그러한 불우한 삶이 뛰어난 예술을 꽃피운 것일지도 모른다.
"안향련의 소리는 한이 응축된 소리로 볼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김헌선 교수는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버림 받은 그날의 좌절감은 한의 소리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심청가에 휘말리면 죽는다'는 속설처럼 안향련은 처절한 심청가 소리를 기가 막히게 뽑아냈다"고 답했다.
수리성(목이 쉰 듯한 껄끄럽고 탁한 소리)이 판소리의 절대적인 소리라고들 하지만 이 안향련의 '천구성'이 있어야 판소리의 완성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안향련의 소리는 청아한 천구성이 분명하지만 수리성의 탁하고 곰삭은 맛까지 보태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판소리에 대한 나의 짧은 지식은 그녀의 세계를 분명하게 짚어낼 수 없다. 그렇지만 김헌선 교수의 다음 말은 지금 우리가 안향련의 세계를 새롭게 조명해야 할 당위성을 보여준다.
"안향련의 일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어쩌면 안향련의 판소리가 음반으로 살아 있는 한 그에 대한 일생을 완성하는 것은 그녀를 사랑하는 청중들의 몫일 것이다. 안향련의 판소리 예술은 높은 하늘에 걸려 있는 미완성의 긴장을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해 준다."
▲ 안향련의 소리하는 사진 | |
ⓒ2005 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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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안향련의 유고 음반이 신나라(회장 김기순)에서 8장의 전집으로 나왔다. 1~3장은 심청가, 4~5장은 춘향가가 녹음돼 있고, 6장은 춘향가 일부, 심청가 중 범피중류, 육자배기 등 민요가 실려 있으며, 7~8장은 안향련, 오정숙, 남해성 명창의 토막소리 민요집으로 구성돼 있다.
김헌선 교수는 "요절한 예술가의 생애에 대해 후세 사람들은 늘 환상을 품고, 궁금증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안향련과 비슷한 연배에서 그러한 수준을 보여준 소리꾼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향련의 소리를 거듭 듣고자 하며, 그 소리로 인해서 판소리의 우람한 숲에서 평안함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신선하고 해맑은 그녀의 판소리는 우리를 슬프고도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천재는 요절한다던가? 아까운 천재는 요절함으로써 우리에게 들려줄 소리를 아꼈다. 하지만 요절했어도 그 예술의 천재성을 다시 조명하고 빛내줄 책임은 우리들에게 있을 것이다.
- 오마이 뉴스에서 발췌 -
안향련 묘소는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당호리에 있다
송정란 시인의 안향련傳
안향련 傳
이 세상 사람 몸만한 악기가 어디 있으랴
제 목청 둥글게 조여 쓰린 창자가 끊어지도록
저 먼 데 캄캄한 사랑이여 애원성(聲)을 토해내는
소리의 능선마다 꺽어지르는 그리움이라
청성(淸聲)고운 목청도 부질없는 짓인 것을...
마음의 패인 골짝마다 적막강산 첩첩하고
오늘밤이 그믐이런가 이지러진 마음이야
먼 데 사랑은 어둡고도 또 어둡더라
저 달빛 갈쿠리 같은 슬픔, 온몸 비수로 꽂히네
송정란 시집 허튼층쌓기에서 발췌
송정란 시인은 1958년 경북 영주 출신으로
1990년 월간문학 시 부문당선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건국대 정외과 졸업하고 경기대학교 문학박사학위 취득하였다
문학과 창작 편집국장 , 경기대, 한양대 ,서울여대 출강하고 있다
안향련 명창의 심경을 시로 표현하며 이룰 수 없는 사랑과 恨를
서정정적인 감정으로 애끓는 정이 서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