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못위의 잠>, 나희덕
나희덕은 가슴이 따뜻한 시인이다. 시인 중에 가슴이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련만, 난 그녀를 가슴이 따뜻한 시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녀의 시에는 어느 시보다도 자연과 소외된 이웃을 향한 애정어린 시선이 잔잔히 스며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우리의 아버지 얘기다.
가족에게 그럴듯한 집 한 채 지어주고 싶지만 여전히 실업의 호두알을 깨지 못하는 아버지, 그래서 위태롭고 차가운 못위에서 겨우겨우 살아야 하는 아버지.
아버지는 가족을 볼 낯이 없다. 창백한 아내의 얼굴과 달빛을, 해맑은 어린 자녀들을, 그래서 달빛이 만들어낸 가난한 그림자들의 끝을 밟으며 쓸쓸한 그림자는 꾸부정하게 따라갈 뿐이다.
언제나 그들의 그림자는 동행할 수 있을까? 언제나 두 제비는 날갯죽지에 제 새끼들을 안고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2008. 5. 30/<정태호>
|
출처: SITZ-IM-LEBEN 원문보기 글쓴이: 큰호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