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설 덮인 살악 울산암 / 사진작가 권기원
이관순의 손편지[333]
오늘을 눈물 나게 살아라
우리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르고 사는 때가 많다. 건강하게 탈 없이 살고 있으니 하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어제를 살았으니 의당 오늘이 오는 것 같이 무심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때가 많이 있다.
그러한 우리에게 ‘눈물 나도록 살아라.’ Live to the point of tears. 이 유명한 말을 알베르 카뮈가 남겨주었다. 카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라’라는 뜻으로 이 말을 전했다. 이 말이 더욱 실감 나게 한 생을 살다 간 사람은 영국의 여류 극작가 샬롯 키틀리이다. 그녀는 36년이란 짧은 인생을 살면서 눈물 나게 살기를 원했던 바람이 유언이 되어 우리들 앞까지 찾아왔다.
두 아이의 젊은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은 후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두 번의 수술을 받으면서 암세포가 간과 폐로 전이되었다는 의사의 말을 들어야 했다. 종양 제거술 2회, 방사선 치료 25회, 화학요법 치료 39회 등 암을 극복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이어갔고, 간호사들은 주사 놓을 곳을 찾느라 그녀의 가녀란 팔을 사정없이 유린했다.
이겨내기 힘든 슬픔을 앙다물고 견뎌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남편과 다섯 살, 세 살짜리 자녀를 남기고 가족 곁을 떠나고 말았다.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샬롯 키틀리(chaarlotte kitley)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남겼는데, 그 글이 지구촌 사람들의 심금을 아프게 울렸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절절하고 간절한 것인가를 곱씹게 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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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나날이 이렇게도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질 않네요.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겐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내게는 허락하지를 않네요. 살아보니 알겠더라고요. 매일 아침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 지르던 날들이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란 치료는 다 받아보았어요. 기본인 의학적 요법은 물론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 보고 쓰디쓴 즙도 눈을 꾹 감고 마셔도 보고... 한방에 가서 침도 맞았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귀한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들었어요.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 놓고 보니 매일 아침 일어나 내 아이를 껴안아 주고 뽀뽀해 줄 수 있는것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얼마 후에 나는 남편 곁에서 잠이 깬 아침의 기쁨과 행복마저 잃겠지요.
남편은 무심코 커피 잔 두 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 된다는 사실에 슬퍼하겠지요. 딸아이 머리를 땋아주어야 하는데 이를 누가 하지? 아들 녀석이 가지고 놀던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들어가 있는지 나만 아는데 이제 누가 찾아줄까? 의사로부터 6개월 사망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22개월을 살았어요. 그렇게 1년 넘는 시간을 보너스로 얻은 덕분에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주는 기쁨을 가슴에 품을 수 있게 되었어요.
아이의 흔들거리던 이가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이것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보너스 인생 1년 덕분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니 감사한 일이죠. 어디 그뿐인가요. 감사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중년의 복부 비만 같은 거 한 번 가져봤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살아있다는 얘기잖아요. 저도 한 번 늙어 보고 싶어요. 남들에겐 흔한 일상인데 왜 내겐 허락하지 않을까….❞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두 손으로 오늘의 삶을 꼭 붙들길 바랍니다. 샬롯 키들리.”
오늘을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살고, 가치 있게 살고, 의미 있게 보내며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일 것이다. 한국 독서계에도 잘 알려진 스펜서 존슨은 2020년 스페셜 에디션으로 발매된 책 ‘선물(present·알에이)'에 인생을 행복하게 할 선물 하나를 넣어 두었다. 그가 독자들에게 준비한 선물이 지혜였는데, 다름 아닌 바로 지금, 오늘을 이르는 것이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원망이나 슬픔을 떨쳐버리고 지금의 시간, 오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미래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인생을 눈물 나도록 살아라’라고 한 존슨의 주문 속에는 가장 소중한 선물인 오늘 하루, 현재가 오롯이 녹아있다. 하루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알며,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한 사람만이 삶이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즐겨야 할 축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에 2800만 부가 팔린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저자이기도 한 존슨은 ‘선물’에서 우화의 대가답게 깊이 있는 아야기도 남겼다. 어느 노인이 동네 소년에게 어릴 적부터 근사한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노인은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약속한 선물을 주지 않았다. 하루는 기다림에 지친 소년이 노인에게 약속한 선물을 달라고 채근했다.
그 과정에서 소년은 깨닫는다. 노인이 주겠다고 한 선물이 바로 ‘present’의 또 다른 의미인 ‘지금’이란 것임을…. 노인은 소년에게 ‘선물’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해주었다.
learn from the past,
plan for the future,
be in the present….
샬롯 커틀리가 미련 많은 세상을 떠나면서 “오늘을 눈물 나도록 살라”고 호소한 말을 우리는 너무 가볍게 건성으로 넘겨 듣고 오늘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소설가 /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