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락계의 순진한 분들 세 종류
2006/12/28 오전 2:34 | 음식 이야기
1. 언론에서 알려주는 정보는 다 진짜라고 무조건 믿는 사람
70년대 까지는 신문과 방송에 나오는 세상 소식은 다 100% 사실이라고 대부분 믿고 살았죠.
그런 국민의식에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온게 80년대의 군사 구테타와 민주화/노동 운동 과정속에서 보여준 언론의 추악한 모습이었습니다.
이후로 사람들은 언론이란 진실만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게 음식/건강 관련 정보에서도 나타납니다.
작게는 지자체와 산지 생산업자들과의 커넥션에 의해 씌여지는 기획성 지역특산물 특집기사, 방송, 특산물축제 등으로 인해 무지한 소비자는 제철도 아니며 들떠서 훌륭한 소비처가 되기를 자처해 주게 되며 자신이 제철 음식을 잘 먹어주고 있다는 착각속에 황홀해 하게 됩니다.
예를 몇개 들자면 11~12월의 과메기(수입/전년도 재고 혹은 덕장이 아닌 공장에서 생산), 2~3월의 주꾸미(수확량은 많으나 아직 알이 덜 찬), 9~10월의 대하(수입 혹은 작년 재고) 7~8월의 송이(수입품) 10월의 대게(살이 덜 여문 물게)
또한 넘쳐나는 맛집소개 기사와 프로는 대부분 비전문가인 20대 여성작가들이 취재한 자료를 사용하거나 취재대상인 업소가 제공한 일방적인 자료를 갖고 제작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오자는 약과이고(주로 방송)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자랑이 여과없이 지면과 방송을 타게 됩니다.
이런 언론의 추임새에 입안의 침이 고이어 광고된 먹거리를 찾아 떠도는 분들이 식도락가급이라고는 할 수 없죠.
한때 대학로 연극계를 점령했던 홀딱쇼 연극을 보러 갑자기 불어났던 관객들이 진짜 연극애호가는 아니었던 것 처럼..
호기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2. 스포츠신문의 맛집소개에 혹하여 찾아가 보는 사람
이미 이런 분들은 멸종된줄 알았지만 가끔 심심찮게 발견됩니다.
스포츠신문에 올라오는 맛집 선정기준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돈을 내느냐라는... 맛이나 평판은 전혀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담당기자가 혼자서 꿀떡하는게 아니라 회사규정에 따라 공식적으로 소개기사를 올리는 기준을 정하여 광고접수 받는 것과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합니다.
반면에 방송의 맛집프로는 과도한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맛없는 집만 골라 방송하는 프로인 결정맛대맛의 경우는 돈 받아먹고 아무 집이나 출연시키는 것 같지만 그정도로 썩지는 않았죠.
제작진이 맛에 대해 무지몽매한 분들이니(작가들이 20대의 여성이니 무슨 공력이 있겠습니까) 주변 소문을 듣고 섭외를 하지만 위대한 업소들은 촬영에 비협조적이고 심지어 거부하는게 태반이고 신생업소나 방송덕에 좀 떠보고 싶은 업소들이 꼬리를 흔들며 손등을 햝아 주니 그런 업소들을 주로 상대할 수 밖에는 없다는 한계성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고 면죄부는 아닙니다.
[거기 맛난 집이죠? 맛대맛작가인데요 취재방문을 할테니 준비해 주세요.] 하고 찾아가고.. 그럼 어떤 재료로 어떤 음식이 선보여 지겠습니까? 그걸 먹고 방송측에서는 그 업소를 극찬하지만 방송을 보고 찾아간 손님들은 방송때문에 생긴 업소의 손실(몇천만원짜리 한우,참치 등을 방송에 협찬!!)을 메꿔주는 봉의 역활을 수행할 뿐입니다.
언론에 소개된 집은 한달 이후에 찾아가 보십시오.
3. 음식평론가의 평가를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
과연 언론을 통해 활동중인 분들 중 근본이 음식평론가인 분이 있을까요?
다른 분야의 기자/피디 등을 하다 점차 영역확대를 하게된 분이 제일 많고
항상 글 쓸 소재에 목말라 있는 문인들 중에도 남보다 다소 앞서는 음식에 대한 관심도를 바탕으로 이게 자기 자서전을 쓰는 것인지 음식/식당평론을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잡탕글을 쓰며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분들도 여럿 있고(백파 홍성유씨의 영향이 크겠죠)
접대가 많은 직업의 특성상 잘한다는 집들을 많이 다니다 보니 개인적인 공력과는 관계 없이 데이타베이스가 든든해진 분들도 있고
직업의 특성상 식재료 혹은 식당을 자주 접해야만 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데이타베이스가 쌓여져서 실제 공력은 별로 없으며 말빨로는 절정고수급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자의반 타의반 평론가가 된 분들도 적잖습니다.
참,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공력이라 함은 음식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훌륭한 미각을 고루 갖춘 능력을 지칭합니다.
이러다 보니 음식평론가 분들은 대부분 기자/푸드스타일리스트/의사/문인/출판업자 등이 많습니다.
물론 음식평론가라고 해서 시작부터 다른 직업을 갖지 말고 오로지 식당평가만 해야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데이타베이스는 누구나 돈과 시간의 여유가 있고 노력만 좀 하면 쌓을 수 있는 것이지만 미각 자체는 오랜 기간 단련해야 하고 어느정도 선천적인 재능도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죠.
사실 우리나라 음식(식당)평론 시장에 비해 평론가의 숫자가 과도하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식당갯수야 준선진국급이지만 평가의 대상이 될만한 업소는 전국적으로 천개 이하이고 평론가분들은 우선 다른 본업이 있다 보니 활발하게 식당들 상태를 체크하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 주위의 추천이나 소문에 의지하여 식당을 한두차례 방문하고 그 과정에서 이미 식당은 방문객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에 따른 특별한 대접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니 그냥 자기가 한끼니 잘 먹는 것으로야 나무랄데 없다 치더라도 일반인들에게 정확한 평가정보를 제공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평가 대상이 될만한 식당은 적고 평론가는 많다 보니 서로간에 베끼기(참고를 많이 한다고 하는게 나을까요)가 흔하고 검증이 힘든 지방 중소도시의 이름 없는 집으로 소재가 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한 자리에서 수십년을 영업하며 이제야 발굴해내는 맛집이라는게 존재할 수가 있을까요?
지난 수년간을 한반도를 흩고 지나가고 있는 식도락의 광풍속에 어떻게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을 수가 있었을까요?
수십년 단골들은 왜 그동안 감추어 놓고 널리 자랑을 안했을까요?
간단하죠. 별다른 맛이 아니라서 널리 전국적으로 자랑할게 없었기 때문이라는..
그러다 보니 언론에서 띠l우려면 맛이 아닌 뭔가 독특한게 필요합니다. 엄청 싸다던가 양이 많다던가 독특한 위치,인테리어, 스탭의 구성, 특이한 재료의 사용 등...
원래부터 맛난 집들은 소개 안해도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죠.
언론이 만들어 낸 신화가 몇 있습니다.
안동찜닭...지금 그 많던 집들과 열광하던 팬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걸레(납짝)만두, 시장 마약김밥, 세숫대야 냉면 등등... 정말 별 것도 아닌 음식들이 언론의 집중조명 탓에 불타 오르다가 큰 실망감만 주고 사그러져 갑니다.
간단히 우리나라 식당평론 글들을 분류해 보면..
1. 식당측 제공자료 무조건 베끼기.
절반이 넘습니다. 주로 스포츠신문, 인터넷 음식싸이트들. 음식관련이 아닌 다른 종목의 전문잡지들(골프,낚시,의상,자동차,영화,비디오..등등) 지역정보신문, 조간지하철무료신문,
2. 손에 이끌려 가보기
가까운 분의 권유로 찾아가서는 극진한 접대를 받아 부정적인 글을 쓸 수 없는 난처한 경우입니다.
살펴보면 양식있는 평론가의 경우 글 곳곳에 그런 난처함이 베어 있습니다.
가장 수준 높은 기사 형식은 방문 자리에 전문가를 대동하고(참치집이면 참치원양어선 선장이라던가 프랑스식당이라면 유럽 주재 생활 오래된 친구 등) 가서 그 업소의 평가는 자신이 아닌 그 전문가 친구가 칭찬한 글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만약 나중에 지탄의 소리가 드높아져도 그 전문가 친구 탓을 하면 되니까는.. 상당히 교묘하며 수준높은 방법이죠.
자신은 그런 전문가를 많이 가까이 알고 있는 사람이니 꿀릴 것 없고..
3. 역사와 재료를 중점적으로 쓰기.
오래된 집이면 그 역사를 주구장창 늘어놓고
독특한 식재료이면 그 식재료의 근본소개로 지면을 대부분 메꿉니다. 그리고 정작 그 집 음식에 관한 내용은 짤막하게...
손쉬운 면피방법이죠.
4. 자기 이야기만 하기
자신의 추억담이나 음식에 얽힌 에피소드, 고사성어, 설화, 유래담으로 메꾼 후 식당음식 소개는 간단히. 주로 문인들이나 공력이 전혀 없는 분들이 즐겨 사용하는..
예를 들면 만두집 소개를 하며 제갈공명이 사람 머리를 본따... 하는 식이거나 이 집에서 파는 중국술인 소흥주는 중국 소흥지방에서 여차저차한 방식으로 만든... 하는 식의...
순대국이라면 어릴 적 어미니가 자신을 어렵게 키운 이야기며 닭발이라면 학창시절 친했던 친구와의 닭발에 얽힌 추억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식의..
외국계 음식은 자신의 유학생활 이야기나 그 나라 여행기로 일단 85% 가량 메꾸고 나머지는 업소 칭찬 간략히..
문인들이나 의사, 변호사 등의 고소득 전문 직종을 갖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명사의 맛집] 같은 종류의 기사가 이런 부류죠.
(제가 베스트레스토랑에 글을 쓸때 즐기던 수법입니다. 물론 제 글은 평론은 아니고 그냥 신변잡기라는 전제하에 쓰여진 것이지만...)
5. 자신의 글이 아닌..
민감한 이야기라 자세한 설명은 힘들지만 저명인사나 인기 연예인들이 원고청탁을 받는 방법입니다.
쓸 자신이 없는 당사자가 청탁을 거절하면 [저희가 적당한 업소를 몇개 준비해 둔게 있으니 한번 보시고 그 글 중에서 골라 보시죠] 하는 식이라는.. 실상 글에는 단골이라고 되어 있지만 기사의 화보 촬영을 위해 처음 방문해 본 경우가 대부분이죠.
당사자는 고생 않고 이름만 빌려 주어 원고료 타 먹고 더불어 미식가라는 주위의 칭찬도 듣게 되니 나쁠 것 없죠.
바슷한 경우로 요즈음 언론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간접광고가 있죠.
명사와의 인터뷰 기사를 올리며 인터뷰 장소 식당 소개와 메뉴 소개가 교묘히 기사에 물려 들어가게 만든..
뭐 단순하게 장소제공을 해줬다고 예의상 그렇게 하겠습니까. 상당한 댓가가 오간다는..
6. 빗겨 가기
업소 칭찬글 같지만 잘 살펴보면 결코 칭찬은 없는 글도 있습니다.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고수급들이 쓰는 방법이죠.
담백하다(최고의 애매모호한 표현법) 감칠맛이 있다(화학조미료의 추구하는 바가 감칠맛)
손맛이 느껴진다(조리과정이 복잡하다) 소박하다(별로 기대할게 없다) 부담없는 차림(양이 적다)
너저분하지 않고 중점만을 살린 차림(메뉴가 적고 올라오는 것들 중 땡기는게 몇개 없다)
독특하다(적응이 힘든 맛) 자긍심/자존심이 높다 (써비스가 개판이거나 황당한 조리법) 이태리 본고장의 맛을 충실히 재현한 일본풍의 퓨전 이태리식당 (앞뒤가 안맞는 어법에서 눈치채라) 등등...
7. 막무가내 소신
시원찮은 업소일 망정 뒷거래나 이해득실과 관련 없이 자신의 입맛 판단만을 믿고 남이야 뭐라 생각하던 강하게 추천하는 유형의 글입니다.
그 순수한 의지앞에 경의를 표하지만 다수의 선량한 희생자가 발생할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8. 진정한 평론
그리 흔치는 않지만 가끔이라도 찾아볼 수 있는 주옥같은 글들입니다.
그러나 이해를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어느정도의 공력을 갖추는게 필요하기에 진정한 가치를 널리 보편적으로 알아 주지는 않는다는 안타까움이 있죠.
더 안타까운 점은 이런 좋은 글을 올리는 분들이 항상 그런게 아니라 가끔은 위의 1,2번 같은 글도 생산해 내기에 여차하면 지뢰를 밟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결론은 음식평론가의 글은 무조건 무시할 필요는 없지만 전적으로 신뢰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나름대로의 고민과 사정에 의해 글을 쓰게 되고 독자는 내용을 살펴보아 취사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맹목적인 믿음으로 느끼게 될지 모르는 실망감을 평론가에게 모두 다 돌리지는 말아야 한다는...
외국 처럼 얼굴없는 평론가가 자의에 의해 선택한 집을 몰래 찾아가 먹어보고 내리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평론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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