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다.
어둠은 깊어가고 아침을 맞이하기 직전의 가장 어두운 시간까지
성령님과의 교제를 추구한다.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성령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믿음으로 함께 계심을 존중해드리고자 노력한다.
로렌스 형제처럼 그분을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시콜콜한 부분을 말씀드렸다가 여쭤봤다가를 반복한다.
성령님은 그렇게 말씀을 많이 하시기보다는 그냥 듣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냥 나를 바라보고 계신 그분의 사랑의 시선이 느껴진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분의 사랑의 시선, 평안함 가운데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계신 시선이 느껴진다.
이제는 느낌보다 믿음으로 함께 계신 성령님을 의식한다.
새벽까지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고,
이미 알고 있는 마음을 품고
중보적 기도의 마음으로 친밀한 교제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화장실로 향하는 딸래미들을 마주한다.
정신이 없어 비틀거리며 눈을 비빈다.
그리고 화장실을 갔다가 나온다.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린다.
첫째도 둘째도 한 번씩 나를 안아주고 간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나에게 안길 때 이상한 기분이 드는지... 감동이 되는지.
딸내미들은 성격이 다르다.
화장실 다녀오며 그녀들의 반응도 조금은 다르다.
첫째 딸 한별이는 한 번 안아주고 그냥 “안녕.”하고 지나간다.
둘째 딸 은별이는 똑같이 “안녕.”하고 인사하지만
내가 안겨있는 자신을 놓아주기까지 가만히 있는다.
가만히 안겨서 내가 놓아줄 때까지 그냥 기대서 비몽사몽 존다.
하루는 무릎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한별이는 그냥 인사하고 지나갔는데,
은별이는 내가 두 팔을 벌리니 안아준다.
내가 안아주니 그냥 안겨서 무릎 위에 앉아버린다.
무릎 위에 앉아서 내가 놓아주기까지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댄다.
안겨서 그냥 잔다.
내가 자신을 놓아줄 때까지 그냥 안겨서 잠든 딸내미를 한동안 느끼며,
친밀함의 여운을 느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에 이른다.
내가 성령님을 믿음으로 존중해드리며 새벽까지 친밀한 교제를 추구하는 시간들이,
성령님께서 나를 영적으로 안아주시며 사랑을 느끼시는 시간임을 알게 된다.
나를 그렇게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주시고 안아주시는 성령님의 가까이하심이 감격이다.
나는 아직도 성령님의 친구로서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며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성령님의 친밀하신 사랑을 조금씩,
그러나 지속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참 감사한 마음이다.
나는 이 친밀함을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양이 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 되기 원합니다.
나도 은별이처럼 성령님을 믿음으로 안아드리고 싶다.
십자가의 크신 은혜로 나는 이미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다.
그래도 친밀함의 교제가 깊어지는 의미로서 믿음으로 그분의 품에 안겨있고 싶다.
딸내미들에게 내가 느꼈던 사랑받는 느낌을 성령님께 느끼시게 해드리고 싶다.
예수님께도, 아버지 하나님께도 나의 친밀함을 위한 노력들이
사랑으로 느껴지시며 감동이 되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