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은 질러가서 가까운 길이고, 에움길은 빙빙 둘러서 가는 멀고 굽은 길 즉 에둘러 가는 먼 길이다. 우리 인생은 이 에움길을 가고 있다. 계절은 오가건만 늙음은 한번 오면 갈 줄을 모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늙는 게 잘못된 게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 젊게 지내고 밝게 보이며 사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오죽했으면 오늘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도 하지 않던가. 대개 이런 말 하는 게 노화 신호이긴 해도 외로이 등산하러 다니는 것보다, 만나서 잡담을 나누는 게 좋다는 이야기다.
요즘 장수의 비결에는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자주 가지라 한다. 배려 속에 웃음으로 대화 나누고 좋은 우정을 만들어 가길 원한다. 친구 중에는 만날 때 반갑고 헤어질 때 개운한 사람, 일을 많이 하면서도 공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 도와주고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 돈이 없어도 구차한 얼굴을 보이지 않는 그 사람, 좋아지면 친구 누구 가리는 게 없이 깊이 마음을 쏟는 성품의 사람, 옳다고 판단이 나면 고집을 버리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당신들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우리가 철없던 50년 전! 전역 후에 처음 만나 지금껏 모임이란 울안에서 모였다 헤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반세기 동안 두 명의 회원이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한 친구는 미국에서 별세하였기 빈소에 참석지 못했고, 또 한 친구는 경기지방에서 부고도 없이 먼 세상으로 갔다. 오십 년이 흐른 지금 만나 회포도 풀고 싶은 것은 무리일까? 격월로 만나는 친구들은 항상 살갑다. 남아있는 친구들은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아직 오십 년 지기로 건재하고 있다.
우리 격언 중에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 말이 있다. 흔히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우의를 표상으로 삼고 있지만, 친구를 위해 서로가 희생하고 봉사하며 평생을 같이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관중과 포숙은 죽마지우竹馬之友로 가난한 관중은 포숙을 많이 속였지만, 포숙은 가난이 죄라며 너그러이 포용했다. 포숙은 제나라 환공을 섬겨 권좌에 오르고 그의 경쟁자인 규를 섬긴 관중은 반역의 죄인이 되었지만, 포숙아의 배려로 살아남아 오히려 포숙아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훗날 관중은 “나는 일찍 무척 가난했을 때 포숙과 함께 장사했는데 이익을 나눌 때면 나의 몫을 더 많이 가지곤 하였으나 나를 가난하다 하여 이해해 주었고, 그를 위한다고 한 일이 도리어 궁지로 몰아넣기도 했으나 나를 원망치 않고 시운을 만나지 못했다고 오히려 위로해주며, 나는 벼슬길에 나갔다가 쫓겨나고 말았지만 나를 무능자로 보지 않고 시운을 잘 못 만난 탓으로 돌렸다.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만든 사람은 포숙이다.”라고 술회했다. 포숙은 후일 더욱 융성한 가문을 이뤘지만, 모두 관중의 은혜라 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길 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의기가 투합되면 깊은 교류를 갖기도 하고 친구가 되지만 세월과 함께 잊혀 이름조차 망각하는 친구가 많아졌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에게로 간다는 것이 사람의 근본이라는 것을 길 위에서 알았다. 사람이 동쪽 마을에서 서쪽 마을로 갈 때, 동쪽 마을에서는 간다고 해도 서쪽 마을에서는 온다고 하니, 길 위에서는 갈 왕往과 올 래來가 같고, 지나가는 것과 다가오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길을 걸면서 알았다. 오늘따라 친구의 냄새가 들꽃 향기처럼 가슴을 파고들면 언제나 싱싱하고 젊은 당신들과 함께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