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해전 승리의 길 탐사기행록(15) (강진 신전 - 해남 북평 30km)
- 농수산 자원이 풍부한 해남에 들어서다
3월 15일(화), 비가 그치고 날씨가 화창하다. 아침 7시에 숙소에서 연포탕백반으로 식사를 한 후 7시 40분에 해남군 북일면 방향으로 출발하였다. 도로변의 숙소를 나서자 오른쪽으로 큰 호수가 보인다. 왼쪽은 직선으로 뻗은 방파제, 호수 서편으로는 강진의 명산인 주작산의 늠름한 능선이 길게 이어지는 환상의 경관이다.
걸으면서 살핀 사내호와 주작산의 경관
끝이 아득한 방파제 길이는 3.2km, 한참 걸어가니 호수의 개요를 새긴 비석이 나타난다. 시공 기간은 1990~1993년, 용도는 간척사업의 일환, 명칭은 강진군 신전면 사초리와 해남군 북일면 내동리의 첫글자를 따서 '사내호'.
호수 끝나기 전에 강진군 신전면에서 해남군 북일면으로 경계가 바뀐다. 북일면 해안 따라 걷는 길에 갈두항에서 잠시 휴식, 좀 더 걸으니 북일면에서 북평면으로 면의 경계가 바뀐다.
북평면 만수마을 정자에서 잠시 휴식 후 내쳐 걸으니 12시 넘어 북평면 소재지인 남창에 이른다. 남창은 해남에서 완도로 연육교가 연결되는 교통요지, 아침에 출발하여 이곳까지 16km를 걸었다.
남창에서 점심을 들고 나니 오후 1시 반, 남창 로타리에서 땅끝해안도로 따라 오후 걷기에 나섰다. 잠시 후 이른 곳은 충무공이 급환을 추스르며 주둔했던 전적지 '이진 성터', 오늘 걷는 코스 중 가장 중요한 탐사지점이다.
땅끝해안도로에서 바라 본 이진 성터
이진 성터 입구에 조선수군 재건로 안내판이 세위져 있다. 기록의 내용, '이진성은 충무공의 부대가 주둔하면서 병을 치료하고 해상 작전지역을 넓힌 곳이다.' 이진은 임진왜란 전부터 왜구들의 출몰에 대비하고 임진왜란 후에는 이진 만호를 설치하는 등 전략적 요충지, 지금도 큰 마을이다. 마을회관 앞에 세운 '이진마을과 이순신'이라 새긴 팻말이 성과 마을의 의미를 압축하고 있다. 그 요지, 토사곽란으로 몸을 가누기 어려웠던 충무공은 이진에 머무르며 주민들의 극진한 수발과 지원으로 회복되었고 명량해전 승리를 위한 해상작전 지역을 넓혀나갔다.
오후 2시 반에 이진마을을 출발하여 '땅끝해안도로'에 접어들었다. 마을길 한참 걸어 묵동과 안평마을 지나서 다시 땅끝해안도로에 들어서니 영전마을에 이른다. 오후 5시경 영전의 수퍼에서 간식을 마련하여 입가심을 한 후 내쳐 걸으니 6시에 목적지인 남성항에 이른다. 걸은 거리는 30km.
남성항 부근의 경치 좋은 바닷가에 숙소를 잡았다. 단골 손님만 받는 곳인데 지난 번 답사 때 이곳에 머문 인연으로 예약한 것이다.
숙소에서 바라본 경관
주변에 식당이 없어 마트에서 미리 준비해 온 컵라면과 구운 달걀 등으로 저녁식사를 가름하였다. 30여km 먼길 걸었으니 푹 쉬고 내일에 대비하자.
* 해남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농산물 생산지, 해남의 쌀 생산량이 강원도 전체의 쌀 생산량과 맞먹고 배추, 고구마 소출도 많은 지역인데 걸으면서 살피니 마늘도 꽤 많이 재배하고 있다. 게다가 '아열대 애플 망고' 등 특수작물이 재배되고 북일면과 북평면은 수산자원 보호구역으로 관리하여 가히 농수산 자원의 보고로 여겨진다. 숙소의 주인은 왕새우를 양식하여 1년에 두 차례나 출하한다고. 지역마다 이런 특성을 잘 살리면 좋겠다.
농수산자원이 풍부한 해남의 마늘과 보리밭, 바다는 다양한 양식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