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금순 시집 {직소폭포를 보다} 출간
천금순 시인은 서울에서 출생했고, 1990년『동양문학』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마흔세 번째의 아침』,『외포리의 봄』,『두물머리에서』,『꽃그늘 아래서』,『아코디언 민박집』등이 있다. 천금순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인『직소폭포를 보다』는 “세상사 번뇌 사라지듯/ 새소리로 귀를 씻고/ 직소폭포 한줄기로 마음을 비운다"라는 시구에서처럼 자연인의 삶, 즉,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천하제일의 시인의 길이라고 할 수가 있다. 너도 시인이 될 수가 있고, 나도 시인이 될 수 있다. 정치인도 시인이 될 수가 있고, 학자도 시인이 될 수가 있다. 군인도 시인이 될 수가 있고, 의사도 시인이 될 수가 있다. ‘직소폭포의 길’은 ‘꽃길’이고, ‘꽃길’은 온몸으로 시를 쓰는 ‘시인의 길’이라고 할 수가 있다.
봄바람을 타고 변산반도 암봉 쇠뿔바위봉으로 간다
국립공원 휴식년제에서 풀려 난지 2년이 지났는데
산불방지로 못 오른다 하여 발길을 돌려
실상사 직소폭로로 향했다
낮은 보리들이 파릇파릇하고
냉이를 캐는 아낙네들
오랜 실상사 절터 뒤
암자에서 들려오는 반야심경 목탁소리
세상사 번뇌 사라지듯
새소리로 귀를 씻고
직소폭포 한줄기로 마음을 비운다
지금 떨어지고 있는
저 폭포는
삶과 죽음을 동행하고 있는
시詩의 마음 아닐까
----[직소폭포를 보다] 전문
꽃은 생존의 결정체이며, 아름다움은 종족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다. “돌틈 사이 핀 것이니 돌꽃인가/ 하늘엔 구름꽃/ 땅엔 들꽃/ 연못엔 연꽃/ 바다엔 파도꽃/ 허공엔 바람꽃”이라는 [돌꽃]처럼 이 세상에 꽃 아닌 것이 없고, “우아란 말 끝에/ 호수공원 앞/ 비에 젖고 있던 동백이/ 모가지를 직선으로 떨어뜨린 채/ 뚝 지고 있었다”의 [우아한 죽음]이나 “순간, 한순간/ 생애 한순간/ 붉은 꽃봉오리”의 [한순간], “이십여 년만에” “피어 활홀한 자태를 보여”주는 [문주란]처럼, 이 세상에 온몸으로, 온몸으로 꽃을 피우지 않는 생명체는 없다. 꽃길은 직소폭포의 길이고, 직소폭포의 길은 시인의 길이다. 시인의 길은 사람꽃의 길이고, 사람꽃의 길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풍경이 되는 길이다.
이 세상의 삶은 만물의 영장의 삶이 아닌 자연의 삶이며, 이 자연의 터전을 벗어나서는 그 어떤 생명체도 살 수가 없다. 장자와 노자가 ‘무위자연의 삶’을 강조한 것도 그렇고,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 그리고 장 자크 루소의 철학도 자연의 삶을 강조한 철학에 지나지 않는다. 탐욕을 만악의 근원이라고 규정하고 탐욕을 제거하는 것에서 출발한 모든 종교들도 그렇고, 따라서,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문명인들처럼, 반자연적이고 파렴치한 악마들도 없을 것이다.
자연휴양림을 지나
천상병 시인의 옛집으로 가고 있다
시인이 살았던 집
시인은 없고
빈 부뚜막의 솥단지 하나
꽃 화분 두어 개
비에 젖고 있다
----[소풍] 부분
내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봄꽃 화사한 미소를 만나러갑니다
환자의 내면의 고통과 병을
마음으로 치료하는 그를
나는 사람꽃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사람꽃] 부분
천금순 시인의 여행시들은 꽃길을 찾아다니는 시이며, 그는 꽃길에서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자연과도 하나가 된 사람꽃을 만나고 그 꽃에 감동을 하게 된다. 방드르디의 남태평양, 사진작가 김영갑의 제주도, 천상병 시인의 안면도 옛집, 코로나 시대의 강릉 입암동, 네팔 대지진 때의 카투만두, 국립중앙박물관 안의 폼페이, 지리산의 아코디언 민박집, 꽃대궐 속의 꽃길, 세월호가 침몰한 팽목항 등이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지리산을 돌고 돌아 소릿길”을 만들고 죽어간 “아코디언 민박집” 주인도 사람꽃이고, 제주도의 풍경 자체가 된 사진작가 김영갑도 사람꽃이다. 이 세상에 소풍 왔다가 하늘나라로 돌아간 천상병 시인도 사람꽃이고, “환자의 내면의 고통과 병을/ 마음으로 치료”해주는 의사도 사람꽃이다.
천금순 시인의 ‘꽃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는 [바다의 무덤]이 되어 온몸으로 영원불멸의 꽃을 피우고 있는 문무대왕이라고 할 수가 있다.
저 검은 동해
봉길리 앞바다
대왕암 바위 속 문무대왕릉
십자형 수로 가운데
봉긋 솟은 화강암 위
갈매기 떼 꽃인 양 앉아있다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동해에 장례하라
그러면 동해의 호국용이 되어 신라를 보호하리라”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바다의 무덤이 봉긋 솟았다
쏴-아 주상절리의 절창
사람과 돌과 바다가 하나 되어
출렁이고 있는 저 무덤들
----[바다의 무덤] 전문
국가가 있고, 국민이 있는가? 국민이 있고, 국가가 있는가? 국가를 강조하면 국민의 자유가 제한되고, 국민을 강조하면 국가의 조직과 그 질서가 무너진다. 중요한 것은 도덕과 법률, 즉, 그 구성원들의 사회적 약속에 따라 가장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험에 빠질 때면 국가가 우선시 되어야 하고, 모든 국민들은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꽃은 자연과 하나가 된 풍경이며, 이 자연과 하나가 된 풍경은 자기 자신의 모든 욕망을 다 비운 구도자만이 피울 수 있는 풍경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람꽃은 구도자의 모습이며, 우리 인간들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할 수가 있다. 천금순 시인의 꽃길은 직소폭포의 길이고, 직소폭포의 길은 시인의 길(사람꽃의 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아흐 꽃이 진다/ 세월호 침몰 90일째”, “세월호 참사는 끝나지 않았다”([꽃이 진다])라고 팽목항을 찾아가고, “입으로만 외치는 구호가 아니다/ 어제의 희생과 민주주의를 위하여 외치고 있는 것이다”([겨울광장에 서서])라고, 촛불을 들고 그 구원의 손길을 펼쳐 나간다. 아는 것은 실천하는 것이며, 실천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조국애는 사람꽃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며, 모든 국민과 하늘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저 검은 동해/ 봉길리 앞바다” 대왕암 바위 속에 핀 꽃, “십자형 수로 가운데” “화강암 위/ 갈매기떼”로 핀 사람꽃,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동해에 장례하라”, “동해의 호국용이 되어 신라를 보호하리라”의 사람꽃, “사람과 돌과 바다가 하나 되어” “쏴-아 주상절리의 절창”으로 핀 문무대왕꽃----. [바다의 무덤]은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의 승리이며, 천금순 시인의 ‘직소포의 길’, 그 시인 정신이 피워낸 ‘사상의 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천금순 시집 {직소폭포를 보다},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