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0:28-29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 성도가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차가 비탈길을 내려가는 순간 버스 기사가 갑자기 “핸들이 빠져서 위험 합니다.” 라고 소리를 질렀다.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람 살려” “살려 주세요” 울부짖으며 버스 안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상황에서도 이 성도는 하나님의 한없는 평화를 마음 가득히 느끼며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비탈길로 구르던 버스가 전복되어 처박히는 큰 사고였지만 그 성도는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뒤집힌 버스를 빠져나왔다. 치열한 경쟁과 일의 스트레스, 바쁜 생활들이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평안을 빼앗아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세상을 살다가 만난 문제들로 인해 고민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랄 수 있어야 한다. 시138:7에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말씀하셨다. 시34:7에도 보면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말씀하셨다. 그렇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친히 모든 위험에서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사랑하는 여러분, 불안한 세상에서 누리는 평안, 그것이 고단한 인생 길, 힘겨운 세상살이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별되게 하는 중요한 특징인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들의 삶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 주고 계신다. 시17:8에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말씀하셨다. 사람이 눈동자는 엄청난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안과 의사들은 우리의 눈동자가 자동으로 조절된다고 말한다. 가령 사람의 눈에 먼지나 모래와 같은 이물질이 들어오려고 하면 어느새 눈꺼풀이 감겨 눈동자를보호하는 것이다. 이런 작용이 가능한 것은 눈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구조 때문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사람의 눈에는 자그마치 30만개의 회로가 있고 1억만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그 무엇이라도 눈에 들어오려고 하면 이것을 눈동자가 감지하고 눈꺼풀에게 지시하여 자동으로 감겨 보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들을 주밀하게 보호하심 - 세상 끝날 까지 임마누엘, 에벤에셀의 하나님으로 도와주심) 마28:20에 보면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도의 견인에 대해 우리 예수님이 직접 말씀해 주셨다. 오늘 본문 28-29절에도 보면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하셨다. 빼앗을 자가 없고 빼앗을 수 없다고 강하게 말씀해 주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칼빈의 5대 교리가 있다. ① ‘인간의 전적 부패’ ② ‘무조건적 선택’ ③ ‘제한 속죄’ ④ ‘불가항력적 은혜’ ⑤ ‘성도의 견인’인데 오늘 본문이 5번째 교리인 성도의 견인을 말씀해 주고 있다. 성도의 견인(堅忍)이란 ‘견인’을 한문으로 보면 ‘굳을 견’, ‘참을 인’으로 ‘굳세게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의 견인’이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받은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특별한 은혜를 의미한다. (견인 牽引 - 이끌견 끌인 –끌어서 당김) 장로교 대요리 문답 79번에 보면 이런 질문에 나온다. “참된 신자들이 그들의 불완전과 그들이 빠지는 여러 가지 유혹과 죄 때문에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있지 않은가?” 질문에 정답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사랑, 그들에게 견인을 주시는 그의 작정과 언약, 그들의 그리스도와의 나눌 수 없는 연합, 그들을 위한 그의 계속적 중보, 그들 안에 거하는 성령과 하나님의 씨로 인하여 참된 신자들은 결코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기까지 보존된다.” 렘31:3에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말씀하셨고 렘32:38에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말씀하셨다. 벧전1:5에도 보면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셨다. (구원받은 자녀들을 말세까지 보호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 구원 받은 사람은 영원히 타락하지 않는가? 아니면 버림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논쟁은 오래 전 부터 있어온 논쟁이다. 여기에 대해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였고, 알미니안 주의는 인간의 의지와 책임을 강조하였다. (칼빈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 - 오직 은혜 신앙) 시37:23-24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말씀하셨고 사41:9-10에도 보면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들의 손을 꼭 붙잡고 동행하신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견인하시는 (보호) 이유는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롬8:38-39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말씀하셨다. 또한 히12:6-8에도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녀에게 주시는 징계 역시 하나님의 사랑임) 사람들도 자녀들을 끝까지 책임지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책임져 주시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수시로 변질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사람들은 때때로 포기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를 통해 다시 은혜의 자리로 부르심 - 변함없이 하나님은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삼하7:14에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2.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히13:5에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말씀하셨고 고전1:8에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말씀하셨으며, 딤후4:18에도 보면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늘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들에게 언약하신 말씀에 대해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심 - 택한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주신 영생을 취소하지 않으심 - 사람들은 처지와 형편 상황을 따라 변질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심) 28절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이 언제나 변함없이 언약하신 대로 우리에게 신실하게 역사해 주실 것을 믿고, 광야 같은 세상,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언약하신 대로 나와 동행하고 계심을 바라보면서 늘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말씀으로 인해 소망과 기쁨을 얻는 삶이 되길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