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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 뒷뜰 고암의 문자도)
白骨念珠/최길하
1.
꼭 도끼로 바위를 깎아
염주를 만들어야 했는지?
꼭 도끼를 갈아 바늘을 벼리고
염주구멍을 뚫어야 했는지?
오랜 내 물음 끝에
모기가 빨대를 꼿고
네 몸의 피를 뽑을 때의 파동이라.
염주는 바위 속에서 찾은
觀音의 음역대라.
'念'은 수덕사 대웅전을 활활 태우기도 했고
'珠'는 삼복에 함박눈이 쏟아져 적멸이 되기도 했다.
연민과 번뇌가 한 솥에 끓어
같은 주파수 속에서도
자모음이 흩어져 방언처럼 웅얼거렸다.
2.
가로와 세로로 구축되는 세상에서
念珠는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변주되는 우주였지.
아주 간절한 것들만 모여
一念一念 재깍재깍 돌아가는
일월과 행성이 된 念珠.
사막을 건너 온 낙타가 있었네.
마지막 걸음에서 낙타는 立脫했네.
모래 속에 네 기둥을 세우고 ,
사원 한 채 모래사막 끝에 꽃처럼 피었네.
뼈마디 마디는 모래 속에 묻혀 백골이 되고
바람이 한 꺼풀 한 꺼풀 모래를 벗겨 낼 때
사원은 백골 염주로 우수수 무너져
비로소 올가미를 벗고 별이 되어 흩어졌네.
(수덕여관 뒷뜰 고암의 문자추상)
<시 감상>고암 이응노의 수덕여관 뒷뜰 문자추상에 대한 이미지다. 고암은 파란만장한 세월을 건너
온 작가다. 다양한 미술의 전위적 시험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동백림 사건(동베르린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까지 받았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의 항의로 선고된지 약 1년 만에 풀려난다. 풀려나 수덕여관
에 머물며 여기 바위에 문자추상을 그린다.
자음과 모음을 비틀어 엉켜 놓은 것이다. '꼭 도끼로 염주를 깎아야 했습니가? 꼭 그 도끼를 벼려 염주
를 뚫어야 했습니까?'는 내가 고암에게 하는 질문이다. 번뇌와 고뇌에 대한 질문이다. '모기가 빨대로
네 몸에 피를 뽑을 때 네 몸의 파동이다. 그것은 돌 속에 즉 네 몸 속에 그와 연결 된 이 우주 속에 진동
하는 觀音의 공명, 관음주파수 음역대를 찾는 길이기도 했다.'로 고암이 답하는 것이다.
바위로 염주를 깎기까지 나의 번뇌는 수덕사 대웅전을 활활 태우기도 하고, 또 어느날은 삼복에도 함박
눈이 쏟아져 마음이 적멸보궁이 되기도 했다. 연민과 번뇌가 염주 속에 같이 끓었다. 잠시 딴 생각을 하
면 관음을 맞춘 一念이 흩어져 염불은 주파수가 맞지 않은 라디오처럼 잡소리로 웅성거렸다. 자음과 모
음이 질서를 갖추지 못하여 말이 되지 못한 방언 같았다는 번뇌를 표현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물질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씨줄 날줄, X-Y의 교차로 짜여진다. 즉 세상은 모두 '가로 세로
로 구축되는 것'인데. 내가 만든 염주는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동력이 변주되는 에너지'다. 즉 우주의 자
전과 공전에 대한 떨림과 울림의 관음이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위를 도끼로 깎고 그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어 염주구멍을 뚫어 꿰고자 하는 것이다., 일월과 행성 즉 관음의 뿌리에 닿으려는 몸부림이다.
이것은 나의 순례다. 사막을 건너온 낙타(고암이 바위로 변한 이미지)가 마지막 발걸음에 멈춰 立脫(서
서 임종하는 것)을 한다. 4개의 다리는 기둥이 되고 낙타는 사원이 된다(고암이라는 말의 뜻대로 사원이
다). 모래에 사원이 묻혔다가 바람이 모래를 벗겨낸다. 백골이 된 낙타의 뼈마디가 지탱한 모래가 사라지
자 풀썩 주저 않는다. 사원이, 백골 염주가 뿔뿔이 흩어 진다. 염주도 번뇌를 삭히려는 몸부림의 올가미.
마침내 그 올가미의 끈이 툭 터져 염주알이 흩어진다. 모두 고암 자신이다.
주제는, 고암의 풍파 그 세월을 바위로 염주를 깎으면서 말 밖의 언어로 털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문자
추상이라는 콘텐스를 택한다. '顧庵' 즉 돌아보는 사원. 바로 자기를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고종명 배웅
하는 것이다.
<시작노트>
1.
수덕사를 3년 전 회사 다닐 때 갔었다. 작년에 또 한 번, 몇 일 후 또 갈 일이 생
겼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살결로 감촉하는 것을 '五蘊'이라 한다. 이 '오온'
이 실체가 아니고. '오온계공' 다 공(空)이라고 한다. 다 착시고 환청이고 환각이
라한다.
하지만 나같은 중생은 5감의 심지로 희노애락를 적셔보는 리트머스지다. 어쩌
다 감기라도 한 번 걸리면 냄새를 못 맡아 죽을 맛이다. 코 막힌 것이 세상이 다
막힌 것처럼 답답하다. 후각에 민감한 짐승탈을 아직 못 벗었다는 증거.
작년에 갔을 땐 절 문턱 산채정식과 구기자막걸리가 제일이었다. 내일 모래 가
서도 "수덕사는 산채정식과 구기자 막걸리지!" 한다면 "참 무식한 놈" 할테지.
그래서 미리 예습을 해본다. 3번 째 방문에서 나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절도 어떤 패턴(律) 팔자의 리듬이 있다. 빈 거울이란 법명의 시 잘 짓는 경허
(鏡虛)스님이 수덕사에 계셨다. 그 밑에 돌 잘 깎는 만공(滿空)스님이 계셨다.
만공이 동굴동굴 돌을 깎는 것을 보고 빈 거울이란 법명의 경허(鏡虛)스님 한
소식 준다. "시는 깎는게 아니야 거울에 비춰보는 거야." 돌 깎는 것을 자기 주
특기인 詩 짓는 것에 빗댄 것이다. 만공이 "염주인데요" 하려는 순간 꿀꺽 삼
켰는데 목젖에 턱 걸렸다. 이 거북한 순간 한 소식 알아들은 것이다. 한 소식 알
아듣는 것이 어느 찰라 어느 공간에서 부지불식 간에 이루어진다.
말이 나오는 것을 꿀꺽 삼키는 순간, 목젖에 걸린 깨달음. 뭐 이거야 내 소설이
지만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시 잘 짓는 경허도 시 짓는 것이 염주 깎는 것과 다름 아니고, 염주 깎는 만공도
돌 깎는 것이 시 짓는 것이라는 것을 순간 깨달은 것이다. 말이 올라오는 것을
꿀꺽 삼키다 목젖에 턱 걸려서 까달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 소식이 아닌가?.
2.
개화기 3명의 대표 불덩이 여인이 있었다. 김일엽. 나혜석. 윤심덕. 3명 모두 신여
성들로 일본 유학파. 자유연애로 세상을 흔들고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갔다. 그리고
모두 수덕사와 깊은 인연이 있다.
최초 성악가 윤심덕은 김일엽보다 한 살 아래지만 덩치가 크고 성격이 괄괄했다.
별명이 '왈패'였다. 보통학교 때 한 살 위인 일엽을 데리고 다녔다. 나혜석은 또 윤
심덕 노래가사를 썼다.
'일엽'은 서양화가 나혜석과 동갑네기 친구였다. '일엽'을 만공스님이 비구니로 받
아준 것을 보고, 나혜석이 만공스님에게 "나도 머리 깎아주십시요" 하고 머리를 들
이밀었는데.
돌 잘 깎는 만공 왈, "네 머리는 못 깎겠다. 너는 돌이 아니고 불이다" "중씨가 못
돼" 하고 절문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내 말이 "절이 꼭 부처만 만들어야 하나? 보
살도 만들 수 있지"
이 3명의 여인들은 많은 유부남을 포함해 4번 5번 이상 자유연애를 한 여인들이다.
일엽스님은 33세에 절로 들어갔는데 그 때까지 밝혀진 남자가 8명. 만공이 '일엽'
을 보고 佛쏘시개 하면 사리돌 몇 개 굴려낼 수 있을까? 일단 받아준다. '혜석'은
불덩어리라 중씨가 못된다고 중 오디션에서 불합격 시켰다. 그래서 '혜석'은 결국
우리나라 여성해방의 부지깽이채화봉으로 전국을 떠돌다 무연고 행려자가 되었고
무연고자로 사망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의문이 있다. '일엽'이 33세에 절간에 들어와 5년간 중 시보를
거쳐 38세에 머리를 깎는다. 이 때 친구 나혜석이 사랑과 번민에 지친 몸을 끌고
와 일엽한테 "일엽아, 나도 머리 깎아야겠다. 만공스님한테 잘 좀 말해주라"한다.
이 땐 일엽스님 아직 속불이 안 꺼진 때였을 것이다. 중 시보가 5년이었으니까. 아
직 중 시보라 질투가 남은 여자. 친구 이전에 여자, 여자의 적은 여자. "스님. 혜석
이란 애는 내 친군데 행실이 별로예요. 그런데 스님한테 머리 깎아달라고 온데요?.
계율을 지킬 수 있을지 몰라." 이랬을 것이다. 눈치 빠른 만공이 알아들었겠지. 시
그널이 "오빠, 나만 봐." 아닌가? 그래서 만공이 가만이 생각해보니 잘못하다간 두
여인 때문에 절 까실러 먹게 생겼거든.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때 건물로 국보인데
끔찍한 일이지.
그래서 쌕시한 혜석을 오디션에서 말도 안되는 심사평으로 탈락시킨 것일 것이다.
"불덩이라서 중씨가 못된다고" 그날밤 만공이 일엽한테 "나 잘했지?" 했을 것이다.
이런 속사정도 모르고 "만공이 이뻐하는 일엽'한테 빽도 썼으니 2차 오디션에는 당
연이 합격이겠지" 하고 '혜석'이 수덕사 앞 수덕여관에 머물며 이제나저제나 소식
올 때만 기다린다. 이 때 그림, 조각을 배우려고 인근 예비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 혜석보다 6살 아래 '이응노'라는 청년이 있었다. 호가 '고암(顧庵)이다. 참 묘
한 것이 호가 팔자를 예견하고 있었다. 고암 이응노는 호가 자기 팔자가 된 것이다.
3.
이렇게 보면 내 호가 내 스스로 고향 동네 이름을 따 '下詩'라고 했는데 팔자가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돌염주나 깎을까 하는 중이다. 뭐 중 되겠다는 것은 아니고
나름 깜짝 놀랄(?) 돌장난을 계획하고 있다. 38년 동안 돌광산에서 돌을 깨던 놈
이니 돌과 인연이 남다르다. 그러서 돌로 끝장을 볼까한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친 나혜석은 떠나고, 수덕여관은 1944년에 고암 이응노가
사서 작품의 산실로 쓴다. 여관은 그 부인이 운영한다. 서울을 오르락 내리락 하
면서 미술교수를 하는데 21살이나 어린 이화여전 학생과 사랑에 풍덩 빠져버린
다. 독일을 거쳐 프랑스로 둘은 밀월을 떠나고 부인은 수덕여관을 지킨다. 마음이
오죽했으랴. 불이 활활 탓으리라. '인욕다라'가 저절로 됐을 것이다.
그런데 고암이 프랑스에서 음악가 윤이상과 함께 북한 양아들을 만나러 간 것이
발각되어 압송된다. 그 옥바라지를 수덕사를 지키던 아내가 한다. 감옥에서 나와
1년간 고암은 수덕여관에 머물며 여관 뒤 천연 돌바우에 여기저기 이상한 짓(?)
을 한다.
근대 설치미술의 창시다. 알 수 없는 엉킨 실타래같은 문자를 쪼아새긴다. 물론
설치 미술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시시대 암각화, 토함산 석굴암. 다보탑 석가탑.
방방곡곡 마애불. 경주 남산 부처. 수덕사대웅전. 가람 모두 광의적인 설치미술
이지만.
순수 아카데미 예술로서의 설치미술은 고암의 이 문자추상이 시초다. 체구는 조
그만하고 약한 고암이 집체 같은 큰 바우돌에다 새긴 문자추상. 인생 역정과 마
음 속 번뇌를 자신만 알 수 있는 문자추상으로 쪼아놓은 것이다. 세계적인 작품
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최고의 조각이자 설치미술이다. 아마 티벳 바위에 "옴마니
밤메흠" 암각화같은 추상을 본떴으리라.
수덕여관에 박힌 천연 바위돌들은 고암을 기다렸던 것이다. 거기에 여관을 지은
사람은 또 이 바우돌을 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래서 쪼아내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리라. 이게 바로 연기의 바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암이 장가를 두번 가고 양아들로하여 옥살이를 치르고 이 복잡한 사주팔자가
고암에게 다 원력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화엄경 54품계나. 심우도.
부모은중경 같은 예정된 순례길은 아니었을까.
수덕사에서 1년 있으면서 바우에 알 수 없는 번뇌를 풀어놓고 고암은 프랑스로
또 훌쩍 떠난다. 두 번째 부인에게로.... 거기서 이방인으로 인생의 여정을 마감한다.
옥고를 치르고 나와 수덕여관 바우에 새긴 엉킨 실타래. 아니 바우돌 염주알에 주문
을 새겨 엉킨 실타래로 암자를 꿰어놓은 것이다.
고암(顧庵)! 무슨 뜻인가? 암자를 돌아본다. 이 뜻 아닌가? 그러니 팔자와 호가 딱 맞
아떨어진 것. 돌에 문자도를 새긴 자기의 운명실타래. 바윗돌은 고암의 속죄 염주였
다. 그리고 그것을 먼 이국에서 돌아본다. 본처를 생각한 것이다. 이게 호가 팔자가 된
것 아닌가?
顧庵! 그가 바로 수덕사와 대칭되는 사바세계의 절간이다. 그래서 수덕사 가람은 등
고선 위의 나라 도솔천에. 고암의 절간은 아랬 세상 인간이 머무는 여관. 그 여관이
절간이었던 것이다. 인간사 냄새가 물씬 나는 여관이 또다른 문법의 절간이었던 것.
4.
일엽스님에게는 4번째 남자(일본인) 사이에 사생아 같은 아들 하나가 있었다. 그 아
들이 13살 때 물어물어 일엽을 찾아와 "어머니!" 울며 부른다. 그러나 일엽은 야멸차
게 쫓아낸다. '나는 속세의 사람이 아니니라'면서.
그 13살 아이가 수덕여관에 울며 하룻밤 머문다. 그날 밤 나혜석이 품어 안고 젖을
만지게 한다. 일엽 대신 어머니가 되어준 것이다. 수덕사는 觀音도량이다. 중이 못 된
불덩이 나혜석은 관세음보살의 응화신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니 일엽의 아들을 품고
어머니가 되어 준 것이다. 이게 관세음보살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 관세음보살 응화신 나혜석은 무연고 행려자로 싸늘한 죽음이 되어 발견된다.
응화신의 순례는 이렇게 적멸이 되고
그 때 13살을 품에 안은 일엽의 아들은 67세 아주 늦은 나이에 그도 스님이 되고 만
다. 유명한 화가 스님이 된다. 참 묘법연화경이다. 핏줄인 어머니에게서 쫒겨난 아이
를 나혜석이 하룻밤 어머니를 대신해 품어주었는데 화가 DNA가 염색된 것이다. 김
일성의 정식 초상화를 그릴 정도로 재능있는 화가가 된 것이다. 김일성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것은 사람의 속 심리를 잘 본다는 것 아니겠는가? 초상화는 마음을 그려
야 한다. 겉 가죽 카피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얼굴은 배채법으로 그린다. 그의 번
민이 얼마나 깊었는지 증명하는 것이다.
일엽스님이 임종이 가까워 누웠는데 할아버지 신사 한 분이 찾아와 마당에서 큰 절
3배를 올리고 뵙기를 청한다. 바로 일본인 4번째 남자 쫓아낸 그 아이 아버지다.
일엽스님 손에 하얀 수건을 올려놓고 그 노신사 자기 손을 얹는다. 그 남자는 일엽
스님이 첫사랑이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외교관생활을 해온 것이다. 첫사랑으로
인한 국외자, 그가 일엽스님보다 더 높은 수행자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엽스님은
33세에 절로 들어가기 전까지 최소한 8-9명의 남자가 있었지만 일엽스님을 처음 사
랑한 일본인 그 남자는 일엽스님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5.
경허 만공 일엽 나혜석 고암 모두 관음보살의 응화신이 아니었을까? 관음보살의 순
례를 보여준 것이 수덕사가 아닐까? 도솔천 수덕사와 그 아래 중생계의 수덕여관에
펼쳐지는 연기법. 그래서 관음도량 수덕사 곳곳에 관음보살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석기시대가 있었다. 처음엔 돌을 깨서 그 날카로운 것을 썼다. 날카로울수록 좋은 연
장. 그러다 돌을 만공스님처럼 갈아서 쓴다. 마제석기시대다. 돌은 무기다. 모가 나고
각이 예리할 수록 강력한 무기다. 이 모난돌을 흐르는 물이 굴려서 냇가에 이르고 강
가에 이른다. 동글동글 점점 모서리가 사라진다. 만공도 고암도 흐르는 냇물. 돌로 관
세음보살 성모를 만든 것이다. 염주를 만든 것이다.
동충하초(冬蟲夏草)가 있다. 풀벌레의 가슴에 풀씨의 버섯포자가 자란다. 풀벌레는 울
며 떠도는 순례자가 되고 풀씨의 그림자는 가슴에 계속 자란다. 풀벌레는 어느 순례길
위에서 한 생을 마감한다. 그런데 그 뱃속에서 버섯풀대가 올라왔다. 한 생은 벌레로
또 한 생은 풀로 사는 동충하초. 3명의 여인과 고암이 그 동충하초 관세음보살의 응
화신은 아니었을까?
고암. 나혜석은 인간사 정을 품어안고 자비신 보살로 왔다가 갔다, 정내미마져 끊어버
려 인간냄새를 지운 일엽스님은 적멸 성불했을까? 성불은 했겠지?
물론 일엽스님도 동충하초다. 38세까지는 방랑자로, 38세 이후는 머리를 깎고 출가
하여 38년 후 입적한다. 아주 딱 반반의 생을 살고 간 것이다.
이 순례자들이 가리킨 손 끝이 "修德"은 아닐까? 修德은 情마져 끊어버리고 홀로 성
불하는 부처되기보다, 그 바로 아래 단계 인간사 世情를 지우지 않은 보살도를 가르
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덕여관은 수덕사 등고선 아래 있다. 중생들이 정을 주고받고 연민으로 사는 사
바세계다. 보살이 뭇 생명 오탁의 벌레들과 함께 섞여 사는 땅이다. 그 계단을 오
르면 정마져 끊어버리고 성불한 청정한 하늘. 부처가 있는 도솔천.
修德, 덕을 닦으라는 이 문패는 부처의 계단 아래 보살의 세상을 가르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처되고 성불하는 것보다 대자대비 인간세상에 어울려 연민하고
번뇌하는 보살이 나는 더 예쁘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상은 자비로운 聖母像일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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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하!~
부처님이 하시는 불경말씀인지
불자들이 하는 일상의 언어들인지....
감탄할 따름이외다.
고맙습니다.
저의 초등학교 시절 무용선생님을 하셨던 혜진스님이 수덕사에서
공부를 하셨다 들었어요.
혜진스님께서 일엽스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지요. 음성 수정사 혜진스님은 바라춤을 기막히게 추시는 분. 수덕사는 그런분들이 공부하는 곳인가 싶네요.
절도 팔자가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수덕사, 수덕여관 하면 예전에 읽었던 소설이 생각납니다.
일엽스님의 아들 김태신 스님 직지사에 계셨다고 들었는데 그분이 쓴소설 '라훌라의 사모곡 ' 을 아주 감명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생니의 시조와 시작노트를 읽으며 다시금 그 때 그.감동을 떠올려 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