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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유업
제목 : 유업을 이어 갈 하나님 자녀
성경 : 갈 4:1~11
찬송 : 405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40428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갈 4: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갈 4: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갈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갈 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갈 4: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갈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갈 4: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갈 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1833년 진화론을 전개하면서 원숭이가 진화해 사람이 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최초의 단세포생물이 점차 진화해 고등동물이 되었고,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론을 설정한 다윈에게는 원숭이와 사람 사이의 중간 고리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는 중간 고리를 찾기 위해 배를 타고 미개한 원주민이 사는 섬을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남양군도의 어느 섬에 도착했을 때, 분명 사람으로 생겼으나 원숭이처럼 생활하는 집단을 만납니다. 그들은 벌거벗었고 닥치는 대로 먹었습니다.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30년 뒤, 일부로 그 섬에 가 본 다윈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마을에는 교회당이 서 있고, 깨끗하게 옷을 차려 입고 교회당에 나가 예배드리고 찬송을 하는 그들은 이전의 그 미개한 원주민이 아니었습니다. 문명인이 되었습니다.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존 깁슨 페이튼(식인종들의 사도)이라는 선교사의 노력으로 새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를 보고 돌아간 다윈은 런던 선교 협회에 거금을 헌납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을 바뀌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곽선희 / 두 예배자의 관심)
여러분!
예수님을 믿기 전과 후, 여러분은 어떤 변화를 경험하였나요?
갈라디아 교회의 많은 성도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좇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어릴 때부터 익혀 온 유대교 사상이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율법을 중시하는 뿌리 깊은 유대교 사상이 그들로 하여금 복음의 진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3장에 이어 4장에서 바울은 유대교 잔재를 버리지 못했기에, 유대교도들이 전하는 다른 복음에 흔들리는 성도들을 책망합니다. 바울의 가르침에 따르면, 율법은 초등 교사로 구원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더 이상 초등 교사 아래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을 받아 더 이상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증언합니다.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구원받은 성도라면 율법에 매여 종노릇할 필요가 없습니다. 법적으로는 상속자라 하더라도 후견인이 필요했던 어린 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성장해 하나님 아버지의 유산을 온전히 상속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정체성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번 청년 다니엘 기도회에서는 전해지는 메시지 가운데 중요한 것은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삶이 어렵고 혼란에 빠지는 결과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신분에 대한 규정은 자기 스스로 내릴 수 없습니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누구며 무엇을 해야 하는 존재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유업을 이을 자
√갈 4: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갈 4: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바울 사도는 유업을 이을 상속자의 유년기를 묘사하며 본문을 시작합니다. 어린 상속자는 상속을 받을 때까지 종과 다름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가 그 집의 상속을 받을 주인임에도 아직 상속을 받지 못한 그는, 상속해 주는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에피트로포스)이나 ‘청지기’(오이코노모스) 아래 놓입니다. ‘후견인’과 ‘청지기’는 비슷한 말로 주인을 대신해 집안 대소사를 관장하는 직무자를 뜻합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후견인과 청지기는 모두 작지 않은 공적 직함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도의 비유는 이전에 율법 아래 놓여 있었던 사람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갈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바울 사도는 상속자의 어린 시절에 우리의 어린 시절을 비유해 중첩시킵니다. 상속자가 어린 시절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었던 것과 같이 우리도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서 종노릇했었습니다. ‘초등학문’(스토이케이아)은 세상을 구성하는 원소들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조금 포괄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원리나 틀, 구조 등의 의미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원리)으로 사용합니다. 이 단어의 사용은 약간 생소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단어는 ‘율법’입니다. 4~6절에서 사도는 다시 ‘율법 아래’를 언급합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의 의미를 스토케이아(초등학문)에서 풀어 사용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율법을 ‘초등교사’라 부릅니다.
√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초등교사라는 말은 원어적으로 헬라와 로마 시대에 유력한 가문의 아이를 돌보고 인도하는 종을 뜻합니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까지 율법이 그의 행동을 지도하며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그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까지로 제한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유업을 이을 자이지만 어렸을 때는 종과 다름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서 초등교사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때가 차매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갈 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어린 시절이 지나가고 상속의 때가 되었습니다. 사도는 이를 ‘때가 차매’로 표현합니다. 이것은 2절에 언급된 ‘정한 때’가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상속받는 방식은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심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방식은 독특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은 여자에게서 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자로부터 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의미하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원죄가 가져온 죄책 없이 무죄하게 태어나셨음을 의미합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둘째, 율법 아래서 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을 율법 아래 나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을 율법 아래 나게 하신 이유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의 아들이 율법 아래 나심은 그가 여자의 후손으로 무죄하나, 역시 율법의 종으로 태어나 율법의 요구 아래 있었음을 말합니다.
아이가 성장하면 더 이상 초등 교사의 지도가 필요 없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는,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되었기에, 율법 아래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죄를 깨닫는 일이 필요하기에 율법의 가르침이 필요하지만, 믿음이 생긴 이후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참 선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는 율법이 그 후견인으로서 한시적인 역할을 하다 ‘때가 차매’,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셨습니다. 그 결과 더 이상 율법에 종노릇할 필요가 없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가 누리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내가 자녀 됨을 잊고 종처럼 살려고 하면 하나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신약의 성도는 구약에 기록된 언약들이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부분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아브라함 당대의 사람들은 볼 수도, 누릴 수도 없었던 온갖 축복들을 실제로 자신들의 삶속에서 실제로 누리고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특별한 은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의 마음 안에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성도 안에 있는 보혜사 성령은 언제 어디서든 그를 도우십니다. 성령은 성도가 더 이상 종이 아니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언하십니다.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하나님은 자녀 된 성도들을 위해 아들의 영을 보내십니다. 성령을 의미하는 ‘아들의 영’은 하나님 자녀가 받는 상속의 핵심에 해당합니다. 아들의 영이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부름은 무엇보다 성부 하나님이 성도들의 실질적인 아버지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가능하게 하신 이 호칭은 성도가 법적,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적자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객관적 타자이신 하나님이 예수님과 성령님의 보내심으로써 나 개인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자녀 된 성도에게 일어나는 이러한 삶의 변혁이야 말로 상속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제 종이 아닌 아들입니다. 종과 아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유업을 상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때가 차매 그 아들을 여자에게서 나게 하신 것은 우리를 속량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시려고 아들의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좋아하고 늘 따르는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는 노크 소리로도 밖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구니? 어서 들어와”
그때 귀여운 아들의 모습이 살며시 문틈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 아빠가 무엇을 해줄까?”
어린 아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그저 난 아빠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들어왔어요.’
아들은 서재 한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천진난만하게 자기 장난감을 갖고 홀로 놀고 있었습니다. 글을 쓰던 아빠는 조용히 아들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만약 아빠가 여기에 없다면 저 아이는 저토록 평화롭게 놀 수 있을까?”
여러분!
어리석은 상속자는 하늘 아버지와 즐거운 교제를 원하기보다 그분으로부터 누릴 혜택에 눈이 어둡습니다. 아버지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갖고 있는 것에 침을 흘립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는 우리가 그분의 빛 아래서 풍성한 사귐을 나누길 원하십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의 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제는 더 이상 종노릇하는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갈 4: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갈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갈 4: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갈 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설립하고 복음을 전할 당시, 성도들은 복음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을 떠난 후 슬며시 들어온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복음의 진리에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더 이상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그 신분이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영향 받은 상당수의 성도들이 유대교 사상, 율법의 지배권 아래서 다시 종노릇하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권면합니다. 그들이 과거 율법을 좇던 시절을 ‘종노릇하던 때’라고 하며, 그 당시에 세상의 초등학문, 율법의 지배를 받던 일을 상기시킵니다. 창세기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아브라함의 언약 축복 속에 성령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고 바울은 해석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들의 영을 그에게 보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부자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갈라디아 성도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도 그를 아십니다. 그러니 이제는 세상의 초등학문과 율법에 매여 종노릇 하는 데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 당시 유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율법이 정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율법으로 다시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봉사를 하고, 헌금을 하는 등의 행위를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한 동기로 하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지 않는 날은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것 같고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 불편함을 피하고자 감사의 마음도 없이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지난 청년 다니엘 기도회 강사로 말씀을 전하신 박광리 목사님이 말한 종교인의 생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동기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다시 율법에 종노릇하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자녀의 신분에 맞는 마음과 행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은혜의 말씀 안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가 전에는 종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언합니다.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전심으로 예배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 새로운 지체들을 위해 봉사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헌금도 내고 싶어집니다. 이 영혼의 자유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이 자유로움과 기쁨을 누구도 빼앗지 못하도록 복음의 은혜 아래 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바른 믿음의 길로 행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진리로 바르게 선 한 사람은 또 다른 이들을 복음의 진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악한 이 세대 가운데서 사람들을 바른 믿음의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미국의 댈러스 신학교 하워드 헨드릭스 교수는 윌트라는 선생님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력에 대해 늘 강조합니다. 윌트는 염색공으로 일하다가 오래전에 은퇴한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는 작은 교회에서 주일학교 성경 공부반을 인도한 선생님입니다. 그의 반에는 13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그들 중 11명이 윌트의 인격과 가르침에 감명 받아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하워드 헨드릭스 교수는 윌트를 통해 받은 영향력을 이렇게 전합니다.
“솔직히 나는 윌트가 해 준 말은 거의 기억할 수 없지만, 그에 관한 모든 것은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부모보다 나를 사랑했으니까요. 그는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가르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사역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이 나의 인생길에 한 헌신 된 교사를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저주 아래 있던 우리를 속량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 아들의 영을 보내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들은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갈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자녀 된 신분을 잊어버리고 종노릇하던 옛 사람의 모습으로 달아가서는 안 됩니다. 율법주의가 아닌 진리의 복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악한 세대 가운데 다른 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